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부쩍 은퇴하는 사람이 많다. 은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택한 답은 외로움이었다. 돈과 건강보다 외로움을 먼저 걱정하는 것은 고립을 피하고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사회적 유대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외로움을 고통스럽게 느끼도록 유전자가 형성되었다.
친구들에게 초 단위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10대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하는 어른들까지 모두 외로움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버둥대고 있다. 외로움을 망각하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교유하고 대책 없는 소비와 쇼핑 중독, 유행에 빠져 허우적댄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도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혼자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외로움을 잊어버린 우리 시대의 풍경을 비판하였다. 나이 들수록 외로움의 고통은 잊기보다 익숙해져야 한다.
은퇴하면 명함이 사라진다. 안정된 직장이 주는 소속감과 번듯한 직위가 주는 우월감은 누군가를 만나 건네는 명함 한 장에 집약된다. 굳이 말로 자신을 소개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속에 은밀히 작동하는 명함의 힘이 사라지고 그 공백은 외로움으로 채워진다. 자식들은 장성하여 독립하고, 일로 만난 관계는 일 없으면 떠나며, 힘에 복속되어 따르던 자들은 힘이 없어지면 등을 돌린다. 은퇴 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가 은퇴하고 이렇게 오래 생존한 적은 없다는 사실, 그리하여 어떤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긴 외로움에 직면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외로움에서 나아가 고독을 만나야 한다. 영어로 외로움(loneliness)이 고립과 단절을 의미한다면, 고독(solitude)은 독립과 재생의 의미에 가깝다. 비슷하게 쓰이지만 뜻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고독사(孤獨死)라는 용어 때문인지 '고독'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원래 고독이란 말은 긍정적인 뜻이다. solitude의 어근인 sol은 본디 Sole, 즉 태양을 뜻한다. 고독에는 태양과 같은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로서의 자존감이 서려 있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완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순간이 고독이다.
고독은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출 필요 없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즐거움이다. 고독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인간관계의 피로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보고 자기 성장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상태이다. 외로움이 단절의 고통이라면 고독은 자유와 재생의 기쁨이다. 그래서 시인 황동규는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라는 뜻으로 '홀로움'이란 말을 새롭게 만들었다. 홀로움! 시인은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사실은 추억과 그리움에 잠길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라는 역설적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관계는 많으나 진정한 소통이 드문 것은 그리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관계의 거리를 요구한다. 인간의 정서 중에서 그리움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아름다운 거리 때문이다. 고마움의 기억이 그리움이 된다. 아무리 미운 자도 그와 함께했던 추억의 고마움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야 그립다. 그런데 아무리 고마워도 외롭지 않으면 그립지 않다. 결국 외로움이 그리움을 만든다. 그리워 만나야 진정한 만남이 되고, 그리워 만나야 어쩌다 한 번 보아도 기쁘다. 의례적인 만남, 늘 비슷한 사람을 만나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지루함보다 혼자 책을 읽거나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이 낫다.
만약 혼자 사는 사람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텔레비전부터 켠다면, 그것은 혼자 있기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 혼자 있을 때 조용하던 사람도 무리 지으면 떠들썩하고 방종한다. 무리 짓기 좋아하는 자는 약한 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일고일고(一孤一高), 한 번 고독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나아간다. 우리는 고독을 거쳐 더 나은 자신이 되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더 개방적이고 공감 능력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는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관계에 지치면 어떤 타인도 소중할 수 없다.
혼자 태어나 혼자 죽는 인간에게 외로움은 숙명이다. 내가 누군가를 잊듯 누군가도 나를 잊을 것이기에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동반자라 믿는 사람에게 고독은 힘이 된다. 두려워하면 외로움이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고독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아 불안해하면 외로움이지만, 혼자인 시간을 선물로 여기면 고독이다. 외로움은 견디는 것이고 고독은 누리는 것, 기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지 않다. 외로움을 길들여 잃어버린 고독을 찾을 때 삶은 풍요로워지고 은퇴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동아대 교수·한국어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