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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이성계) 1년 윤12월 20일
"호랑이가 성(城)에 들어오니 흥국리(興國里)의 사람이 이를 쏘아 죽였다.
태종(이방원) 5년 7월 25일
"밤에 호랑이가 한경(漢京) 근정전(勤政殿) 뜰에 들어왔다."
세조11년(1465) 9월14
"창덕궁 후원에 호랑이가 들어 왔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북악산에 가서 얼룩무늬 호랑이를 잡아 돌아오다."
선조 36년(1603) 2월13
"창덕궁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좌 우 포도대장에게 수색해 잡도록 명했다."
호랑이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고종20년
(1883년 1월 2일)
금위영(禁衛營)과 御營廳(어영청)에서 "삼청동(三淸洞)북창(北倉) 근처에 호환
(虎患)이 있다고 하여 포수를 풀어서 잡아내게 했습니다. 오늘 유시(酉時 오후5~7시경)에 인왕산 밑에서 작은 얼룩무늬 호랑이 한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바칩니다.호랑이를 잡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상을 주고 계속 사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호랑이의 속력비교>
사람..............35km/h
멧돼지...........45km/h
기린.......,,,,,..56km/h
호랑이...........60km/h
사자...............64km/h
타조...............80km/h
인디아영양.....97km/h
치타..............110km/h
호랑이의 피해가 많아지자 조선 정부에서는
(착호갑사)라는 호랭이 전문 사냥꾼을 양성해서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섰다.
세종때 40명이던 착호갑사는 성종때는 440 명으로 늘어났다.
일제시대
본격적인 호랭이 사냥으로...
1921년
호랭이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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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그 많던 호랑이는 안보이고
그 자리엔...
이것이 대서특필.
🐯 창덕궁에 멧돼지가 나타나 포획했다🐯
감사ㆍ感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