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계속'
박물관에 있는 의료장비 한점을 더 추가해 본다.
전쟁을 하면서 싸우는 병사를 지원해 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의료, 식량, 건설, 교육, 의류, 무기 등등.. 측면 지원으로 협조 할 수 있다.
특히 네델란드, 스웨덴 등은 의료 인력과 장비들을 후원했다.
위 장비는 아마.. 발로 밟아서 높낮이와 각도등을 조절할 것 같다.
그리고 환자를 여기에 눕게 해서.. 상황에 따라서 높낮이를 조절할 것 같다.
요즘은 의료장비가 하도 발달해서 이런 제품보다 크게 발전했을 것이다.
동두천 미군기지 앞으로.. 큰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일명 '캠프보산'라고
부른다.
다소 지저분한 골목 형태로 있다가, 2015년부터 시작된 동두천
K-Rock 빌리지 캠프보산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각종 전시회, 무대, 깨끗한 골목 이미지 등.. 많은 예산을 투입시켜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본인이 캠프보산 골목을 둘러보니.. 일단 가장 흔한 곳은
가게 앞에 '내국인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져 있는 '주점(?)'이다.
(외국인만 출입이 가능하고, 한국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그 안에서 뭘 하는지?는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두번째 흔한 점포는 양복점과 이발소.
다른 나라보다보다 한국에 양복 제작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발소도 참 많았다.
외국인 병사들에게 '이발'을 안 할 수가 없을테니 당연한 일이다.
하여간.. 이곳에 사장들은 모두 외국인과 대화가 가능해야 영업이 가능하고..
간판중에 '한국말'로 표기되어 있는 곳은 없었다.
모두 영어간판.
또 한가지.. 이발소, 사진관 앞에 전시된 '모델' 모습을 보면.
백인보다는 대부분 흑인이라는 점...
아마도.. 이발소, 사진관 등을 이용하는 고객층이 백인보다는
흑인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
하지만.. 좋은 날도 다 지나갔다.
미군들중에 90%가 평택으로 옮겨간 이후에.. 이곳 상가들 역시
매출은 10%로 급락했다.
머지않아.. 이 규모는 10%로 감소하게 될 것이다.
동두천시는 갈수록 감소하는 인구를 증가시킬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어차피 군사도시 기능에서 다른 기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현재
쉽지 않을듯 싶다.
한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쇼핑할 수 있는 매장이 있었다.
동두천시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품목들을 전시해 놓았다.
난 5,000원을 주고 '쿠키' 한통을 구입했다.
동두천시를 대표할 수 있는 산이 바로 '소요산'이다.
다른 주변 산보다 '단풍'이 아름다워서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산을 오르기 전에 초입에는 '자재암'이라는 작은 절이 있다.
원효는 화랑도 시절.. 무녕왕의 딸 요석공주와 알고 지냈다.
하지만 요석공주는 다른 화랑도 출신남성과 결혼을 했고,
아쉽게도 남편은 전쟁 중에 사망함으로 '돌싱'이 되었다.
그 사이에 스님이 된 원효를 만나면서 (잘 생긴 외모에) 빠져 들게 된다.
요석공부는 자주 원효를 궁으로 불러서 만났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는 사이에 '설총'을 낳게 된다.
하여간.. 이래저래 해서.. 원효는 요석공주를 떠났고, 산속 깊숙히
숨어서 정진한 곳이 바로 이곳 '자재암'이다.
해설사가 말해 주기를...현재 자재암 주지스님은 과거 경찰대학 출신이고.
광릉수목원 앞에 봉선사 자금으로 지어서 운영 수익의 일부는 그쪽으로 간다고 했다.
동두천시 자연휴양림 모습.
525억을 들여서 나선형 대형 건축물을 만들었다.
여담이지만..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부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심각하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빚을 내서 이런 사업을 마구 진행한다.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갚아야 할 빚이 될 것이다.
큰 돈을 들여서 투자를 했지만, 이용자는 없고 딱 봐도 적자다.
자치단체장 입장에서는 이런 것을 안 만들면.. 그 역시 '유권자 표'는
감소하게 될테니..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것 같다.
빙글빙글 걸어서 올라가게 만들었고, 양 옆으로 길게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 높은 곳에 그물망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이 스릴 넘치게
즐길 공간이 많았고, 또한 미끄럼틀도 있었다.
우측으로 생긴 미끄럼틀 밑으로 원형 구멍이 무려 100미터 정도
미끄럼틀이 있는데.. 아마도.. 위에 밧줄을 잡고 내려가는 것을 보니..
속도를 조절할 장치가 있는듯 싶다.
어린이들이 이용하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 있다.
동두천시를 대표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인물은 '어유소'장군(1434~1489)
위 사진은 어유소 장군을 모시는 사당 내지 제기들 보관소.
일반 장군에 비하여 어유소 장군이 대단한 것은...
이분은 장군 뿐만 아니라.. '성종'의 총애를 받아서..
병조판서는 물론.. 공조판서, 이조판서까지 두루 섭렵한 사람.
현재 묘소는 위사진 옆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도굴이 심해서 대부분 잃어 버리고.. 현재는 동두천 2군단 안으로
옮겨져서 관람은 어려움.
하룻동안 동두천시에 일부를 보면서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역사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