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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병자의 구호.(3)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신 분께서는 마음의 필요를 아신다. 용기, 희망, 믿음, 동정, 사랑은 건강을 증진시키고 수명을 연장시킨다. 만족한 정신과 즐거운 마음은 몸에 건강을 주고 심령에 힘을 준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 (잠 17:22)이 된다.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 정신적 영향의 효과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올바르게 활용만 하면 이 영향은 투병을 위한 가장 효과적 기능 중 하나가 된다.
정신적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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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육체 간에 존재하는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그 중 하나가 영향을 받으면 다른 하나도 그 영향을 받는다. 마음의 상태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것보다 건강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고통 당하고 있는 질병의 대부분은 정신적 우울에서 온다. 슬픔, 걱정, 불만, 후회, 죄책감, 불신 이 모든 것은 생명력을 저하시키고 쇠약과 죽음을 초래한다.
때때로 질병은 상상력에 의하여 생기고, 때로는 악화된다. 만일 병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만 했다면 건강하게 지났을 뻔한 많은 사람들이 일생 동안 환자로 지낸다.
많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위험에 노출될 때마다 병에 걸릴 것으로 상상하기 때문에 그들이 기대하는 그대로의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상상적인 원인에서 생긴 질병 때문에 죽는다.
용기, 희망, 믿음, 동정, 사랑은 건강을 증진시키고 수명을 연장시킨다. 만족한 정신과 즐거운 마음은 몸에 건강을 주고 심령에 힘을 준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잠 17:22)이 된다.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 정신적 영향의 효과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올바르게 활용만 하면 이 영향은 투병을 위한 가장 효과적 기능 중 하나가 된다.
그러나 악을 위한 가장 효과적 기능 중 하나에 해당되는 정신 치료의 한 형태가 있다. 이른바 과학이라고 부르는 그 방법을 통하여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마음의 지배를 받게 됨으로써 약한 자의 개성이 강한 자의 정신에 흡수당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지를 따라 행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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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생각의 질이 바뀌어져서 건강을 주는 힘이 전달되고 환자들이 질병을 저항하고 정복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런 치료법은 그것이 가진 참 성격과 경향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환자들에게 유익을 주는 수단이 되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 의하여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소위 과학이라고 불리우는 그것은 거짓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본성과 정신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것은 생명과 구원되시는 분에게로 인도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자는 능력의 참 근원되신 분에게서 사람들이 분리되도록 지도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마음과 의지를 다른 사람의 지배에 맡겨 그 사람의 손에서 수동적인 기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개성을 다른 사람의 개성에 흡수시켜서는 안 된다. 그는 어떤 다른 사람을 치료의 근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소유한 그대로 하나님 자신의 지배를 받아야지 어떤 인간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취급하실 때 개인적 책임의 원칙을 인정하신다. 그분께서는 개인의 자주성을 권장하고 개인적 지도의 필요를 깨우쳐주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단은 이 목적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활동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의지하게 하고자 노력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갈 때, 시험하는 자는 그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둘 수 있다. 그는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
마음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이론은 사단이 자기 자신을 주역으로 소개하고, 마땅히 신본주의의 철학이 있어야 할 곳에 인본주의의 철학을 강요하기 위하여 창안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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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든 오류 중에서 이것보다 더 위험한 기만이나,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더 확실한 방법은 없다. 비록 그것이 아무 해가 없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만일 환자들에게 적용되면 그것은 그들을 회복시켜 주지 않고 파멸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마음의 지배를 받기 위하여 굴복 당한 마음과 지배하는 마음을 소유하기 위하여 사단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이처럼 악한 마음을 가진 남녀들에게 주어진 힘은 참으로 무섭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를 주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약하고 병든 마음의 지배를 통하여 더러운 정욕과 이득에 대한 탐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을 발견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인간성이 인간성에 의하여 지배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의사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그는 환자들에게 심령과 육체의 치료를 위하여 인간을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대신에, 그분께로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는 분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신 분께서는 마음의 필요를 아신다.
하나님은 치료해 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이시다. 마음과 육체가 병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9)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환자들에게 제시해 주어야
할 생명이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를 회복해 주시는 분으로 믿고, 그분과 협력하고, 건강 법칙을 완전히 순종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중에 완전한 성결을 얻고자 노력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 당신의 생명을 그들에게 나누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런 방법으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제시해 줄 때, 우리는 하늘에서 오는 귀중한 능력과 힘을 나누어주고 있는 것이다.
202 이것이 육체와 심령을 치료하는 진정한 과학이다. 마음에서 생긴 병을 다룰 때는 큰 지혜가 필요하다. 비탄에 잠긴 병든 마음, 낙망 중에 있는 마음은 세심한 치료가 필요하다. 많은 경우에 어떤 가정 문제는 구강 궤양처럼 바로 심령을 잠식하고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때때로 죄에 대한 자책감이 체질을 서서히 약화시키고 마음의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부류의 환자들은 부드러운 동정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의사는 제일 먼저 환자의 신임을 얻고 그 다음에는 그들에게 위대한 치료자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믿음으로 참된 의사이신 예수님께로 인도되어 그분께서 그들의 사정을 맡아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그것이 그들에게 심령의 해방과 때로는 육체의 건강을 준다.
동정과 기지가 냉랭하고 무관심한 방법으로 하는 가장 기술적인 치료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을 환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때때로 입증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말함으로 환자를 흥분시키고 낙담시킬 것을 두려워하여 회복에 대한 거짓 희망을 가지게 하고, 위험에 대하여 경고를 받지 않은 채 환자가 무덤으로 내려가도록 허용하기까지 한다. 그런 모든 처사는 현명하지 못하다.
환자에게 그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남김없이 다 설명해 주는 것이 반드시 안전하거나 최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그를 놀라게 하여 회복을 지연시키거나 방해가 되게 할 수도 있다.
병이 주로 상상적인 데서 기인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사실을 다 이야기해 줄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힘이 약하고 자제력을 발휘하는 습관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특별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관하여 사실이 아닌 많은 것들을 상상한다.
그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실제적인 것으로 인정됨으로 그들을 간호하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친절과 불굴의 인내와 기지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런 환자들에게 그들 자신에 관한 사실을 그대로 말해 준다면,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낙심할 것이다.
203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사실을 다 말하지 못할지라도 속이는 것이 결코 필요하거나 정당하지는 않다.
의지력은 마땅히 귀중히 여겨야 할 만큼 여겨지지 않고 있다.
의지가 각성되고 올바른 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전신에 힘을 나누어주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질병을 취급하는 데 있어서도 또한 힘이 된다.
의지력이 올바르게 발휘되면, 그것은 상상력을 지배하고 정신과 육체의 질병을 다 같이 저항하고 극복하는 데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의지력을 활용함으로써 환자들이 스스로 생명에 대하여 올바른 관계를 확립할 때, 그들은 그들의 회복을 위한 의사의 노력에 보다 잘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원하기만 하면 회복될 수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병들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완쾌되어 행복해지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완쾌하고자 결심해야 한다. 때때로 환자들은 단순히 병에 굴복 당하지 않는 상태로 편안하게 있음으로써 병을 저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픔과 고통을 초월하여 그들의 힘에 알맞는 유용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활동하고 공기와 햇빛을 마음껏 이용함으로 많은 쇠약한 병자들이 건강과 힘을 회복할 수 있다.
건강을 회복하거나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 말씀에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부자연스럽고 불건전한 자극제로 말미암아 생기는 흥분과 망각, 저급한 식욕과 정욕의 방종 등을 통하여는 참된 치료와 육체나 심령의 회복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204 환자들 가운데는 하나님도 소망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 병든 정욕, 그들 스스로의 양심의 가책 등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장차 얻을 생명에 대한 희망도 없다.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그 환자들에게 천박하고 흥분적인 방종을 허용함으로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결코 생각하지 말라.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생애에 저주가 되어 왔다.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이 그런 것에서 만족을 얻고자 노력하는 동안 주림과 갈증은 계속될 것이다.
이기적 쾌락의 샘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속임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유쾌한 기분을 힘으로 오해한다.
그리하여 흥분이 끝나면 고무되었던 그들의 마음도 사라지고 그들은 불만과 낙담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결같은 평안, 진정한 마음의 안식은 오직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바로 그 근원에 속한 것을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이 평안은 그분께서 당신 자신과 상관없이 주시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그 평안을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샘이시다.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에 대하여 더욱 분명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치유력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어떻게 온몸을 맡길 것인지 끈기 있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햇빛이 어두운 영혼의 밀실을 비출 때, 불안한 염려와 불만은 사라지고, 흡족한 기쁨이 정신에 활력을 주고, 육체의 건강과 힘을 줄 것이다.
우리는 고통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어려움과 시련과 슬픔이 하늘 본향으로 가는 길에 내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5 그러나 계속해서 어려움을 미리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의 짐을 배나 더 무겁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만일 그들이 역경이나 실망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모든 것이 파멸될 것처럼 생각하고 그들이 당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로, 그들이 분명히 궁핍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처럼 그들은 불행을 자신들에게 자초하고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늘을 던진다.
생애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짐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생각의 경향을 바꾸는 데는 단호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꾸는 일은 가능하다. 이생과 내생을 위한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마음을 즐거운 것에 고정시키는 데 달려 있다.
그들로 하여금 상상에 불과한 어두운 장면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께서 그들의 앞길에 뿌려놓은 은혜를 보게 하고, 또한 그것들을 초월하여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련에 대비하여 도움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의 쓴 물가에 왔을 때,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여호와께서는 어떤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바로 곁에 있는 것에 주의를 끌게 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하나의 관목을 샘에 던져 넣게 하심으로 그 물을 깨끗하고 달게 만드셨다.
그렇게 되자 백성들은 그 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였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다. 우리는 눈이 열려 그분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치료의 약속을 분별하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는 슬픔을 제거해 줄 모든 축복을 이용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것이다. 우리의 입술에 닿아 있는 모든 쓴 잔을 위하여 우리는 치료의 나뭇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들과 불안하게 예상되는 미래를 보고 마음이 괴롭고, 무릎이 떨리고, 손이 늘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