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밥집/나태주
마음 허하고
아무 곳에도 기댈 곳 없는 날은
비실비실 저녁 어스름 밟으며
시장 골목길 돌고 돌아
허름한 순대국밥집 찾아들어라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마자
달겨드는 구숫한 음식 내음새
순대국밥 안주하여 막걸리나 소주 마시며
크게 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웃음 소리
더러는 다투는 소리
그동안 내가 찾지 못하던
세상 살 재미들이 모두 여기
이렇게 깡그리 모여 있었구나
종일 두고 무쇠솥에 국물은 끓고
김은 피어오르고
시꺼매진 벽을 등에 지고
보일 듯 말 듯 웃음 짓는
주인 아낙네
순대국밥 마는 일 하나로 저토록
늙어버린 주인 아낙네
내가 그동안 잃어버린 미더운
사람 마음과 사람의 얼굴이
여기 와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구나
비록 그들은 날마다 사는 일에 지치고
생채기 받지만
저토록 씩씩하게 자신들의 하루를 잘
갈무리하고 있음이여!
《나태주 대표시 선집: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푸른길
<시 읽기> 순대국밥집/나태주
대학 시절, 문청이던 내가 시를 사사師事했던 은사님은 순대국밥을 좋아하셨습니다. 그 시절 순대국밥집은 대부분 시장통에 있었어요. 처음으로 순대국밥집에 갔던 날이 생각납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시장 골목 끝에 있던 작은 순대국밥집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산뜻한 원피스 차림의 여대생은 나 혼자뿐인 곳이었어요.
순대국밥을 먹어본 적도 없었고 시꺼매진 탁자와 비딱한 나무 의자가 낯설었지만 쿰쿰하면서 구수한 국밥 내음이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옆 테이블에서는 하루의 노동을 마친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여 다투기도 하면서 순대국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진하고 구수한 국물에 순대와 머릿고기를 푸짐하게 넣고 다진 파를 듬뿍 올린 순대국밥을 먹으며 투박하지만 속정 깊은 사람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순대국밥을 먹고 있는 나를 만났습니다. 답답하게 일이 잘 안 풀리는 날, 상처를 받은 날, 외로운 날, 헤어진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날, 세상에게 뭇매를 맞아 후줄근해진 날……. 뜨겁고 걸쭉한 순대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여 먹고 나면 텅 비어 있던 마음이 훈훈하게 채워집니다. 사는 일에 지치고 생채기가 나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대에게 추천합니다. 순대국밥 한 그릇!
―정진아 엮음, 『맛있는 시』, 나무생각,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