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는 카트만두 조에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영지교회가 70주년 기념으로 예배당 건물을 지어준 교회입니다.
도심지에 위치한 이곳은 산골 교회와는 달리 시설도 갖추었고, 아이들이 입은 옷부터 다릅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청년들이 작은 히말(히말라야) 체험을 할 수 있도록 9시간 가까이 걸려 포카라로 이동하여 1박을 하였습니다.
오늘의 일정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승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언제나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본문 주해)
37~39절 : 명절 끝날이란 초막절의 마지막 날을 가리킨다.
예수님 당시의 초막절을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에도 없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제사장들이 초막절 절기 동안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와서 매일 아침 번제를 드릴 때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전제처럼 물을 번제단에 부어 드린 것이다. 이것은 율법에 없는 일이지만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기에 그들이 이렇게 초막절을 잘 지키고 있으니, 비를 내려 주셔서 수확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의식이었다.
이때 예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한다.
제사장들이 물을 길어서 붓는다고 그것이 비를 내리거나 목마름을 해갈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신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키지만, 아직 성령이 임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아직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그 결과로 부활과 승천이 일어나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 자기 백성들에게 물을 붓듯이 부어 주시면 그때부터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흐르는 것이다.
배란 욕망을 말한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나온다.
38절 ‘성경에 이름같이’는 스가랴 14:8과 에스겔 47장을 가리킨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슥14:8)
40~44절 : 예수의 말을 듣고 무리가 논쟁한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그 선지자’(모세가 예언한 선지자)라고 하며, 어떤 사람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한다. 그 말을 들은 또 다른 사람은 ‘그리스도가 어떻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라고 하며 성경을 증거로 댄다.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성경은 삼하7:12의 ‘다윗의 후손’과 미5:2의 ‘베들레헴’이다.
물론 예수는 성경의 증거대로 다윗의 씨로 오신 그리스도이다(롬1:3). 또 그는 실제로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눅2:1-7).
하지만 무리는 예수가 갈릴리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그곳을 그의 출생지로 오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디에서 나셨는가?
그는 지상에서 육신을 입고 출생하셨으나 실상 위에서 나셨다. 그들은 예수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사실 알지 못한다. 이렇듯 예수를 두고 무리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였고, 무리 중 몇 사람이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아무도 그에게 손을 대지는 못하였다.
45~49절 :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오라고 성전 경비병들을 보냈었다.
그런데 그들이 잡아 오지 않고 빈손으로 왔다. 그 이유를 묻자, 아랫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다고 한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갔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는 그냥 온 것이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군중(무리)이나 경비병들을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 취급을 한다. 그들도 예수에게 미혹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지도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믿은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한다.
그러면서 바리새인들은 군중들을 저주한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지렁이들은 저주받은 자들이다.”(49절, 새번역)
50~52절 :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옹호한다. 그는 율법의 선생이기에 율법으로 그들에게 말한다.
“우리의 율법으로는,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거나,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거나, 하지 않고서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51절, 새번역)
니고데모는 정작 당사자인 예수를 만나보지도 않거나 그의 말을 직접 듣지도 않고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자들이기에 율법의 선생인 니고데모조차 몰아붙이며, 그가 갈릴리 출신 예수와 같은 고향 사람이 아니냐고 면박을 준다.
(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자들을 부르신다.
그런데 예수님께로 와서 마시면 목마름이 해결된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복음을 모르고 생명의 삶을 살지 못했던 지난날, 나의 목마름은 끝이 없었다.
돈에 대한 목마름, 자녀 문제에 대한 목마름, 건강에 대한 목마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목마름.....
그래서 예수님께 기도했다.
예수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도 그렇게 이해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그때그때 생기는 목마름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고, 성령을 받음으로 이 땅의 것으로 채우고자 하는 목마름 자체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실 때 이루어지는 상태인 것이다.
이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목마른 자야’ 하고 불러주셨고, 말씀의 자리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니 나를 주님께 연합된 자로 이끄시는 것이다.
주님 안에 가득한 성령께서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니 나로 하여금 과연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되어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의 세계, 그 영광을 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땅의 것에 대해 목말라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게 하신다.
나는 예수님을 너무도 오해했었다.
예수님이 어디로부터 오신 것도 중요하지 않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것도 내게는 큰 감격이 되지 않았었다. 오히려 그런 분이시니까 내 소원이나 이루어주시라는 요구만 가득한 자였다. 그러니 내가 정성을 바치고 열심을 내어주겠다고 결심하던 자였다.
자기사랑만 가득한 완고한 자,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자에게 주님이 오셔서 복음을 듣게 하셨다. 그러자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이루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구제불능의 죄인일 뿐인 것을 보게 하시고, 또 이 죄인을 구원하여 주셔서 믿음을 가지게 하시니 십자가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십자가를 보지만 그에 연합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 안타까워 절망할 때 성령님께서 이를 가능하게 하시는 것이다. 또한 더욱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하신다.
이제 내 배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성령님이 예수님께로부터 내게 흘러들어오니 세상 것에 대한 관심이 끊어진다.
점점 위의 것을 사모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 것들-돈, 건강, 자녀, 성공, 칭찬....-에 대한 목마름들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아무런 목마름이 없으신 예수님, 말과 행동이 모두 아버지의 생각과 뜻과 일치하시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 안의 성령의 흐름이 십자가에 연합된 나에게로 흘러들어와 내 배에서도 주님의 생수가 흘러넘치는 것이다.
이 새벽에도 예수님 안에서 한량없이 흐르는 생수의 강인 성령의 흐름이 말씀을 통해 내게로 흘러들어오고 또 흘러나감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주님의 도구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예수님의 한량없는 생수의 강을
저도 받을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세상에 대해 목마른 자가 아니라,
주님에 대한 목마름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의 모든 일정, 팀들의 마음마음을 성령님께서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