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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는 평소 염불인의 겉으로 드러난 언행을 통해 그가 임종 시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까요?
대답: 이건 그에게 “왕생하려는 마음이 있는가? 신심이 견고한가, 얕은가?”를 봐야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만약 그가 극락세계에 왕생하겠다고 결심하였고 교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면, 그는 인연 따라 분수에 맞게 염불하며, 자신의 임종에 대해 의심하거나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방금 말씀드렸듯이 진정한 염불인, 순정의 염불인은 평생업성이므로, 그의 왕생은 평소에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종 시 아미타부처님께서 반드시 그를 접인하여 극락세계로 가게 될 테니까요!
임종 내영(來迎)이라는 결과가 있다면 그것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원인은 바로 평소에 그가 이미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로 발원하고 오로지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만 불렀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바로 그의 원생심이 부족하거나 혹은 이치에 대해 아직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방법이 정정업에 부합하지 않고 임종에 대해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선은 이치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어야만 비로소 곤혹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정토법문은 이행도로서 이 “이(易)”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데요.
첫째는 “간이(簡易)”로서, 간이란 바로 간단하여 복잡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무아미타불 한 부처님만 칭념하면 되는데요. 우리가 계정혜를 닦고 육도만행을 쌓아야만 왕생할 수 있다는 게 아니거든요. 만약 그러하다면 수많은 행법을 닦아야 할 텐데, 우리는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수행을 할 수 있는 근기도 안 됩니다. 만약 염불만 하면 된다면 이건 매우 간단해서 여섯 자밖에 안 되므로, 행주좌와에, 시처제연(時處諸緣)에, 사농공상이 모두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첫째가 바로 간이입니다.
둘째는 “용이(容易)”로서, 용이란 바로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염불이 어려울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수행방법들은 비록 간단하긴 하나 닦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염불하는데 관을 해야 한다면, 예를 들어 《관무량수경》의 열세 가지 관법 중 첫 번째가 “일상관(日想觀)”인데, 이 관이 간단합니까? “일상관”은 해가 지는 모습만 관하면 되므로 간단합니다. 비록 간단하긴 하나 용이하지 않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관을 해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망상잡념으로 들끓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으면 제대로 관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간단한 것 외에도 용이해야 우리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안이(安易)”로서, 안이란 수월하고 안락하다는 것입니다. 이 법문은 수월하고 안락한 것이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정토법문은 곧 “간이, 용이, 안이”로서, 만일 이 세 가지 특징에 부합하지 않으면 순수한 정토법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용수보살께서 《이행품》에서 이 법문을 배를 타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기를 “배를 타면 안락하다”라고 하셨는데요. 배를 타면 수월하고 배를 타면 안락하니까요! 이 법문을 제외한 나머지 법문들은 모두 난행도라 부르는데, 그것을 보행에다 비유하여 말씀하시길 “걸어서 가면 수고롭다”라고 하셨지요. 길을 걷는 건 매우 수고롭습니다. 멀고 험한 길을 떠나려면 산을 넘고 고개를 지나며 강을 건너고 계곡을 넘어야 해서 굉장히 고됩니다. 게다가 또 갖은 고난들이 그 사람 앞길을 가로막고 있고, 심지어 체력이 바닥나서 계속 걷지 못하고 도중에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닦고 있는 법문이 정토법문이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요. 만약 이미 정토법문을 닦고 있음에도 아직 안락한 왕생을 얻지 못했으면 여기엔 틀림없이 문제가 있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요? 끝까지 추궁해 보면, 간단하게 말해서 이치를 모르는 데 있습니다. 이치를 안다면 염불하는 우리 마음은 틀림없이 편안하고 만족할 것이므로, 이행도라 부르고, 배를 타면 안락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용수보살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이 법문을 이행도라고 부르는데, 어느 정도로 쉬울까요? 우리가 아무 일도 할 필요 없이 얌전히 배에 남아 있기만 하면 될 정도로 쉽습니다. 이 배를 타는데 당신이 배를 살 필요 없고, 배표를 살 필요 없고, 기름값을 낼 필요 없고, 당신이 조타하고 운전할 필요도 없고…… 전부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모두 아미타부처님의 일이므로 우리는 자기의 본분만 지키면 됩니다.
무엇을 자기 본분을 지킨다고 말할까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인연 따라 과거 업을 소멸하고, 다시는 새로운 화를 짓지 않으며”, 그다음은 결정코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고 오로지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만 부른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자기의 본분을 지키는 염불인입니다. 그래서 용수보살님은 《이행품》 속에서 이 법문을 “이행도”라 부르고, 비유로 말하자면 바로 “배를 타는 것”이라며 “즐거움만 있을 뿐 괴로움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힘으로 육도의 생사윤회를 벗어나 불도를 성취하고 널리 중생을 구제하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교리에 따르면, 초주부터 시작하여 첫 번째 아승지겁이 지나야만 초지에 들어갈 수 있고, 다시 두 번째 아승지겁이 지나야만 7지보살에 이를 수 있으며, 다시 세 번째 아승지겁이 지나서 등각보살에 이른 다음에서야 성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견혹과 사혹조차 조복하지도 끊지도 못하는 우리가 초지와는 아직 얼마나 먼 거리가 남아 있을까요? 하늘과 땅 차이라서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나무아미타불”만 칭념하면 우리로 하여금 삼계를 가로질러 초월하게 하고, 비록 아직은 번뇌를 조복하지 못하고 번뇌를 끊지 못했으며 어떤 과위도 증득하지 못했지만, 곧장 삼계를 가로질러 등각보살의 과위까지 초월하게 하였으니, 이 정도면 매우 간단하지 않나요? 매우 안락하지 않나요? 따라서 바로 “간단, 용이, 안락”입니다. 염불만 하면 우리를 삼계의 육도윤회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 뒤로 다시는 죄업을 짓지 않고 고난을 받지 않으며,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바로 열반의 경계에 들어가 성불하게 되며, 그 뒤로는 등각보살의 신분으로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와서 중생구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보현의 덕을 닦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