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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N GENESIS EVANGELION
「Genesis Q (제 5 화 Part.C)」
아스카는 여느 때보다 1시간과 30분 일찍 일어났다.
침대에서 뛰쳐 나가듯이 욕실로 직행.
뜨거운 샤워로 싱싱한 몸을 다잡는다.
평소보다 정성들여 머리를 감고, 몸의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씻는다.
학교에 갈 때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배스타월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와서는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린다.
블로우를 하고 나서 머리 스타일로 5분 정도 고민했지만 긴 머리카락을 뒤에서 노
긋하게 세 가닥으로 땋아 하나로 묶고는 빨간 리본을 달았다.
-> 블로우 (blow): 드라이어와 빗을 써서 머리를 단정히 하는 일.
화장은 하지 않지만 마음에 들어 있는 립스틱을 은은하게, 붉은 입술에 바른다.
빨간 옷깃이 달린 세일러의 반팔셔츠에 체크무늬의 미니스커트를 고른다. 소요시간
은 1시간.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지고 나서 다시 한 번 거울을 들여다 본다.
5분간 말없이 바라보고 나서 빙긋이 웃는다.
그럭저럭 노력은 정당하게 보답받은 모양이다.
"아스카, 가요."
●
신지가 잠의 나라에서 추방된 원인은 레이에게 있었다.
과장되게 몸을 흔드는 레이.
신지는 눈을 비비며, 그에게 있어서는 드물게 한 번에 일어났다.
오늘은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안녕, 레이."
"안녕."
여느 때와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인사. 그러나 요즘들어 레이는 평소의 쾌활함을 어딘
가에 잊고 온 것처럼 느껴졌다.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레이는 이미 옷을 다 갈아입은 상태였다.
하얀색과 파란색의 줄무늬가 쳐진 셔츠와 하늘색의 퀼로트. 겉모습을 꾸미려고 하지
않는 것은 평소 대로다.
<- 퀼로트 <(프) culotte >: 퀼로트 스커트 (culotte skirt) 의 약자.
여성용의 바지처럼 생긴 치마.
"신지, 깨어 있었군."
희한하게 겐도우가 신지의 방 앞까지 와서 말했다.
"아, 아버지."
"오늘은 더블 데이트인 모양이라더군. 신지."
태연한 얼굴로 겐도우가 한 마디.
"그, 그런 게 아니에요."
당황하는 신지. 필시 레이가 얘기한 오늘의 예정을 대폭으로 착각했던가, 아니면 핵
심을 찔렀다던가...
무서운 겐도우.
"아니에요. 넷이서 쇼핑하고, 카오루의 방에 갈 뿐으로..."
레이도 조금 볼을 붉히며 말했다.
겐도우는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나서,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젊군."
"뭐가요?"
"뭐가 말이죠?"
"좀 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도록. 젊은 시절에는 상당히 어렵지만 말이다."
"무슨 뜻이죠?"
두 사람이 동시에 되묻는다.
겐도우는 입 끝으로만 히죽 웃고는 레이에게 다가가 살짝 귀엣말을 했다.
"오늘이 찬스다. 신지에게 다가가는 거다."
눈에 띌 정도로 빨개지는 귀까지 빨갛다.
레이의 급격한 변화에 겐도우의 말이 신경쓰이는 신지. 겐도우는 이번에는 신지에게
다가가 똑같이 귀엣말을 했다.
"남자끼리도 익숙해지면 좋은 것인 모양이라더군."
신지는 또다시 얼어 붙는다.
그런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겐도우는 생각했다.
"이 얼마나 놀리는 보람이 있는 녀석이냐."
라고.
●
"안녕하세요."
신지의 집에 여느 때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어머, 어서와. 아스카짱."
유이가 웃는 얼굴로 아스카를 맞이했다.
"신지, 일어났어요?"
"그래, 아까 아버지가 깨운 모양이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유이는 천천히 아스카의 전신을 보았다.
"후후, 오늘은 멋을 냈구나. 평소보다 훨씬 예뻐."
유이는 그렇게 말하고 아스카의 양어깨를 잡았다.
"정말이에요?"
활짝 웃음을 피우는 아스카.
"그래, 이거라면 신지도 내버려두지 않겠는걸."
유이의 아무 생각 없는 한 마디는 아스카의 심장을 직격했다.
화끈~~~~~~~~~~~~~~~~~~~~~~~~~~~~~~~~~~~~~~하며 빨개지는 아스카를 보면서 유이는
웃었다.
"화이팅이야."
아스카는 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에 들어온 아스카를 보고 신지는 할 말을 잃었다.
"귀여워...."
말로 하면 얼마나 아스카가 기뻐할지.
신지는 깨닫지 못한다.
레이는 레이 나름대로 친구의 의외의 한 면을 본 느낌이 들어서 똑같이 눈을 동그랗
게 뜨고 있다.
"오늘은 힘이 넘치는군, 아스카군."
겐도우 만은 그런 아스카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곰곰히 아스카를 바라보고, 이번에는 레이를 보았다.
팔짱을 끼고 10초, 유이에게 살짝 귀엣말을 한다.
유이는 빙긋 웃고는 레이의 손을 잡고 거실에서 데리고 나갔다.
"어때? 신지."
아직 잠옷 차림의 신지에게 아스카는 자신 만만하게 다가갔다.
"에, 아, 아니, 그, 저, 저기..."
횡설수설하는 신지를 곁눈으로 보면서 겐도우는 다시 한 번 히죽 웃었다.
10분 후, 유이와 함께 레이가 나타났다.
아까와는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신지와 아스카가 깜짝 놀랄 정도로 그 모습은 가련했다.
머리카락에는 노란 밴대너가 리본처럼 묶여 있었다. 검은 T셔츠에 가죽의 베스트.
진의 핫팬츠에서는 예쁘고 하얀 다리가 날씬하게 뻗어 있었다.
-> 밴대너 (bandanna): 홀치기 염색 또는 사라사 염색의 네모난 천.
손수건으로 쓰거나 목에 감는다거나 머리에 쓰
거나 함.
란마1/2 에서 료가가 머리에 두른 것도 밴대
너라고 하던가요...?
-> 베스트 (vest): (여자용) 조끼.
-> 진 (jean): 튼튼한 능직 무명. 명사형은 진즈 (jeans).
청바지를 블루 진즈 (blue jeans) 라고 하던가요...?
"어떠니 신지. 잘 어울리지? 아버지와 엄마가 이런 일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사 둔
거야."
유이의 즐거운 듯한 말에 끄덕끄덕 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 하는데, 레이."
아스카는 마음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의 미소녀가 양쪽에 있으면 신지도 남자에게 눈을 돌릴 틈은
없겠지."
우쭐하듯이 확신하는 아스카. 그것은 무언의 승리 선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레이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 신지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
한다.
"멋을 낸다는 거, 왠지 부끄러워."
레이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
9시55분에는 역에 도착했다.
신지는 하얀 바탕에 녹색의 개복치가 그려져 있는 T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집을
나섰었다.
그 양쪽에는 레이와 아스카.
같은 또래의 소년이 보면 이를 갈며 부러워할 것 같은 광경이었다.
"기다렸지. 신지군."
10시에 딱 맞춰서 카오루가 나타났다.
그 복장을 보고 셋은 한결같이 놀랐다.
카오루가 입고 있는 검은 반팔셔츠의 앞단추를 위에서 3개 풀어놓고 있었다. 거기
에서 엿보이는 하얀 피부와 검은 천의 대조가 보는 사람을 유혹하듯이 보였다. 하반
신은 베이지의 슬랙스를 가죽 벨트와 가죽 구두로 받쳐주고 있다. 도저히 중학생이
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중성적인 인상에서인지 지나가는 젊은 남녀의 80%가
뒤돌아서 카오루를 보고 있었다.
-> 베이지 <(프)beige>: 엷고도 밝은 갈색. 낙타색.
-> 슬랙스 (slacks): 스포츠용의 경쾌한 바지. 또는 여성용의 좁은 바지.
"아, 안녕, 카오루군...."
아연해하는 신지들.
"왜 그러니?"
카오루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상당히 멋쟁이구나. 카오루군은."
신지는 간신히 대답했다.
"왜냐면 오늘은 신지군들과의 외출이잖아. 여러가지로 고민했어."
카오루의 부드러운 웃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신지는 조금 난처해 했다.
"자, 가자."
신지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고 아스카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볼일이 있는 건 이쪽이야."
반대쪽을 가리키면서 카오루가 말했다.
"아, 알고 있어."
빙글 방향전환을 하고는 부리나케 걸었다.
빙긋이 웃고 카오루가 레이를 보았다.
"자, 갈까?"
그러나 카오루가 내민 손을 무시하고 레이는 신지들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조금 어깨를 움츠리고는 웃음을 띄운 채 카오루도 걸어가기 시작했다.
카오루의 목적은 식기와 욕실·화장실용품, 나머지는 생각이 나면 구입한다는 대략
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듣고 즉각 반응한 것은 아스카였다.
"그럼, 최근에 생긴 G·Front에 가지 않을래? 이것저것 많은 모양이야."
G·Front는 최근 제3신토쿄시에 가게를 연 만물상이었다.
13층으로 세워진 빌딩의 내부에는 생활용품과 레저용품, 일상용품에서 스포츠용품
까지 원하는 것의 대부분은 갖춰진 편리한 백화점이었다.
제휴회사로 제레 그룹이 있어, 풍부한 자본과 센스로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여자애들에게는 이미 상당한 인기가 있다.
<- 여자애 (女の子): 여기서...아니, 보통 일본에서의 「여자애」라 하면 「어린
여자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학생 신분의 여성들
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은 상징적인 의미
랄까요...? 예를 들자면, 「아앗! 여신님」에서 13권 183페이
지 맨 아래칸에 보면 베르단디가 「여자애니까요.」라고 말하
는 장면이 있죠.
아, 남자애 (男の子) 도 마찬가지∼ 아마도...-.-i
"그렇게 할까? 카오루군."
"신지군이 괜찮다면 상관없어."
"그럼 안내해 줘. 아스카."
뭔가 재미가 없는 아스카는 그래도 신지의 손을 끌고 부리나케 걸어간다.
그 바로 뒤를 레이가, 그 두 걸음 뒤를 카오루가 따라간다.
참으로 기묘한 콰르텟이었다. <- 콰르텟 <(이)quartetto>: 사중주. 사중창. 또는
그 악곡·악단을 말함.
●
G·Front는 토요일의 오전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붐비기 시작하고 있었다.
식기는 3층, 욕실·화장실용품은 4층에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매장까지 와보니 거기는 여자애들의 독무대이다.
"귀여워∼"
"이게 뭐야, 대단해∼"
"아, 재밌어, 이거∼"
이리 가나, 저리 가나 같은 듯한 목소리를 올리며 아스카와 레이가 분주히 돌아다닌
다.
걱정하고 있었던 레이도 상당히 힘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펭귄 무늬의 접시와 머그컵, 물고기가 그려진 밥그릇 등, 여자애들에게는 너무나 즐
거운 장소인 것이나, 신지와 카오루는 완전히 버려진 채로 있었다.
"잠깐 카오루군. 어떤 게 좋은 거야? 너 때문에 온 거잖아."
도저히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지만, 당초의 목적을 가까스로 생각해낸 아스카가 카오
루에게 말을 걸었다.
"글쎄, 어디보자∼..."
카오루도 식기의 산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이것과 이것. 어느쪽이 좋다고 생각해?"
아스카가 내민 밥그릇은 파란 파도 모양이 그려진 것과 녹색과 노란색으로 채색된
꽃 모양이 그려진 것이었다.
"응∼, 신지군은 어떻게 생각하니?"
하지만 카오루가 뒤돌아본 곳에는 신지의 모습은 없고, 레이와 함께 머그컵을 홈착
이고 있는 뒷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신지는 됐어, 나기사군이 사는 거잖아."
레이의 받쳐줌에 감사하면서도 재미가 없는 아스카. 자연스레 말투가 거칠어진다.
"알았어, 아스카짱. 그리고 나는 카오루라고 불러도 돼."
그 미소를 바로 눈 앞에서 보게된 아스카였으나 그녀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 카오루군. 어느쪽이 좋은지 가르쳐 줘. 골라줄 테니까."
"고마워, 아스카짱."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말투로 카오루는 미소지었다. 그것
을 보자 아스카는 조금 마음이 아파온다.
"이 사람도 레이와 같구나...."
왠지 조금 부드러워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로부터 30분으로 밥그릇이 둘, 작은 접시가 넷, 보통 접시 둘, 큰 접시 둘, 젓
가락이 두 쌍, 작은 사발 넷, 컵이 다섯, 머그컵이 하나, 아스카의 견해에 의해 골
라졌다.
"일단, 이 정도 있으면 불편한 건 없겠지?"
아스카의 한 마디에 다시 한 번 카오루가 미소지었다.
"역시 여자애가 있어줘서 살았어. 고마워."
이 사람은 「고마워」라는 말을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말하는 걸까.
아스카는 그런 것을 생각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싫어했었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카오루의 좋은 점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그래? 아스카짱."
카오루의 말에 아스카는 현실로 되돌려져 있었다.
"계산하러 갔다 올게."
카오루는 그렇게 말하고, 식기가 든 바구니를 들고 「대금 지불」이라고 쓰여 있는
카운터를 향했다.
말라 있어도 남자아이다. 저렇게 많은 식기간 든 장바구니를 손쉽게 들고 있었다.
신지를 생각해내, 시선을 돌리자 도시락통 코너 앞에서 신지와 레이를 발견했다.
최근에 왠지 힘이 없어 보였던 레이가 조금이지만 미소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약간이나마 안심했다. 한편으로 자신에게 카오루를 떠맡기고 신지와 얘기하고 있었
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기도 했다.
"소꿉친구라면 제대로 돌봐주란 말이야."
입 속에서만 중얼거린다.
"자, 갈까?"
의외로 빠르게 지불을 마친 카오루가 뒤에 서 있었다.
뒤돌아보자 카오루는 종이봉투 하나만을 안아 들고 있었다.
"다른 물건은?"
"아무래도 무거워서 말야. 배달해 달라고 해놓고 일단 컵만 들고 가기로 했어. 내일
에는 도착할 모양이야.
그리고 미소짓는다.
"간다. 신지군, 레이."
신지와 레이가 뒤돌아보고, 그곳으로 달려온다.
"다음은 4층이야."
아스카는 의식해서 신지의 손을 잡았다.
신지는 죽죽 끌려간다.
"좋구나. 여기는."
카오루가 레이에게만 들리도록 중얼거린다.
레이는 말없이 가볍게 끄덕였다.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해."
"그래."
그리고 레이가 한 걸음 내딛고, 카오루가 뒤를 따라갔다.
그 뒤로는 마찬가지로 왁자지껄거리다 시간이 지났다.
최종적으로는 양식 화장실의 변기 커버와 욕실 바닥에 깔 매트를 구입했다.
귀여운 장식품이 가득 있는 이번 층에서도 아스카와 레이는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
다니게 된다.
카오루는 어떠냐고 한다면 마지막까지 수세미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계속 고민했
으나,
"그만 둬, 보기 흉하잖아."
라는 아스카의 지당한 이유에 의해 단념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12시 반.
"배가 고프니까 점심 먹자."
아스카는 G·Front를 나오자, 그렇게 말하고 근처에 있는 파스타집에 직행했
다.
아스카가 정보지에서 체크해 두었다는 그 가게는 확실하게 그들을 만족시켜 주었다.
다섯 접시의 파스타를 넷이서 나눴다.
-> 파스타 <(이)pasta>: 소맥분을 반죽해서 만드는 이탈리아의 면류의 총칭.
스파게티 (spaghetti)·마카로니 (macaroni)·라비올
리 (ravioli)·카넬로니 (cannelloni) 등.
역시 가리는 음식만 없다면 그들의 식욕은 왕성하다.
말없이 그들의 식사는 끝났다.
식후에 진저 에일과 오렌지 주스, 홍차, 그리고 아이스 커피를 마실 무렵에는 다같
이 만족한 표정으로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 진저 에일 (ginger ale): 탄산을 포함한 청량음료수. 알코올은 넣지 않는다.
진저 (생강), 레몬 등 각종 향료를 넣어 카라멜로
착색한 것.
덧붙이자면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마셔놓고
그게 뭔지 몰랐을 지도... -.-i
"이제부터 어쩔 거야?"
신지가 묻는다.
"아직 집에 가기에는 이른가."
시계를 보면서 카오루.
아스카는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몸을 내밀었다.
"그럼 좀 더 놀다 가자!"
그로부터 3시간, 그들은 게임센터 순회와 윈도우 쇼핑을 되풀이하고, 패스트푸드
점과 책방을 순례하며 지냈다.
●
소년소녀에게도 체력의 한계는 있다.
역시 노느라 지친 모양으로, 신지들은 카오루의 방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는 제3신토쿄시 중에서는 드물게 난잡한 인상의 쇠퇴하기 시작한 한 모서리였
다.
본래 도시건설을 위한 노동자가 모이는 장소로서 설치되어, 지금은 보다 많은 사람
이 사는 잡다한 마을이다.
도시건설 공사가 최종적으로 끝나면, 이곳도 정비되어 재개발하기로 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면 제3신토쿄시에서 최초로 마을로서 모양을 갖춘 장소로, 가장 오래된
집과 상점들이 늘비하게 서 있는 곳인 것이다.
간소한 집과 싼 아파트 등이 많이 줄지어 서 있어, 이곳의 주민을 상대로 한 상점가
가 조촐하지만 신지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4살 때부터 제3신토쿄시에서 살아온 신지와 아스카도 이곳에는 가까이 온 적이 없
다.
상점가의 좁은 길을 지나, 더욱 구석으로 걸어간다.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마을의 광경에 신지는 압도될 것 같았다.
"이런 장소가 있었다니..."
치밀하게 계산된 도시로서의 마을밖에 모르는 신지에게는 매우 먼 나라의 마을처럼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10분은 걸었으나 카오루는 멈추려 하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어∼?"
가장 신이 났던 아스카는 가장 지쳐 있었다.
"아아, 이제 보여. 저기야."
카오루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오래된 콘크리트 건조물이 있었다. 2층건물로,
작은 마을의 공장이나 창고를 생각나게 하는 건물이다.
"저, 저기야?"
아연해 하는 아스카들 일동.
"그래, 사양하지 않아도 돼. 보시다시피 대단한 곳은 아니니까."
그 말에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끄덕이며 아스카는 무거운 발을 끌었다.
카오루는 1층의 입구를 사용하지 않고, 뒤에 있는 철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을 때에는 2층건물로 보였던 그것은 로프트 부분에도 스테인레스제의 문
이 있었다. <- 로프트 (loft): 지붕 밑에 있는 이른바 다락방. 창고 등의 위층.
아뜨리에나 스튜디오로 이용됨.
열쇠를 쓰지 않고 손잡이를 틀자 문이 열렸다.
"카오루군, 열쇠는?"
신지가 의외하는 듯이 묻자,
"아아, 망가져서 잠궈지지 않거든."
시원스럽게 카오루가 대답한다.
"자, 어서 들어와."
카오루가 안에서 말했다.
결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한 번 신지들은 놀라게 되었다.
그곳은 첩으로 환산하면 15첩은 될 것 같은 넓은 공간이었다. <- 첩(疊): 타타미.
로프트 때문에 천정의 높이에 차이는 있으나, 가장 낮은 방의 구석에서도 신지가 여
유 있게 설 수 있었다.
벽은 세 사람이 예상하고 있었던 콘크리트가 드러나 보이는 벽이 아닌, 깨끗해 보이
는 크림색의 벽지로 싸여 있었다. 창문은 사방에 있고, 간단하지만 부엌이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있다.
바닥은 플로어링으로, 소파와 양탄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카오루가 슬리퍼를 내밀었다.
"자,"
카오루의 방은 겉모습과 내장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도저히 중학생이 혼자서 살 만한 장소는 아니다.
"조, 좋은 방이구나."
"그래, 여기는 전에 있던 사람에게 부탁받아서 집을 보는 대신에 살고 있는 거나 마
찬가지야. 나 혼자로는 방도 빌려주지 않을 테지. 미성년자이니."
"과연."
그것으로 어느 정도 납득했다.
"소파에라도 앉아 있어."
그렇게 말하고 카오루는 하나만 들고 돌아온, 컵이 든 보따리를 열고는 싱크대에서
씻기 시작했다.
"레이, 여기에 종이컵이 있으니까, 뭔가 차가운 거라도 마셔."
손을 멈추지 않고 카오루가 말하자, 레이는 종이컵을 들고 작은 편인 냉장고를 열었
다.
보리차가 든 병을 꺼내, 소파 앞의 테이블에 놓는다.
아스카가 맨 먼저 달려들어 꿀꺽꿀꺽 들이킨다.
"푸하∼"
신지와 레이도 역시 걷느라 피곤한지 축 늘어져 있었다.
"미안해. 피곤하지?"
손을 닦으면서 카오루가 소파에 다가왔다.
"하지만 방 정리라니, 무엇을 하면 되는 거야?"
라며 묻는 신지.
"글쎄, 실은 오늘 너희들이 집에 온다고 해서, 어제 다 정리해 버렸어."
빙긋이 웃는 카오루.
"헤...."
세 사람 다 똑같은 표정으로 어이없어 하는 신지들.
"그럼, 뭘 하면 되는 거지?"
"일단 이사·전학 축하 파티라도 해 주지 않겠어?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도 되고."
태연하게 잘라 말하는 카오루의 얼굴을 세 사람은 말똥말똥 쳐다보게 되었다.
레이는 무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신지는
"카오루군도 혼자서 쓸쓸한 거구나..."
등을 느끼고 있었다.
아스카는 아스카 나름대로
"당했어. 이건 고도로 계산된 함정이야!"
라며 벗을 뻔한 갑옷을 또다시 몸에 걸쳤다.
"남자 따위에게 질 줄 알고!"
결심을 새롭게 하며 주먹을 불끈 쥔다.
"조금 쉬고 나면, 먹을 것을 사러 가자. 괜찮지? 신지군."
카오루에게 동정하고 있는 신지는 그 표정이 그늘진 것처럼 보였다.
"물론이야, 카오루군. 오늘밤은 여기서 묵으면서 파티를 하자."
힘껏 밝게 신지는 말한 셈이었다.
그러나 아스카와 레이에게는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꾸며진 행위로 보였다.
"고마워, 신지군."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거구나.
아스카는 생각했다.
"지지 않을 테야!!"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애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우와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