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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홍 안젤로(54, 마산교구 삼가공소 회장)
아들아, 가만히 앉아 작은 들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라볼 새도 없이, 나무에 기대어 지나가는 바람 소리 들을 새도 없이,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너를 생각하니 이 애비는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프다. 밥은 제때 잘 챙겨먹고 다니느냐? 네 할머니는 밥만 먹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다 헤쳐나갈 수 있다고 하셨단다. 이 세상에서 밥이 최고였지.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쉰 살이 넘도록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는 할머니가 얼마 전에 갑자기 쓰러져 밤새도록 "밥 문나(먹었냐), 밥 문나?" 똑같은 잠꼬대를 하셨어. 할머니는 무엇이 그리 바쁘신지 해가 뜨기도 전에 돌아가셨지. 돌아가시면서 내 손을 잡고 딱 한마디 하셨단다. "밥 문나?" 할머니는 요즘 사람들이 제 몸처럼 귀하게 여기는 텔레비전, 승용차, 스마트폰 따위보다 밥이 가장 소중했어. 아들아, 한 해에 단 하루라도 그 밥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며 천주교회에서 정한 제17회 농민주일을 맞아 네게 이 편지를 쓴단다. 네 어미랑 산밭에서 김을 매고 돌아와 저녁 밥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드는데 왜 괜스레 눈물이 핑 도는 걸까? 하느님이 손수 만드신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고향을 버리고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메마른 도시로 떠난 너를 생각하니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구나. 사람은 모름지기 자연 속에서 자연을 따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인 것을. 어쩌다가 이 나라가 성직자고 수도자고 정치인이고 지식인이고 어른이고 아이고 가리지 않고 자연을 떠나 사는 것인지 안타깝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단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서로 나누고 섬기며 사람답게 살다 떠나야 하는 것을. 아들아, 못난 애비도 도시에서 살 때는 '자연만큼 위대한 스승이 없다'는 말을 머리로만 알아들었단다. 그러나 산골 들녘에서 땀 흘리며 일하다 보니 이제는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단다. 그래서 자연이 없는 교육은 죽음의 교육이란 걸 깨달았다. 아들아, 사람이 태어나 꼭 해야만 할 일은 제 먹을 음식을 제 손으로 길러 먹는 것이지. 그래서 전체 인구의 70%가 농사를 지어야 나라가 튼튼하다는데, 우리나라는 7%도 안 된단다. 그것도 65살 이상 되는 늙고 병든 노인이 반 가까이나 된다고 하지. 우리가 정녕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씹어 먹고 살 수 없다면, 하느님이 손수 만드신 자연으로 돌아가 땀 흘려 일하며 정직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사람이고 짐승이고 숨 쉬는 모든 생명은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단다.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부를 성직 중 가장 훌륭한 성직이라 하며, 한 순간도 없어서는 살 수 없는 햇빛과 공기와 같고 물과 흙과 같다고 하지 않더냐. 아들아, 기다리마. 네가 하루하루 지구 온난화를 만들어가는 거대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오는 그날을, 이 애비는 애타게 기도하며 기다리마.
(평화신문 - 2012. 07. 15발행 [1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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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꾸벅~~^*^
구구절절 오른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생명이 아니라는 말씀
넘 가슴을 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