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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종교보다 여행이 당신을 행복하게 한다. 원문보기 글쓴이: 뿅망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는 것으로 바르셀로나 관광이 끝이 나고 내일은 마드리드 관광을 하는 일정으로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는 620㎞가 넘으며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7시간이나 걸린다. 그래서 내일의 차를 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바르셀로나에서 저녁을 먹고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레리다라는 곳에서 잠을 자는 것 으로 되어 있어서 바르셀로나의 해변가에 있는 식당으로 출발을 하는데 시간이 벌써 여섯시가 지났다. 파란 동그라미가 바르셀로나엑서 들른 곳이다....해변은 들르러 가는 중이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걸어나와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 거리의 모습 우리 말고도 다른 한국 관광객들도 이곳에서 기다린다. 길거이에 보이는 건물..관공서 인 듯 버스에서 보는 길거리 요트가 그 나라의 국민소득의 척도라는데...스페인은 우리나라와 국민소득이 비슷하나 지금은 조금 더 많아졌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놀이 공원이다. 여러가지 시설이 같이 있는 지역으로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더 복잡한 듯 주변의 풍경
식당은 커다란 쇼핑몰 안에 있는데 해산물전문요리점으로 우리가 먹은 것은 빠에야라는 음식인데 발렌시아의 대표음식 이라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다. 새우와 홍합을 밥과 후라이팬에 볶은 것으로 빠에야라는 단어는 후라이팬을 의미한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를 들르는 한국 관광객은 아마도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지 여행기에 보면 이곳에서 빠에야를 먹었다는 이야 기를 많이 올려놓았다.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아서 먹을 만하고 주변의 경치와 더불어 맥주한잔씩을 곁들이면서 여행에 대한 환담을 나누는데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서 일찍 식사를 끝내고 주변 구경을 하면서 사진도 찍었다.
이곳은 항구 안에 있는 인공적으로 만든 섬으로 주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트들이 정박하고 있고 음식점들과 쇼핑몰 놀이동산 같은 것도 있어서 이곳은 부산의 해운대나 인천의 월미도 같은 유흥지구 같은 곳이다. 인너넷에서는 지중해식 해물요리집으로 되어 는데 우리가 먹을 메뉴는 빠에야이다. 밖에는 바다와 몬주익 언덕이 보인다. 빠에야 주변을 둘러보더 나왔다. 안에서 환담하는 일행 사진도 찍어주고... 아래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오른 쪽 끝 기둥에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은 콜럼버스 동상이다. 놀이공원도 보이고... 시장도 열려 있다. 공연도 하고... 식당 2층에서 둘러보는 중이다. 식당에서 나와서 버스로 가면서... 구글 지도에 나오는 배...이 자리에 언제나 있는 배?? 해상공원??
한 시간도 체 되지 않는 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마드리드로 가는 도중에 있는 도시인 레리다로 출발한 시간이 7시 이다. 바르셀로나를 떠나면서 바르셀로나에서 보지 못한 것과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하기 위해서 수백 년 동안 투쟁해 나온 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많이 아쉽다.
바르셀로나에서 유명한 것이 스페인 프로축구리그의 우승후보 영순위인 바르셀로나 FC로 이곳에 오는 자유여행가들 은 바르셀로나 축구장을 들러보고 간다.
바르셀로나 축구단 휘장...1899년에도에 만들어진 축구팀이고... 바르셀로나의 시 기를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바르셀로나 축구장...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들려보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 출신으로 유명한 화가들이나 음악가들이 있는데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살바도르 달리와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후안 미로가 있어서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과 후안 미로 미술관도 바르셀 로나에 있는데 시간이 있다면 반드시 들러보고 가야 할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음악가로서는 세계 3대 성악가라고 불리우는 호세 카레라스도 이곳 출신이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멀리서 보면 마르린 먼로의 모습처럼 보인다고... 후안 미로 미술관 후안 미로의 그림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몬세라트 산에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이 유명한데 이곳도 자유여행자들은 반드시 들러 가는 곳이다.
몬세라트 산에 있는 수도원...기차가 저기로 올라간다고 한다. 검은 성모자상 ...누가복음서의 저자인 루카가 제작한 것을 베드로사 스페인으로 가져 왔다는 전설이 있는데 검사를 했더니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이 성모상 때문에 몬세라트 수도원이 더 유명하기도 한 곳이다. 몬세라트 수도원 카탈루냐(바르셀로나)와 스페인에 대해서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바르셀로나를 중심한 카탈루냐 지역은 스페인에서 분리독립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의 주된 인종인 같은 라틴계지만 기독교 왕국인 별도의 아라곤이라는 왕국이 있었으나 146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왕세자와 카스티야 연합왕국의 후계자 이사벨 1세가 결혼 한 후 카스티야 왕위계승 전쟁을 통해서 아라곤 왕국은 카스티야왕국에 합병 되었다. 노란색은 '카탈루냐의 황금빛 대지'를 상징하며, 붉은색은 '카탈루냐 독립군 사령관 손에 묻었던 피를 상징한다. 아라곤 왕국의 국장을 그냥 옆으로 눕힌 형태이다 그 후 1635년 스페인의 카스티야 왕국과 프랑스의 프랑크 왕국의 전쟁이 일어나자 카탈루냐 지역은 프랑크 왕국에 편입되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게 된다. 그 후 1700년에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의 루이 16세가 자신의 손자인 필립을 보내서 펠리페 5세로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으나 영국, 네덜란드, 합스부르크 제국 등이 반대하여 스페인의 왕위계승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카탈루냐와 바르셀로나는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을 추구하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보다는 어느 정도 자치가 허용되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왕조에 가담을 하였으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스페인의 왕위계승자로 지목되었던 카를 대공이 1711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게 되자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우려한 여려 나라들이 부르봉왕조의 왕위계승을 인정하게 되면서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그러나 카탈루냐는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받으며 끝까지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스페인 연합군과 맞섰으나 스페인 부르봉군에게 바르셀로나가 포위되어 제3차의 공방전 끝에 1714년 9월 11일 마침내 바르셀로나가 함략 당하면서 완전히 진압되었다. 새로 스페인에 들어선 부르봉 왕조는 예상되었던 것처럼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카탈루냐는 최소한의 자치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단순한 일개 주로 강등되고 말았다.
카탈루냐 지역의 위치
스페인이 세계를 제패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 공화정부가 수립되면서 사회주의의 좌파세력이 커지게 된다. 1931년 4월, 지방 선거에서 약진한 카탈루냐 좌파는 4월 14일 ''카탈루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자 이 선언에 놀란 스페인 제2 공화국 임시정부는 카탈루냐에 독립을 철회하고 대신 자치 정부 '제네랄리타드'를 구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1934년 10월 6일, 제네랄리타드 데 카탈루냐의 수반인 류이스 쿰파니스가 스페인 연방 공화국 내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였고 스페인 정부는 군을 투입해서 자치정부를 해산하고 말았다.
1936.7월 좌파정권에 반대하여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우파 반란을 일으켜서 프랑코가 승리하여 프랑코가 집권하면서 집권하는 기간 동안 페인의 다른 모든 지역과 마찬가지로 심하게 탄압을 당하면서 자치권이 제한되었으나 프랑코 사후 다시 자치권을 얻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2014년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비공식 주민투표를 강행했으나 스페인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2015년 분리주의 세력이 다시 여당이 되면서 2017년 10월 1일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에 따라 2017. 10.27 카탈루냐는 독립을 선포하였는데 이는 카탈루냐 역사에서 등장한 5번째 카탈루냐 공화국이었다. 그러나 10.31일 스페인 정부와 의회가 독립을 취소시키므로서 5일간의 단명 공화국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이전 네 번의 공화국은 1641, 1873, 1931, 1934년에 선포하였으나 모두 단명으로 끝났는데 길게는 일주일이고 가장 짧았던 것은 9시간이라고 한다.
지금도 바르셀로나를 중심한 카탈루냐 사람들은 자신들이 스페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카탈루냐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