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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며칠을 걸어도 지루하지 않을 듯한 융프라우”
11. 자유여행 첫날(6월 7일) - 스테파네트 아가씨도 없고 별도 안 보이고
인터라켄-그린델발트(다운타운롯지)-융프라우요흐-그린델발트
오늘은 융프라우에 오르는 날입니다. 일단 그린델발트의 숙소에 들러 짐을 놓고 가야 합니다. 패키지여행의 장점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인터라켄 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그린델발트역에 내렸습니다. 구글 지도에 표시된 대로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도보로 6분 거리라고 했는데 아무리 가도 나타날 생각을 안 합니다. 자세히 보니 지도에 표시된 제 위치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리더로서의 신뢰가 깨지고 위상이 추락하는 순간입니다. 원래 검색 담당인 영수가 스마트폰을 켜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필이면 잘못 든 길이 내리막이어서 짐을 끌고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대원들의 불만 섞인 푸념이 귓가를 맴돕니다.
<우리가 3박4일간 머문 그린델발트 다운타운 롯지. 뒤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아이거.>
역을 지나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숙소가 있습니다. 군대 막사 같은 집이 5동 있습니다. 뒤로는 아이거가 우뚝 서 있습니다. 동신항운에서 받은 바우처를 내고 방 열쇠를 받아듭니다. 넓은 방에 2층침대 4개와 그냥 침대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사다리를 탑니다. 한 번 정해지면 3일 밤을 계속 써야 하므로 전에 없이 대원 모두 초긴장 상태입니다. 문 앞 왼쪽의 단층침대 둘은 정형과 동규가 차지했고 시계 방향으로 희용, 상호, 영수, 현근이가 차례로 2층침대의 아래쪽에 당첨됐습니다. 수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극히 희박한 확률로 가장 불편한 2층에 태성이가 또 혼자 걸렸습니다. 2층침대 4개 가운데 마음대로 골라 보라고 하니 가장 얌전하게 잠을 잘 것 같은 상호 침대 위를 선택합니다.
사실 그동안 태성이가 자주 지적받은 것 중의 하나가 계속 짐만 싸고 있다는 겁니다. 나중에 들은 해명으로는 “3인실에 계속 걸리는 바람에 화장실과 욕실 사용하는 데 시간이 걸려 그때그때 짐을 정리해놓다 보니 자주 짐을 싸는 것처럼 보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2층에 혼자 오르내려야 하다 보니 앞으로도 계속 짐을 쌌다가 푸는 태성이의 모습을 보게 됐네요.
우리끼리 한 방을 써서 좋고, 취사장도 따로 있으니 좋기는 한데 솔직히 시설이 열악합니다. 수십 명이 자는 동에 세면대와 화장실과 샤워실이 달랑 하나입니다. 그나마 비수기여서 다른 동에 투숙객이 없으니 그곳의 화장실과 샤워실을 쓸 수 있어 다행입니다. 누가 “여긴 보이스카우트 등 학생들이 자는 곳 아니냐”고 투덜대고, “우리끼리 한 방을 쓰니까 낫지 모르는 사람끼리 한 방에 자려면 정말 불편하겠다”는 말도 나옵니다. 실제로 5동 화장실에는 ‘Gentleman’과 ‘Lady’ 혹은 ‘Man’과 ‘Woman’이 아니라 'Boy'와 ‘Girl'로 써 있더군요. 영수가 “이것도 추억이다. 이 나이에 언제 또 이런 데서 자보겠냐”라고 쿨하게 정리합니다.
전기 플러그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져온 만능 어댑터는 크기가 큰데 플러그 꽂는 돼지코 3개짜리가 촘촘히 붙어 있어 하나밖에 꽂을 수가 없습니다. 이 3개짜리와 하나짜리를 합쳐 꽂는 곳은 4개인데 실제론 2개밖에 못 꽂습니다. 옆방을 보니 누가 4구짜리 멀티탭을 가져왔더군요.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그걸 가져가야겠습니다. 이전까지는 2명씩 방을 따로 쓰고, 휴대전화 말고는 충전할 일이 없어 크게 문제될 게 없었지만 이번처럼 여러 명이 방을 쓰거나 노트북 등 충전할 기기가 많으면 멀티탭이 요긴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칸영화제에 출장을 가 레지던스에 3명씩 묵는데 부산일보 기자가 멀티탭을 가져와 동료들을 탄복시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요. 그 생각을 왜 미리 못하고 이제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짐을 두고 홀가분한 차림으로 길을 나섭니다. 융프라우까지 가려면 그린델발트에서 클라이네 샤이텍까지 갔다가 거기서 열차를 갈아타고 융프라우요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융프라우요흐는 해발 3,454m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이고(세계에서 가장 높은 역은 중국 티벳으로 가는 칭짱철도의 탕굴라역으로 해발 5,068m입니다. 열차에 산소마스크가 구비돼 있지요. 남한에서는 태백의 추전역이 855m로 가장 높은 데 위치해 있습니다) 스핑스 전망대 높이는 3,571m입니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는 융프라우보다 약간 낮은 데다 사방이 탁 트인 개활지로 열차가 올라가므로 고산증세를 보이는 사례가 별로 없지만 융프라우는 터널로 올라가는 것이어서 고산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2006년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아내가 고산병으로 주저앉았는데 저는 아내를 돌보지도 않고 서둘러 혼자 앞으로 가는 바람에 두고두고 아이들의 비난을 산 적이 있지요. 지금도 딸에게 둘이 등산이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면 “또 나 버려두고 혼자 가려고?”라며 거절합니다. 친구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동규가 가져온 고산병 약을 먹습니다. 정형과 갑표는 마터호른 보러 갈 때도 약간 증세가 왔다고 털어놓습니다. 태성이는 어느 정도 증세가 오는지 경험하기 위해 일단 안 먹고 버티겠다고 합니다.
터널을 한참 올라가다가 중간에 섭니다. 터널 벽에 창문을 뚫어놓은 전망소가 있습니다. 올라가는 열차와 내려가는 열차가 교행하는 곳입니다. 100년 전 이곳에 어떻게 터널을 뚫어 철로를 놓을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대단한 나라입니다. 다시 열차가 움직입니다. 마침내 ‘Top of Europe’ 융프라우요후에 도착했습니다. 파란색 바탕에 ‘TOUR’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갑니다. 사방 360°로 융프라우 파노라마 영상을 4분간 보여주는 곳이 나타납니다. 맨눈으로 실제 풍경을 감상할 건데 이건 왜 보고 있냐구요? 어차피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4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날씨가 흐리면 이걸 일부러라도 보려고 할 사람이 있겠지요.
스위스에 오면 일단 융프라우를 들렀다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 한국 사람만이 아닌 듯합니다. 각색 인종의 관광객으로 넘쳐납니다. 그 중에서도 역시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 사람이 많은 듯하고 한국말도 곳곳에서 들려 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으로 한 층을 올라가면 스핑스 전망대 테라스입니다. 설산을 배경으로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손과 귀가 시립니다. 저는 딸 주려고 산 빵모자를 뒤집어 씁니다. 태성이가 “넌 딸 주려고 산 우산도 쓰고 다니더니 왜 선물을 중고품으로 주려고 하냐”고 핀잔을 줍니다. 우산은 비닐을 벗겨 하는 수 없지만 모자는 상표도 아직 떼지 않았으니 이걸 쓰고 사진 찍은 모습을 딸에게 안 보여줘야겠네요. 높이 보이는 산을 배경으로 한참 사진을 찍었는데 동규가 “이게 융프라우가 아니라 몽크(나중에 알고 보니 묀히가 맞는 발음)래, 융프라우는 반대편이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저기서 “희용이 너는 융프라우 와봤다면서 제대로 아는 게 없네”라는 조롱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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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를 배경으로 마침내 찰칵>
고도가 높아서인지 몇몇이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합니다. 누군 “난 괜찮은데 고산병 약을 먹어서인지 아니면 원래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라고 말합니다. 다음 코스는 알파인 센세이션입니다. 지점토 인형과 빛으로 장식한 공간입니다. 융프라우 철도를 놓은 아돌프 구예르첼러 동상과 철도 노동자들의 조각도 있습니다. 그 옆은 얼음궁전입니다. 각종 동물의 형상과 글씨들을 조각해놓았습니다. 플래토(PLATEAU)라고 적힌 곳의 문을 열면 밖으로 통합니다. 설원을 직접 밟아볼 수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바람이 심하게 불고 눈보라가 쳐 눈을 뜨기도, 몸을 가누기도 힘듭니다. 얼마 못 견디고 실내로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다음 해외 원정 산행 계획을 논의하다가 몇몇이 “그래도 히말라야는 가봐야 하지 않느냐”고 호기 있게 말했는데, 이곳보다 더 높고 짐도 더 무겁게 져야 하는 히말라야에서 우리가 어떻게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벌써부터 포기하자는 말이 나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가쁩니다. 바람만 안 불었다면 영화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을 흉내 내며 눈밭에 눕거나 영화 ‘러브레터’에서처럼 ‘오겡키데스카!“를 외쳤을 텐데. 그래도 날은 화창해 사방이 잘 보여 다행입니다.
이제 카페에 가서 점심을 먹을 차례입니다. 복잡한 가운데서도 용케 자리를 잡았습니다. 융프라우 VIP 패스에는 여기서 8천 원이나 하는 컵라면 한 개 쿠폰이 포함돼 있습니다. 가져간 햇반을 국물에 말고 볶음김치를 곁들여 맛있게 먹습니다. 팩소주도 마셨는데 실내여서 정상주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이제 하산입니다. 당초 계획은 융프라우 산악열차가 끝나는 클라이네 샤이텍역의 바로 전 아이거클레처역에 내려 알피그렌까지 아이거 트레일을 따라 걷는 것이었습니다. 이곳 지명은 왜 그렇게 안 외워지는 걸까요? 그래서인지 내릴 곳을 놓쳤습니다. 열차가 서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간 겁니다. 올라갈 때는 분명히 섰는데. 아마도 이곳은 벨을 눌러 내리겠다는 사인을 줘야 정차하는 역인 모양입니다.
평소 산행을 자주 하지 않고 전전날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상호와 허리가 좋지 않다는 현근은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숙소로 먼저 갑니다. 나머지 5명은 아이거클레처로 다시 올라갑니다. 이 길의 이름은 아이거 워크입니다. 각각 높이가 2,061m와 2,320m여서 표고 차가 259m밖에 되지 않고 길도 평탄합니다. 날씨도 쾌청해 주변 풍광도 기가 막힙니다.
아이거클레처역에 당도해 알피그렌(1,615m)역으로 질러 가는 길을 찾아보니 이정표에 가위표(×)가 쳐져 있습니다. 영수가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눈이 안 녹은 구간이 많으니 죽을 각오가 있다면 가라”고 했답니다. 다시 열차를 타고 클라이네 샤이텍역으로 내려가 거기서부터 알피그렌역으로 걸어갑니다. 리더와 검색 담당이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탓에 헛수고가 많습니다. 그래도 해가 길고 우리끼리만 움직이는 것이어서 시간은 넉넉합니다. 내려가다가 풀밭에 앉았습니다. 제가 평소 산행 때 갖고 다니던 플라스틱 과자통을 열어 간식을 먹습니다. 지나가는 등산객이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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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프라우 트레킹 도중 풀밭에 앉아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는 대원들>
오른쪽에는 융프라우(4,158m), 묀히(4,107m), 아이거(3,970m)가 나란히 늘어서 있습니다. 아이거는 1936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반팀이 북벽(North Face)를 경쟁적으로 오르다가 숨져 유명해진 곳이지요. 영화로도 꾸며졌고요. 동규가 실없는 소리를 합니다. “이 산을 오를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니 그 등반가가 ‘아! 이거를 나보고 올라가라고?’라고 말해 아이거라는 이름이 붙었대.” 저도 거듭니다. “그때 얼음길을 만나 ‘아! 이젠 신발에 쇠날을 끼어야겠군’이라고 말해 그 도구가 아이젠이 됐대.” 연타석 아재 개그 작렬입니다.
나랑 태성은 앞서가고 영수, 정형, 동규는 사진을 찍느라 뒤에 처집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이정표에 표시된 거리를 한참 지나온 것 같은데 철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뒤의 친구들도 안 보입니다. “어! 이상하네. 갈림길도 없었던 것 같은데.” 카톡을 열어보니 영수가 “우리는 트레킹 코스로 가고 있고 너희는 자전거길로 간 거니 역에서 보자”란 메시지를 남겼네요. 노란색 표지판을 따라 와야 하는데 빨간색 표지판을 따라 잘못 들어선 겁니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어 내쳐 가는데 아무래도 철도와 멀어진 것 같습니다. 영수의 메시지가 또 와 있습니다. “역에 내려와 보니 자전거길은 역으로 오지 않던데 지금 어디에 있니?” 친구들이 기다릴 테니 일단 알피그렌역으로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딴 집이 나타납니다. 정말 하이디와 꼭 닮은 소녀를 만났습니다. 막상 보니 코에 피어싱을 했고 시골처녀 같지가 않습니다. 영어도 못해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등산객 두어 명을 만났는데 이들도 영어를 못합니다. 태성이가 “나보다 영어 못하는 서양 사람 처음 봤다”며 답답해합니다.
어렵사리 표지판을 찾아 알피그렌으로 올라가는데 소떼가 워낭소리를 울리며 어슬렁어슬렁 걷습니다. 겁이 나 조심스러우면서도 재게 발을 놀리며 소들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려는데 소떼가 엄청나게 많아 한참을 가야 합니다. 솔직히 이 가운데 한 놈이라도 성을 내 우릴 들이받으려 하면 큰일이거든요. 예전에 어릴 때 성난 소에게 쫓긴 경험이 몇 차례 있습니다.
올라가다가 카톡 메시지를 보냈더니 “우리는 기다리다가 알피그렌역을 떠났다”는 답장이 오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어느 역이 더 가까운지 물어보고 가까운 쪽으로 가는 건데 성급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열차를 타고 가다 보니 우리가 하이디를 만난 집이 바로 다음인 브란데그역과 지척이더군요. 알피그렌은 멀기도 멀었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이어서 힘들었습니다. 특히 태성이가 동행을 잘못 만나 많이 힘들어했지요.
원래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알피그린까지는 내리막길로 4.3㎞여서 1시간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저희는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아이거클레처까지 3㎞를 거슬러 올라 갑절가량의 시간을 걸은 데다 태성과 저는 알피그렌을 지나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도합 4시간 가까이 걸은 것 같습니다.
저녁을 밖에서 사 먹을까 숙소에서 해 먹을까 카톡으로 상의하다가 숙소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저녁에 일을 하는 상호는 빼고 둘씩 짝을 지어 식사 당번과 설거지 당번을 돌아가며 하기로 했습니다. 저의 식단 구성안에 따라 현근과 정형이 비빔면과 스팸과 햇반과 볶음김치와 깻잎통조림 등으로 식탁을 꾸몄습니다. 한쪽에서는 대안학교 남녀 학생들이 컵라면과 함께 냉동피자를 데워 먹습니다. 처음에는 야외에 식탁을 차리려다가 주방에서 음식을 나르기가 번거로워 그냥 식당에서 먹기로 합니다.
2차로 밖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태성이가 현근이더러 “넌 3인실 한 번도 안 걸렸으니까 한턱 내라”고 하니 현근이가 흔쾌히 수락합니다. 이번에도 주방은 시간이 지나 안 한다고 해서 안주 없이 가볍게 맥주만 마시고 들어와 양주와 소주로 3차를 했지요. 야심한 시간에 옆방의 젊은 서양 여자가 저희 방문을 두드립니다. 혹시 우리랑 놀자는 건가? 문을 열어보니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쉬“라고 하며 조용히 해 달라고 합니다.
오늘이 음력으로 13일이네요. 달이 훤합니다. 주변도 밝고 달이 훤한 탓인지 별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에서 주인공 목동이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잠든 스테파네트를 지켜보며 꼬박 밤을 새운 것처럼, 우리도 스테파네트를 닮은 서양 여인과 별을 세며 밤을 보내려고 했는데 별도 잘 안보이고 우리와 이야기를 나눠줄 스테파네트도 없습니다.
상호는 제가 결혼식 사회를 봐줬는데 그 뒤로 이혼하고 지금은 튀니지인 아내와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상호가 튀니지대에서 강의할 때 학생이던 아내와 눈이 맞았다고 하더군요. 네 살짜리 딸이 양쪽 핏줄을 고루 안고 태어나 엄청나게 귀엽게 생겼습니다. 한국에 한동안 살다가 이사했습니다. 영상통화를 걸어 우리 대원들과도 돌아가며 인사도 나눴습니다. “아빠 친구 안녕!”이라고 한국말로 인사합니다.
12. 둘째날(6월 8일) - 과자통 때문에 잃을 뻔한 목숨
그린델발트-슈니케플라테-그린델발트
롯지에서 첫밤을 보내고 기분 좋게 일어났습니다. 식당은 7시 30분부터 연다고 하는데 7시 10분이 되니 문을 열더군요. 식빵에 햄에 치즈에 시리얼 등이 전부입니다. 태성이는 서양식에 지친 탓인지 이튿날부터 가져온 누룽지를 끓여 먹습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딱딱해서 먹기 어렵고 한 차례 끓여야 합니다.
아침에 샤워를 하는 버릇이 있다는 현근이가 샤워를 하고 나서 제가 서울대 못간 의혹설을 또 꺼냅니다. 이곳 샤워장은 매우 비좁은 데다 문에 옷걸이가 하나 달랑 붙어 있고 천으로 덮게 돼 있습니다. 옷을 걸 데가 턱없이 부족하고 천도 방수가 아니어서 샤워하다 옷이 젖기가 십상이죠. 전 비닐 쇼핑백을 가져가 그 안에 입던 옷과 갈아입을 옷을 함께 넣어 걸어두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따라한 그가 “희용이 말대로 하니까 괜찮더라. 그런데 쟤처럼 머리 좋은 애가 왜 서울대를 못간 거야?”라고 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니까 왜 자꾸 아픈 데를 쑤시는 거야”라고 속으로 외칩니다.
오늘의 행선지는 ‘비밀의 화원’이라고 불리는 슈니케플라테입니다. 그린델발트역에서 열차를 타고 인터라켄 쪽으로 가다가 빌더스빌에서 내려 갈아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여기도 해발 2,000m급으로 파노라마 트레일이 조성돼 있습니다. 역에 내리니 두 명의 악사가 사람보다 더 긴 알펜호른을 연주합니다. 알고 보니 식당 손님을 부르는 호객 수단이더군요. 식당의 전망이 끝내줍니다. 아래층은 셀프서비스 식당이고 윗층은 레스토랑인데 밑에는 영업을 하지 않네요.
<슈니케플라테 정상을 오르는 대원들. 선두의 파란색 상의가 희용 대장>
먼저 트레킹에 나섰습니다. 산자락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기차역 옆에는 ‘알파인 가든’이란 이름의 야생화 정원도 꾸며놓았습니다. 산꼭대기에 오르니 일망무제의 절경이 펼쳐집니다. 툰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들어선 인터라켄도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봉우리에서 내려와 트레일을 따라 걷습니다. 중간에 시집 간 두 딸과 여행하는 중년 내외를 만났습니다. 사위들은 돈 벌어야 하니까 딸들만 데리고 아내와 4명이서 렌터카로 유럽을 돌고 있다고 하네요. 융프라우는 돗데기시장이었는데 이곳은 한적해 한국 사람이든 서양 사람이든 만나면 반갑습니다.
<야생화가 핀 언덕에 앉아 융프라우를 응시하는 동규>
어제처럼 평평하고 전망 좋은 곳-국내에선 이런 곳에 가면 꼭 선점한 사람이 있지요-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로 합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길 옆 바위에 앉으려고 자리를 잡습니다. 제가 배낭에서 과자통을 꺼내려니 과자통이 벼랑 아래로 굴러갑니다. 이걸 주우려고 내려가니 친구들이 “야! 너 왜 그래?”라고 말립니다. 저도 생각보다 아래로 떨어져 있어 덜컥 겁이 납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아찔한 일이었습니다. 과자통 주우려다가 천길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져 숨지면 “식탐 때문에 죽었다”고 할 것 아니겠습니까?
<슈니케플라테에서 내려다본 인터라켄과 브리엔츠호수>
좀 더 안정적인 자리를 찾기로 하고 얼마를 더 걸어가 아래편 풀밭에 돗자리를 폈습니다. 휴대용 자리는 트레킹 때뿐만이 아니라 호텔 방 바닥에 둘러 앉아 라면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도 유용합니다. 챙겨오기를 잘했습니다. 오늘 트레킹 코스는 어제보다 훨씬 길이 좋고 풍경도 좋습니다. 알프스는 가는 곳마다 특색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슈니케플라테의 하이킹 코스를 따라 걷는 대원들>
돌아오는 길이 갈라집니다. 저는 비탈 쪽으로 가는데 나머지 모두 분지의 바닥을 걷습니다. 어제 숙소 찾을 때와 하이킹할 때의 일 때문에 저를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한참을 가니 결국 만나긴 합니다. 갈림길에서 서양인 노부부와 마주쳤습니다. 제게 길을 물어 가르쳐줬습니다. 알프스에서 서양인에게 내가 길을 가르쳐주다니 뿌듯합니다.
<식당에서 보는 조망이 압권>
역으로 돌아와 식당에 들어갑니다. 인당 2만5천 원에서 3만 원 정도로 그리 비싸지는 않은데, 그래도 여행 기간 중 우리가 먹은 식사 중에는 가장 비싼 겁니다. 맥주는 영수가 쏩니다. 음식은 그냥 그랬습니다. 현근이가 시킨 가장 비싼 돼지고기 요리가 가장 낫고, 소시지가 중간이고, 스페인 하몽처럼 얇게 저민 고기 요리는 짜고 질겨 못 먹고 남겼습니다. 그래도 식당에서 보는 조망이 워낙 빼어나 전혀 후회스럽지 않네요.
<맨 왼쪽의 태성이가 식당 종업원에게 주문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옆의 상호가 영어로 주문했고 태성은 영어로 얘기하는 것처럼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해서 만든 장면임>
오늘 일정은 여유 있게 마치고 일찍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현근에게 ‘서울대 가고도 남을 머리’라는 칭찬을 연거푸 들은 제가 샤워할 때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깜박 잊고 수건을 가져가지 않은 겁니다. 샤워실에서 친구 크게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갈아입을 새 옷을 적실 수가 없어 입던 옷을 입고 방으로 들어왔다가 수건으로 몸을 닦은 뒤 옷을 갈아입습니다. 팬티는 침대에 누워 이불 속에서 갈아입는데 아랫도리를 만지며 뒤척거리는 제 몸 동작이 이상해 보였는지 “너 지금 뭐하는 거냐? 그거 하는 건 아니지?”라고 놀립니다. 사실 누드존 사우나에도 함께 다녀와놓고 팬티를 이불 속에서 갈아입는 게 웃기기는 합니다.
오는 길에 감자와 당근과 양파도 샀습니다. 후식으로 먹을 오렌지도 왕창 샀습니다. 채소와 과일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오늘의 셰프는 접니다. 예전에 등산 다닐 때나 MT 갈 때 다진 실력을 발휘합니다. 특별한 레시피는 없고 감자, 양파, 당근을 썰어 넣고 스팸과 참치캔을 따서 집어넣고 고추장을 푼 것이지요. 아! 중요한 걸 빠뜨렸네요. MSG에 길든 입맛을 위해 라면 스프를 하나 넣었습니다. 모두 감탄을 합니다. 문제는 밥입니다. 햇반은 다 떨어졌는데 슈퍼(Coop)에 가니 햇반도 없고 쌀도 자포니카는 없어 길쭉한 안남미밖에 없네요. 그래도 밥을 지어 찌개에 말아 먹으니 먹을 만합니다.
제가 주방에서 태성이가 산 감자칼로 감자를 깎고 있을 때 한 젊은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어옵니다. 옆에서 태성이가 “희용아!”하고 부르니 “아! 한국 사람이세요?”라고 반색을 하며 한국말을 합니다. 혼자 여행하다가 그린델발트 마지막 날이어서 남은 감자를 주겠다는 겁니다.
나중에 밥 먹는 자리에서 태성이는 이 광경을 이렇게 소개해 친구들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 여자는 희용이가 동남아 사람이나 중국 사람인 줄 알았나봐. 내가 이름을 부르니 그제서야 ‘한국 사람이세요?’라고 하는 거야.”
오늘도 어김없이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술자리를 주도하던 동규가 졸음을 못 참겠는지 술잔의 양주를 남겨둔 채 침대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니가 웬일이냐?”라고 모두 의아해하니 약간 혀가 꼬부라진 말투로 “졸리면 자야지” 하며 눕더군요. 이로써 본의 아니게 제가 가장 술이 센 것으로 판명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마시기는 동규가 저보다 더 마셨고, 저는 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끝까지 버틴 것뿐이었는데 말입니다.
사실 술 마실 환경은 롯지가 더 좋긴 했습니다. 자기 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날 걱정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전체적으로는 갑표가 빠지고 상호가 가세하니 술의 소비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더군요. 대원들이 장기 여행에 피로가 누적된 탓도 있겠지요. 술에 관한 한 한가닥하는 정형이도 여행 와서는 자제력을 발휘하며 뒤늦게 술자리에 동참하거나 술 마시기를 일찍 중단하며 페이스를 조절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영수는 평소처럼 초반에는 호기롭게 마시는 듯하다가 집이 멀어 먼저 가는 스타일대로 일찍 탈락합니다. 현근은 양주는 잘 마시는 걸로 알았는데 아가씨가 없어서 그런지 술잔을 사양하는 태도를 보이더군요.
첫댓글 점점 재미의 밀도가 떨어지는 듯
그건 아마도 부러움이 만들어낸 결과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