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정(燕尾亭)
1995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연미정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며, 1244년(고종 31)에 시랑 이종주(李宗胄)에게 명하여 구재생도(九齋生徒)를 이곳에 모아놓고 하과(夏課: 여름철에 50일 동안 절에 들어가 공부하던 일)를 시켜 55명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삼포왜란 때 전라좌도방어사로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에게 정자를 하사하였으며, 현재도 황씨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 이곳은 민간인통제구역 이북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현재 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해제되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있다.
유명한 할머니 식당.. 좀 늦게 가서 갓지은 고슬고슬한 가정식 백반 식사는 못함
골담초
조해루
황형장군 택지
탱자꽃
태풍 링링때 부숴진 연미정 느티나무 사진
월곶돈대안에 있는 연미정
느티나무 맹아
왼쪽은 남한 오른쪽은 북한
김포 문수산
건너편 북한
월곶돈대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 242 소재
강화 북동쪽 월곶리에 있는 월곶돈대는 연미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교통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인 이곳에 월곶돈대가 들어선 것은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의 지휘로 48개의 돈대들이 축조되었을 때다.
돈대의 형태는 동서 47m, 남북 38m의 타원형이며, 둘레는 124보(148m), 치첩(성가퀴)은 48개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강 하구의 요충지를 방어한 월곶돈대는 적북-휴암-옥창돈대와 함께 월곶진에 소속되어 있었다.
강화의 12진보(鎭堡) 중 하나인 월곶진은 원래 교동(喬桐)에 있었는데, 강화도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종4품인 만호가 진보의 장이었던 데 비해 강화 방어체계의 중추였던 월곶진은 유일하게 종3품인 첨사가 통솔했다. 병력은 군관, 토병 등을 합해 약 130여 명 정도였다.
19세기에 제작된 8폭 병풍의 <강화도지도> (서울대박물관 소장)에 따르면, 연미돈(鷰尾墩)으로 표기된 연미정 외에 건물 지 1동이 추가로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강화외성으로 월곶돈대와 연결된 월곶진의 연결된 문루인 조해루
월곶진과 돈대 역시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된 탓에 붕괴되면서 많은 석재들이 유실되었지만, 강화 전적지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돈대 아래 강화외성의 6개 문루(門樓) 중 하나인 조해루(朝海樓)와 함께 오늘날처럼 제 모습을 되찾았다.
출처 : 인터넷 강화뉴스(http://www.ganghwanews.com)
강화 여행 엔딩을 하고
김포에 와서 이른 저녁 식사를...
여행의 완성은
먹방 엔딩 ㅎㅎ
첫댓글 강화다리 지나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미정,
바로 앞의
건너편에는 북한이
가까이 있어요..
언제나 통일이
될런지요...
할머니 식당에서
갓지은 밥과
반찬들이
맛있어요..
몇년전에 먹었던
붕어조림 맛 잊을 수 없어요.
민물매운탕은 안좋아하지만
빠듯하게 졸인 붕어조림은 먹을만 하지요~
연미정
유래 잘 알았습니다.
맛난 식사하셨군요.
뷰가 좋은 연미정
재작년에 탈북청년이
연미정아래 배수구로
다시 북한으로 갔지요.
아마 유도를 경유해
월경했으리라 짐작됩니다.
강화는 자하님품에
다 있어요
역시 꽃피는 계절이라
다른계절보다도 아름답게 보여요
쭈꾸미 볶음 맛있게
먹었겟어요
연미정 할머니 백반 먹으려 했는데
점심식사만 하시는지
문이 닫혀서
김포에 있는 북한강 쭈꾸미집이란 곳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