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덕 궁)
조선은 태조1년(1392)부터 순종 4년 (1910)까지 27대 518년 동안 지속된 왕조이다.
475년 동안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버리고 새로운 왕조의 수도 와 궁궐을
건설한 곳은 한양, 지금의 서울이다. 이곳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도읍지였고 삼국의 치열한 쟁탈지였다. 통일신라
이후로는 한양 군에 불과하였으나 고려시대에는
수도를 보좌하는 곳으로 특별히 남경 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숙종대(1095-1105)와 공민왕
(1351-1374)에 남경 천도 계획이 있었으나 실행되지 못하고
고려는 멸망하였다. 조선 건국과 함께 처음 지은 궁궐은 경복궁이었다.
이후 태종은 한양으로 재천도 하면서 이궁의 역할을 하게 될 창덕궁을 지었다.
9대 임금 성종은 주거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창덕궁 옆에 창경궁을
짓게한다. 임진란으로 인해 궁궐이 화재로 모두 소실되고
광해군 때에 창덕궁과 창경궁이 중건되며 새로이
인경궁과 경덕궁(경희궁)이 창건되었으며,
고종 연간에 경복궁이 다시 중건되었다.
지금 서울에는 조선시대 궁궐이 다섯이 남아 있다.
이처럼 궁궐들이 번갈아 지어지고 없어지고 하면서 모두
다섯이 된 것이지 다섯 궁궐이 동시에 쓰인 적은 없다. 어느 한 시점에서
동시에 쓰인 궁궐은 언제나 크게 보아 법궁과 이궁 둘이었다.
그 법궁과 이궁은 고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어느 궁궐이
법궁이 되고 또 다른 궁궐이 이궁이 되었다 하여도,
그러한 궁궐들이 때로는 전란으로 모두
불타 없어지고, 새로운 궁궐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법궁과 이궁이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조선 말기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의
숨가쁜 사건들을 거치면서 고종은 경운궁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일제시기에 주인을 빼앗긴 궁궐은 왜곡과 파괴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미술품
전시장 등으로 용도 변경되거나 박람회장이나 동물원과 같은
구경거리로 전락한 채 유원지화 되고 말았다.
이렇게 수난과 고통을 감내했던 조선의 5대 궁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은
조선 왕조사의 명암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경복궁 아미산 굴뚝)
| |
첫댓글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고종과 세자가 경운궁을 떠나, 어가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서 거처한 사건이다. 노관파천(露館播遷)이라고도 한다.
역사 공부 숙제 받아 가지고 갑니다. 스승님께 감사!
조선궁궐 다시 공부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봉공주님, 열의에 탄복합니다. 아미산굴뚝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