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 얕은 바다에서 배를 정박시킬 때 사용하는 계선구(繫船具)
예전에 어느 심리학과 교수님께 들었던 얘깁니다.
그 분 자녀교육관이 남달랐었는데,
선생님 딸만 둘입니다.
그 딸들 아주 어렸을 때, 매우 높은 산(지리산이었나 암튼)을 데리고 가셨는데,
글쎄, 그 어린박이들을 정상까지 끌고 간 겁니다.
애들은 힘들다고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다는데,
엄마가 엄하게 푸쉬하니까 부득불 죽자사자 따라 가서 기어코 정상엘 오른 거죠.
그리고나서 정상에서, 잔뜩 감회에 젖어있는 어린 딸내미들에게 마미가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것도 해 냈는데, 앞으로 니들이 못 해 낼 게 있겠니???"
우리들 인간에게, 본인의 생각과 마음이 멕시멈 어디까지 항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배가 항해하듯, 우리의 생각과 마음도 항해를 한다 이겁니다.
더더구나 요새와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생각과 마음의 항해도 다름아닌 대항해 시대겠죠.
콜럼버스가 위대한 인물이 된 건, 더 멀리 항해를 나갔기 때문이었고,
우리들 각자의 생각의 항해도,
한계선을 그어 놓지 않는다면,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하는 굳은 의지만 있다면,
해역은 끊임없이 늘어날 겁니다.
생각의 항해에서 해역이란 게 별다른 게 아닙니다.
숲을 볼 수 있는가?
자신을 일정한 틀에 가둬놓고 있진 않은가??
얼마나 남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
스케일이 얼마만큼 거대한가????
근데, 안타까운 게, 옛 뱃사람들이 너도나도 콜럼버스처럼 새 항로를 개척할 순 없었듯이,
이 생각의 항해란 것도 그리 만만한 정신스킬은 아니란 거죠.
대개의 사람들이 내 생각과 마음 안에서, 우리 어촌 해역 "반경 백미터 이내"로 왔다갔다 거린다 이겁니다.
마치 큰 닻을 내려 놓고, 닻줄의 한계선이 허용하는 곳까지만 들락날락 거리는 것처럼 말예요.
닻을 올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대항해 시대는 플레이할 수 없겠죠.
이와 같은 닻내림 효과를, 심리학에선 "Anchoring effect"라고 합니다.
◆ 닻내림 효과 : 의사결정 시, 하나의 특징이나 특정 정보의 편린에만 너무 심하게 의존하게 되는 범인간적 인지적 편향
(by 위키피디아)
쉽게말해, 하나의 정보가 내 머릿 속에서 닻을 내리게 되면,
그 정보 반경 일백미터 이내에서만 내 생각의 항해가 맴돌게 된단 겁니다.
1x2x3x4x5x6x7x8은 당연히 이꼬르 8x7x6x5x4x3x2x1이잖아요.
이걸 한 집단에게는 전자를 계산케 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후자를 계산케 시켰어요.
그리고, 계산 중도에 금방 스탑시키죠. 그리고나서 답이 얼말 것 같아? 추론시키는데, 이게 웃기는 게,
전자는 평균 500 정도 나오고, 후자에선 평균 2250 정도 나왔단 말예요. (정답은 40,320)
왜냐면, 전자에선 1과 2같은 작은 숫자들에 생각의 스케일이 닻 내려진 거고,
후자에선 8이나 7과 같은 비교적 큰 숫자들에 생각이 고정되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둘 다 정답 근처에도 못 간 건 당근, 1부터 8까지의 작은 숫자들로 4만까지 갈 거라곤 죽어도 생각들 못 했던 거에요.
저도 소싯적에 수학의 정석을 공부했던 몸이지만, 정답이 4만이라니 졸라 놀랍긴 하네요. ㅋㅋ
이게 특정 정보나 특징 등에 닻이 내려지면 조낸 골치 아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골치가 아파지느냐???
그 특정 정보나 특징이란 게 제대로 된 거면,
즉, 내 생각의 배가 닻을 내렸어, 근데, 그 근처 해저에 옛 보물선이 침수돼 있어, 이럼 대박이죠,
근데, 대개가 닻을 내린 곳이 허당이라는 데 문제가 있단 겁니다.
1부터 8을 곱하는 데, 에이 이런 소수들이 뭐 지들끼리 곱해져봤자 별 거 있겠어?란 생각이, 즉,
1부터 8은 조낸 작은 소수들이다란 정보에 닻이 내려져서, 심하게는 500따위와 같은 대답들이 나온 거죠. ㅋㅋ
이게 실험이었길래 망정이지, 십만원짜리 배팅빵이었음 어쩔 뻔 했습니까? 오우, 전 백방 돈 날렸을 거에요.
이렇게, 이런 과정으로, 돈 날리는 곳이, 다름아닌 <주식시장>이죠.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리먼사태라고.
2000 이상 코스피가 가다가 800까지 개다운됐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게 여러사람 돈 물리게 했거든요. 이를테면,
2000 가다가 1500까지 떨어졌다 이거에요,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 500이나 떨어지다니, 지금이 저점일거야, 얼마 전만 해도 2000이었는데 지금은 1500이잖아, 매수하자 매수해.'
당연히, 닻이 2000에 내려져 있음, 1500도 저점으로 보이죠. 조낸 들어가고 싶죠.
근데, 결과는 800까지 쭉 더 내려갔다 이거에요.
허당(얼마 전까진 2000이었다는 단순한 정보)을 닻으로 삼은 결과,
1500대가 저점일 거라 판단하고 들어갔는데, 대략 -50%까지 지수가 더 허락된 겁니다.
골치만 아픕니까? 없던 위궤양에 편두통까지 생길 판입니다. Anchoring effect로 인한 참혹한 결과인 거죠.
트라우마도 닻입니다.
불운했던 과거가, 크고 무거운 닻으로 화해, 날 그 주변에서 평생토록 맴돌게 하는 거에요.
내가 과거 연애에서 크게 당했다 칩시다.
그 상처로부터, 여자 다 똑같다, 별거 없다란 생각에 닻이 내려지게 되면,
이젠 연애가 힘들어져요. 그 닻 올리는 거 엄청 어렵죠, 내가 과거에 크게 당했을 수록, 그 닻이 무겁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연애 역시 닻내림 효과의 연속이에요.
내 연애상대였던 과거 이들 중 가장 impressive했던 사람이 다름아닌 닻 역할을 맡게 되는데. 즉,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단 겁니다.
얘는 과연 걔보다 나한테 잘 해 주나? 걔보다 더 뭐 하나? 걔보다 걔보다 걔보다.....
그래서 연애 게임에선, 마치, 성장 판타지 소설처럼, 계속해서 상대가 업글이 되야 이야기가 전개되죠.
결국, 라스트맨 스탠딩_이라 이겁니다. 내가 가장 나중 사귄 사람이 최고여야 되고, 가장 우월해야 한단 얘기에요.
닻 효과로 인해, 이미 스탠다드는 생겨 버렸고, 기준치를 계속 상회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거니 말입니다.
뭐든지 동전처럼 양면이란 게 있기 마련이니, Anchoring effect도 잘 쓰여지면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어요.
글 초반부의 교수님 예시처럼.
애들의 발달 과정 상 유년기에, 매우 힘든 이벤트에 대한 성취 경험을 시켜 주고 나면,
딱 고거에 애들의 효능감이 닻 내려지게 되요.
'내가 그것도 해 냈는데, 이거라고 못 할까?'
그러니까, 이런 경우, 동해에서 깨작되는 게 아니라, 앗싸리 초장부터 태평양으로 치고 나가 닻을 내린 거라 볼 수 있죠. 즉,
스케일이 허벌나게 커진 겁니다.
아이버슨이 드리블 연습을 럭비공으로 쳤다 전해지죠.
당근, 럭비공으로 연습하면 기술적으로 훨씬 나아지기도 하겠지만, 심리적으로도 아마,
플레이어의 효능감에 큰 영향을 끼칠 겁니다.
'내가 럭비공으로도 그렇게 드리블 쳐 댔는데, 농구공 정도야!!! 니들이 내 드리블을 돌파를 막을 수 있겠어!!!!'
운동선수에게 자신감은 큰 자산이죠, 이렇듯, 더 강력한, 고달픈 훈련에 내 마인드가 닻 내려지면,
그것보다 수월한 환경에서의 플레이는, 당연히 자신감이 넘칠 수 밖에 없을 거에요.
이 역시, Anchoring effect의 긍정적인 일례라 할 수 있습니다.
글 중반부에 말씀드렸죠, 이건 "범인간적인" 인지적 편향이라고.
즉, 어느정돈, 우리들 인간이 이렇게 시스템化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다시말해, 누구나 어딘가엔 닻을 내리기 마련이란 얘기지요.
자, 그렇다면 두 가집니다.
얼마나 적합한 곳에 닻을 내리느냐?
or
그 곳이 적지가 아니라면, 얼마나 재빨리 닻을 올리고 출발하느냐?
적합한 곳에 닻을 내리려면_
당연히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하며 살아야겠죠. ㅎㅎ
오 코스피 2000가다가 1500이네, 500이나 떨어졌네, 저점이네, 이런 건 누구나 생각하는 거고.
제대로 의사결정하려면, 주식쟁이들이 얘기하는 펀더멘탈이란 걸 들여다 봐야지요.
세계 경제의 흐름, 각종 경제 지표들, 블룸버그 통신에서 무슨 말들을 나불대는지 기타 등등. 등등등.
닻을 올리는 건_
역시, 실패를 인정할 줄 알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수용성, 개방성, 겸손함 등이 중요한 팩터일 거에요.
여기가 아닌갑다라고 생각되면 싸게싸게 닻 올리고 이동해야지,
내가 짱이다 내가 늘 맞다라고 생각하면, 언제까지고 잘못된 곳에 닻을 내린 채 그 주변에서 맴돌 수 밖에 없겠죠.
여튼, 그냥 막연한 바람으로,
내 생각의 항해는, 캡틴 잭 스패로우의 그것처럼 멋져부렸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네요. (꿈이라도 막 꾸자..)
간지 쩐다..
-끝-
※ 무명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ahsune
첫댓글 긍적적으로 이용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겠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용해 봐애겠네요
감사합니다. 역시나 좋은 글 감사해요~! 항상 무명자님의 새로운 글이 올라왔나 찾아봅니다~^^ 자주 글 써주세요. 팬입니다!ㅎㅎㅎ
역시 레벨이 다른 미래의 심리학자?!의 글이네요 ㅎㅎ 명!불!허!전! ㅋ(이정도로 심리학 좋아하시면 교수 되셔야합니다 ㅋㅋ!!)
잘읽었습니다. 항상 너무 고마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심리학쪽으로 계속 가셔서 교수가 되시는건 어떤가요?
교수는 힘들 거고, 먼 미래에 심리학 학원같은 것들이나 생겼음 조켔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