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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굴라와 브리스가 원문보기 글쓴이: 아굴라
맛있는 추억의 국수
이상하게 그 장면은 뇌리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십대 후반인 그때 나는 철원평야의 논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브로크관사에서 살고 있었다. 그날은 장대비가 퍼붓던 날이었다. 굵은 빗줄기가 땅에 떨어져 은방울을 사방으로 튀게 했다. 으스스한 냉기 때문인지 아내가 갑자기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집에 있는 오십씨씨짜리 작은 오도바이의 뒷자리에 아내를 앉히고 읍내를 향해 달렸다. 퍼붓는 비 속에서 구불구불 외롭게 나 있는 들판길을 달렸다. 그렇게 삼십분 가량을 달려 시골 읍내로 들어갔다. 허름한 손 칼국수집이 하나 있었다. 아내와 그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을 시켜 나누어 먹었다. 간장을 풀어넣은 뜨거운 국물이 속으로 흘러 들어가 몸을 따뜻하게 했다. 평범한 국수 한 그릇의 기억이 평생 남아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일요일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따듯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소설을 읽다. 어려서부터 게으름을 피면서 소설을 읽는게 나의 최고의 도락이었다. 점심무렵 배가 출출해졌다. 나는 일어나 방문밖 간이 부엌으로 나갔다. 시멘트바닥 한구석에 놓여있는 석유풍로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물을 부은 등산용 코펠을 얹었다.
우리 부부는 살림살이가 전혀 없었다. 양은 찜통에 물을 길어다 등산용 코펠에 밥을 해 먹었다. 코펠 안에서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자 가게에서 사다 놓은 인스턴트 국수를 넣었다. 그날 오후 후후 불면서 먹던 국수의 맛은 지금도 시간의 무늬로 기억의 벽에 각인되어 있다. 국수가 계속 시간 저쪽의 광경으로 나의 영혼을 데리고 가는 것 같다.
유년 시절 강원도 깊은 산골에 있는 할머니의 초가집에 맡겨진 적이 있다.
어느 날 점심 무렵 그 집 할머니가 칼국수를 만들고 있었다. 둥근 소반위에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밀대로 밀어 편편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 할머니는 이윽고 그걸 둥글게 접고 식칼로 일정한 간격으로 잘랐다. 올이 굵은 투박한 국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봉당 텃밭에서 딴 호박을 도마 위에서 채를 썰었다. 가마솥의 끓인 물 속에 국수가 들어가고 간이 맞춰졌다. 마지막으로 채썬 호박이 들어가고 걸죽한 국물이 우러났다.
나는 밭에서 돌아온 그집 식구들 사이에 끼어 국수 한그릇을 얻어먹고 할머니의 초가집으로 돌아왔다. 그 국수 만드는 광경도 내 추억의 하나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남았다.
대학 삼학년 무렵이었다. 나는 청량리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강원도 오지인 황지 탄광으로 갔다. 탄광 안에는 죽은 광부들의 영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절이 있었다. 그 절에서 공부할 예정이었다.
광부들은 집에 돈이 한푼도 없을 때 장롱구석이나 밑바닥을 잘 살펴보면 동전 몇 개를 발견한다고 했다.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싸구려 국수 한봉지를 살 수 있는 돈이라고 했다. 그거면 한끼가 해결된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때는 한끼 배가 차면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이 아닐까. 행복과 불행도 순간이고 그래서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남이 보기에는 불행도 나에게는 행복일 수 있다. 순간순간 자신답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묵는 실버타운에서 점심으로 콩국수가 나온다고 했다. 국수를 먹기 위해 노트북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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