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독일 신부가 찍은 재미있고 유익한, 그리고 아주 귀한 필름입니다. 2010.02.21 KBS 방송.
화면 상태도 마치 최근에 찍은 듯이 선명합니다. 재생 시간(57분>이 다소 길지만 틈나실 때 꼭 보실 만합니다.
독일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총원장이 1915년 출간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초판에 사용한 원본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습니다.
베버 신부는 20세기 초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한국에 선교사로 부임했습니다. 우월감과 편견을 갖고 한국 또 한국인을 바라본 다른 서양인과 달리 베버 신부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애정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일제에 나라를 뺏긴 조선이 민속문화와 전통가치마저 잃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던 베버 신부.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바탕으로 사진에 그런 모습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25년 두 번째 한국 방문에서는 35㎜ 필름 1만 5천m 분량의 영상을 찍고, 독일 현지에서 이를 무성영화로 만들어 상영해 당시 조선을 독일에 알리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쓴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의 표지. 그는 1차 방문 때인 1911년 2월 17일부터 6월 24까지의 짧은 기간에 방대한 분량의 사진과 영상, 여행기를 남겼습니다
단오- 그네타는 모습
신식교육을 받은 소녀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겨리 쟁기 - 토양이 거친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소 두 마리로 끄는 쟁기
실을 만든 후 옷감을 다시 만듭니다
장안사 비구니들은 은둔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조선인들은 지금처럼 학구열이 높았다고 합니다. 베버 신부는 원산 등 함경도에 성당보다 더 많은 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중에 산수 문제를 푸는 모습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학교 운동회
베버 신부가 소달구지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는 모습. 장거리 여행갈 때 소달구지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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