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외근 나갔다 오면서 양재동을 지나는 일이 있었다. 양재동
빌라
촌 참 좋은 동네이다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그런데 연세가 70대후반
은 됨직한 분이 베낭을 앞으로 매시곤 힘겹게 한발 두발 옮기 시고 계
셨다.
아주 높은 붉은 색 담벼락을 지나는 할머니의 모습에 먼저 "나는
저렇
게 살지 않아야지"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나도 역시 그냥 물질을
향해 달려가는 하나의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이 될것인가? 라는 질문을 요즘 애기(참고로 집사람과 나의 애기는 세상에 나온지 가 157일 되었다) 생기고 나서는
예전보다 더욱더 많은 회수의 질문들을 나에게 한다.
모든 답의 종점은 돈을 많이 벌어야지 그래서 무엇무엇을 해야지라는 결론이 도출되곤한다.
붉은색 높은 담벼락에 색대비라도 하듯이, 베이지색 몸빼(경상도에서
만 얘기하는 표현인가?)와 밝은 청록색 니트를 입으신 채, 지나가시는
모습이 검정색 글자에 형광펜을 칠해 놓은 듯 나의 눈에 확연히
들어
온다.
땀흘리는 글을 읽고, 쓰고 싶은 나의 생각들이 왜 이리도 부끄러운지
라는 생각도 든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詩"는 그가 죽은 뒤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역사가 그는 무엇을 했고 무엇이었는지 증명해주고 있다.
내가 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일까? 내가 본 것은 높은 붉은벽돌의
담벼락과 그 앞을 지나는 나이 많은 늙은이를 본 것 뿐인데 말이다. 모든 세상을 짊어 지고 나고는 청년도 아닌데, 그저 평범한
한 가정을 이루고 이렇게 가끔 내가 가입한 카페에다 글을 싣는게
다인데, 무엇을 할 것이가?, 무엇이 될 것인가? 누구나 고민하는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신창원도, 노태우도, 전두환도, 김영삼도, 김두한도, 시라소니도, 여기에 접속한 모든 분 들도.......
그저 평범하게 살기 싫어서 이렇게 발버둥치는 건 아닐런지......
이렇게 글을 올려놓고 내 글의 조회수는 몇 번일까? 많이 되어있으면 히히낙낙, 적게 되어 있으면 읽지도 않으면서 내가 한 번 살짝 열어 보고 조회 횟수 늘리는.......
우습다. 아무렇게나 글을 써봐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위해서가 아닌 내가 손가는대로 이렇게 자판을 두들겨
보기도 한다. 이 글을 다시 본다면 아마도 내가 가입한 카페에다가 글을 등록시키기 보단 취소에 클릭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난 등록할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14.1" 모니터 앞에서는 별로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노래, 문화, 술, 음악, 방송, 신문, 책상, 의자, 기타, 피크, 스피커, 오디오, 비디오, 컴퓨터, 인터넷, 슭곰발 등 쿵쿵따 하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로 생각한 것이 아닌 손이 숙지한 대로 막 휘갈기고 있다.
오늘 퇴근하면서 오다가, 50이 넘은 분이 두 다리를 잃고 살아오시다가, 딸과 함께 서울대학교 예비소집일에 왔다는 뉴스를 들었다. 50이 넘은 나이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우매한 기자가 던지니 그의 대답은 "정의 사회 구현"이라고 했다.
누구나 로봇태권브이, 마징가제트, 독수리5형제, 아톰, 짱가, 마루치아루치, 스파이더맨, 슈퍼맨이 되고 싶어 한다. 정의는 비록
실천되지 않지만 힘을 가진 자가 못되는 사람들일 수록 말이다.
(무슨 말이지? 횡설수설, 황당무개)
2003년도는 양의 해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도 많이 생기겠지? 하하 나도 마찬가지이다. 민중가요를 좋아하고 노동가요를 좋아하고
세상의 평등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발리, 페라가무(?) 구두를 좋아하고, 까르띠에, 불가리 시계도 사고 싶고, 버버리 목도리는 기본이지, 안경테는 아르마니 아니면 구찌 등을 하고 싶다.
붉은 담벼락, 할머니, 내 생각 아무렇게나 정말 아무렇게나 손가는대로 글을 쓴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이 글을 끝가지 다
보시는 분들은 인내심이 아마 대단하신 분들일 것이다. 이 글을
다 보시는 분들에겐 소비자 가격 1,100원짜리 "무파마"컵라면을
편의점에서 사드려야 겠다. 김치랑 물은 기본이지.......
난 내일도 외근을 나갈 것이다. 모레도 글피도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은 쉬고 그 다음날, 다음날, 다음날....... 토요일, 일요일은
쉬고, 계속 반복 (때론 밤도 새겠지?) 또 반복일 것이다. (로또
복권이 걸리지 않는 한; 아마 100% 안 걸릴 것이다. 난 사지 않을
거니깐)
올 해는 양의 해이다. 자기 털을 깎아서 남들을 따뜻하게 하는 양의 해이다. (물론, 양들의 주인과 드라이크리닝을 해야하는(양의
털로 만든 옷) 세탁소 주인들 등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만......) 때론 늑대들에게 양의 탈을 제공하는 노릇을 하는 일들도 하겠지만, 하여간 올 한해는 부잣집 담벼락을 지나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기억하면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 담벼락을 조금 지나니깐 동네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리는 OO선교회관도
있더라.)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 어차피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되돌아간다는 아주 저속한 삶을 살기보단, 이 얼마난 살 만한 곳인가? 나의 집사람도 있고, 나의 애기도 있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친구도 있고 온라인 상에서의 친구도 있고 그 두 공간을 왔다갔다
하는 친구도 있고 말이다.
1995년 1월 1일 한 택시기사의 인터뷰가 기억이 난다. "올해는 열심히 산만큼 뭔가가 돌아오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했던
말이...... 세상에 대해서 무슨 억한 감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으로 바라는 삶이 실천 되었으면 하는 나의 큰 바램이 이 글을 쓰는 순간에라도 변치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다시 한번,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이런 정신 나간 놈도 지금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난 이 글을 쓴 놈보다는 낫지 ㅎㅎㅎ"하면서 정화작용(카타르시스)을 느끼시길 바란다.
언젠가는 술을 소주4잔(나의 한계, 5잔은 응급실)정도 먹고 높은
붉은 담벼락에 나의 신냄새나는 확인물을 토해내어 보련다.
2003년 2월 4일 (발렌타인 데이 10일전) 오후 9시 45분
박진우 올림
추신) 정태춘의 "사랑하고 싶소"노래가 땡기는 어느날, 담배불이
없어 가스렌지에 붙였는데 앞머리 몇 가닥이 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