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원명(原明), 호는 휴계(休溪)이다. 1425년(세종 7) 옥천(沃川)에서 지인부록사(知印副錄事)를 지낸 전예(全禮)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부정(副正)을 지낸 김상보(金尙保)의 딸 상산 김씨(商山金氏)이다. 전적(典籍)을 지낸 문손관(文孫貫)의 딸 감천 문씨(甘泉文氏)를 아내로 맞이하여 2남 3녀를 두었다.
세종(世宗) 때에 진사시(進士試)를 거쳐 무과(武科)에 급제하였고, 문종의 총애를 받아 벼슬이 상장군(上將軍)에 이르렀다. 하지만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정권을 장악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30세의 나이에 벼슬을 그만두고 처가가 있던 영주(榮州) 휴천(休川)으로 낙향하였다. 그 뒤 단종이 영월(寧越)에서 죽자 삼년상을 지냈으며, 임종할 때에도 자손들에게 관직에 나서지 말고 매년 영월로 찾아가 단종의 묘소에 참배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중종 때에 80세 이상의 노인에게 주는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호군(通政大夫護軍)에 올랐으며, 1521년(중종 16) 8월 3일에 97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칠성산(七星山) 용상동에 매장되었다.
전희철(全希哲)은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킨 절신(節臣)으로 사림의 존경을 받았으며, 영주의 방산서원(方山書院)에 배향되었다. 그의 무덤이 있는 칠성산 용상동에는 그의 후손들이 세운 칠성루(七星樓)와 휴계재사(休溪齋舍)가 있는데, 이것들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4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