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 배우기 (칼 샌드버그)
"너는 누구니?", "네가 가는 곳은 어디니?"
셔터스톡
인간은 때때로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그들 자신과 삶을
알게 됩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걸으면서
나무와 하늘을 봅니다.
외로움의 소리를 듣습니다.
바위나 그루터기 위에 앉아
나 자신에게 말합니다.
"너는 누구니? 샌드버그
네가 머물러 왔던 곳,
네가 가고 있는 곳은 어디니?"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읊조려 보면 어떤 느낌이 올라올까요?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만 아마 도 많은 이들이 막막함이나 다소간의 슬픔을 느끼겠지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본질적으로 연대를 추구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독립적 존재입니다. 내가 나로서 서지 않으면 그저 세상이 정해준 기준, 혹은 이념에 따라 살아가야 하지요.
인간은 어릴 때부터 사회 적응하기를 배웁니다. 그런 다음 나다움을 찾아 나서지요. 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의문, 그것은 나로서 존재할 때 너 역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달리 말해 내가 나이지 않고서는 너 가 너임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들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외로움을 논하게 될까요. 저자, 샌드버그는 미국의 시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시인입니다. <풀잎>을 노래한 휘트먼이 형식 면에서 미국다움으로 유럽에서 벗어났다면 칼 샌드버그는 어휘에서 미국다움을 세워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독자적인 영역이란 공통적인 면, 보편성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살아내기 위해 사회에 적응하지만 때로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듯 시에서도 당대를 풍미하던 흐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는 의미지요.
그가 개척한 영역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어휘를 시어로 사용한, 일상 용어 영역입니다. 시어는 고상해야 한다는 최소한 평범해야 한다는 인식을 깨뜨리지요. 부두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비어와 속어를 시 속에 넣음으로써 일반적 인식에서 벗어났지요.
그의 삶 또한 외로움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보이는데 어린 시절부터 노동자로서 다양한 직업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훗날 <시카고 Chicago Poems 〉(1916)로 상을 받는데 이 시집은 근대 도시의 삶, 노동자를 노래합니다.
당대 미국은 자본주의에 온통 잠식당한 시대였습니다. 미국 인구의 1/7이 외국 이민자들이던 시대, 칼 샌드버그는 스웨덴계 미국인입니다. 아버지는 제철공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세계 1차 대전을 겪기도 하지요.
그가 자신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요?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