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5일 묵상 본문 : 요한복음 7장 25절 - 36절 - 자기부인으로 하늘의 것을 사모하며 주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며 생명의 은혜를 전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명절 연휴를 맞는 주말의 아침을 시작합니다.
어제부터 사람들은 명절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일찍부터 귀경 길에 오르기도 하네요.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성도의 진정한 고향인 주의 품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돌아갈 본향 주의 품을 바라보며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품에서 누리는 안식과 평안이 마음을 풍요하게 만드는 것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의 품으로 나아가 영적으로 풍요한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의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종교지도자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음모에 동참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예루살렘 사람은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지적하며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로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논리정연하게 지도자들의 비방을 반박하고 병자를 치유하는 이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고 예수님의 신적권위에 눌릴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예루살렘 사람은 예수님이 어디 출신인지 잘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신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겉으로 보이는 예수님을 보며 안다고 착각하는 모습에 불과했으며 고난과 죽음으로 이어지며 사람들이 보기에 주목할 만한 것이 없는 자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에(사53:1~3) 무지했음을 보여준다.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에 목수의 아들임을 안다고 하는 자들의 말을 인정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보낸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자들임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자신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셔서 왔다고 선언하심으로써 자신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신다.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을 안다고 선포하시고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나셨으며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셨다는 선언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신다. 결국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신다.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해 불만을 품고 예수님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또한 예수님의 권위 있는 선포에 눌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은 그 이유를 본질적으로는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해 주고 있다.
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선포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표적을 보고 믿는 정도의 나약한 믿음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믿음은 후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진정한 믿음으로 세워지는 씨앗이 되었다.
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긍정적인 것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종교지도자들의 공권력을 통해 예수님을 잡으려고 사람들을 보낸다.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예수님은 신적통찰력을 가지고 약 6개월 뒤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초막절부터 유월절까지는 약 6개월의 차이가 있었다.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갈 것이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도 찾을 수 없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에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지도 못함을 선포하신다.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 가운데 있었으며 그들이 관점은 땅에 것에 매여 있었기에 예수님이 이방인 가운데 가겠다는 말로 오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방인 가운데 갈 것이라는 말은 버림받은 자들을 향한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다.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그들이 가진 한계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진리를 깨닫는 것은 사람의 지혜나 교육으로가 아닌 오직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심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표적을 보고 믿게 된 것으로 진정한 믿음으로 세워지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거쳐야 할 과정이 필요했다.
그들은 온전한 복음의 성취를 통해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인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었지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릴 때 그 누구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죽음에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랬던 사람들은 후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베드로가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드러내며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자라고 선언하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주께로 나아가는 자들이 된다.
주님은 이 모든 과정을 미리 보고 계셨으며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한 자들이 자신에게로 올 것을 바라보시면서 홀로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셨다.
아직 제자들도 잘 모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더욱 무지했으며 세상에는 자신을 향한 적대감과 조롱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그 모든 과정을 감당하신다.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이었고 예수님은 그 사실을 늘 강조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말씀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땅의 것에 매이지 않고 하늘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에 모든 목적과 방향이 설정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동일하게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정체성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가게 될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3~26)
예수님은 따르는 것, 믿음으로 가야 할 길은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자기부인은 결국 땅에 대한 소망을 버리고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며 땅의 장소를 본향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품을 본향으로 여기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성도의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1~6)
땅의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하늘의 것에 대해 무지하며 그 결과는 바울이 제시한 것처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정욕과 탐심이며 그 마지막은 우상숭배이다.
그래서 자기부인은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는 태도이며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생명의 은혜를 소망하는 것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묵상과 예배와 기도와 찬양의 모든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생명의 기쁨을 얻는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는 손길이 참으로 복된 손길임을 고백하게 된다.
여전히 땅의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자기부인이 되지 않는 자의 모습이지만 주의 품으로 나아갈 때만은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도록 이끄시고 붙들어 주신다.
그 시간이 더 오래 지속되기를 소망하고 교회의 모든 지체들도 생명의 은혜는 누리며 전하는 자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으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땅의 것으로 기준을 삼고 그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의 연약함을 바라봅니다.
그 삶의 결과는 갈등과 분열이며 무지와 한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무지와 어리석음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주의 지혜로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자기부인은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위에 것을 바라보는 자로 살게 하시고 주의 영광과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설 명절을 맞는 주말을 주의 은혜 가운데 예배하며 보내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육신의 평안함을 추구하지 않고 주의 은혜의 풍성함을 바라보며 준비하게 하옵소서.
지체들도 동일한 은혜로 붙드시고 생명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