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관광, 생태여행, 지질탐방 그리고 비치 리조트.
보홀 팡라오, 알로나 비치의 오후. 모든 여행자의 발자국이 찍히는 곳이다
●처음이지만 그리웠어, 보홀
알로나 비치에서 마시는 모히토는 달랐다. ‘여기서 이걸 마시려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처음 온 곳이지만, 오랫동안 그리웠던 것 같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듣던 대로 보홀(Bohol)이었다. 알로나 비치에는 파도에 씻긴 산호 조각이 흩어져 있었고, 무릎을 담그니 작은 물고기 떼가 스쳐 갔다. 해양보호구역 바다에는 산호들이 건강한 낯빛을 띠고 있었고, 희귀한 안경원숭이를 만나는 생태여행과 신기한 초콜릿힐 지질자원 탐방까지 가능하다. 여기에 가성비와 가심비 다 만족시키는 리조트까지 갖췄으니 다들 보홀, 보홀 했던 이유가 있었다.
모히토가 있는 저녁. 해변의 라이브 바와 레스토랑이 밝아지는 시간
보홀은 제주도의 2.2배만 한 크기의 섬이다. 7,000여 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 열도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세부와 멀지 않다. 보홀 중에서도 여행자들이 여장을 푸는 곳은 남서쪽에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팡라오섬(Panglao Island)이다. 필리핀이 자랑하는 다이빙 성지이고, 대표적인 생태 여행지다. 그동안 세부나 보라카이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팬데믹 이후 급부상했다.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핫한 여행지를 뽑으라면, 대답은 보홀이다.
알로나 비치
●직항편이라는 게임체인저
게임체인저는 역시 직항편이다. 로열에어필리핀이 지난해 12월부터 인천-보홀 직항편을 띄우면서 시장이 확 커졌다. 스케줄이 전략적이다. 퇴근 후 짐을 꾸리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면 오전 10시쯤 이미 보홀에 도착해서 반바지로 갈아입을 수 있다.
보홀 직항편이 없던 시절에는 세부로 가서 페리를 타고 보홀로 와야 했었다. 줄어든 이동 시간은 보홀의 리조트와 해변을 즐기는 시간으로 보태진다. 맘에 쏙 드는 또 하나의 장점은 공항이 버스정류장처럼 가깝다는 것이다. 보홀 팡라오국제공항은 팡라오 중심부인 알로나 비치에서 불과 10~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귀국하는 항공 스케줄도 알짜다. 하루를 온전히 다 누린 후 자정 너머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면, 같은 날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서두르면 출근도 가능한 시간이다.
현지의 반응은 민첩하다.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맞이하는 호황이다. 한산했던 리조트가 활기를 띠고, 다국적 여행자의 입맛에 맞춘 식당과 세련된 카페, 해변의 펍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사이에 한식당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혹여 바쁜 직장인들이 가까운 여행지를 묻는다면 보홀을 고려해 보라고 말할 것 같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라고 덧붙일 것 같다. 1년 후 보홀은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다. 반년 전에 다녀왔던 사람들도 이미 달라졌다고 했다. 빛과 그림자는 함께 오는 것이므로.
해변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개와 고양이들
▶Flight to Bohol
로열에어필리핀(Royalair Philippines)이 인천-보홀 사이를 주 5~7회 운항하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4시간 30분의 짧은 비행시간과 편리한 스케줄. 인천에서 6시50분에 출발하면 현지에서 오전 10시20분(현지 시각)부터 일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귀국편도 자정 직후(00시20분) 출발이라 오전 5시50분에 인천에 도착하면 바로 출근도 할 수 있다. 수하물 포함 최저 편도 요금은 약 13만원부터다.
●Islands Hopping Tour
바라건대, 딱 이만큼
찌이잉~~~~. 핸드폰이 비명을 질렀다. 놀라서 열어 보니 ‘적색 호우 경보’였다. 비는 카메라에도 먹구름을 드리웠고, 일정에도 차질을 빚었다. 바다로 나가는 날인데, 파도가 높아진 것이다. 사람들이 대기 중인 리조트 로비에 긴장감이 높아졌을 때 누군가 말했다. “예정대로 배가 뜬다네요!” 행동이 빨라졌다. 팡라오의 모든 지프니가 매연을 뿜뿜 뿜으며 호핑투어 선착장으로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방카 선원들은 대규모 수송 작업을 하듯 손님들을 바다로 실어 날랐다. 왜 이 느낌이 익숙하지? 아, 웃프게도 출근 전쟁을 닮았다.
비가 그치자 호핑 투어를 준비하는 방카와 선원들이 부산해졌다
배가 한 30분쯤 달렸을까, 다이빙 명소인 발리카삭(Balicasag) 아일랜드에 가까워졌을 때 거북이 한 마리가 슬쩍 배 곁을 지나갔다. 어차피 입도는 안 된다고 했었고 입수가 급해졌다! 장롱 다이빙 라이선스를 꺼내올까 고민했었지만, 와 보니 스노클링으로 충분하다. 건강한 산호들이 형형색색의 춤을 춘다. 호핑투어의 진수는 스노클링이고, 스노클링의 본질은 해양생물을 관찰하는 일이다. 해양 레저 스포츠라고 부를 때와는 사뭇 다른 자세로 다른 세계에 몸을 담갔다.
버진 아일랜드의 맹그로브 나무. 무릎 아래는 수족관이다
버진 아일랜드의 불가사리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버진아일랜드
물이 빠질 때만 하얀 모래 속살을 드러내는 버진 아일랜드(Virgin island)의 신비는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는 지구와 연동되어 있다. 뭐 이리 진지할 일인가 싶지만, 자연에는 원래 우연이 없지 않은가. 멀리서 보면 드넓고 하얀 풀등이지만, 다가가면 해초, 불가사리, 성게, 조개, 물고기가 가득한 수족관이다. 물이 차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버진 아일랜드의 시 마크(sea-mark)는 두 개의 아담한 맹그로브 군락이다. 고립됐지만 외로워 보이진 않았다. 부지런히 자손을 늘려 일가를 이루는 중이었다.
바다 택시 역할을 하는 방카
평화로운 하루였지만, 이면에는 치열한 경쟁도 있었다. 방카 확보를 위한 눈치 게임이다. 큰 배는 수심이 얕은 곳에 접근할 수 없어서 작은 방카로 갈아타야 하는데, 투어가 몰리면 그 수가 부족해진다. 불편했지만, 조금 더 기다리면 된다. 배를 더 늘릴 필요는 없다. 발리카삭의 입도 인원을 제한한 것도 옳은 결정이다. 자연이 감당하고 회복할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바라는 것도 호핑투어다.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인 발리카삭은 입도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오버하지만 않는다면
알로나 비치(Alona beach)의 하루는 역동적이다. 해변으로 향하는 메인 도로는 폭이 좁아 늘 인파와 차량이 뒤섞인다. 다이빙 숍, 환전소, 식당, 리조트, 음료 가판과 호객꾼들이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그 무질서 속에서 질서와 원칙을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먹고사니즘’이다. 손재주 좋은 아낙들은 머리를 따 주고, 조막손 아이들은 우쿨렐레를 퉁기고, 진주 팔찌를 겹쳐 두른 아저씨는 흥정에 능숙하다. 여행자는 지갑을 열어 호응한다. 1일 1 마사지의 호사를 누리고, 매 끼니 생과일 망고주스를 마시고, 기념으로 헤나도 새겨 본다.
알로나 비치를 즐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이 점핑대가 비는 법은 거의 없다
모래성을 조각하는 소년들은 누구보다 즐거워 보였다. 하단에 알로나 비치 글자와 날짜를 새겨 넣으니 최고의 기념 촬영 스폿이 되었다. 한 걸음 옆에 팁 박스를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봉이 김선달 뺨치는 미래의 청년 창업가들이다. 필리핀의 미래가 이렇게 밝구나.
보홀의 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 여행 후 SNS에 이렇게 썼다. “보홀 직항편이 떴고, 한국 여행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한국 시장이 주도하는 또 하나의 매스 투어리즘의 시작입니다. 보라카이의 눈물을 아는 필리핀이니 이번에는 지속가능한 여행지로 보전되면 좋겠습니다.”
오버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오버 투어리즘에 대한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만 알고 싶은 천국’ 따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있다면, 그 보전의 책임도 모두에게 있다는 이야기다.
●Natural Heritage
초콜릿이 된 산호
오락가락하던 통신 신호가 카톡을 뱉었다. ‘선배! 보홀이에요? 키세스힐 보셨겠네요!’ 후배 J의 기억 속에 키세스힐로 남아 있는 것은 초콜릿힐(Chocolate Hills)이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경주의 고분군이나 제주의 오름을 떠올린다는데, 무덤은 무덤이다.
보홀섬 탄생의 비밀과 전설을 품고 있는 초콜릿힐
산호의 무덤. 1,270여 개의 봉우리는 산호 퇴적물과 석회암으로 이뤄져 있고, 200만년 전에는 이곳이 바닷속이었음을 알려 주는 지질자원이다. 훼손을 막기 위해 카르멘(Carmen) 지역에 있는 높은 봉우리 하나를 지정해 전망대를 만들었다. 정상에 오르니 반전이다. 풍경이 압도적이다. 평원을 가득 채운 봉우리가 지평선 끝까지 볼록볼록한 물결무늬를 그려 넣고 있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현상에는 전설이 필요하다. 초콜릿힐에는 슬픈 사랑과 거인의 눈물이 전설로 뿌려져 있다.
안경원숭이에 대한 예절
바다에서 태어난 섬은 고립을 기반으로 고유한 생태계를 갖게 된다. 보홀과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된다는 타르시어(Tarsier) 원숭이는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10cm 정도의 작은 몸과 기이하게 큰 눈망울로 200페소 화폐에도 등장한다. 그 희소성에 비해 보홀에서 안경원숭이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자연 상태에서는 원래 한 마리당 1만 제곱미터(약 3,000평)의 독립적인 영역이 필요한데, 코렐라(Corella) 마을에 위치한 안경원숭이 보호구역(Tarsier Sanctuary)에서는 보살핌이 필요한 개체들을 보호하고 있다. 입장료는 안경원숭이 재단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된다.
임시 보호 중인 안경원숭이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생추어리
비를 피해 나뭇잎 아래 웅크린 안경원숭이가 인기척에 뒤척였다. 야행성이라 낮에는 잠만 자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스스로 머리를 부딪고 죽을 정도로 예민하다. 조용하고 신속하게 사진 찍고(안 찍으면 더 좋고) 아웃 하기! 생태여행은 어렵지 않다.
●Be Grand Resort, Bohol
호젓한 럭셔리
비 그랜드 리조트
혼잡한 알로나 비치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비 그랜드 리조트는 소란스러움도 비켜선 곳이다. 차분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허니무너와 가족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리조트다. 규모가 꽤 커서 리조트 동의 189개 객실과 19채의 독채 빌라로 나뉜다. 리조트 객실은 로비와 레스토랑, 메인 수영장에 접근하기가 편리하다. 투숙객만 접근할 수 있는 리조트 해변에서는 투명 카약, 스탠딩 패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바다와 수영장의 거리가 가깝고, 객실이나 다른 부대시설과의 동선도 꽤 효율적이다.
비 그랜드 리조트 빌라동은 수영장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바다가 가까운 몽키바
‘더 푸드홀’은 실내 혹은 야외 테이블을 선택할 수 있는 조식 레스토랑이고, 워터프론트에 위치한 몽키바(Monkey Bar)는 맛과 분위기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본관 옥상층의 루나(Lune)는 석양 맛집이자 분위기 깡패. 돔형 유리를 씌운 테이블이 있어서 야외 루프톱의 단점도 극복했다. 맛, 분위기, 편리함 등을 고려하면 리조트 레스토랑의 호사를 누릴 만하다.
리조트동 복도의 소파
울창한 조경으로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독채형 빌라는 2층 구조에 2~3개의 룸을 보유하고 있다. 빌라의 1층 테라스는 라군 스타일의 수영장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데, 조식을 룸이나 테라스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수영장에 띄워 주는 플로팅 스타일도 가능하다. 빌라 간 거리가 멀지 않으면서 프라이버시가 잘 보장된다.
본관 수영장 옆 어린이 풀
해변 쪽으로 길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알로나 비치가 바로 옆이다. 리조트에서 알로나 비치 메인 로드까지 매시간 셔틀을 운행하고, 트라이시클도 요청할 수 있다. 리조트에서는 아예 수상택시 운영도 고려 중이다. 참! K-가요가 빼곡한 노래방 이용이 공짜인 건 아는 사람만 아는 혜택이다.
여유를 즐기기 좋은 비치 프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