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이 글은 회상이 아니라 증언입니다.
나는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면 출신 실향민 어머니의 큰 아들입니다.
실향민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내 삶의 뿌리이자 정체성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면에서 태어나 파평윤씨 집안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원산 순천간호학교에 재학 중이던 열다섯 살 소녀였지만,
6·25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고향과 가족, 학업과 미래를 뒤로한 채 피난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고랑포를 지나 남으로, 또 남으로 이어진 피난 행렬 속에서 어머니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셨습니다.
머리 위로는 폭격기가 날아들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함께 학교를 다니던 친구를 잃었고, 폭격을 피해 화차 밑에 몸을 급히 숨겨야 했던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전쟁은 단지 고향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꿈과 청춘, 가족과 미래를 앗아갔고,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상처도 남겼습니다.
피난 생활 끝에 어머니는
경기도 안산 수암면 장하리 벌말마을에 수양딸 배씨 집안 임씨성으로 입적하여 정착하셨습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암면사무소에서 전쟁 때 열린 콩쿠르 대회에 참가해 노래와 무희을 선보일 만큼 밝고 강인한 분이셨습니다.
이후 안양 부림마을 출신인 아버지를 만나 가정을 이루셨고,
안양역전 앞으로 나와 밥장사와 하숙을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장하리 서광사진관에서 찍은 약혼사진 한 장은 지금도 그 시절의 소박한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안양역전 앞 3층 건물은 우리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지만,
그곳에는 실향민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 신앙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돌보고,
배고픈 이웃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셨습니다.
석수동 미군부대에서 구한 중고 콤프레서를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선뜻 내어준 끝에.
훗날 그 이웃은 수도권과 안양에서 큰 운수회사를 일구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도 사정이 있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머니 자신이 피난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향을 잃어본 사람만이 외로움과 절망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사람을 섬기고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곧 믿음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때로 작은 양로원이었고, 때로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어머니는 끝내 고향 양덕군을 다시 밟지 못한 채 코로나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러나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시작된 삶은 안양에서 새로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실향의 아픔은 사랑과 섬김으로 이어졌고, 그 정신은 가족과 이웃에게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2026년, 우리는 6·25전쟁 76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점점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교훈만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닙니다.
전쟁은 남과 북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고, 가족을 갈라놓고, 민족의 미래를 앗아가는 비극입니다.
수많은 실향민들의 눈물과 이산가족의 한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남과 북은 오랜 세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같은 언어와 역사, 문화를 가진 한민족입니다.
체제와 이념은 다를 수 있지만, 평화를 향한 소망만큼은 다를 수 없습니다.
평화는 결코 약함이 아닙니다.
평화는 가장 큰 용기이며,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총칼과 대결보다 대화와 협력이, 증오와 갈등보다 이해와 공존이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의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전쟁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의 희생과 헌신,
자유와 교육, 근면과 공동체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분단의 상처는 기억하되 증오를 물려주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의 비극은 기억하되 평화를 선택해야 합니다.
갈등을 키우기보다 공존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생전에 늘 고향을 그리워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셨습니다.
그 소망은 한 사람의 꿈이 아니라 수많은 실향민 세대의 기도였습니다.
고랑포에서 안양역전까지 이어진 한 실향민 어머니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상처를 남기지만, 사랑은 미래를 만든다.”
6·25전쟁 76주년을 맞아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며,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도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며 평화롭게 공존하고, 미래 세대가 전쟁이 아닌 화해와 협력의 역사를 이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고향을 잃고도 사랑을 잃지 않았던 실향민 세대에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값진 헌사일 것입니다.
이만 맺습니다..
이 글을 6·25전쟁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오시다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께,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평생 살아오신 모든 실향민 세대께,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신 호국영령님과 참전유공자 여러분께 바칩니다.
제2회
또 하나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6·25전쟁 제76주년을 맞아 어머니의 삶을 기록한 글을 올린 뒤, 잊지 못할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주말, 당진에서 일을 하고 있던 오후였습니다. 안산에 계신 배명호 외삼촌께서 갑자기 전화를 주셨습니다. 순간 외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하지만 들려온 소식은 뜻밖이었습니다.
"화영아, 네가 엄마 이야기를 글로 썼다며? 내가 안산초등학교 친구 강영민과 통화했는데, 그 친구가 네 글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연락을 했단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7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와 피난민의 삶은 한 편의 글을 통해 다시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었습니다. 메신저를 통해 전해진 작은 글 하나가 오랜 인연을 다시 만나게 한 것입니다.
또 다른 소식도 들었습니다.
서라벌예술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전설의 고향」 극본을 집필, 시흥군 마지막 군수였던 조태호 군수 재임 당시 『시흥군지』 편찬에 참여하신 이한기 선생의 귀한 자료가 막내 외삼촌 배강석님께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지명의 유래까지 담긴 소중한 기록이라고 연락까지 주셨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머니 윤용녀는 피난민으로 낯선 땅에 정착하셨지만, 안산 벌말 외가와 대한민국 법에는 임용녀라는 이름으로 따뜻한 품 안에서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운겁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 가족도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배명호 외삼촌,
대석 외삼촌,
영석 외삼춘
강석 외삼촌,
봉석 외삼촌,
명석 외삼촌, 그리고 준석. 외삼촌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안양의 시인 안향 김대규 선생과 함께 문학의 길을 걸으셨던 배준석 시인, 바로 저의 외삼촌입니다.
안산 벌말 배씨 종가와 외가의 모든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워갑니다. 은혜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답답할때 가곡 「향수」의 가사처럼,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마당에서 힘차게 부릅니다.
누구에게나 생명이 처음 시작된 곳 고향입니다, 우리의 뿌리입니다.
안산 벌말의 실개천과 뚱뚱바위, 여우골, 장하리, 벌말 들녘, 그리고 한여름 개천가 철엽도 꽁치만한 날치가 띄워 날아갑니다.가득 메우던 수양나무 쓰르라미 소리는 지금도 제 마음속 영원한 고향의 풍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6·25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향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고향을 만들어 준 안산 벌말 외가 사람들의 사랑만큼은 결코 빼앗지 못했습니다.
전쟁은 증오를 남겼지만, 안산 벌말 배씨 종가와 외가 가족들은 제 어머니와 우리 가족에게 사랑과 희망을 선물해 주었던겁니다.
그 은혜가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살아 있는 동안 그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더욱 믿음의 신앙으로 바르게 살아가며, 받은 사랑을 사회와 이웃에게 돌려드리는 삶으로 조금이나마 그 은덕을 갚아가고자 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이름 없이 피난민을 가족처럼 품어 주었던 이웃들의 희생과 사랑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애국자이며, 나라를 떠받친 아리랑이었습니다.
6·25전쟁 제76주년.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넘어 서로를 품어 주었던 사람들의 사랑 또한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배명호 외삼촌과 다시 나눈 한 통의 전화는 제게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결국 한 도시의 역사를 만들고, 한 시대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오늘의 만남은 내일의 문화유산이 되고, 오늘의 기록은 다음 세대의 역사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안양의 어제를 기록하여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의 유산으로 남기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문화적 책임이며 시민적 사명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안양의 문화는 행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과 기록, 그리고 사랑이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가 됩니다.
뜻을 함께하는 모든 시민 여러분이 바로 안양 역사의 주인입니다.
갑자기 백범김구기념관 열린 '백범 김구 선생 제77주기 추모식도 접합니다.
은혜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사랑은 이어지고, 기록하는 사람이 있는 한 역사와 문화는 살아 있습니다.
며칠 전 제안서를 발표한 뒤 벌써 뜻을 함께하겠다는 연락들이 이어집니다.
저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분단을 넘어 통일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시대정신을 함께 세워가자고 제안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오늘 그 말씀은 우리 민족에게도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라 믿습니다.
상처 입은 역사여, 일어나라.
분열된 민족이여, 일어나라.
잊혀진 지역의 기록이여, 다시 살아나라.
대한민국은 경제만으로 미래를 세우는 나라가 아닙니다.
역사와 문화, 교육과 신앙, 그리고 생명의 가치 위에 설 때 비로소 다음 세대가 자랑스러워할 나라가 됩니다.
죽음을 넘어 생명을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에도 새로운 희망을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부탁드립니다.
이 글에 담긴 뜻에 공감하신다면 함께 읽어 주시고, 함께 나누어 주십시오.
우리의 작은 기억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일으키고, 한 도시의 역사를 살리며, 다음 세대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함께 기록하고, 함께 기억하며, 함께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에 동행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6.6.25
6.25전쟁 제76주년에 부치다.
글쓴이:
6.25참전유공자회 회원
평남 양덕군 온천면장
안양박물관 부림마을(동편)
남평문씨 종중유물기증자
안양문화원 이사
안양시민 문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