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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광주광역시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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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실 스크랩 신돌석 장군 유적지.
문대식 추천 0 조회 365 19.12.23 03: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신돌석 장군 유적지.

 

 

 

신돌석 장군은 누구인가?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에 짓밟혀 갈때, 나라와 겨레를 구하기 위하여 "항일"의 깃발을 높이세운

분이 있으니,바로 신돌석 의병장이다.

 

 

 

1878년11월3일 이곳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태어난 장군의 본명은 태호인데 어릴때의 이름이

우리가 잘알고 있는 돌석이였다.

 

 

용맹과 기백을 타고난 장군은 1896년 경기도 광주의 김하락 의병부대가 이곳 영덕으로 이동해 오자, 18세의 어린나이에 이미 중군장으로 참전하여 일본군과 전투에서 뛰어난 힘을 발휘 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로 맺어지자,장군은 1906년 3월에 영해지역의 청년들을 모아 영릉의병진을 조직

하고 본격적으로 일본군 토벌에 나섰다.2년 8개월 동안 청하,영덕,울진,영해,청송,의성,봉화,삼척,강릉 등지를 오르내리며 수많은 전투를 전개하여 일본군은 장군을 "태백산 호랑이"라 부르며

두려워 하였다 한다.

 

1908년 12월 엄동설한 추위를 앞두고 의병진을 일단 해산시킨 장군은 활동무대를 만주로 옮기고자 계획하던중,그해 12월12일에 일제의 앞잡이에 의해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에서 살해 되었다.

 

장군의 30년 짧은 생애 가운데 청년시대 12년을 의병항쟁에 몸 바쳤고,오직 민족을 위해 살다가

돌아가셨다.

 

우리정부는 장군의 공을 기려 1962년 3월1일에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고,1971년 국립묘지묘역에 장군을 안장하였다.

 

그리고 영덕군과 보훈처는 장군의 애국 충절을 기리기 위해 탄생지인 이곳을 성역화 하기로 결정하고 ,1996년 12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사당과 기념관을 세웠다.

 

 

사당은 정면 3칸,측면 1칸반 규모의 맞배지붕을 하였다.

사당안에는 신돌석 장군의 초상화가 걸려 있으며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의 규모는 동일하며 동재와 서재는 정면3칸에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기념관에는 장군의 생애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는 포스터와 유물,그리고 장군에 대해서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기념관과 사당으로 가는길에 서있는 신돌석 장군 기념비와 의병대장신공유허비가 있다.

 

 

 

그밖의 신돌석 장군 유적지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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