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부 “스위스, 알프스, 좋았스!”
8. 넷째날(6월 4일) “마터는 보고 호른은 못 봤어요”
로잔-테쉬-체르마트-테쉬-보고냐(발그란데호텔)
오늘은 꿈에 그리던 알프스 최고의 미봉 마터호른을 보는 날입니다. 파라마운트 영화사 심벌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당초 만들어질 때는 마터호른을 본딴 것이 아니라고 하네요. 테쉬로 이동해 열차를 타고 마터호른의 관문 체르마트로 향합니다. 여기서 열차를 갈아타고 해발 3,100m 높이의 전망대가 있는 고르너그라트로 올라갑니다. 오르는 도중 제가 우리 팀 스위스 구호를 정해 알려줍니다. “스위스, 알프스, 좋았스”입니다. ‘뭉쳐야 뜬다~뱅’보다 낫지 않나요? 건배 구호로도 마침맞고 “스위스, 알프스, 끝났스”처럼 응용과 변주도 가능합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꼭대기 전망대로 향합니다. 한쪽으로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4,000m급 준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정작 오늘의 주인공인 마터호른은 구름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구름이 이리저리 떠다녀 혹시나 하며 목을 빼고 지켜보는데 애만 태웁니다. 전망대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합니다. 패키지여행 중 이날 점심만 유일하게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겁니다. 1인당 2만원 안팎에서 각자 채소 샐러드나 감자튀김이나 소시지 따위를 접시에 담아 옵니다. 정형이와 태성이는 뜨거운 물만 받아 컵라면을 먹으려다가 물 값만 5천 원을 넘게 받는다는 말을 듣고 포기합니다. 10년 전 융프라우에 갔을 때 온수 값을 받는 줄은 알았는데, 여기서도 그럴 줄은, 또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온병을 갖고 와 뜨거운 물을 담아올 걸 그랬습니다.
<끝끝내 우리에게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거부한 마터호른.>
밥을 먹고 나도 마터호른은 몸을 가린 채 종아리만 살짝살짝 보여주고 맙니다. 여기서부터 로텐보덴역까지 걸어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가끔 눈밭이 나오고 미끄럽기도 합니다. 등산용 스틱을 한국에서 챙겨 오고도 정작 숙소에 놓고 와 아쉽습니다. 여전히 마터호른은 속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살짝 어깨를 드러내는 듯했다가 다시 가리고 허벅지까지 보여주는 듯하다가 다시 감추고 애간장을 녹입니다. 차라리 시야가 뿌옇게 되면 기대나 하지 않을 텐데, 정말 야속합니다. 고도가 높을수록 전망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요맘때 알프스를 걷기에는 2,000m 정도가 좋은 것 같습니다. 흙길도 밟고 야생화도 구경하며 가는 길이 재미납니다. 3,000m에 가까우면 3월에 근교 산을 걷는 것처럼 눈길과 흙길이 번갈아 나오고 눈 녹은 진창도 가끔 나타나 걷기가 힘듭니다. 아예 눈길이 더 낫지요.
로텐보덴역이 거의 보일 무렵 제법 긴 길이의 진창이 나타납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선두에서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사이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납니다. 현근이가 미끄러졌네요.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은데 바지에 윗도리까지 진흙이 묻었습니다. 현근은 “옷도 별로 가져오지 않았는데 걱정”이라며 얼굴을 찌푸립니다. 윗도리는 우리 산행 때 사시사철 입고 오던 연푸른색 긴팔 옷입니다. 갈아입을 옷도 걱정이지만 당장 숙소까지 갈 일이 걱정입니다. 물휴지와 화장지로 열심히 닦아냈는데 흔적이 완연합니다. 체르마트에 도착하니 패키지 팀 일행들이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이희용 외 6명인 우리 팀 가운데 이희용 다음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처음 탄생했습니다.
동규와 저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집합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혹시나 마터호른이 모습을 드러낼까 싶어 골목길을 따라 봉우리가 보일 만한 곳까지 갔지만 헛일이었습니다. 이곳에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네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아래층에 디지털로 마터호른 배경으로 사진 찍어주는 곳이 있던데, 그곳에서라도 기념사진을 찍을 걸 그랬습니다. 일기예보 방송할 때 쓰는 푸른색 크로마키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 뒤로 배경 화면을 깔아주는 겁니다.
테쉬로 다시 내려와 버스를 타자 가이드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일행들에게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오늘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명언을 들었습니다. 어떤 분께 ‘마터호른 잘 보셨느냐’고 여쭙자 ‘마터는 보고 호른은 못 봤다’고 하더군요. 호른은 소뿔이라는 뜻이어서 마터호른 말고도 쉴터호른이나 브라이트호른 등 호른이 붙은 산이 많습니다. 그런데 소뿔처럼 생긴 마터호른 봉우리를 못 봤다는 거죠.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이젠 남쪽으로 가며 이탈리아 국경을 넘습니다. 한니발이 코끼리 부대를 몰고 넘어 로마인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그 길일까요? 아니면 나폴레옹이 “이 산이 아닌가벼, 이 산도 아닌가벼, 아까 그 산인가벼” 하고 헤매며 부대원들을 뺑뺑이 돌렸던 그 길일까요?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고갯마루에 섰습니다. 독수리상이 보이는데 누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네요. 전문 가이드가 아니어서 아쉬울 때가 가끔 있습니다.
가이드는 “제가 이탈리아 가이드를 했으면 고생할 뻔했어요. 오랜 역사를 알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스위스는 역사가 길지 않고 자연 경관이 관광 포인트여서 편해요”라고 노골적으로 말합니다. 스위스 역사도 좀 더 알면 좋을 텐데….
국경을 넘으니 분위기가 다릅니다. 도로 정비를 제대로 안 한 탓인지 길바닥도 울퉁불퉁하고 파스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탈리아로 숙소를 정했을 텐데, 유럽에 처음 오거나 이탈리아를 한 번도 안 왔던 친구들은 방문국 수가 늘어난다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음식으로 유명한 이탈리아답지 않게 저녁식사는 영 꽝입니다. 토마토 소스를 버무린 스파게티를 주는데 남긴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아예 컵라면을 가져와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스파게티를 준다고 하니까 걱정스럽습니다.
방은 스위스보다 널찍널찍합니다. 방의 문을 열면 바로 바깥이어서 거기다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실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2층 3인실이 넓어 그곳을 술방으로 정했습니다. 이번에도 태성이가 보조침대의 주인공으로 뽑혔는데 동규와 영수가 쓰는 더블베드보다 더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현근이와 제가 또 룸메가 됐고 갑표와 정형이 같은 방을 씁니다.
내일 스위스 국경을 다시 넘으며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데 출근 시간에 걸리면 길이 막히니 6시 30분에 출발하자고 말합니다. 사실 여러 나라를 도는 패키지에서는 흔한 일인데 우리는 처음입니다. 스위스만 돌다 보니 보통 8시 30분쯤 출발했거든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부담도 있고, 모레 상호를 만나기도 전에 양주를 모두 비워 버리면 안 되니 오늘은 소주만 마시자고 합의했습니다. 현근이는 더럽혀진 옷을 빤다고 늦게 합류합니다. 문제는 이튿날 아침에도 옷이 마르지 않았다는 거죠.
로비 바에서 생음악이 들려오는데 시끌벅적하고 꾀죄죄한 분위기여서 마음이 별로 동하지도 않습니다. 갑표가 이날 걱정을 털어놓습니다. “너희는 모레 융프라우로 가고 나만 패키지 일행들과 함께 인천까지 가야 하는데, 일행들이 나만 따돌리면 어떡하냐?” 우리들이 걱정 말라고 위로합니다. 실제로 잘 적응하고도 남을 친구입니다.
9. 다섯째날(6월 5일) - 구름 위에 오른 뒤 들어간 알몸 혼탕
보고냐-벨린초나-루체른-리기-취리히(호텔콘티)
새벽에 일어나 3인실에서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웁니다. 어제 저녁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데다 스파게티를 준다고 하니 몇몇은 방에서 먹기로 한 것이지요. 다 먹고 짐을 챙기려는데 식당에 올라간 친구가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고 알려옵니다. 구미가 당기기보다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식당에 올라가니 스파게티만 주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조식 뷔페에 스파게티가 추가된 것이었습니다. 식빵과 햄으로 배를 더 채우고 내려왔습니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니 길은 한산합니다. 가이드가 역사 얘기를 해줄 게 없어서 그런지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아 노래를 부르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동요는 부르다 보면 다 생각이 나거든요. 우리 동요를 함께 불러볼까요” 7천만의 애창곡인 ‘고향의 봄’을 비롯해 ‘퐁당퐁당’, ‘산바람 강바람’(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섬집 아기’(엄마가 섬 그늘에~) 등을 합창합니다. 우리 또래 애창곡인 ‘연가’(비바람이 치던 바다~)까지 나오자 차창 풍경을 보고 생각이 났던지 팔선녀들이 ‘님과 함께’(저 푸른 초원 위에~)를 박수와 함께 불러 제낍니다. 칠공자의 호응을 기대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대꾸하지 않아 그걸로 배틀이 이어지지 않고 끝났습니다.
<벨린초나의 고성. 앞에 보이는 망루에서의 풍경이 볼 만함.>
국경을 넘어 성곽도시 벨린초나에 들렀습니다. 이곳은 이탈리아어 사용 지역입니다. 15세기에 건립된 3개의 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고 합니다. 고풍스럽고 한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듭니다. 성 망루에 올라 내려다보는 풍경이 그림 같습니다. 망루 계단 벽에 뚫어놓은 십자 모양 틈새로 보이는 경치도 재미납니다.
<벨린초나 고성 망루의 십자 모양 틈으로 보이는 풍경>
다시 버스에 올라 호수를 끼고 달립니다. 가이드가 “호수에 비가 내리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뭍(물의 잘못)인지 모르겠죠? 그런 가사가 나오는 노래가 생각나는데 누가 이 노래 부를 줄 아세요?”라고 말합니다. 우리 일행 중 몇 명이 “앞에 앉은 친구가 그 노래 잘해요”라고 시킬 것을 권합니다. 갑표가 묵직한 남저음 목청으로 김민기의 ‘친구’를 부릅니다. 박수가 터져 나오고 팔선녀 중 하나는 ‘앙코르’를 외칩니다. 이 노래 하나로 갑표는 칠공자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로 급부상합니다. 인천공항까지 어색하게 갈 걱정이 단박에 사라졌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시간이 남아서인지 루체른 근처 뤼틀리라는 작은 마을에 내려줍니다. 예정에 없던 곳이지만 스위스 3개의 칸톤이 처음 연방을 맺기로 맹약한 역사적인 장소라네요. 비가 내려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일부는 만수르 정형이 사주는 커피를 마시고 일부는 기념품점에서 선물을 골랐습니다.
비츠나우역으로 이동해 리기산에 오르는 산악열차를 탑니다. 빗방울이 간간이 내리고 주변이 안개로 휩싸여 일행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1,800m 리기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13개의 호수 풍경이 일품이어서 ‘산들의 여왕’이라고 불린다는데 호수는커녕 100m 앞도 안 보일 지경입니다.
올라가는 길에 팔선녀 일행 가운데 몇 명이 우리 옆에 앉았습니다. 태성이가 그 가운데 한 명과 대화를 나눕니다. “저희는 80학번 대학 동기인데 한 명 빼놓고는 모두 재수를 해서 60년생이 많습니다. 그 쪽은 ‘언니’라고도 부르던데 나이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신가 보죠?”라고 수작을 거니 “보는 눈이 정확하시네요”라며 즐거운 표정을 짓습니다. 제가 옆에서 “자제 분들 나이가 그렇다는 거죠?”라고 산통을 깨자 한동안 어색한 정적이 흐릅니다. 태성이가 저를 노려봅니다. 갑표에 이어 주목받는 인물로 부상할 기회가 무산된 탓일까요?
정상 바로 못 미쳐 역에 내려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식당 분위기가 꽤 고급스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잘못 들어왔다고 합니다. 기차로 한 정거장 다시 내려가 다른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한국 관광객 팀이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경치도 못 보고…”라며 혀를 끌끌 찹니다. 우리 팀 구호가 “스위스, 알프스, 망했스”로 바뀌는 순간이었죠. 밥을 먹는데 그릇에 낯선 모양의 뿌리채소가 눈에 띕니다. 현근이가 묻습니다. “감자 옆에 있는 누런 건 뭐냐? 당근도 아니고.” 제가 “혹시 황근이 아닐끼?”라고 드립을 칩니다. 현근이가 탄복을 하며 “얘는 그 머리로 왜 서울대를 못갔을까. 신기해”라고 비꼽니다. 속으로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되뇝니다.
<리기산 정상에서 발아래 구름을 깔고 한 컷>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기차로 한 정거장을 올라갑니다.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혀가고 있습니다. 호수까지 내려다보이는 건 아니지만 발아래 구름이 깔리고 멀리 설산 봉우리들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구호가 ‘좋았스’로 다시 바뀌는 대목입니다. 정상으로 서둘러 올라갔습니다. 한국 젊은이로 보이는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이 ‘점프샷’을 찍고 있네요. 사진을 찍은 뒤 와인을 꺼내 병째로 돌려가며 정상주를 마십니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오며 자책했습니다. “올 1월 가족여행을 할 때 스페인 바르셀로나 벙커에서 야경을 보며, 포르투갈 땅끝마을 호카곶에서 대서양의 파도를 응시하며 캔맥주를 들이켰는데, 이번에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융프라우 갈 때는 맥주나 소주를 꼭 가져가서 정상주를 마셔야겠습니다.
우리도 점프샷을 찍으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태성이와 정형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있을 때 찍어야 할 것 같아 5명이 먼저 찍습니다. 동작을 맞추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한국 친구는 연속촬영을 한 뒤 고르라고 합니다. “아하! 그러면 되는구나.” 젊은 친구들에게 새롭게 배우는 게 많습니다. 정형과 태성이가 합류한 뒤 7명이 한꺼번에 찍자고 하니 고산지대여서 숨차다고 거부하는 친구가 나옵니다. 저는 이 두 명과 기차역에서 따로 점프컷을 찍었습니다. 사실 찍을 때는 힘들고 남 보기 창피하지만 막상 찍어놓고 보면 그럴 듯하고 재미납니다.
내려오다가 온천 스파에 들릅니다. 온천 풀도 있고 우리 식 대중탕 욕조도 있고 사우나도 있는데 사우나가 알몸으로 들어가는 혼탕입니다. 온천 풀에서 수영도 하고 ‘뭉쳐야 뜬다’ 멤버들처럼 수중 닭싸움도 펼칩니다. 제가 3연승으로 수중 닭싸움 지존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제 누드존에 갈 차례입니다. 우리 일행 세 명이 테라피존과 크리스털탕을 지나 누드존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갑표가 “별 볼 일 없네”하고 나가자고 합니다. 젊은 여성이 없는 탓이죠. 사우나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더러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별꼴이네”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가다 보니 비교적 젊어 보이는 커플이 들어옵니다. 태성이와 저는 뒤로 돌아 따라 들어갔습니다. 안경을 나무걸이에 걸어놓고 수건을 든 채 들어갔습니다. 중요 부위를 수건으로 가리니 청소하는 여자 관리인이 수건을 치우라고 손짓합니다. 수건을 바닥에 깔고 발을 얹으니 또 뭐라고 합니다. 수건을 깔고 그 위에 누우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때 여성 관리인이 옆에 앉은 태성이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굿”이라고 했다는데, 태성이는 나중에 “나는 처음부터 시키는 대로 잘했다는 뜻인지, 아니면 내 물건을 보고 ‘엄지 척’한 것인지 모르겠더라”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여자가 태성이의 물건을 보고 엄지와 크기가 비슷하다고 놀린 것 같기도 합니다. 사우나에서는 몸에 흐르는 땀이 나무로 만든 의자나 바닥 등에 묻으면 다른 사람이 불결하게 느낄 수 있으니 수건을 깔고 그 위에 앉거나 누우라는 뜻인 듯합니다. 젊은 여자 한 명이 또 들어옵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수건을 깔고 길게 눕습니다. 안경을 바깥에 두고 온 것이 후회스럽네요.
혼탕의 나라 독일에서 두 차례나 1주일씩 머물렀을 때도 못해본 문화 체험을 이번에 제대로 했습니다. 우리 말고는 팔선녀나 다른 부부들도 모두 누드존에는 안 들어오더군요. 저도 아내와 왔다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고 아내도 다른 여성 일행과 왔다면 그랬겠지요. 크리스털탕에 잠시 몸을 눕힌 뒤 샤워를 하고 몸을 말립니다. 이곳에선 물론 수영복을 입고 있는데 남녀가 함께 쓰니 기분이 묘합니다. 알몸으로 들어가는 샤워실의 칸막이는 간유리로 돼 있어 옆에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그대로 보입니다. 탈의실만 폐쇄형 구조입니다.
스파를 나와 제가 맥주와 콜라 한 병씩을 샀습니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있으니 담배 피우러 밖에 나갔다온 정형이가 조그만 성당이 있다며 알려줍니다. 진입로도 인상적이고 스테인드글라스도 예쁩니다.
<
<리기산 스파 앞에서 만는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아들을 데리고 온 부부 중 엄마가 기념품점마다 저와 마주쳐 제가 물었습니다. “혹시 자석 모으시지 않나요?” 예상한 대로 “맞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제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니 감탄하며 벽에 붙이는 금속 판을 보고 궁금해합니다. “저도 처음에 냉장고에 붙였다가 화이트보드를 사서 붙였다가 몇 해 전에는 이케아 광명점에서 이걸 사다가 자석판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머 그래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은 금세 대화가 통하는 법이죠.
이제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갑니다. 케이블카 창 밖 풍경도 온통 뿌연 빛깔이다가 다 내려올 때쯤 겨우 호수가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긴 케이블카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1.75㎞의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라고 합니다. 통영 미륵도의 삭도 길이가 1.97㎞로 가장 긴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요. 얼음골 케이블카 사업자의 주장에 따르면 케이블카는 한 대, 혹은 두 대의 운반기구가 두 지점을 왕복하는 것을 말하므로 통영 것은 곤돌라이고 케이블카로는 자기네가 가장 길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려주니 여러 기사 자격증을 딴 현근이가 “그 말이 맞다”고 하네요. 나중에 궤도운송법 시행규칙을 찾아봤습니다. 왕복식 삭도, 자동운항식 삭도, 고정운항식 삭도, 견인식 삭도, 케이블철도(푸니쿨라), 노면전차(트램), 모노레일, 자기부상열차, 철제차륜형 경전철, 고무차륜형 경전철, 선형유도전동기형 경전철 등 모두 11가지로 구분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왕복식 삭도와 운항식 삭도를 구분해 최장 랭킹을 따진 것 같은데, 그게 일반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하루였습니다. 마테호른은 날씨로 보아 온전한 모습을 볼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고, 리기산은 못 볼 줄 알았다가 구름 낀 풍경이라도 보니 다행스럽습니다. 역시 만족도는 기대감과 반비례하고 행복이란 마음에 달려 있다는 걸 또 한 번 깨닫습니다. 금세 까먹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숙소는 취리히입니다. 다시 루체른으로 올 텐데 이 근처에는 숙소와 식당이 비싼 모양입니다. 여행 동선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창 밖 풍경이 볼 만하고 버스로 두 시간 넘게 달린 적이 없으니 참을 만합니다. 터키에서는 7~8시간씩 황량한 들판을 달려 무척 지루했거든요.
호텔에 도착해 방 열쇠를 받기 전에 기다리다가 일행 몇 명과 얘기를 나눕니다. 정형이가 우리는 뒤에 남아 융프라우에 간다고 하니 부러워합니다. 누가 직업을 묻기에 “전문직, 영세자영업, 봉급쟁이 등 다양하다”고 했더니 나중에 태성이가 저더러 “그냥 자영업이라고 하지 왜 영세자영업이라고 했냐.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겠냐”라고 따집니다. 평소엔 우리에게 불쌍하게 보이려고 꼭 ‘영세’ 자를 붙이던 친구가 여성들 앞에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모양입니다.
오늘은 갑표와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어서 호텔방을 벗어나 바에서 한잔 하려고 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갈 데가 없습니다. 호텔 바도 오늘이 성령강림대축일이어서 쉰다고 합니다. 호텔방에 둘러 앉아 양주 병뚜껑을 따고 소주팩을 기울입니다. 작별의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제가 제안합니다. 홍민의 ‘석별’과 아도니스의 ‘정’ 가운데 고르라고 했더니 ‘정’을 청합니다. “간다고 믿어도/ 정말 떠나면/ 아마도 난 그만 울고 말 거야~” 갑표의 답가가 흘러나옵니다. 한 곡으로 끝낼 수 없어 다시 제가 송가로 ‘석별’을 부릅니다. “떠나는 이 마음도/ 보내는 그 마음도~” 갑표가 다시 안치환의 노래로 화답합니다. 주고받는 노래 가락 속에 취리히의 밤은 깊어가고 양주병은 바닥을 드러냅니다.
이날 밤 사다리 타기는 어떻게 됐느냐고요? 굳이 말할 것 있나요? 불운의 아이콘 태성이가 보조침대였지요. 5일 가운데 4일이 3인실이고 그 중에 세 번이 보조침대입니다. 갑표와 제가 그 옆에서 함께 잡니다. 나머지는 현근과 정형이 한 방. 동규와 영수가 같은 방을 씁니다.
10. 여섯째날(6월 6일) - 정형이 팔선녀의 총아로 급부상한 까닭
취리히-샤프하우젠-루체른-인터라켄(시티호텔 오버랜드)
벌써 패키지여행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저녁이면 갑표와 헤어져야 합니다. 패키지 일행은 취리히에서 루체른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취리히공항으로 와야 합니다. 저희는 인터라켄으로 가야 하는데 취리히까지 다시 가면 거리가 더 멀어집니다. 퇴근 시간이어서 취리히 중앙역까지 버스로 데려다 주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루체른역에서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원래 패키지는 일정을 단축해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된답니다. 일정 안에 문제가 생기면 여행사가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여행 일정에 포함된 방문지 가운데 관광객이 원해서 빼자고 해도 각서를 받아야 합니다. 나중에 항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전날 스파에서도 온천욕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가이드에게 “내가 원한 것이니 문제 삼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습니다. 우리는 오늘 인터라켄으로 가야 하므로 너무 늦어질까 걱정했는데 가이드와 합의가 잘 이뤄졌습니다. 가이드도 “That's good idea‘라고 했습니다. 동규는 ”그 아이디어를 내가 낸 것“이라며 생색을 냅니다.
취리히 시내 관광에 나섰습니다. 리마트강이 가로지르는 가운데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짜임새 있게 들어서 있습니다. 종교개혁가 츠빙글리가 설교하던 장크트페터 교회 앞에 츠빙글리 동상이 서 있습니다. 맞은편에는 가장 큰 시계가 있다는 성모교회(프라우뮌스터)의 초록색 첨탑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UBS와 크레디트 스위스 등 유명 은행의 본사가 있고 명품 상점들이 늘어선 반호프 거리를 지나 장터로 향합니다. 과일과 채소, 꽃 등을 주로 팝니다.
<취리히 시내에서 가이드와 찰칵>
헤어질 때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패키지 일행들도 경계심을 풀고 자연스럽게 다른 팀과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부부 네 쌍은 첫날부터 자기들끼리 어울렸지만 칠공자와 팔선녀의 관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매했거든요. 강변에 앉아 너도나도 사진을 찍을 때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정형이가 팔선녀 가운데 한 명에게 다가가 같은 체크무늬 상의끼리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어깨에 팔까지 얹고 전화번호도 줍니다.
<유람선을 타고 가까이서 본 라인폭포>
독일 국경지대의 라인폭포를 구경합니다. 유람선을 타고 가까이 다가가니 물보라가 얼굴을 때립니다. 규모가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바로 눈앞에서 보니 거대한 수량의 움직임이 박진감 넘칩니다. 배 안에서도 정형이는 팔선녀 일행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습니다. 정형이가 입을 열 때마다 팔선녀들이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귀국한 뒤 정형이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받기로 했다는데, 귀국한 지 2주가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점심은 독일 국경을 지나 중국음식점에서 먹습니다. 가이드 얘기에 따르면 스위스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물가가 싼 독일로 넘어와 생필품을 많이 사간다고 합니다. 무관세로 가져갈 수 있는 수량과 품목에 제한이 있어 가끔 단속에 걸린다고도 합니다. 자유투어는 밥값을 아끼려고 국경을 넘습니다. 점심 식사는 한국의 중국음식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대로 먹을 만합니다.
마지막 관광지는 루체른입니다. 빈사의 사자상과 한때 가장 긴 목조다리였다는 카펠교를 구경합니다. 빈사의 사자상은 생각보다 크더군요. 프랑스혁명 당시 스위스 용벙 786명은 성난 혁명군에 맞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지키려다가 전멸하고 맙니다. 스위스 용병을 상징하는 사자가 창에 찔린 채 부르봉 왕가를 상징하는 백합 문장이 새겨진 방패를 부둥켜안고 죽어가는 모습이죠. 가이드 설명으로는 약속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 화가난 독일 조각가가 루체른 시민을 조롱하려고 사자 모습을 양각하기 위해 바위를 파서 만든 테두리 형상을 돼지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듣고 보니 그렇게 생겼네요.
이 일 이후 스위스는 젊은이들을 용병으로 보내는 일을 중단했고 용병의 전통은 현재 바티칸 교황청의 근위병에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것보다는 18세기 이전까지는 먹고살기 힘들어 용병으로 내보내다가 그 뒤 살 만해지니까 중단한 게 진짜 이유 아닐까요?
<
<빈사의 사자상. 조각가가 약속한 돈을 받지 못하자 루체른 시민을 조롱하기 위해 조각상 테두리를 돼지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카펠교는 강 양안을 연결하는 최단거리로 세운 게 아니라 사선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최대 다리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였을까요? 누구는 물살 때문에 만들다보니 사선으로 된 게 아닐까 하던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사선으로 다리를 놓는 이유는 기존 도로들과의 연결을 고려하기 때문인데, 지금 길로 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옛날 길과 달라진 걸까요?
이제 루체른 호수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유람선에 오릅니다. 왼쪽으로는 우리가 올랐던 리기산이 솟아 있고 오른쪽으로는 필라투스산이 펼쳐져 있습니다. 스위스는 산속이든 호숫가든 어디엘 가나 잘 정돈돼 있고 깨끗합니다. 사람들도 야무지고 치밀해 정밀공업이 발달한 것 같습니다. 루체른 호수 유람을 마치고 버스로 루체른역을 향합니다. 버스는 우리를 역 앞에 내려주고 취리히공항으로 갈 겁니다. 이미 도착해 있는 상호와는 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내리기 전에 버스의 일행들에게 하직 인사를 했습니다. 혼자만 보내는 갑표도 잘 챙겨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여행 중 이미 알게 된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우리끼리 남아서 융프라우를 간다고 하니까 다들 “와!”하고 탄성을 지릅니다. 남자들끼리만 가는 것을 두고 “아마 간뎅이가 부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정형이가 특별 인사를 건네며 “저희는 고산지대에 가야 하니 비아그라를 가지고 갑니다”라고 말하니 버스 안이 웃음바다를 이룹니다.
정형이가 팔선녀들에게 인기를 얻은 까닭을 두고 이런저런 분석이 나왔습니다. “팔선녀들이 우리 중에 누구를 좋아하는데 직접 접근하기는 조심스러워 가장 만만한 정형이에게 접근해 다리를 놓으려 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요. 나중에 이 이야기를 아들에게 해주니 “아빠 친구들도 우리랑 똑같구만”이라고 하더군요.
태성이는 “희용이 개그는 뭔가 생각해야 하는데 정형이는 ‘화장실 가려는데 비온다구요? 비오는 날 화장실도 좋아요’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내지르는 스타일이어서 아줌마들에게 잘 먹히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동규는 “희용이는 대내용이고 정형이는 대외용”이라면서 “그동안 버스에서 우리가 희용이 때문에 웃었을 때 팔선녀들은 그게 다 정형이가 웃겨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후 5시 30분께 상호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버스를 세울 자리가 마땅치 않아 한 바퀴를 도느라 시간이 지체됩니다. 6시 5분 열차를 타려고 했는데 시간이 빠듯합니다. 상호와 합류해 출발 15분 전 사무실로 들어가 동신항운에서 받은 열차표를 내보이니 직원이 ‘원래 이 표는 공항에서 인터라켄까지 가는 왕복표’라며 다른 직원에게 묻습니다. 결국 시간을 또 지체해 7시 5분 열차를 타기로 하고 아래층 식당에 내려가 터키식 케밥으로 저녁을 때웁니다.
이제부터 걱정이 물밀 듯이 밀려옵니다. 지금까지 패키지여행에서는 말이 좋아 대장이고 리더지 사실은 ‘이희용 외 6명’의 조장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결정할 일이라고는 ‘몇 시까지 어느 방에서 모여 술을 마시자’거나 ‘오늘은 무슨 양주룰 마실까’ 등에 불과했고, 우리끼리 의견이 충돌할 일도 별로 없었지요. 이제부터는 알프스 원정대원의 대장이어서 여행(원정)의 성패를 좌우할지도 모르는 중요한 결정을 제가 내려야 합니다. 친구들의 얼굴에도 긴장감과 비장함이 흐르는 듯합니다. 각자 역할을 점검하며 대원들의 임무 완수를 다짐합니다.
사실 조금 전에도 상호가 라커에 맡겨둔 가방을 찾으러 가는 사이에 번호표 순서가 다가와 영수가 직원과 얘기할 때 내심 불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더랬습니다. 제가 보기엔 영수도 영어를 잘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외국 생활을 한 친구가 오니까 달라 보이더군요.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두 시간을 달려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했습니다. 호텔까지 도보로 15분가량 걸리는데 캐리어를 끌고 가려니 멀어 보입니다. 맨 앞에 걸어가며 혼자 인터라켄 서역까지 간다는 젊은이와 동행했습니다. 40일 예정으로 유럽을 혼자 여행하던 중 물가가 비싼 스위스에서는 2박3일 잡고 융프라우와 슈니케플라테를 갔는데 이틀 내내 날씨가 흐려 아무것도 못 보고 열차만 타고 다녔다고 투덜댑니다.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내일부터는 날씨가 좋다고 하니 우리는 행운아들입니다.
이윽고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사다리를 탑니다. 이번에도 태성이는 3인실에 뽑혔는데 다행히 보조침대는 피했습니다. 보조침대에 낙찰된 동규가 영수와 한 방을 씁니다. 그리고 상호와 현근이, 정형과 제가 각각 짝이 됐습니다.
처음으로 밖에 나가 맥주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제가 구글링을 통해 늦게까지 하는, 평점이 높은 인근 바를 찾았습니다. 상호는 프리랜서로 기사 영역을 하는 업무 때문에 방에 남았습니다. 주방 시간은 끝나 안주는 안 된다고 하니 회계 담당 태성이가 흐뭇한 표정을 짓습니다. 돈이 굳은 거지요. 마른안주를 가져오겠다며 현근이 나갑니다. 한참을 지난 뒤에 돌아왔는데 빈손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방에 올라가는 길을 못 찾겠더라.” 꽤 심한 길치인 모양입니다. 바는 어떻게 찾아왔는지 모르겠네요.
현근이가 나간 틈에 태성이가 루체른역에서 먹다 남은 케밥을 꺼내 먹으려 하니 종업원이 ‘노 피크닉’이라며 못 먹게 제지합니다. 외부 음식 반입 금지라는 거죠. 덕분에 가볍게 마시고 호텔로 돌아와 상호가 가세한 가운데 자유여행 첫날밤을 자축합니다.
첫댓글 시리즈 첫 댓글 달기 위해..빨리 읽었는데, 재미지네요..적지 않은 인원이 움직이니, 에피소드도 정말 많았을 듯하고, 재밌는 여행, 좋은 친구들, 행복한 일상입니다..
개그 사진 만들기...그렇게도 좋을까
자유 만끽
출근길에 3부 완독. 대망의 본격 산행기는 퇴근길을 위해 남겨 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