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냉이꽃 / 송찬호
심상숙 추천
냉이꽃
송찬호
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송찬호 시집 『분홍 나막신』 문학과 지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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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송찬호 시인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에〈금호강〉등을 발표, 2000년 제13회「동서문학상」,제19회「김수영문학상」,2008년 제8회「미당문학상」, 2009년 제17회 「대산문학상」, 2010년 제3회 「이상시문학상」수상,
[시향]
냉이는 추운 겨울에도 대지에 뿌리를 깊이 박고 양지쪽을 지켜낸다. 그 흔한 냉이꽃은 허술해 보이기 이를 데 없다.
없는 듯 천변의 냉이꽃은 허공이다// 그 하늘을 쓸어 담은 그늘이// 부르르 떨릴 때마다// 함께 날아오르는 씨앗들(- 심상숙 시, 「지난 겨울이 깊었던 까닭은」부분),
송찬호 시인의 시에서 냉이꽃에 대한 사랑과 고백은 계속 이어진다. '박카스 빈 병'과 '슬리퍼 한 짝'과 '담배 파이프'와 '회색 늑대'는 냉이꽃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한편 시인도 부탁받은 빗과 거울을 사서 냉이꽃에게 얼른 돌아가고 싶지만, 문명의 야망에 이끌리어 하루하루 미루고 있다.
세계의 근심은 커져만 가고 있다. 병들고 비만해진 오늘의 근심이 사라지려면 우리는 냉이꽃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냉이꽃은 자연과 순수 신생(新生)의 세계이다. 없는 듯 수척한 공터의 냉이꽃은 우리가 발명해내야 할 사랑과 평화, 그것이다.
글: 심상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