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 시제
12.竹逕淸風(죽경청풍)-대숲 길의 맑은 바람
⊙성삼문 답시
度竹風聲碧(도죽풍성벽)
대숲을 지나니 바람 소리도 푸르고
含風竹影淸(함풍죽영청)
바람을 머금은 대나무 그림자처럼 맑구나,
幽人無一事(유인무일사)
조용히 사는 이 잠시 일이 없으니
獨坐寫黃庭(독좌사황정*)
홀로 앉아서 황정경을 베끼네.
* 黃庭(황정) : 黃庭經(황정경). 道敎(도교)에서 쓰는 經文(경문) 또는 經典(경전).
⊙한상철 답시
대숲 길 맑다보니 바람도 향긋한데
깊숙이 은일해도 산새가 놀러오니
손 등에 올려놓고서 선문답만 나누지.
☆감상 해설
대나무는 아름다움·강인성 그리고 높은 실용성 때문에 일찍부터 중국인의 생활과 예술에 불가결의 존재로 되어 왔다. ≪시경≫의 <위풍 衛風>에는 주(周)나라 무공(武公)의 높은 덕과 학문 그리고 인품을 대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에 비유하여 칭송한 시가 있다. 이것이 대나무가 君子로 지칭된 최초의 기록이다. 중국의 소동파는 고기가 없는 식사는 할 수 있지만 대나무 없는 생활은 할 수 없으며, 고기를 안 먹으면 몸이 수척하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低俗(저속)해진다고 했다. 이와 같이 대나무가 맑고 절개가 굳으며 마음을 비우고 천지의 도를 행할 군자가 본받을 品性(품성)을 모두 지녔다 하여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대나무를 좋아하였다. 해서 四君子에 포함되어 충절 · 충신들을 대나무로 비유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이 장에선 특히 서거정에 관해 공부하는 이유가 있다. 비해당48영에서 유독 눈에 띄는것은 지금까지 12편을 감상하며 이번 대나무에 관한 답시가 서거정만 없다. 왜 없을까에 관해 유영봉 교수의 언급에 의하면 '아예 안 지었거나 아님 다른 제목으로 지었을 거'라 推測(추측) 하는데 이는 서거정의 연대기에서 찾을수 있다.
서거정의 화려한 人脈과 연대기를 보면 짐작이 가는데, 서거정의 문학적 업적은 필자도 높이 사나, 현대로 이야기 한다면 철새 정치인&문인이 아니었을까 하는데 注目(주목)해 본다. 당시 정치사를 보면 수양대군(세조)이 정권을 잡으며 이에 반발한 학자들은 생육신과 사육신으로 나눠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아마도 여기서 대나무가 忠節 (충절)을 뜻하기에 일부러 답시를 안 지었을 확율이 크다. 어쩌면 서거정은 앞으로 전개될 정치판도를 看破(간파) 해 자신이 자신을 保身(보신)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신한 결과 6분의 임금 (세종~ 성종) 아래서 文柄(문병)을 장악하며 68세까지 살며 많은 문학적 業績을 남긴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서거정의 연대기를 보면, 자는 자원(子元)·강중(剛中). 호 사가정(四佳亭)·정정정 (亭亭亭). 시호 문충(文忠). 1420년(세종 2) 출생 ~ 1488년(성종 19)사망 . 본관 대구(大丘). 대표 저서는 오행총괄 · 동국통감. 관직은 홍문관 부수찬·공조참의· 예조참판· 형조판서· 좌참찬· 좌찬성까지 지냈다. 가계도를 보면 서익진(徐益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전서(戶曹典書) 서의(徐義)이고, 아버지는 목사(牧使) 서미성(徐彌性)이다.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고 자형(姉兄)이 여기 오학사로 등장하는 최항(崔恒)이다.
좀 더 자세한 연대기는 아래와 같다. 서거정을 이 장에서 언급한 것은 48영에서 4수가 없는 것에 注目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백두대간과 백대명산을 탐방하며 만났던 서거정의 시는 앞으로 별도 장을 만들어 자세하게 기술하기로 합니다. 20 30 29. 마들 누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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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의 화려한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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