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진정한 쉼은 주님 현존 안에 머물 때 가능합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가도, 또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는 부분이 제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적절한 균형 감각입니다.
기도와 일 사이의 균형, 일과 쉼의 안배, 말과 침묵의 균형, 밀고 당길 줄 아는 능력...그러다보니 언제나 막판 몰아치기의 전문가, 언행 불일치의 대표주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참으로 눈여겨볼 만 합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셨습니다. 그래서 분주히 움직이셨습니다.
이 고을, 저 고을 옮겨 다니셨습니다. 몰려드는 군중의 필요성을 원없이 충족시켜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까지 상습 피로에 시달렸고, 이러다 과로사하겠다는 위기감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이랬습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세상 살이에 지친 우리들, ‘나와 다른 그’로 인해 지친 우리에게도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 한 가지는, 아무리 하루온종일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드러누워 뒹굴거리고 있어도, 더 피곤한건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참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쉼터 같은 존재, 선물 같은 존재와 시간을 보내야 될 것입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존재, 더불어 보내는 시간이 힐링이 되는 그런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야말로 참 휴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편안한 대상이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 나약한 인간들인지라 언제나 한결같지는 않습니다. 환대 받던 존재에서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란 순식간입니다. 그래서 관계 안에서 더 많은 배려와 예의, 친절과 존중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결국 진정한 휴식, 참된 쉼, 깊은 마음의 평화를 주시는 분은 인간 존재가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궁극적, 최종적으로 나아가 머물 곳은 주님 면전 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주님, 그분 앞에 편안히 앉는 것이 참된 휴식입니다. 그분과 눈을 마주치고, 그분 앞에 머무는 것이 참된 쉼입니다. 그분께 내 모든 상처 보여드리고 맡겨드리는 것이, 참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비결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르 6,30-34: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았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31절) 제자들은 예수님께 파견을 받고 나갔다가(6,6-13) 돌아와서 그들이 한 일을 보고하고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서 조용하게 쉬면서 그 보고를 듣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용히 쉴 시간이 없었다. 군중들이 많아서 그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 주님 안에서는 항상 휴식이란 없음을 보여준다. 하여간에 사도들은 다시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나지만(32절), 군중들은 그 배가 이미 어디로 갈 것을 알고는 육로로 예수님의 일행을 앞질러 그곳으로 갔다(33절).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면서 그 군중들을 보시고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다(34절).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34절)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신앙인의 삶이란 조용한 곳에서 하느님 앞에 머무르는 것과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서로 엇갈리는 삶을 조화롭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이 잘못하는 것은 하느님 앞에 조용히 쉬며 머무르는 시간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예수님과 함께 휴식하며 받을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가끔 하느님 아버지와의 조용한 시간, 즉 기도의 시간을 자주 가지셨던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기도를 통하여 더욱 아버지와 하나임을 확인하시고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사명을 더 잘 완수하실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분과의 일치를 체험함으로써 더욱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살이 바쁜 속에 그럴만한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디서나 몸과 마음의 휴식을 주님 앞에 가질 수 있는 여유는 가져야 한다.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한다면 활동의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이때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으며 주님은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힘을 주실 것이다. 이로써 영적인 갈망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의 지혜를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이어령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평소 선생님을 존경해 왔던 분이 병문안을 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평생 존경을 받았지만, 사랑받지 못했어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 받지 않으셨습니까?”
“아니요. 스승의 날이 되어도 제 연구실에는 꽃을 들고 찾아오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제가 어려웠던 거지요.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존경은 받았지만 사랑받지는 못했구나.”
자신과 너무 멀다고 생각하면, 존경할 수는 있어도 사랑하기는 어려운 존재가 됩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이 시대의 석학이고 천재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존경했지만, 사랑하기는 힘들었던 것이지요. 사랑을 주고받으려면 어딘가 빈구석이 있어야 하고, 실수도 하고 어리석은 면도 있어야 했습니다. 너무 완벽하면 사랑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이 말씀에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전지전능함만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기적만을 행하시고,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척척 들어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사랑으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적인 나약함도 보여주셨고, 실제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간이 겪는 죽음까지도 직접 겪으십니다. 존경의 차원을 넘어 사랑의 차원에 함께 머물기 위해서였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고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쉼의 시간이 필요해서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갔지만, 많은 사람이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많은 군중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보이신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이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군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이 사랑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 곁에서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나의 것으로 간직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사실 저 역시 완벽해지려고만 노력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제 곁에서 멀리 앉으려고 하나 봅니다. 식당에서도 멀리, 성당에서도 멀리…. 같이 어우러지는 편안한 사랑의 자리가 나의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발자크)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히브 13,15)
하느님께 바쳐야 할
제물은
그분을 찬미하는
우리의 입술이라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이리저리
소문을 쫓아다니기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에도
우리의 입술에 얹어진
감사와 찬미로 함께하는
선행과 나눔은
진정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이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가엾은 마음이 들다’라는 동사는
그 어원을 보면
배 속, 내장을 의미하는 낱말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가엾은 마음이란
요동칠 정도의 감정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마음 상태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동사입니다.
가엾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어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것입니다.
세상의 혼란과 잡음 속에서
우리 영혼의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외딴 곳’입니다.
‘외딴 곳’에 머무를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눈에 들어오고
차분한 마음으로 고요하게
그 사람의 본심을 볼 수 있는 법입니다.
가엾은 마음은 타인의 삶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묵상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깃드는 겁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2.08.토.'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르 6, 34)
열정과 연민을
잃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연민과
열정으로
일상을
바로 잡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
해답이
있습니다.
기쁘게
맞아들여야 할
우리의 일상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조화와 균형으로
당신의 일상을
조화롭게
다스립니다.
외딴곳으로의
초대는
자신을 보살피는
시간입니다.
외딴곳의
시간도
우리의
일상입니다.
걸으면서
나누면서
쉬면서
작은 피정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상이 모여
예수님의
일생이 됩니다.
우리의 연민도
외딴곳의 쉼이
필요합니다.
감정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절제와
균형 속에서
일상의 중심이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믿음도 실천도
균형을 통해
건강한 신앙이
됩니다.
외딴곳에서
다시
찾아야 할
조화와
균형입니다.
신앙도
균형을 잃으면
연민도 열정도
사그라듭니다.
일상안에서
외딴곳은
우리가
우리자신을
보살피는
복음의
알찬
시간입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위대한 목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3,15-17.20-21
형제 여러분,
15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16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17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하느님께 셈을 해 드려야 하는 이들로서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식하는 일 없이
기쁘게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탄식은 여러분에게 손해가 됩니다.
20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21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0-34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