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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문학계에서 여성이 서사 구조를 이끌어가는 스토리를 일컫는 장르.
여성 서사라는 말은 여성을 다루는 문학, 예술 등을 이야기할 때 종종 쓰여 왔던 단어이며, 이는 2000년대 초부터 연구되어 여성학 관점에서의 문학/예술 연구#1나 관련 기사#1 #2 등지에서 심심치 않게 사용되어 왔다.
다만 어떠한 이야기가 여성서사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내적 원리에 의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편/남성 서사의 타자로서만 성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여성서사의 정의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되었으나, 아직까지 개념에 대한 명확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1]
여기에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진은진은 자신의 논의의 대상이 되는 ‘여성탐색담’(女性探索譚)을 정의하면서 “여성이 서사 주체가 되어 일정한 대상을 찾기 위하여 탐색하는 이야기”라고 발언한 바 있거니와 , 가장 기본적으로 여성 서사란 ‘여성이 서사의 주체가 되는 이야기’, 조금 더 발전시켜서 여성 주체의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이 뚜렷이 나타나 있으며 그녀의 자기실현이 표현된 서사라고 말한다.
2. 한국의 여성서사[편집]2.1. 한국 고전 여성서사
국조 신화에서 나오는 여성서사는 바리공주 설화 자청비 설화를 꼽을 수 있다. 아버지중심 세계의 성차별적 제도에 버림받았지만 효를 실천하기 위해 남장으로 세상을 떠돌면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죽음마저 포용한 바리공주의 모습과, 남장을 하면서 여러가지 지혜로 남성 못지 않게 활약을 펼치며 결국 원하는 사랑을 얻어낸 자청비의 공통점은 바로 이러한 여성 계급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클리셰였다. 즉, 딸이란 결핍된 존재를 의미했다.
이렇듯, 고전 설화속 여성서사는 여성주의적이면서도 가부장제에 순종적인 양면성을 지내고 있다. 이러한 여성서사의 대부분이 내훈(內訓), 여범(女範)과 같은 여성 교과서에 실려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박씨전》, 《옥주호연》(玉珠好緣)과 같은 고전 여성영웅소설 특징을 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①여성이 주인공으로서 주체적으로 능동적인 존재로 나타남
②남녀 양성의 조화화 협력 및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남녀 양성의 일대기가 병렬적 구조로 이루고 있다
③여성의 능력이나 여성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단 변신, 남장, 대리인 세우기 등 우회적인 방법을 선호한다.
④남녀 주인공의 능력의 차이로 인해 젠더 갈등이 벌어진다.
기존 남성 서사에서 제외되었던 여성 문제를 자세하게 다룬다
⑤양성간에 평등, 평화, 조화, 협력, 공존, 2인자 정신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남성서사(1인자정신, 최고, 지배자 정신)과 대조된다.
⑥결말에서 여성 주인공은 사적 영역으로 돌아간다.
⑦주인공은 남성적 속성보다는 포용성, 생명존중, 지혜, 협력등 여성적 속성을 공적 영역에서 발휘한다.[4]
또한 《운영전》과 같이 사랑을 하고 싶어도 자신의 뜻대로 사랑을 할 수 없는 궁녀 운영의 비극적인 일화를 다룬 소설도 있다. 이는 같은 주제를 다룬 중국 육차운(陸次雲)의 《원원전》(圓圓傳), 일본 이하라 사이카쿠가 지은 《호색일대녀》(好色一代女)와 같이 여성의 ‘자유와 억압’이라는 의미심장한 문제를 제기했다.
2.2. 구한말 ~ 일제강점기의 한국 여성서사
문학은 시국을 반영하는 만큼, 문학의 일부인 여성서사도 이 급박한 시국을 따를 수 밖에 없다. 장지연은 《애국부인전》(1907), 《여자독본》(1908), 《삼강의 일사》(1909) 등에서 잔 다르크, 논개 등 여러 여성 서사를 소개하였다. 이런 여성 사사의 공통점은 바로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즉, 나라의 일시적으로 어두운 시국에서는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나라가 평안해지면 즉시 가부장적인 사회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작중에 잔 다르크가 직접 전쟁에 나서자 주변 남성들이 미친 여자, 광병 들린 여자라고 깐다던가, 논개가 나라를 위해 죽은 게 아닌 황진의 첩으로서 절개를 지키다 죽은 모습이 이러하다. 이는 장지연이 계몽운동가이긴 하나 유교에 사상적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반면 친일파인 이인직은 《혈의 누》와 그 후속작인 《모란봉》에서 가부장적 질서에서 억눌린 여성을 표현하였고, 버림받은 민족. 민중 공동체 속에서 여성들의 탈출구는 개화로 묘사해놓았다.[6]
1940년 일제가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조선 여성은 조선시대 개화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가부장적인 모습을 요구받았다. 아들을 낳고 이를 장병으로 기르는 어머니로서, 주부로서, 그리고 전장의 후방 생산자로서의 역할이었다. 이렇다보니 '신여성'적인 자기실현은 금기였고 총후 부인과 같은 프로파간다적 모델이 조선 사회에 선전 유포되어 조선 여성 속에 파고들어갔다.
일례로 국민문학 창간호에 수록된 정인택의 《청량리계외》(淸涼里界隈)는 애국반 활동을 통해 ‘성장’하는 아내의 모습을 남편-교사의 시선으로 기껍게 그려냈고, 신진 작가 김사은 《성스러운 얼굴》(聖顔)에서 아들의 죽음을 승인하는 어머니를 '성모'로 격상시키는 등 국민문학 작가들은 새로운 여성성을 창작의 주된 소재로 활용했다.
다만 임순득의 《나즈케오야》(名付親, 1942), 《가을의 선물》(秋の贈り物), 《달밤의 대화》(月夜の語り), 《지하련의 체향초》(滯鄕抄)(1941), 《종매》(從妹, 1948), 《양》(1948) 등 과거 친일소설로 분류되었지만 지금은 저항의식 등이 재발견된 여성서사 작품이 등장하고 있었고. 이들로 하여금 식민지적 여성성이 억압에서 얼마나 임계점에 닿을수 있는지 나올수 있는 표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7]
2.3. 현대 대한민국의 여성서사
60년대 여성소설에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이념적 담론은 낭만적 사랑이다. 대표적으로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이브변신》, 한무숙의 《유수암》, 《감정이 있는 심연》 등에서 강렬하게 나타낸다.
여기에 대해서 여성의 육체와 성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며 이런 여성의 욕망이 서사의 중심이 된다. 전통적인 유교 혹은 기독교 윤리에 의해 왜곡된 상황을 모순으로 인식하며 여성의 육체는 남성의 그것과 동등한 생물학적인 대상으로 제시되고 그것에 대한 지위도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제시된다.
또한 6.25 전쟁보다 4.19 혁명 등 거대담론보단 여성 일상의 현실이 중요하게 제시되는데, 거대한 사건임에도 무너지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여성을 부각하고, 이념의 그늘 속에 비겁한 도피처를 찾는 남성인물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여성들로 하여금 생존의 현장 속에 들어가 경제적인 책무를 스스로 감당하게 한다. 허나 이런 이념과 유리된 여성들을 속물적 군상으로 제시되지 않는 점이 남성작가들의 작품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8]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여성 해방 소설이 활발하게 집필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박완서의 《서 있는 여자》(1982~1983)였다. 당시 서구의 주요 페미니즘 이론의 하나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이라는 저서가 1980년대 한국여성문학운동 그룹에서 널리 수용되었는데[9], 박완서는 상기한 작품에서 주인공인 연지의 삶과 투쟁을 빌어 소위 '미풍양속'을 극복하고 일도 결혼도 여성성에 기대지 않고 '평등한 결혼과 삶'을 추구하고자 했다.[10]
3. 외국의 여성서사
외국에서도 여성 서사는 존재하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당나라 시기에 집필된 목란시(木蘭詩)는 여성 영웅 화목란의 설화를 전체 62구 오언시(간혹 칠언, 구언이 섞여 있다)로 이루어진 민간 서사시로, 백거이, 두목, 위원보 등 여러 시인들에게서 지어졌으며[11], 청나라에서는 여러 선비들의 손에서 소설로 지어졌다. 부친 대신 징집을 나가고, 전장에서 활약한 뒤 '다시 여성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남성세계로 돌아올땐 영웅이지만 활약이 끝나면 여성으로 돌아와야 하는 전형적인 여성 영웅 서사와 비슷하다. [12]
근현대시기 서양 여성 문학은 페미니즘의 태동기와 격변기를 함께 했고,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방》, 조지 엘리엇의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이 바로 이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성의 욕망과 양성간의 갈등을 좀 더 실감나게 묘사하여 리얼리즘을 추구하였고, 그 속에서 여성의 압박과 분노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13]
4. 만화, 애니메이션에서의 여성 서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은 여성 서사가 자주 나온다. 《추억은 방울방울》과 《벼랑 위의 포뇨》에 나타난 여성들은 현실적 세계의 중력과 구속을 뛰어넘으려는 낭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낭만성은 동심에 기초하였으며 이들은 낭만성을 통해서 동심을 확대시켜 나갔다
《모노노케 히메》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온 여성들은 세계의 불의에 진취적으로 맞서 싸우는 투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전투와 전쟁을 통해서 자연을 파괴하려는 악의 무리를 제거하여 자연 합일을 이루어내고자 하였다.
《마녀 배달부 키키》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의 목적을 슬기롭게 쟁취해 나가는 모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모험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브리가 보여준 서사에는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고 세계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철학적 의지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 서사의 중요 지 점마다 여성의 역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즉 지브리의 스토리텔링에 여성성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14]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시작으로 많은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보수적인 전통에 따라 고정적인 여성 캐릭터의 이미지를 표현해왔다. 이에 여성은 사회적으로 ‘여성스러운’이라고 규정지어진 굴레에 갇혀 주로 수동적이고 유순한 성품을 가지고 아름다움 외모에 의해 왕자의 사랑을 받는 젠더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여성 캐릭터의 외모는 서양 미인의 기준에 맞게 날씬하고 글래머러스한 백인의 금발머리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남성 중심주의와 인종차별주의, 외모지상주의 등의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요소이다. 게다가 여성의 내면과 외면의 조화에 의한 것이 아닌 외모에 치중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의해 모든 일이 해결되고 행복한 삶에 이른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 및 상품화로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은 《포카혼타스》나 《뮬란》을 시작으로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포카혼타스》나 《뮬란》은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성향을 가지고 나라를 구하는 젠더 수행성을 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디즈니의 전통적인 가치관인 남성 주인공을 만나 결혼하여 행복해진다는 진부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디즈니의 가치관은 《겨울왕국》에 이르러 남성중심의 이분법적 담론에서 벗어나게 되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의 수행성에 초점을 맞추어 여성 스스로 일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겨울왕국》은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남성과의 결혼에 의해서 행복을 얻게 되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버렸다. 대신 두 여성의 자매애를 통해 여성이 다른 여성을 살려낼 수 있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나갔다. 또한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인 ‘Let It Go’의 노래 가사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규범에 맞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독립된 주체로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는 능동적인 여성상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여성 캐릭터의 모습은 변화된 여성의 젠더 수행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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