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학교로 출근하는데, 학교 박물관 별관 앞에 세워진 동백나무 터에 동백꽃이 몇 송이 뚝뚝 떨어져 있었습니다. 기행 때 몇몇 분들께 핸드폰으로 보여드렸던 것처럼 따스한 부산의 기온은, 여느 사람들만큼 봄소식과 봄꽃에 민감한 저를 둔하게 만들 정도로 모든 봄꽃을 한때에 보여주게 했습니다. 제가 일도 하면서 공부도 하는 부산대학교 안에서 말입니다. 고창엔 아직 안 피었으니 핸드폰 화면으로 동백꽃을 보여드려요.
다들 귀경 잘 하셨지요. 얼마나 반가웠던지. 부산에서 대략 5시간도 더 걸려 선운사 도립공원에 왔습니다. 차편이 일찍 끊기는지라 아예 작정을 하고 일찍 출발했습니다. 토요일 저녁인데도 공원 주변은 한산했습니다. 하늘 위에는 김포 제주 가는 항공로가 있는지 여객기들이 자기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연신 그르렁거렸습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보쌈 싸여진 침묵이 있어 고즈넉한 기분도 맛보았습니다. 일부러 많이 걷기도 했는데, 새로 산 운동화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여기 기행 오려고만 해서 산 것은 아니지만, 바닥이 땅에 착착 붙는 민바닥 운동화였고, 꼭 신어보고 싶었던 젊은 아이들 취향의 운동화였습니다. 내 발걸음을 아늑히 모아주곤 했던 운동화는 오늘도 저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서로 정한 여행지, 그렇지만 다른 출발지에서 달음박질해 가는 여행지에 미리 와 있는 기분은 참 삼삼했습니다. 시간의 여유로움과 마음의 여기로움은 기본이고, 마치 내 집에 놀러오는 손님들 맞이하는 기분으로 주변을 서성거렸습니다. 유스호스텔 카운터에서 방송대 문학기행반의 일원이라고 말하니 선뜻 호텔 열쇠를 건네주더군요. 미리 들어온 210호실. 그 방 안에 있으니 삼삼했던 기분은 흥겨워지기까지 했고, 거울에 대고 셀프 사진까지 찍게 했습니다. 곧 버스가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마중 나갈 준비를 했는데, 그게 이 방에서의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여자방이라고 쫓겨나고, 그나마 받아준 213호실 여자방도 나중에 술에 취해서인지 거부당하고, 어느새 보쌈 씌어져 211호실에 옮겨졌고 이런 사실을 아침에 깨어나서야 알았습니다. 서러워라 여인숙 인생이여!
토론시간. 서정주 시인의 친일 행적이 이 시간 그렇게 화두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시인의 시를 '비껴간' 이야기들이 많았었죠. 그래도 의견이 다양한 모습이 좋았고, 그걸 모아 정리하면서 토론을 이끌어간 권창순 사회자님의 진행도 좋았습니다. 토론회를 위해 자료들을 빼꼭히 백지에 적어오셨더랬습니다. '시에 차 한잔 대접하기'와 같은 멋진 말로 시를 누리며 살기를 강권하셨습니다. 어느 선배가 듣고 싶어 했던 ‘여인네들의 육자배기 소리’는 나서는 이가 없어 못 들었지만, 권 선배님의 아들 권지환 군의 걸쭉한 시 낭송 소리로 대신하도록 하지요.
기행 온 사람들을 크게 둘로 구분해 본다면, 기행지 숙소에 와서 실내복으로 옷을 갈아입는 부류와, 입던 그대로 밤 새고 (때로 세수도 안 하고) 서울 올라갈 때까지 일관된 옷차림을 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술에 취해 아침에 머리 못 감는 것은 기본인 저로서는 옷을 갈아입는 부류가 그 바지런함보다는 말쑥한 티(?)를 내는 모습에 신기해 하곤 했습니다그려. 하룻밤 지내는데 웬 수선이라는……아하 그래서 내가 213호실에서 쫓겨났구나……저도 다음에는 그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푸짐하게 마련된 안주들. 막두부, 가자미무침, 김치, 김과 찰밥, 방울토마토 등 복분자 안주에 제격이었습니다. 너무 빨리 없어져 제가 “안주 고파” 했더랬습니다. 암튼 저 안주, 황미령 선배님을 비롯해 저 희고 검은 발 주인들이 뚝딱뚝딱 준비했습니다.
아! 드디어 고창이 낳은 인물 허당 김강섭 선생. 아주 유명한 분이신데 사전에는 안 나오네요. ‘미당(未堂)’의 뜻이 ‘다 짓지 않은 집’인데, 그에 걸맞은 호 ‘허당(虛堂)’은 지인들이 붙여준 호입니다. 여기 고창에 대해서는 정말 일가견이 있으셔서 많은 설명을 해주셨는데, 근데 근데 일가견까지만이었습니다. 하고 싶어 하시는 말씀은 많은데 말씀을 하다 마시고, 안내를 하다 마시고, 남들이 궁금해 하면 그걸 내가 어찌 아느냐 하셔서 ‘허당’이십니다. 예를 들어 버스 안에서
“저기 절벽 위 소나무 터 옆에 무덤이 있지요잉? 보이시당가?”
“예 보여요. 신기하네요. 저런 곳에 무덤이 있네요. 그런데요?”
“무덤이 있다고요잉. 그렇당께.”
“저 무덤이 누구 무덤인데요?”
“아 참내, 내가 넘의 무덤을 어찌 안다요?”
“……”
사진 찍는다고 하는데 제 말을 잘 들은 그룹은 이렇게 잘 찍히고,
그렇지 않은 그룹은 사진도 허당입니다.
노래 제목이 ‘존재의 이유’였던가요? 마이크도 일품이고, 노래 듣는 사람 자세도 일품이었으며 가창력도 일품이었습니다. 남들이 노래 시킨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이장님이 이쯤은 되어야지요.
간밤에 비가 조금 흩뿌렸지요. 저희 몇몇 사람은 우산 없이도 아무렇지 않게 야밤 산책을 했습니다. 깊은 밤, 조용한 곳에서의 산책은 단체 모임에서는 빠뜨리기 쉬운 유람 행위인데, 별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비 기운은 아침께 이런 알싸한 흥취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구름과 안개와 산이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 없이 포개지는 모습 말입니다.
잠시 침묵 속에서 선운산 주변의 운치를 즐감하시지요.
선운사 ‘만세루’ 앞에서. 모처럼 저와 많은 얘기를 들은 친구 윤순옥입니다. 이곳 선운사 ‘만등불사’를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핸드폰을 열어보고 있는 것 같은데, 전날 제게 보여준 겨울바다 핸드폰 사진이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사진기를 구입해 사진 찍어보라 했습니다. 아마도 좋은 사진 많이 찍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창을 좋아해요. 특히 사찰 건물들의 다종다양한 모양의 창은 눈길을 이끕니다. 여기 창들은 닫쳐지면 안을 볼 수 없는 창이네요. 벌써부터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는지 활짝 연 창 너머로 연등이 색깔 곱게 모여 있습니다.
앉은뱅이 정자와 모델이 서로 어깨를 기대며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기울어진 모양 그대로의 나무줄기를 기둥으로 삼았네요. 참으로 안정감 느껴지는 구도입니다. 모델이 반할 만합니다.
서정주 시문학관 5층 꼭대기에 달려 있던 솟대. 아마 피뢰침 역할도 하겠지요?
고인돌 유적지 주변을 한 바퀴 둘둘씩 짝을 지어 산책하며 담소를 나눴습니다. 왜 관람 시간을 한 시간 주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시원스레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었습니다.
외로움이 느껴지는 전봉준 장군 생가터 앞에서 단체사진. 저도 끼어든 이 사진, 기행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이 다들 살아있어 (눈 감거나 딴데 쳐다보는 사람 없어) 단체사진치고 참 마음에 들게 찍힌 사진입니다. 신동훈 님의 ‘하나 둘 셋’ 하는 소리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남쪽으로, 여러분들은 북쪽으로 발길을 향하는 시간. 문기봉 선배님이 이별주 복분자 한 잔을 주시네요. 고마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잘 맞이해주시고 잘 배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들 지내시기를. 특별한 일이 없으면 통영 기행 때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저도 남도 생활 잘 하겠습니다^^.
첫댓글 잘보고나감니다..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