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 대전을 발발시킨 두 암살 사건
1914년 6월 28일 일요일 보스니아(당시 오스트리아령)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이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던 세르비아의 비밀 결사 소속 한 청년이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권총으로 암살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이다.
이 사건이 1차대전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기는 하지만 전쟁의 검은 그림자는 이전부터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19세기 말 유럽의 열강들은 독점 자본주의 단계로 들어서면서 식민지 쟁탈전에 나섰으며 아프리카, 발칸 반도, 중근동, 동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시장과 식민지 분할을 둘러싸고 제국주의 국가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3국 동맹국과 러시아, 프랑스, 영국의 3국 협상국으로 나뉘어져 대립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런 대립의 한 초점이었던 발칸 반도는 당시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릴 정도였다. 15세기 이래 발칸 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7세기가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고 이를 기화로 유럽 열강들은 저마다 발칸 반도에 대한지배욕을 드러내게 된다. 여기에 발칸 반도의 여러 민족도 독립의 의지를 높여 가고 있었는데 이들은 각각 아직 힘이 미약해 이웃의 강대국인 러시아나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이런 독립 의지의 고양과 열강들의 간섭은 발칸 반도를 국제적 분쟁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한편 1389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래 강대국의 지배를 받다가 1878년에야 독립을 쟁취한 세르비아의 국왕과 귀족들은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하여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1908년 이두 지방을 병합하여 세르비아 인들의 소망을 꺾어 버렸고 세르비아 인의 반오스트리아 감정은 고양되었다.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18세의 청년은 이런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분쇄하려는 민족주의 비밀 결사의 일원이었다.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했다. 하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은 복잡한 정세는 이 사건이 두 국가 사이의 전쟁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유럽 아니 전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암살 사건이 있다. 그것은 프랑스 사회당의 지도자의 한 사람인 장 조레스의 죽임이다.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 해 7월 31일 밤 장 조레스는 파리의 한 카페에서 다른 사회당 간부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 도중 총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고 조레스도 쓰러졌다. 주위는 그가 흘린 피로 흥건했다. 의사가 곧 왔지만 머리에 총을 맞은조레스는 금방 사망하고 말았다. 체포된 범인은 라울 발렝이라는 국가주의에 사로잡힌 청년이었다. 조레스는 왜 암살당했는가?
20세기 초 유럽 각국에서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 운동은 이미 주요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다가오는 전쟁을 각국 자본가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전쟁 반대를 외쳤다. 당시 사회주의 정당의 국제 조직인 제2인터내셔널은 이 전쟁에서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는 피를 흘릴 뿐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환기시키면서 수차례 반전을 결의하고 각국 정부에 평화 외교를 요구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공동 행동을 호소했다.
프랑스 사회당의 장 조레스도 다가오는 전쟁을 막는 반전 평화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던 참이었다. 조레스의 암살사건은 전쟁 반대를 외치는 사회주의와 평화주의자에 대한 호전적인 국가주의자의 테러였다. 그리고 조레스를 죽인 총성은 사라예보에서 울릴 총성에 덧붙여 전 유럽이 아니 전 세계가 전쟁으로 돌진하고 있다는 신호탄이었다.
조레스가 암살당한 다음날 프랑스 정부는 총동원령을 내렸다. 전쟁 반대의 목소리는 조레스의 죽음과 함께 사그라들고 있었다.조레스가 암살당하기 며칠 전인 7월 28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한 상태였다. 러시아를 필두로 유럽 각국이 줄줄이 전쟁의 불길 속으로 뛰어들 참이었다. 7월30일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내렸다.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은독일은 8월 1일 러시아에 선전 포고를 했다. 그리고 8월 3일에는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바야흐로 이후 4년간이나 계속될 최초의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