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숙녀시모음 1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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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화의 섬 독도
천숙녀
너!
커다란 불덩어리로 우뚝 솟더니
망망 대해 바다 천고의 풍랑 속에 깊이깊이 두발 딛고
민족의 자존을 지켜주던 혼(魂)불 되어
한반도의 든든한 뿌리로 버티고 섰구나
홀로 이지만 홀로가 아닌, 의젓하고 분명한 너의 실체
영원부터 영원까지 함께 할 우리의 전부인데
솔개 되어 노리는 저 건너편 섬나라는
네 영혼 멸살하려는 망언 끝없구나
그들은
독도인 너를 보고 죽도(竹島)라 억지 쓰며
바다 밑 뿌리로 이어진 맥(脈)을 도끼질 하고 있다
숯덩이 같은 마음들이 너를 탐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독도야!
저 푸른 융단 아래로 두 다리 뻗거라
백두대간 혈맥을 따라 성인봉 체온이
네 혈(血)에 닿아 있다
한반도의 흑진주 빛남으로 태어나라
다시 태어나라
수 천년 왜구 침탈에 뻥뻥 뚫린 숱한 가슴
헐고 상한 네 핏줄의 섬
이 땅의 바람막이로 피골상접 한 너를
이제 외로운 한 점의 섬, 섬으로 두지 않겠다
내버려두지 않겠다
붉게 붉게 용솟음치는 망망대해 살붙이로
등줄기 쓰담으며 숱한 선열들의 희생 탑 아래
의용수비대 사투(死鬪)로 다시 서겠다
저 밤낮없이 자맥질하는 물보라를 보라
뭍을 향해 손짓하는 우리 모두의 피붙이를...
저기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사이
진홍의 해가 이글이글 솟는다
보아라
한반도의 우리들은 너를 보며 꿈을 꾼다
수 천 년 수 만년 이어 갈 역사의 안위를 배운다
절절 끓어 넘치는 용광로 사랑
나라사랑을 배운다
이제 우리 모두
참된 의미의 국권이 무엇인지 돌아보리라
태평양을 지향하는 최 일선의 보고(寶庫)인 너
기상과 희망을 심어주는
대대손손 독도 너를
영원까지 메고 가야 할 우리 몫의 자존임을
생존이고 희망임을 잊지 않겠다
한반도에 흐르는 냉기류를 걷으리라
한반도의 첫 해맞이 곳 너 일 번지를
우리 정신의 모태인 너 그 이름 독도를
우리 민족의 가슴에 깃발 내 걸겠다
깃발 펄럭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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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
천숙녀
휘돌며 굽이치며 흐르던 내 마음이
당신 앞에 이으러 강이 되었습니다
강물이 저물면 별들이 떠서
속삭이다가 매만지다가 강바닥에 숨어들어
씨근덕거리는 걸 보면서
불륜의 알처럼
반질반질한 조약돌을 매만지면서
예쁜 사생아를 끌어 안은 듯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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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울 앞
천숙녀
그림자로 뒤덮인 안방의 거울
고샅길 하나 트고 뛰어들어
반사되는
빛
하루 스물네 시간 중 가장
해맑은 시계視界를 열어줍니다
하루가 지나고
열흘,한 달이 지나도록
그 빛은 빛으로 살아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째
반사를 거듭하는 능동能動
문을 닫습니다
빗장을 겁니다
거울 뒤덮은 그림자 속의 빛
‘세어 나감을 막기 위함’
내 남은 날들의 온갖 고통과
만남의 석별조차 반사해 줄
그 모두 투영된 그림자
살이 아프도록
뼈가 녹아 버리도록
피가 슬프도록
나 어디쯤 헤맬지라도
반사와 투명을 거듭하여
살아남을 일과표
그림자로 뒤덮인 내 안의
실존을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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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드름
천숙녀
먼-기억 속에
매달린 처마 밑
굵은 고드름을 그려 봅니다
햇살에 고드름이 녹아
처마가 흘리는 투명한 눈물이 보입니다
그 눈물이 땅 위에 떨어져
푸근하게 젖은 흙
흙이 되어 눈물을 받아 안는
나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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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골목 길
천숙녀
당신을 향해 걷는 길은
막다른 골목길입니다
사방으로 포위된 골목 끝에서
포획할 그물이 쳐 지기를 기다리며
스스로 달아나지 않습니다
괜스레
밀물에 잠기는 모래알 같이
젖어버린 운명을 포기하는 척
몇 번의 퍼덕임으로 저항의 몸짓 해 보일 뿐입니다
당신으로 향해 가는 길은 막다른
골목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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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구름산책
천숙녀
장대비 쏟아지고 난 뒤
그 개운함
구름이 둥둥 걸려 있는
구름 속의 산책을 두드립니다
유년의 아궁이 앞에 앉혀놓은
냄비우동에 훌훌 가슴을 풀어
휘휘 저어보지요
내 가슴에 그대를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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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귀 열림
천숙녀
그대여!
이 세상에 키 큰 그리움 하나
심으셨습니다
그 뿌리는 너무나 튼실하여
실한 열매 거둘 것입니다
나
그대로 하여
꽃 우고
새소리들을 수 있는 귀 열림으로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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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대 가슴에 묻힐
천숙녀
꽃 한 송이 피우리
이슬방울 스러지지 않을
그대에게 옮겨갈 내 영혼은
아직은 순수 무구한
꽃이라네
떨어지지 않으리
시들지도 않으리
가장 깊은 그대 뼛속
피우고 적실 꽃으로 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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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대 그리움에 기대어
천숙녀
봄 나무 같은
그대 등에 기대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붉디 붉은 그리움 소리
듣고 싶습니다
슬픔이 터져 절정의 노래가 되는
그리움 차 올라 꿈길 환히 열리는
비밀한 사랑을 우거지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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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대를 만나면
천숙녀
시인이 되지요
소리,들을 수 있는 귀 열리고
상想가다듬어 빚을 줄 아는 현鉉
티잉 딩---
튕겨보고
가 막 울음 멎은 밤 하늘에
슬그머니 풀어놓는 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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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림자
천숙녀
눈 감으면 아른대는 내
혼魂뿌리
온 뿌리의 뿌리여
소나기로 쏟아지는 빗소리
괴로움
사위四位를 맴돌며 혼 잡아 흔들다가
쥐어뜯는다
뭉개지도록 봐 두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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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담금질
천숙녀
이렇게 쉼 없이 풀려 나오는
사연의 바다가
여기에 있습니다
풀려 나오는 실 고치 어찌 중단하나요
7년 동안의 애벌레가
나무에만 기대어 살던 매미가
한 여름을 태우고
한 목숨을 태우려 목젖을
담금질 하는 것이지요
이레 동안만 부르다가 죽을
목숨이라는 거
알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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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기도
천숙녀
내가 그대의 입술을 포개는 까닭은
내일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술에 달디단 열매를 맺게 하여
일생의 양식으로 넉넉하게 하시고
늘 지금처럼 침묵으로 격정하며
오늘 하루
헤어짐을 아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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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깊은 계절에
천숙녀
파란 하늘이
계절의 깊이를 담아
한 움큼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샘
시작을 위해 몰골을 다듬는 작은 풀잎들
고독과 고요를 묶어
순리에 순응하는 강을 하나 띄우고
허울 다 떨어낸 가지
담홍 빛 주렁 감이
저 넓은 하늘 호수를 파문으로 번지며
마른 영혼을 마구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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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까치 밥
천숙녀
벽에 걸린 가을소묘를 읽어
내리다가
가을 지나 겨울 오면 감나무 가지 끝에
홀로 남아 겨울 하늘을 지키고 있는
까지 밥이 생각났습니다
그 까치 밥이 행여 그대인 양
거룩해 뵈는 까닭은
그대 또한 나의 허허로운
겨울 하늘을 밝히고 있는
단 하나의 등불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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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꽃구경
천숙녀
새봄인가 싶더니
세상이 온통 꽃밭입니다
절정의 향기로 가득한 시절
지천에 흐드러진 꽃구경 가고 싶습니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 복사꽃,
자주빛 제비꽃도
만나고 싶습니다
꽃 향으로 살찐 탐스런 그리움
그대 앞가슴에 펼칩니다
지금
저
꽃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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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꿈길에서
천숙녀
얽힌 매듭 풀어가듯, 길
지나다 보면
길목마다 목마름의 풀들, 달빛 아래서
더욱 낮게 포복하고
포복하는 대열에 끼어
오늘이란 사슬을 탈출하는 내 영혼
노을지고 고요가 밀려오면
누군가 끝없이 그리워
낮은 목소리로 달빛을 부른다
달빛 흔들흔들 다가와
나를 껴안고
어디론가 한없이 달려가는 저 날개
날갯짓을 멈춘
어딜까, 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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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나 갈 거야
천숙녀
나, 갈 거야
가서
종다리가 되어도
새털구름 되어도
나, 맨발로 갈 거야
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깊은 숲의 안개로 흩어진다 해도
그 위로 부서지는 시월의
붉은 햇살이 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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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나비
천숙녀
황토 흙더미에 집 짓고 살던
어머니가 나비 되어
그대 손등에 날아 왔어요
"고맙다고"
"참 고맙다고"
더 많이 예쁜 사랑 키워가라고
오래오래 머물다 갔어요
그 착한 마음이 하늘을 당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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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날마다 숨쉴 때마다
천숙녀
님을 생각합니다
님을 만나게 한 인연은 생각합니다
떠올리게 하는 살가운 기억도 생각합니다
그리운 그대여! 하고
순정한 마음으로 불러봅니다
님아!
나의 님아!
일상으로 돌아와 그리움 풀며 살란다
숙제하듯 밀린 일 해가며 아무 일 없는 듯
헤살하며 살란다
보고 싶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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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내 길로 가던 날
천숙녀
긴-사연을 줍는다
말간 햇살에 씻어 꽃송이 피우려
끝내 낙화로 흩어지는 아픔 있어도
파문을 준비하는 원심력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는 바램
바램을 키워 영글고 싶다
어느 한곳에 작은 풀 씨로 떨어져
다시 한번 연둣빛 싹 틔우고 싶은
정직한 걸음 밑동에 묻어
꽃피우고 열매 맺을 사랑이여
생생한 언어로 만나고 싶은 내 꿈 한 줄의 혼魂이여
시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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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내 꺼
천숙녀
내가나를 참 많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
지금 이렇게 고운 사랑
품어 안고 있으니
저 구름도 내 꺼
불어오는 바람도 내 꺼
푸른 잎들 틔우는 초록향 내 꺼
팔월 불볕 더위도 내 꺼
폭우로 쏟아지는 장마비도 내 꺼
가장 소중한 그대 혼魂 내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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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내 몸
천숙녀
하늘밑에 서면 하늘이 되는
나의 그대입니다
바람 앞에 서면 바람이 되고 마는
나의 그대입니다
나
그대 품에 안기면
나의 그대는
곧 내 몸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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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내 안의 나(我)
천숙녀
거울 속에 서 있는 나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십니까?
내 안의 내가 또박또박 점으로 남기듯
대답했습니다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일에는 예약이 필요 없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짐 꾸려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어
굴렁쇠는 쉼 없이 굴러갑니다
구르다가
당신 앞에서 멈춰 섰지요
내 안의 내가 멈춰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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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내게도 행운이
천숙녀
물결이 흘러 내 남은 시간들을
조금씩 갉혀 먹힐 때
슬픔에 싸인 우울보다는 기쁜 날 드리
더 해지길 바라며
숱한 별 중에서도 가까이 다가오는
별을 만난다
눈물의 날이나 슬픔의 날에도
우주에서 가장 뜨거운 별
그 빛을 안는다.나는
물이 흘러 내 남은 생명 줄을 조금씩 갉힐 때
슬픔보다는 기쁨으로
미리내의 물줄기 움켜 마셔 내 피 멍울 씻어내고
가장 젖내 나는 모유로 살아
그 빛과 마시리,나는.
그렇게 내게도 행운이 올 것이다
오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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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내게로 오던 날
천숙녀
감기가 들었습니다
입술이 부르트고 가슴이 뜨겁습니다
오랫동안 앓아야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영영
약이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알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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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너에게 기대어 한여름을
천숙녀
불볕에 목젖을 달궈
숲을 흔들어 대는 직격탄
애벌레로 태어나기까지
묵묵히 삭여온 달마중 해마 중
이제 한 세상 만나
우화를 펼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이레 동안의 삶을 토하고
사라질 환희
꿈꾸는 자만이 별을 볼 수 있는 진리를
날개에 싣고
나는
너에게 기대어 한 여름을 태우고
한 목숨을 태우려 목젖을 담금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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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넝쿨 찔레
천숙녀
불혹의 마른 뜰에 넝쿨 찔레
그 그림자 드리워
지워버릴 수 없는 크막한 영상 하나
당신이 토한 피
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울 안팎으로 흥건히 퍼진
향기를 들이키고 있습니다
혼란입니다 너무나 맑은
혼돈입니다
개벽의 닭 울음에서
피가 꽃으로 핀
내력을 읽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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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노래
천숙녀
참
듣고 싶었던 노래였습니다
이렇게 한잔의 차를 마시며
흥얼거리고 싶었던 음률의 흐름
고단한 내 노래에
목청껏 소리 높여 화음으로
받쳐주는 봄날 같은 그리움, 황홀한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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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노을 사모에게
천숙녀
누군가를 위하여 내가 저토록 탈 수 있을까
나를 위하여 누군가가 저리 붉게 탈 수 있을까
밤을 지새워 해돋이 솟쳐
하루 종일 달려온 길
세월은 그냥 세월로
강은 그냥 강으로 흘러
저만 홀로 타는 노을
나 저렇게 탈 수 있을까?
그대 저리 붉게 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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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녹우
천숙녀
하늘로부터
푸른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적막한 골짜기의 한 가운데를 가르며
굵은 빗줄기가 지나고 있습니다
뿌연 운무사이로
숲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나뭇잎이 되어
수 없는 물방울을 모아 아래로
아래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너머 저쪽에서는
한바탕 녹우가 지나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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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늦은 안부
천숙녀
이제서야 나타난 그대의
늦은 안부이지만
늦은 안부마저도 감사합니다
아직은 하 많은 날들
그릴 수 있는
세상의 바다가
그대와 내게 남겨져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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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다림질
천숙녀
햇살로 안겨 살아 있습니다
정수리에 꽂혀
등골을 타고 내려옵니다
안개 아득하여 눈 멀었던 흘러간 날들
찢기고 구겨진 시간들 꿰매줍니다
다림질하고 있습니다
퍼렇게 얼었던 눈물
검붉은 응어리
뒤 춤에 감춰둔 아픔까지도
풀어줍니다
사연의 강줄기 따라 흘려 보내줍니다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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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다시 한번
천숙녀
천천히 걸어라
서두르지 말고
지나온 계곡이
그리 좋아다 해도
다시는 갈 수 없는 곳
현실이 너를
밀어내고 밀쳐내도
갓길 걷지 말고
복판길 걸어가라
먹구름에 가린 하늘
눈부신 태양빛 마을
거기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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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달맞이 꽃
천숙녀
노란 잎들로 감싸 안으며
어둠 속에 떠오르는 그렁그렁한
눈물입니다
달빛 따라 오다가
달 따라 이 밤에 오다가
달빛 아래 애기 소처럼
울고 있습니다
서창에 달 기우면
그대 고운 심성은 시리도록
맑은 이슬이 되어
새벽 길 떠나는
길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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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달빛 휘감아 피어나는 들풀 향기
천숙녀
우리 사는 지구촌 여기
살다가 떠나는 풀잎들
나무들,짐승들,새들,
얼마나 즐거웠을까
슬픈 일인들 또 얼마나 겪었을까
하늘은 알리니
바다는 알리니
땅은 알리니
어느 날 서성이다 돌아오는 오솔길
만삭의 기쁨 출렁이는 둥근 달
초여름 싱그러운 바람결에 춤추며
달빛 휘감아 피어나는 들풀 향기
우리 같이 사는 동안
서로를 사랑하다
먼 길 떠날 때까지
목숨 값 다 할 수 있으려
움직이는 몸짓 하나에도
생명력을 불어넣는
달빛 휘감아 피어나는 들풀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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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담쟁이 넝쿨
천숙녀
꼿꼿하게 버티어 선 담벼락에
손가락 발가락 그도 모자라
가슴팍까지 찰싹 엎디어
기어 오릅니다
그대에게 닿고 싶어
매달리고 싶어서
가을 오면
절절 끓어 오르던 몰골
부끄러워
붉게 물들 거예요
☆★☆★☆★☆★☆★☆★☆★☆★☆★☆★☆★☆★
《38》
당신만이
천숙녀
들어올 수 있는 성城입니다
건강한 인연의 당신만이
내가 만나는 유일한 당신만이
싸리 울 빗장 열 수 있습니다
오십시오
빗장 열고 안마당으로 마실 오십시오
툇마루에 걸터앉아 바지랑대에 날아온
고추잠자리도 만나세요
마일간 하늘이 내려앉았습니다
우리, 마주해요
☆★☆★☆★☆★☆★☆★☆★☆★☆★☆★☆★☆★
《39》
당신에게선
천숙녀
하늘에서 타고난 천이지혜를 느낍니다
당신의 눈에는 불꽃이 살아 움직이는
영채인 정기가 일렁입니다
포용력의 온기로 가슴 덥혀주고
사랑의 화기로 주시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건강한 활기로 씩씩한 걸음인
당신 한 사람
나의 실한 바람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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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덩굴장미
천숙녀
담장을 찾네
줄기 뻗을
꽃이야 피겠지
시절이 오면
어쩌지 포갤 입술
가시에 찔려
뚝뚝
떨어지는 피
창을 흘러
피투성이네
피투성
☆★☆★☆★☆★☆★☆★☆★☆★☆★☆★☆★☆★
《41》
돌
천숙녀
당신을 <참 사랑했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돌이 되고 싶습니다
남겨진 생 그 얘기만 가슴에 담고
입 한번 뻥긋 않는 돌이 되고 싶은 거죠
당신과 나
그리움을 둘러메고 석기시대로 돌아가
천 년을 꿈쩍 않는 바위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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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두레박
천숙녀
육신은 본디
우리들 혼魂의 짐입니다
영혼은 육신 밖에서
고독과 그리움과 사색의 꽃을 피우는
샘水입니다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구현과 완성을 위한
몸부림이지요
갈증과 방황은 허무에서 옵니다
이를 깊은 사색으로 승화시키면
있음有창조할 수 있는 샘水인바
그 샘물을 퍼 담을 수 있는 두레박詩
항상 깨끗하게 씻고 닦아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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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들풀이여
천숙녀
그대 몸 속에 언제부터 유장한
물줄기를 키워왔는가
천 날 만날 처 올려도 마르지 않는
눈물이며
천 날 만날 처 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며
깊고 푸른 골짜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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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떨림 희열 축제
천숙녀
투명한 빛 속에 들어와
나를 흔들던 아리한 슬픔의 기다림
내 창을 흔들며 그대 향해서만
오라고 손짓하는 깊은 나락 사랑의 늪
하얗게 사윈 여명이
등줄기를 향하여 달려오는
무서리 내리는 아픈 새벽 같은
그대
그대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
올리면 달덩이로 부풀어 오르는
가슴, 떨림, 희열, 축제 그리고
환희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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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말의 맛
천숙녀
뱉어 버리는 말들
무섭다
몇 십 년 살아오며
햇수만큼 쏟아 놓은 말
말의 근수 몇 백 근은 됨직한데
무섭지 않은 말
꼭 필요한 좋은 말
얼마나 하로 살았을까
하는 말과 듣는 말
높고 낮은 말속에서
설익고 잘 익은 떫고도 맛깔스러운
말의 맛을 핥고 싶다
꿀맛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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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먼 거리
천숙녀
제가 당신 앞에 가까이 앉았지만
먼-거리를 느끼기도 하고
날마다 낯선 도시의 골목을 배회하는 까닭처럼
당신 곁에 머뭇거리며
날마다 곁으로 다가가 앉는 이유는
시린 손바닥에 불씨처럼
따스한 사랑 한 톨 움켜쥐려는
마음뿐입니다
☆★☆★☆★☆★☆★☆★☆★☆★☆★☆★☆★☆★
《47》
먼 그대
천숙녀
먼발치에 세워두고 바라만 보라는데
그리운 마음 태워 연기로나 닿을까
문밖에 앉혀 놓고 물이 돼라 하는 그대
날 보곤 흐르라며 산이 되려 하는 걸까
빗장 건 문 안쪽에 바위로나 눈을 감고
돌아서라 돌아가라 낮은 목소리
그대 떠나 슬픈 날에 불이 돼라 재가 돼라
나 태운 그대 혈루 저녁놀로 타려는가
☆★☆★☆★☆★☆★☆★☆★☆★☆★☆★☆★☆★
《48》
모래 섬
천숙녀
푸른 강변에 나가서 우리 사랑
씻어 내리면
반짝이는 모래 섬 둥실 뜨겠지요
우리 모래알 같은 사랑은 아니었어도
약속한 사랑 바위처럼 굳었기에
보셔요
바위가 부서져 모래 섬을
쌓아 가는
☆★☆★☆★☆★☆★☆★☆★☆★☆★☆★☆★☆★
《49》
몸속의 바람
천숙녀
가슴엔 한 가닥 바람 불고 있습니다
잔잔한 물결이면 좋겠다 싶은데
조그만 일에도 벌떡 일어나
오장을 훑으며 얼얼하게 정신을 치고는
내달리고 있답니다
어쩌다 솜털 가볍게 날리는 미풍도 되고
옷깃 팔락이는 나들이 바람도 되었다가
오늘은 또 육부로 휘몰아쳐 통째로 몸뚱이 날리는
태풍입니다
어떻게 잠재울까요
한 가닥씩 불어 쌓이는
몸속의 바람
☆★☆★☆★☆★☆★☆★☆★☆★☆★☆★☆★☆★
《50》
문패
천숙녀
살도 없고
뼈도 없고
형체도 없던 것이
몇 천 년을 집도 없이 떠돌던 것이
당신과 나의 가슴에 날개를 묻고
<사랑이란> 문패를 내 걸었습니다
착하고 맑은
예쁜 사랑이지요
☆★☆★☆★☆★☆★☆★☆★☆★☆★☆★☆★☆★
《51》
물
천숙녀
하나의 물방울이 바다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물방울이 깨어지고 부서지고
굽이치며 휘돌 듯
저 또한 그렇게 굽어진 채로
당신 곁으로 흘러갑니다
가다가
깨어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할 지라도
물의 본성을 숨기지는 않을 랍니다
☆★☆★☆★☆★☆★☆★☆★☆★☆★☆★☆★☆★
《52》
물이 되어
천숙녀
그대 깊은 강물에
한 방울씩 물방울로 떨어져
그대 고운 넋으로
천년 쯤 아니
수천 년쯤
물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
《53》
물줄기
천숙녀
가느다란 물줄기가
바다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물줄기를 끌어안고 흐르듯
그대와 나
하나의 물줄기로 바다에 닿아
파도처럼 저리도 찬란하게
부서질 순 없을까요
☆★☆★☆★☆★☆★☆★☆★☆★☆★☆★☆★☆★
《54》
바람
천숙녀
그대 맑은 바람으로 불어옵니다
고름 풀어 헤치며 심신을 훑습니다
나를 밝히며 깨어나라고
한 알의 씨앗으로
싹을 틔워 보라고
싱싱한 날 빛
걷어 올리며
그리움 같은
바람으로 왔습니다
☆★☆★☆★☆★☆★☆★☆★☆★☆★☆★☆★☆★
《55》
바람불어
천숙녀
좋은 날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볼 터치로 끝나는 바람에도 후드득
눈물입니다
여린 비만 긋고 지나가도 눈물입니다
자그마한 꽃송이를 만나도 눈물입니다
짧디 짧은 엽서 글속에 숨어있는 무진장의 언어들
그 비밀한 언표 찾기에
하루 하루가
☆★☆★☆★☆★☆★☆★☆★☆★☆★☆★☆★☆★
《56》
바람일거야
천숙녀
바람일거야 나무
가지 흔들어
잎새 가득 피우는
바람일거야
구름일거야 그대는
불볕에 타는 숲
양산으로 가리우는
비 일거야 마른땅
흥건히 적시는 빗줄기
목마름 씻어 강으로 흐를 거야
물방울 일거야
풀섶에 머무르는
스러지는 모든 것
스러짐이 아닌 이슬일거야
☆★☆★☆★☆★☆★☆★☆★☆★☆★☆★☆★☆★
《57》
배웅
천숙녀
가을을 싣고 떠나는 바람이 제법
차갑습니다
종일 눈자위에 매달려 늦가을
햇살처럼 서운했던 나 스스로
빈센트 반 고흐 그 사람처럼
겨울을 맞아야겠지요
자정으로 가는 시침 끝에는
가장 밤이 긴 겨울을 예비하는
견고한 다짐이 뭉쳐 있고
나는 구석진 곳에서
꼭 밤에만 타는 별빛 아래서 편지를 씁니다
종일 앓다가 자다가 앓다가 자다가
그리곤 아프다가 괜찮다가 했습니다
낸 눈자위에 매달려 서운해하던
초겨울 햇살을 끌어안고
☆★☆★☆★☆★☆★☆★☆★☆★☆★☆★☆★☆★
《68》
별을 따는 거야
천숙녀
멀리 하늘을 나는
도요새 날개에 내
그리움 실어 날아오라는
그림자의 함성
청명한 가을 하늘 밤
미리내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
별을 따러 가야지
칠흑의 밤이어도 괜찮아
구름 뒤엔 항상 초롱초롱
빛나는 별밭 그
이랑을 거닐며
이루지 못한
사랑 노래 한 구절
오직 한 구절
가슴에 담는 거야
태우는 거야
☆★☆★☆★☆★☆★☆★☆★☆★☆★☆★☆★☆★
《59》
볕
천숙녀
깊은 샘물이야
깍지 끼면 가슴 닿은 줄 알아야지
무릎 낮추고 까치발 들자
더듬어 입술을 포개 볼까
휘감긴 곳엔 파열이 이는 거야
뻗어 뒷덜미에 얹고 싶어
용틀임치는 희열은
이글거리는 용광로
사그라드는 등잔불에 기름을 붓는 거야
☆★☆★☆★☆★☆★☆★☆★☆★☆★☆★☆★☆★
《60》
봄 세월 그리고
천숙녀
강 그리고 그림자 그대여!
푸른 뗏목 물 안고 실팍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봄과 세월 그리고 그대
그 강물 따라 흐르고
어둡던 겨울 고샅 길
초록으로 물들여 주십니다
☆★☆★☆★☆★☆★☆★☆★☆★☆★☆★☆★☆★
《61》
불덩이
천숙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디선가 빛이 흘러왔습니다
그 빛은 비조산 아래 아늑한
유년의 빛이었습니다
이십여리 등교길에서
아침을 등줄기로 받던
햇살을 안고 꿈을 키워 올리던
그 빛은 빛으로 살아나
어둠을 사르며 더욱 강하고
아름답게 탈 수 있는
영혼을 담금질하는 용광로
불덩이였습니다
☆★☆★☆★☆★☆★☆★☆★☆★☆★☆★☆★☆★
《62》
블랙홀
천숙녀
불면의 밤
꿈길에도 찾아와
가슴 뒤흔들어 놓는 그림자여
우리 둘 함께
훠훨 나는 나비이고 싶습니다
우리에겐 저무는 해의 노을보다
더 붉은 혼이 있기에
그 아픔 어루만지고
영혼 한 결씩 엮어
단 한 줄의 시날개에 싣고
어딘가 있을 블랙홀에
닿고 싶습니다
☆★☆★☆★☆★☆★☆★☆★☆★☆★☆★☆★☆★
《63》
비
천숙녀
땅으로부터
푸른 비가 오르고 있습니다
마주 보아 익어 있던 소중한 것들
비를 맞으며 되살아납니다
붉은 벽돌은 더욱 붉어지고
초록의 잔디는 더욱 짙어지고
멀리서 느끼던 것들이 눈앞에로 다가와
안겨 들고 있습니다
녹우의 수런거림에 귀를 열고 나른한 오후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굵은 빗줄기가 오르고 있습니다
☆★☆★☆★☆★☆★☆★☆★☆★☆★☆★☆★☆★
《64》
비이거나 구름이거나 바람일지라도
천숙녀
떠나고 싶어
옷자락을 적시는 비이거나
갈대 숲에 쌓이는 눈이거나
동남쪽에서 와 서북으로 날아가는
건들바람이거나
내 중년을 안고 떠날
구름일지라도
다시 꽃으로 피울 수 있는
넋이었으면 좋겠네
얼이었으면 좋겠네
☆★☆★☆★☆★☆★☆★☆★☆★☆★☆★☆★☆★
《65》
빛의 발원
천숙녀
동전 몇 개를 들고 빛으로 관류하는
내 영혼이 흘러
닿을 곳을 향하여 걷는데 빗방울
뚝 떨어진다
지금쯤 수화기를 응시하고 있을 그림자
이토록 내 정신을 송두리째
스멀거리게 하는 바람,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왔을까
그 속도는 얼마일까
그림자의 혼魂,흔들어 높은 빛의 발원은
그 빛의 감도와 속력은 얼마일까
불가사이의 둘의 넋
열풍보다 더 센 폭풍으로
큰 해면에서 뒤엉키게 한
원동력은 어디에서 솟는가
☆★☆★☆★☆★☆★☆★☆★☆★☆★☆★☆★☆★
《66》
사랑을 찾는다고
천숙녀
몸 속 깊이 숨겨진 사랑을 찾는다고
사람들은 밤마다 알몸이 되어
서로의 알몸을 퍼내고 있지만
알몸의 살점을 퍼내는 것이지만
사랑은 몸 속에 있지 않고
살 속에도 있지 않아요
오직
영혼으로 영혼 속에 숨겨져 있는걸요
☆★☆★☆★☆★☆★☆★☆★☆★☆★☆★☆★☆★
《67》
사랑한다는 것은
천숙녀
대가가 없으며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끝없는 관용입니다
사랑의 기쁨을 사소한 눈빛에서도
얻을 수 있는 희열이며
무의식 중에 착함이며
완전한 자기 망각입니다
☆★☆★☆★☆★☆★☆★☆★☆★☆★☆★☆★☆★
《68》
사랑해야 한다고
천숙녀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거울이라면
수면이라면
무엇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껍질에 싸여
오늘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
숱한 시간
그 때문 뒤집어쓴 허울은 얼마인가
보이지가 않았었지
찾을 수가 없었어
반동이 솟구친다 하여
가진 것 모두와
숨겨놓은 것 모두
소진할 수 있는 알몸을 만난다면
사랑할 수 있다고
사랑해야 한다고
☆★☆★☆★☆★☆★☆★☆★☆★☆★☆★☆★☆★
《69》
산
천숙녀
그저 묵묵한 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나 당신 그리워 찾아 들면
가슴 훤히 열어 젖히며 맨발로 오르는 나를
덥석 안아 주십니다
산의 이름으로.
☆★☆★☆★☆★☆★☆★☆★☆★☆★☆★☆★☆★
《70》
서로의
천숙녀
들어도 들어도 좋은
불러도 부러도 더 부르고 싶은
서로의 그림자
보고 또 보아도 더 봐야 하는
떨어져 있음에도 떨어져 있지 않는
인력引力의 바다
닻을 내릴 해저가 보이질 않습니다
☆★☆★☆★☆★☆★☆★☆★☆★☆★☆★☆★☆★
《71》
서성거림
천숙녀
나의 서성거림이
언제나 당신 시선 안에 머물기를
나의 아름다움이
언제나 당신 시선 안에 머물기를
우리 살아 있는 모습
언제나 우리 시선 안에 머물기를
☆★☆★☆★☆★☆★☆★☆★☆★☆★☆★☆★☆★
《72》
선로
천숙녀
하루에 한번, 두 번
완행열차 멈추는 간이역에
뭣 하러 눈발은 자꾸만 쌓여갈까?
오뉴월에
칠 팔월에
움직이는 것은 오직 침목을 밟아 가는
선로뿐인데
☆★☆★☆★☆★☆★☆★☆★☆★☆★☆★☆★☆★
《73》
선線
천숙녀
해가 진 허공을 태워
몇 광년光年의 거리를 달려
내가 있는 여기까지 와닿는 별빛
그와 같이 나
선線하나 그으리
처음과 끝이 없는 선 하나
그리움조차 녹아 흐를 뜨거운 선 하나
그 선 마디마디 잘라 혈관으로 이어놓고
나의 수분과 피
그 혈관을 타게 하리
내 영혼 흥건히 젖게 하리
☆★☆★☆★☆★☆★☆★☆★☆★☆★☆★☆★☆★
《74》
세상이 그대 발아래
천숙녀
목을 길게 늘이고
발돋움을 높이 하고
앞산 안개 자락 걷어찬
바람이고 싶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는 활짝 열어
옆산 구름 뭉치 씻어 내린
물 소리고 싶습니다
이성은 차거웁게
가슴은 뜨겁게
그대와 걸으면
일제히
세상이 그대 발아래 있습니다
☆★☆★☆★☆★☆★☆★☆★☆★☆★☆★☆★☆★
《75》
세월의 주름살 펴주는
천숙녀
지나간
삶의 바닥에서
맑은 샘물 퍼 올려
적셔주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향기 없는 빛깔에다
물감 풀어 흔들며
구겨진 세월의 주름살 펴주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
《76》
소국 피는 날에
천숙녀
손끝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냉 쾌한 바람이 참 좋습니다
꽃이 상처를 감추는 일이라면
낙엽은 상처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하여
가을은 감출 수 없는 고독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드러냄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마침내 아무는 상처
아문 상처 딱지 속에는
아, 눈꽃이 숨어있지요
그대와 나
세상의 한목에 눈멀게 할
☆★☆★☆★☆★☆★☆★☆★☆★☆★☆★☆★☆★
《77》
수綏
천숙녀
그러나
그제의 이유처럼 이유를 알겠는걸요
내 혼, 에쁘게 살찌워
그대에게 선물하려고
맑은 의식으로 꼿꼿이 서
그대 앞에 서성이라고
그대가 들려주는 꽃 같은 노래와
내가 지어 들려주는 한편의
시 사색으로
더 깊은 사유 속으로 들어가
남겨진 생 아름답게 수놓으라고
☆★☆★☆★☆★☆★☆★☆★☆★☆★☆★☆★☆★
《78》
숨소리
천숙녀
무시로 다가오는 그림자
잃어버릴 만큼 잃어버린 자들이
앓을 만큼 앓은 자들이
빈자리에서
찾은 그림자 하나
무겁게 가라앉은 가슴 깊이로
내일은 또 우리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시詩한편의 무게와
인생 전체의 무게를 저울에 올려본다
그리고
그대와 나의 체중을 달아보며
사라지는 하루하루를 되새김질하는
이 새벽
3시40분 초침 소리에 잠 깨어 일어나는
내 영혼의 숨소리를 듣는다
☆★☆★☆★☆★☆★☆★☆★☆★☆★☆★☆★☆★
《79》
숨은 꽃
천숙녀
우리는
이름을 갖지 못한 숨은 꽃
얼굴을 감추고
향기를 감추고
낮게 낮게 흔들리며
커가야 할 숨은 꽃
세상의 모든 슬픔을 껴안고
상처와 아픔도
소리내어 울어서는 아니 되는
숨은 꽃의 가슴앓이
서로 기댄 채
묵묵히 깜깜한 밤을 견디는
☆★☆★☆★☆★☆★☆★☆★☆★☆★☆★☆★☆★
《80》
신열
천숙녀
내 시린 영혼의 꽃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대 찾아
밤길,타박타박 걷는다
그리움은 파도로 부서지고 흩어지겠지
난바다 어디쯤 헤매이기만 하겠지
보고 또 보았고 만나고 또 만났지만
헤어지면 그리움은 해조음만 싣고 온다
지새워 밤을 떠도는
나는 수천만 리 길 나그네
☆★☆★☆★☆★☆★☆★☆★☆★☆★☆★☆★☆★
《81》
씩씩한 사람은
천숙녀
큰 소리로 웁니다
힘있게 넘어지고 일어섭니다
씩씩한 사람은
눈물을 후드득 떨굴 줄 압니다
목젖이 보이도록 큰 소리로 웃습니다
☆★☆★☆★☆★☆★☆★☆★☆★☆★☆★☆★☆★
《82》
안개
천숙녀
무서리 하얖게 내린 빈 들판을
정신의 맨발로 걷습니다
뼈 시린 고통으로
그리운 사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이런 쓸쓸한 마음을
행복이라 느끼는
하루
☆★☆★☆★☆★☆★☆★☆★☆★☆★☆★☆★☆★
《83》
약속
천숙녀
별에게 약속한 사랑이 별이 되고
달에게 약속한 사랑이 달이 된다면
저는 한마디 약속을
당신에게만 하렵니다
☆★☆★☆★☆★☆★☆★☆★☆★☆★☆★☆★☆★
《84》
어쩌란 말이냐
천숙녀
나의 모두야
바람이 이렇게 세게 부는 걸
날 보고 어쩌란 말이냐
나의 모든 것
파고가 이렇게 높이 이는 걸
어쩌라 말이냐 날 보고
한 여름에도
함박눈이 이렇게 펑펑 쏟아지는 걸
날 보고 어쩌란 말이냐
오늘 밤의 긴 이야기
한 토막의 잘림인 것을
성城하나 채우지 못할
공허空虛인 것을 어쩌란 말이냐
☆★☆★☆★☆★☆★☆★☆★☆★☆★☆★☆★☆★
《85》
어쩌지요
천숙녀
당신의 눈빛만으로 가슴 치며
뼈마디 아득아득 저려오는 이 노릇을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지요?
☆★☆★☆★☆★☆★☆★☆★☆★☆★☆★☆★☆★
《86》
여정
천숙녀
어머니가 엮어오신 한 생애의
여정
찬바람과 진눈깨비 먼지조차
더러는 빛이었으리라
한 가닥으로 곧게 다듬어진
좋은 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며
울컥 쏟아내는 눈물 속에
고운 손 뻗어
도닥여 주는 그대
☆★☆★☆★☆★☆★☆★☆★☆★☆★☆★☆★☆★
《87》
연가
천숙녀
내 남은 의식 모두 드리면
바다 잠긴 그대 눈빛
가질 수 있을까
내 남은 세월 모두 드리면
안개 삼킨 그대 세월
살 수 있을까
☆★☆★☆★☆★☆★☆★☆★☆★☆★☆★☆★☆★
《88》
열림
천숙녀
당신의 눈 속에는
꽃피는 소리가 들립니다
별 뜨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이렇듯
당신으로 하여 열리는 것을 보면
당신의 몸 속 어딘가에는
필시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공天孔을
숨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
《89》
열병
천숙녀
당신이 아침이라면 나는 저녁
내가 아침이라면 당신은 타는 노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끓는 용광로
녹아 흐를 뼈마디 불꽃이 되리
당신이 노을이라면 나는 사무침
내가 노을이라면 당신은
불나방
멀리 멀리 날을 거나
땅 속으로 꺼질 거나
당신이 별로 뜨면 한 방울 나는 이슬
마른 가슴 적시다 스러지는 새벽
바람으로 떠나는 오늘도
먼~길
☆★☆★☆★☆★☆★☆★☆★☆★☆★☆★☆★☆★
《90》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빛으로
천숙녀
무엇인가에
누군가의 하나에 몰입한다는 것은
중용에 어긋남이라고요
진지하고 아름답고 순수할지라도
독이,독약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요
중용은 자신自身을 지킬 수 있는
뿌리이고 기둥이라는 것
앞만 보고 치달리지 않으며
반대편도 살피며
뒤도 살펴 걷겠습니다
나날을 빛나게 할 수 있는 윤활유
허무에 유有를 덧붙여 살게 하는 철학
영혼으로 거듭나게 하는 빛으로
거듭나겠습니다
☆★☆★☆★☆★☆★☆★☆★☆★☆★☆★☆★☆★
《91》
오늘 밤엔
천숙녀
바람으로 오셨다
실눈 뜬 하현 달빛 안고
바람으로 가십니까
두드리는 창 잠겨 있어도
살가운
그리움 태울 별빛으로 드시렵니까
육신의 불 후후 불어 꺼 버리고
영혼의 심지에 떨어뜨린 기름 한 방울
어둠을 태워 먼동으로 오시렵니까
오늘 밤엔
아니면 내일
밤엔
☆★☆★☆★☆★☆★☆★☆★☆★☆★☆★☆★☆★
《92》
오늘도 나는
천숙녀
한없이 풀려나오는 사연의 바다를 만나고 싶어
너의 눈자위를 거닐고 있다
결국 한 번뿐인 생에서
소중하게 풀고 가야 할 숙제를 가졌기에
내 마음 온전히 풀어 놓을 수 있는
네 가슴을 찾는다
☆★☆★☆★☆★☆★☆★☆★☆★☆★☆★☆★☆★
《93》
용기 열정 사랑 꿈
천숙녀
내가나를 참 많이
사랑하는 이유?
나는 나이니까
나는 매사에 성실하니까
나는 심성을 착하게 키우려 노력하니까
나는 햇살과 풀잎,
바람결에 눈물 쏟을 줄 아니까
나는 누군가를 위하여
진실로 아파할 줄 아니까
나는 가슴 외따로 간직한 그리움 한 덩이 안고서
저 별을 꿈꾸니까
나는 용기, 열정, 사랑, 꿈
연인이란 언어를 사랑하니까
☆★☆★☆★☆★☆★☆★☆★☆★☆★☆★☆★☆★
《94》
용기
천숙녀
이별이 아쉬워 밤을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는
착한 연인입니다
헤어짐을 무서워하면서도
눈빛 속에 빠져있는 우리는
용기 있는 연인입니다
그 용기 곁에 형벌, 가시밭길 줄지어 있지만
꿈과 혼魂 신비로움 덕분에
참을 수 있는 우리는 이 세상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자위합니다
자인합니다
☆★☆★☆★☆★☆★☆★☆★☆★☆★☆★☆★☆★
《95》
우리는
천숙녀
밤길을 위해
반짝이는 별
그대 고독에 빛나는
한 소절 노래
우리는
그대 홀로 가는 길에
향기로운 꽃
그렇게 서로 그리워
간절함으로 흘러가는
강물이 되어
바다에서 만나고
깊고 푸른 영원이 되리
☆★☆★☆★☆★☆★☆★☆★☆★☆★☆★☆★☆★
《96》
우물
천숙녀
깊은 우물 속에 나를 밀어 넣고
달빛 어리는 물 속에
흔들리는 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봅니다
그대를 느끼면서
생겨난 내 가슴속의 가시덤불
태워야 하지 않나요
태울 수만 있다면
성냥불 그어
흔적 없이 태우고 싶어집니다
☆★☆★☆★☆★☆★☆★☆★☆★☆★☆★☆★☆★
《97》
위해서라면
천숙녀
숭숭 뚫린 영혼
빗물이 스며든다
눈보라가 새어든다
부서지고 싶구나
으깨지고 싶구나
해가 서해에 곤두박질치듯
가라앉고 싶구나
침몰하고 싶구나
이 곤두박질,가라앉음,침몰이
사랑이라면
☆★☆★☆★☆★☆★☆★☆★☆★☆★☆★☆★☆★
《98》
이게 뭘까
천숙녀
이런 마음이 뭘까
느끼며
그리움에 젖습니다
어느덧 우리에게도
많은 추억이 있음을 알아차릴 때
거세게 밀려드는 충일함과 흥분이
기쁨으로 출렁입니다
당신이어서 좋은 세상
당신이어서 좋은 시간입니다
☆★☆★☆★☆★☆★☆★☆★☆★☆★☆★☆★☆★
《99》
이별이 아니어도
천숙녀
이별이 아니어도 슬픔은
우리 곁에 있다
별을 보며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별을 보며 우는 사람도 있다
계절을 바꾸는 바람결에
낙엽을 싣고 가는 물결에
외로움을 타는 그림자
햇살이 너무 따스해도
하늘이 너무 파래도
앓는 가슴
☆★☆★☆★☆★☆★☆★☆★☆★☆★☆★☆★☆★
《100》
이유
천숙녀
목숨을 목숨 껏 살 수 있도록
잡아 가두는 이
당신이란 걸
아시는지요
스물네 시간을 엿가락으로 늘여
당신 만나고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
《101》
있다라는
천숙녀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는 것이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있다>라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있다>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더군요
그<있음>의 바탕에는
<우리>라는 하나의 목적이 있기에
존재를 의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