|
畵家(화가) 윤옥수 女史(여사)님이 그린 이곳은 아름다은 溪谷(계곡)이다.
계곡[溪谷]은 山(산)과 산 사이를 따라 기다랗게 움푹 패어 들어가 물이 흐르는 곳이다.
畵家(화가) 윤옥수님이 가서 그린 寧越(영월)은 由緖(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江原道(강원도) 寧越(영월) 김삿갓[朝鮮時代(조선시대)의
詩人(시인)인 ‘金炳淵(김병연)’의 다른 이름이다.
김병연(金炳淵)出生(출생)1807年(년)
朝鮮(조선) 京畿道(경기도) 楊州郡(양주군) 推定(추정)
死亡(사망) 1863年(년) (57歲(세))
朝鮮(조선) 全羅道(전라도) 和順郡(화순군) 東福面(동복면)
職業(직업)~詩人(시인)
國籍(국적)~朝鮮(조선)
學歷(학력)
1826年(년) 白日場(백일장) 科擧(과거)壯元及第(장원급제)
宗敎(종교)~儒敎(유교)(性理學(성리학)
筆名(필명)~字(자)는 성심(性深)
號(호)는 이명(怡溟)·지상(芝祥)·난고(蘭皐)
別稱(별칭)은 방랑 시인(放浪 詩人)
一名(일명)은 김난(金鑾, 金蘭, 김란)
俗稱(속칭)은 김삿갓, 김입(金笠, 김립)
活動期間(활동기간)~1826年(년) ~ 1863年(년)
genre(장르)~漢詩(한시)
父母(부모)
아버지 김안근(金安根)
어머니 함평 이씨 부인(咸平 李氏 夫人)
配偶者(배우자)
장수 황씨 부인(長水 黃氏 夫人)
子女(자녀)
長男(장남) 김학균(金學均)
次男(차남) 김익균(金翼均)
3男(남) 김영규(金英奎)
親知(친지)
親祖父(친조부) 김익순(金益淳)
外祖父(외조부) 이유수(李儒秀)
兄(형) 김병하(金炳河)
아우 김병호(金炳浩)
아우 김병두(金炳浢)
김병연(金炳淵, 1807年(년)(純祖(순조) 7年(년) ~ 1863年(년)(哲宗(철종) 14年(년)은 朝鮮(조선) 後期(후기)의 諷刺(풍자) 詩人(시인)이자 放浪詩人(방랑시인)이다. 흔히 金笠(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Table of Contents目次(목차)
1 一生(일생)과 背景(배경)
2 生涯(생애)
3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과의 關係(관계)
4 放浪(방랑)의 始作(시작)
5 死亡(사망)
6 朝鮮(조선) 全國(전국) 放浪(방랑) 中(중) 全羅道(전라도) 和順地方(화순지방) 起居(기거) 與否(여부) 關聯論難(관련논란)
7 家族關係(가족관계)
8 김삿갓 文學賞(문학상)
9 See together(같이 보기)
10 footnote脚注(각주)
lifetime and landscape background(一生(일생)과 背景(배경)俗稱(속칭)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金炳淵(김병연) 그는 '삿갓 립'(笠)字(자)를 써서 김립(金笠)이라고도 한다.
그의 本貫(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字)는 성심(性深), 호(號)는 이명(怡溟), 지상(芝祥), 난고(蘭皐)이다.
그의 先代(선대) 祖上(조상)을 살펴보면 9代祖父(대조부)는 丙子胡亂(병자호란) 때 斥和大臣(척화대신)으로 有名(유명)한 淸陰(청음)金尙憲(김상헌[金尙憲, 1570年(년) ~ 1652年(년)은 朝鮮(조선) 中(중)·後期(후기)의 文臣(문신)이며 學者(학자)이다. 丙子(병자), 丁卯胡亂時(정묘호란시) 斥和大臣(척화대신)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孝宗(효종)의 廟廷(묘정)에 從祀(종사)되었다.
字(자)는 숙도(叔度), 號(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 諡號(시호)는 문정(文正)이며. 本貫(본관)은 新安東(신안동)이다.]
月汀(월정) 윤근수(尹根壽)[尹根壽, 1537年(년) ~ 1616年(년) 8月(월) 17日(일)는 朝鮮(조선) 中期(중기)의 문신(文臣)·詩人(시인)·畫家(화가)이며, 서인(西人)의 一員(일원)이다. 本貫(본관)은 해평(海平), 字(자)는 자고(子固), 號(호)는 월정(月汀)·외암(畏菴), 諡號(시호)는 문정(文貞)이다.
領議政(영의정) 윤두수[尹斗壽, 1533年(년)~1601年(년))는 朝鮮(조선) 中期(중기)의 문신(文臣)·政治人(정치인)이자 性理學者(성리학자), 作家(작가), 詩人(시인)이며, 서인(西人)의 一員(일원)이다. 本貫(본관)은 해평(海平), 字(자)는 자앙(子仰), 號(호)는 오음(梧陰), 諡號(시호)는 문정(文靖)이다. 西人(서인) 重鎭(중진) 文臣(문신)으로, 西人(서인) 中(중) 몇안되는 이황(李滉)學派(학파) 사람이었다.
吏曹正郎(이조정랑)으로 있던 明宗(명종) 때의 外戚(외척) 이량(李梁)의 아들 이정빈(李廷賓)을 薦擧(천거)하자 그는 끝까지 拒絶(거절)하여 誣告(무고)로 罷職(파직)되었다가 이량(李樑) 等(등)이 失脚(실각)한 後(후) 復職(복직)되었다.
宣祖(선조) 때 東人(동인)들로 부터 珍島郡守(진도군수) 이수(李隨)의 賂物(뇌물)을 받았다는 嫌疑(혐의)를 받고 罷職(파직)되었다가 다음해 延安府使(연안부사)로 나가 善政(선정)을 베풀었다.
大司憲(대사헌) 때 黨爭(당쟁) 過程(과정)에서 會寧(회령)에 流配(유배)되었다가 壬辰倭亂(임진왜란)으로 復職(복직)되어 임금을 開城(개성)에 扈從(호종), 御營大將(어영대장)을 지낸 後(후) 議政府領議政(의정부영의정)까지 올랐고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에 封爵(봉작)되었다.]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의 兄(형)이며, 윤보선(尹潽善)·윤치영(尹致暎)·윤치호(尹致昊)의 先祖(선조)이자, 純宗妃(순종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親庭(친정)인 윤덕영(尹德榮), 윤택영(尹澤榮)의 先祖(선조)였다.
또한 宣祖(선조)의 駙馬(부마) 윤신지(尹新之)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壬辰倭亂(임진왜란) 때의 將軍(장군) 원균(元均)의 姻戚(인척)이기도 하다.
성수침(成守琛)·이중호(李仲虎)·이황(李滉)의 門人(문인)이다.]의 同生(동생)이다.
1558年(년) 科擧(과거) 及第(급제) 後(후) 承政院(승정원) 周書(주서), 春秋館 記事官(춘추관기사관), 漣川郡守(연천군수) 等(등)을 지내다가 1563年(년) 이량(李樑)의 彈劾(탄핵)을 받고 罷職(파직)되었으나 이듬해 윤원형(尹元衡), 심통원(沈通源) 等(등)의 上疏(상소)로 復職(복직)되었다.
그 뒤 明宗實錄(명종실록) 編纂(편찬)에 參與(참여)하였고, 1575年(년)의 乙亥黨論(을해당론)으로 東人(동인), 西人(서인)으로 分黨(분당)될 때 이황(李滉)에게서 修學(수학)한 同門(동문)들을 따르지 않고 서인(西人)이 되었다.
1589年(년) 工曹參判(공조참판)으로 宗系辨誣使(종계변무사)에 任命(임명)되어 明(명)나라에 派遣(파견), 明(명)나라 公式(공식) 記錄(기록)인 大明會通(대명회통)의 李仁任(이인임)의 아들로 된 李成桂(이성계)의 家系(가계)를 李子春(이자춘)의 아들로 修整(수정)하게 하는데 成功(성공), 1590年(년) 宗系辨誣(종계변무)의 功(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1等官(등관)에 錄勳(녹훈)되고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으로 封(봉)해졌고, 1606年(년) 宣祖(선조)가 죽자 王(왕)의 廟號(묘호)를 조(祖)로 稱(칭)할 것을 主張(주장)하여 이를 實現(실현)시켰다.
1604年(년)에는 壬辰倭亂(임진왜란) 때 宣祖(선조)를 扈從(호종)한 功勞(공로)로 호성공신(扈聖功臣) 2等官(등관)에 책록되었다.
死后(사후) 議政府領議政(의정부영의정)에 追贈(추증)되었다. 그밖에도 光海君(광해군)을 隨行(수행)한 功勞(공로)로 1614年(년)(光海君(광해군) 6年(년) 8月(월) 27日(일) 위성원종공신 3등(衛聖原從功臣三等)에 追錄(추록)되었다.
壬辰倭亂(임진왜란) 때의 將軍(장군) 원균(元均)의 姻戚(인척)이기도 하다.
搪塞(당색)으로는 西人(서인)이며, 西人(서인) 中(중) 몇안되는 이황(李滉)學派(학파) 사람이었다. 김덕수(金德秀), 이황(李滉)의 門人(문인)이다.]의 門人(문인)이다.
朝鮮後期(조선후기) 勢道家(세도가)의 直系(직계) 先祖(선조)로 그의 後孫(후손)에서 13名(명)의 宰相(재상)과 數十名(수십명)의 判書(판서), 參判(참판)이 輩出(배출)되었고, 純祖妃(순조비), 憲宗妃(헌종비), 哲宗妃(철종비) 等(등) 王妃(왕비) 3名(명)과, 肅宗(숙종)의 後宮(후궁) 영빈김씨(寧嬪金氏)가 모두 그의 後孫(후손)이었다.]의 四寸兄(사촌형)인 刑曹參判(형조참판)을 지낸 김상준(金尙寯)이며 5代祖父(대조부)는 黃海道(황해도) 兵馬節度使(병마절도사) 金時泰(김시태), 高祖父(고조부)는 全義縣監(전의현감) 김관행, 曾祖父(증조부)는 慶源府使(경원부사) 김이환이다.
그의 祖父(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洪景來)의 亂(난) 때 宣川府使(선천부사)로 있다가 叛亂軍(반란군) 勢力(세력)에 投降(투항)한 것을 두고 非難(비난)하는 詩(시)로 壯元(장원)한 것을 羞恥(수치)로 여겨, 一生(일생)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短杖(단장)을 벗을 삼아 各地(각지)로 放浪(방랑)을 했다.
到處(도처)에서 獨特(독특)한 諷刺(풍자)와 諧謔(해학) 等(등)으로 頹廢(퇴폐)하여 가는 世上(세상)을 慨嘆(개탄)했다. 그의 數(수)많은 漢文詩(한문시)가 口傳(구전)되고 있다. 그의 墓(묘)는 江原道(강원도) 寧越郡(영월군) 김삿갓面(면) 와석리에 있다.
Life生涯(생애)
1807年(년) 京畿道(경기도) 楊州(양주)에서 兩班家門(양반가문)인 김안근(金安根)의 4男(남) 中(중) 次男(차남)으로 태어났다. 1811年(년), 洪景來(홍경래)의 亂(난)이 일어났을 當時(당시) 그의 조부(祖父)이자 宣川府使(선천부사)(宣川防禦使(선천방어사)였던 金益淳(김익순)은 叛亂軍(반란군) 首魁(수괴) 洪景來(홍경래)에게 降伏(항복)하였다.
金益淳(김익순)은 咸興(함흥) 중군(咸興 中軍:正(정)3品(품)으로 專管(전관)되어 온지 불과 서너달이 지난 狀態(상태)였다. 新任地(신임지)에 와서 어수선한 일을 停頓(정돈)한 後(후) 시골의 著名(저명)한 선비들을 모아 數日間(수일간) 잔치를 열었는데 새벽에 叛亂軍(반란군)이 쳐들어와 술에 취해 있는 방어사(防禦使) 金益淳(김익순)을 結縛(결박)하고 降伏(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參考(참고) 文獻(문헌):安東金氏文獻錄(안동김씨문헌록) 金益淳(김익순)은 그로 因(인)해 朝政(조정)으로부터 斬首(참수)를 당하였으나 그 家族(가족)은 살려주기로 하였고 김삿갓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그 後(후) 家門(가문)에서 종 노릇을 하던 사람(김성수)의 故鄕(고향)인 黃海道(황해도) 谷山(곡산)으로 家族(가족)이 避身(피신)하였으나 아버지는 途中(도중)에 死亡(사망)하였고 어머니만이 살아남아 4兄弟(형제)를 키워내었다.
그 中(중) 次男(차남)인 炳淵(병연)은 어렸을 때부터 文章(문장) 솜씨가 뛰어나다는 定評(정평)을 받아 신동(神童)으로 評價(평가)되기도 했다. 그 뒤에 江原道(강원도) 寧越(영월)에서 열린 白日場(백일장)에서 20歲(세)의 나이로 及第(급제)를 받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科擧(과거)에 應試(응시)했을 때, 自身(자신)의 祖父(조부)인 金益淳(김익순)의 逆賊(역적)行爲(행위)를 批判(비판)하는 內容(내용)을 쓰라는 試題(시제)에 金益淳(김익순)을 날카롭게 批判(비판)하는 글을 써 及第(급제)한 것이었다.
뒤에 어머니로부터 金益淳(김익순)이 自身(자신)의 祖父(조부)라는 事實(사실)을 알게 되고 衝擊(충격)을 받아 삿갓을 쓰고 全國(전국) 流浪(유랑)을 떠나게 되었고 이 때부터 이름도 '炳淵(병연)' 이라는 本名(본명) 代身(대신) '삿갓' 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流浪(유랑) 途中(도중) 집에 잠시 들렀다가 그 後(후)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一說(일설)이 있다.
할아버지 金益淳(김익순)과의 關係(관계)
當時(당시) 20歲(세)가 되었을 때까지 金炳淵(김병연)은 할아버지 金益淳(김익순)의 存在(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金益淳(김익순)이 賊將(적장) 앞에 무릎 꿇은 代價(대가)로 逆賊(역적)으로 몰린 事實(사실)을 아들들이 알지 못하도록 숨겨온 어머니 때문이었다.
또한 아들들마저 逆賊(역적)의 孫子(손자)로 烙印(낙인)이 찍히면 朝廷(조정)과 世上(세상)으로부터 不信(불신)과 非難(비난) 等(등)은 물론 목숨도 위태로워진다는 事實(사실)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할아버지의 存在(존재)를 숨겨왔던 것이었다.
때문에 炳淵(병연)은 自身(자신)의 할아버지 益淳(익순)이 死亡(사망)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結局(결국) 寧越(영월) 白日場(백일장) 때 試題(시제)에 金益淳(김익순)에 대한 內容(내용)이 나오자 그가 自身(자신)의 家族(가족)과 아무관계가 없는 것으로 認識(인식)하여 그를 싸잡아 批判(비판)하는 답글을 쓰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야 어머니의 解明(해명)으로 自身(자신)의 할아버지를 辱(욕)되게 했다는 事實(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이로 因(인)한 自愧感(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이것을 契機(계기)로 그는 삿갓을 쓰고 放浪(방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beginning of Wandering(放浪(방랑)의 始作(시작)
그가 本格的(본격적)으로 全國(전국) 放浪(방랑)길을 떠난 것은 20歲(세) 때 어머니가 할아버지 金益淳(김익순)의 存在(존재)를 解明(해명)한 後(후)부터였으며 放浪(방랑) 中(중)이던 29歲(세) 때는 가련(嘉蓮)이라는 妓女(기녀)와 同居(동거)하였던 것으로 推定(추정)된다.
그는 放浪(방랑)길을 떠나기 전에 갓을 파는 집으로 가서 크기가 큼지막한 삿갓을 注文(주문)하고 집에서 긴 지팡이와 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승람) 等(등) 地圖(지도)책 等(등)을 所持(소지)하고 떠났다는 一說(일설)이 있다.
그에게는 忠淸南道(충청남도) 洪城郡(홍성군)에 外家(외가)가 있는 것으로 傳(전)해지고 있는데 그는 어머니와 처(妻)에게는 洪城(홍성)의 外家(외가)에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自身(자신)은 事實上(사실상) 正反對(정반대) 北(북)쪽의 金剛山(금강산)으로 첫 放浪(방랑)을 떠난 後(후) 한때 잠시 집을 들렀던 것을 除外(제외)하곤 事實上(사실상) 家族(가족)들과 一切(일절) 연락을 끊은 채 永遠(영원)한 離別(이별)을 하게 되었다.
death死亡(사망)
그는 20歲(세)에 放浪(방랑)을 始作(시작)한 後(후)로 家族(가족)과 연락을 일절 取(취)하지 않았으나 한때 그의 아들 金翼均(김익균)을 만나 3次例(차례) 정도 歸家(귀가)를 勸誘(권유)받기도 했지만 모두 拒絶(거절)하고 放浪(방랑)을 繼續(계속)했다.
그 後(후) 事實上(사실상) 마지막 訪問地(방문지)인 全羅南道(전라남도) 化順(화순)에 들렀던 中(중) 1863年(년)(哲宗(철종) 14年(년) 安(안) 參奉(참봉)의 사랑방에서 죽었는데 아들 翼均(익균)이 부고(訃告)를 듣고 化順(화순)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屍身(시신)을 江原道(강원도) 寧越(영월)로 運柩(운구)하여 그 곳에서 安葬(안장)되었다.
朝鮮(조선) 全國(전국) 放浪(방랑) 中(중) 全羅道(전라도) 化順(화순) 地方(지방) 起居(기거) 與否(여부) 關聯(관련) 論難(논란)
和順郡(화순군) 關係者(관계자)는 김삿갓이 和順郡(화순군) 동복면에 머물러서 6년 동안 있었던 것은 歷史的(역사적)인 事實(사실)이라고 主張(주장)했다.
김삿갓은 放浪(방랑)의 時間(시간)들 속에 歲月(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1863年(년) 3月(월) 25日(일), 57歲(세)의 나이로 全羅道(전라도) 和順郡(화순군) 동복면에서 客死(객사)를 하게 된다. 父親(부친)의 行方(행방)을 찾아 헤매던 翼均(익균)은 父親(부친)의 遺骨(유골)을 自己(자기) 집 가까운 寧越(영월)로 移葬(이장)을 해온다.
family relations(家族關係(가족관계)
祖父(조부) : 김익순(金益淳) - 宣川府使(선천부사)
父(부) : 김안근(金安根)
母(모) : 함평 이씨(咸平 李氏) - 이유수(李儒秀)의 長女(장녀)
兄(형) : 김병하(金炳河)
婦人(부인) : 장수 황씨(長水 黃氏) 長男(장남) : 김학균(金學均) - 兄(형) 김병하(金炳河)에게 養子(양자)로 出系(출계)
次男(차남) : 김익균(金翼均)
三男(삼남) : 김영규(金英圭, 全羅虞候(전라우후)侍從院侍御(시종원시어)
同生(동생) : 김병호(金炳浩)
同生(동생) : 김병두(金炳浢)
김삿갓 文學賞(문학상)
See together같이보기
江原道(강원도) 寧越郡(영월군) 김삿갓면에 세워진 김삿갓 記念(기념) 造形物(조형물)江原道(강원도) 寧越郡(영월군) 김삿갓面(면)
footnote(脚注(각주)
1.↑ 兄(형) 김병하(金炳河)에게 養子(양자)로 出系(출계)
2.↑ Britannica(브리태니커) - 金炳淵(김병연)
3.↑ 杜山(두산)百科事典(백과사전) - 金炳淵(김병연)[Broken link(깨진 링크) 科擧(과거) 內容(내용) 찾기)]
4.↑ “'放浪(방랑)詩人(시인)' 김삿갓 化順(화순)에 6年間(년간) 起居(기거)?”. 聯合(연합)뉴스. 2009年(년) 9月(월) 9日(일). 2010年(년) 3月(월) 31日(일)에 確認(확인)함.
5.↑ 慶尙左兵使(경상좌병사) 이각의 형(兄)인 이관의 後孫(후손)
江原道(강원도) 寧越(영월) 김삿갓[朝鮮時代(조선시대)의 詩人(시인)인 ‘金炳淵(김병연)’의 다른 이름이다.
梁芳秀(양방수) 김삿갓을 찾아가다...
梁芳秀(양방수) 김삿갓을 찾아가다...
梁芳秀(양방수) 김삿갓을 찾아가다...
梁芳秀(양방수) 김삿갓을 찾아가다...
梁芳秀(양방수) 김삿갓을 찾아가다...
梁芳秀(양방수) 김삿갓을 찾아가다...
|
첫댓글 아주버님 ~고맙습니다 ~!! 방랑 시인 김삿갓을 읽어 본 지가 너무나 오래된것 갔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기록을 자세히 써 주시고 그림 끼지 올려 주심에 너무 감사합니다 ~!!
주님 은총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이승철~수 2021-02-24 오후 7:46 ~ 사진보다 더 좋은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