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cophony [ 불협화음 ] 15
# ‘형벌’이니까. 받아야만 해。
"어거지 같은 부탁 들어줘서 너무너무 고마웠어."
"보통 어거지가 아니었어, 김재원."
"너, 또 누나한테 그런다."
윤호의 단호한 어조에 재중도 인상을 썼다.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아침에 눈 뜨고 이불 걷어차고 화장실 가서 소세하고 아침밥 먹은 것까지는 다름없는 일상이었는데,
멤버들은 하나같이 재원에게 친절했고 재원의 철없음을 나무라는 재중에게 도리어 그의 철없음을 나무랐다.
짐을 싸서 숙소를 나서려고 현관에 서 있는 재원을 쳐다보는 멤버들의 애정어린 눈길이란.
‘정윤호, 이성한테 관심 없다고 하더니 순 거짓말이었네.’
‘김준수랑 박유천, 드디어 갈라지는 건가?’
‘심창민 쟤도 이제 그럴 나이인가 보지. 근데 왜 하필 저 녀석이야?’
등등의 생각들이 재중의 머릿속에서 휘돌았다.
또, 설마.... 하는 느낌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친남매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확률은 없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하여튼 김재중 너...... 왜 그렇게 재원누나한테 그러는 거야?
친남매가 아니기라도 한 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준수의 물음이었지만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색한 침묵. 하지만 준수의 반 장난어린 물음이 근거없는 질문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지금까지 재중이 재원에게 핀잔주고 대하기를 소홀히 한 게 사실이니까.
"...... 만일 친남매가 아니라면 그렇게 했을 거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는 또다시 정적을 만들어낸다.
보통 친형제가 아니거나 친부모가 아니라면,
그를 혹은 그녀를 위해서 억지로 웃고 애써주고 잘해주는 게 정상.
하지만, 그것도 한 번만 더 뒤집어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재원에게 잘해주거나 신경써 주는 티를 내면
‘이 녀석이 나한테 일부러 이렇게 잘 해주려고 하는구나. 내가 친누나가 아니니까…’
같은 생각과 걱정만을 초래할 게 너무나 뻔하다.
그럼 이 녀석은 속으로는 상처입으면서도
겉으로는 또 나를 위해서 거짓웃음을 지으면서 상처를 곪게 만들 것이 두 번째 뻔한 상황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거짓으로 웃으며 상처를 썩혀간다.
내 성미에 절대 맞지 않는 전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웃지 않는게 낫다는 게 내 판단.
"쳇, 혼자서만 생각하는 놈 같으니라고......."
"괜찮아, 준수야."
투덜대는 준수에게 재원이 어른스럽게 그를 다독인다.
저 녀석은, 알고 있을까? 내 배려를.
뭐,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알아주면, 고맙겠지.
"자아, 그럼 갈게."
"자알가아- 나중에 전화해애. 번호 알려줬지?"
"응, 고마워."
멤버들의 아쉬운 표정에도 딴때와는 다르게 살짝 미소만 한번 지어주고
손을 흔들더니 현관문을 열고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3초간의 여유......
그리고 서서히 재원을 가려가는 양 쪽의 회색 문.
나도 모르게 올라간 왼쪽 손.
입가에는 어느 새
“잘 가.”
라는 작별 인사가 어리어 있었다.
"아아~ 기분 우울해......."
윤호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쇼파에 앉더니 이내 차칵- 하는 소리를 내었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이 낸 소리인 것 같다. 맞은편 쇼파에 앉아있던 재중은 그것이 사이다캔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왜, 또? 넌 맨날 우울하니?"
"아니...... 오늘은 조금 더......."
중얼거리면서 캔의 입구 쪽을 혀로 살짝 핱는다.
늘 느끼는 거지만, 저 녀석의 건.. 저 녀석의 혀라는 건 보통의 더럽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매혹을 준다.
"그거나 그거나 결론은 맨날 우울하다는 거네."
"그래 보여?"
"가끔 티가 나."
그 사이에 윤호 손에 쥐여져 있었던 초록색 캔은 재중에게 넘어와 있었고
윤호가 마셨던 거구나- 라는 걸 새삼 자각하며 달달한 탄산을 천천히 목으로 넘겼다.
아으, 목 따가워.
"유천이랑 준수는 또, 쌍쌍으로 어딜 간거야?"
아직 목에 탄산의 톡톡임이 남아있었으므로 약간 눈물을 글썽이며 재중이 물었다.
"호프집...... 이려나."
"에에-!? 대낮부터, 호프집?"
"밤에는 호텔에 가면 되잖아."
"그게 말이 돼!?"
"자금사정이 좋지 않으면 여관도 꽤 괜찮으려나."
"하아, 동방신기도 그렇게 스케쥴이 빽빽한 건 아니구나......" 재중이 미간을 짚었다.
"너 때문에 빽빽해진 거야. 아이돌 스타니 어쩌니 해 대도
체력에 무리가 갈 정도로 방송국을 나다니지는 않으니까. 그 호프집도...... 예전에는 자주 가던 곳이였고."
"아하...... 가출 사유가 그거였나?"
"그건 몰라도 돼.
아차, 내가 뭐 알려줄까?"
"뭔데?"
"너, 아까아까는 ‘하아-’했는데 아까는‘아하-’했다."
"......."
더 이상 말 할 필요성을 잃어버린 재중이 목을 어루만지며 다 비운 캔을 탁상에 내려놓았다.
정말, 이 녀석을 보고 있으면, 만화가 생각난다니까. 만화. 만화 주인공.
제법 비현실적인 녀석이야. 적어도 나에 비하면.......
"그러고보니 요즘 스케쥴이 뜸하네."
"좋은 거지-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니깐......
이쁜아, 이쁜이는 술 마실 줄 알아?"
"날 뭘로 보는 거야."
"그렇게 안 생겼으니깐 ~......."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탁상의 빈 캔을 다시 집어들어 엄지와 검지로 집고 위태롭게 흔든다.
살짝, 헤- 벌어진 입술이 그가 몽롱한 상태임을 증명해준다.
"흐응...... 글쎄, 내 예상으로는 너라면,
‘겉과 속은 다른 게 인간의 이치니까’라거나, 비슷한 말이 나올 줄 알았는걸?"
"그 말이 맞기는 하지만 난 가끔은 겉으로만 사람을 판단할때도 있거던."
"기준이 뭐야?"
"몰라도 돼."
"내가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만......."
또다시 미간이 저려왔다. 버릇인가? 이건.
이번엔 짚는 정도가 아니라 꾹꾹 지압하며 눈을 감았다.
"술...... 안돼. 지금은 금주중이란 말이야."
"왜? 살 빼려고?"
"난 술 마셔도 살 안 쪄."
"특이체질, 부럽다."
"그보다, 이미지에 안 맞잖아~"
어느 새 외모 이야기가 나오자, 금새 샤방샤방하며 두 손을 꼬옥 맞잡고는 눈의 습도를 150% 높이는 재중이다.
아, 쟤 뭐야. 자뻑환자인가.
"나처럼 샤방하게 생긴 녀석이 술 존내 처마신다고 생각해봐. 언밸런스, 200% 아니겠어?"
"어울리는데?"
"뭣이 어째."사악, 순식간에 바뀌는 안색. 어이쿠, 무서워라.
"넌 예쁘다는 말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예쁘다는 거랑 샤방하다는 거랑은 달라! 게다가......."
조금 뜸을 들이는 재중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너한테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익숙해진 듯도 하네."
"헤에....... 니 눈매 멋지다."
엑.
어느 사이엔가 가까이 다가와 버린 윤호였다.
사이라면, 10cm 정도?
"차가운 게 멋져."
"너는 어울리지 않게 몽상가잖아."
"그래?"
"그래."
"있잖아,"
"왜?"
"김재중.
"왜에?"
두 번 대답하는 걸 싫어하는 주의이기에 약간 짜증을 내며 녀석을 돌아봤다.
허걱. 무려 5cm.
존내 가깝다.
미치겠다. 긴장되네.
또 이런 걸로 긴장하는 나는 뭐지.
남자랑 남자랑 얼굴 마주한 게 뭐가 그렇게 특별한 일이라구.
"나 있잖아......."
"뭐?"
"좋아하는 거 같애."
"...... 뭐!?"
녀석의 얼굴이 황홀에 겨워 있었다.
가슴이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누나......?
차갑게 얼은 가슴이 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누굴....?" 재중도 모르게 목소리는 떨리어서 나왔다.
"너는 알 텐데......."
"씨발, 몰라."
"왜 욕해 또오."
"빨리 말해. 별 것도 아닌 걸 갔다가 왜 이렇게 뜸을 들여."
라는 말로 짐짓 태연한 척 해보이려 했지만, 작전 실패인 모양이다.
그 유명한, ‘썩소’라고 하나? 한쪽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윤호가 은근히 비웃는다.
"푸하핫, 신경 쓰잖아! 바보같이 안 그런 척 하기는."
"궁금하니깐. 알아차렸으면 빨리 말해."
"그건 말이야......."
그가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앞으로, 2cm.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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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애루비, 인소닷 아루
첫댓글 꺄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모니모이니어니러ㅣㄴ아ㅓㅣ
ㅋ_ㅋ 재밌어요
다음엔혹시키,키쑤?!~꺄~(지서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