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부석사(太白山 浮石寺)는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며,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영주(榮州) 부석사(浮石寺)는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절집으로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이곳은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큰 가르침을 폈던 곳이다.
의상대사가 이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이교도들이 방해하자 선묘 낭자가 나타나 용(龍)으로 변하여 조화를 부려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물리쳤다 하여 절 이름을 부석(浮石)즉, 뜬 바위라 하는 부석사(浮石寺)라고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스테파노가 이미 답사한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 말사인 서산 도비산 부석사(島飛山 浮石寺)는 영주 태백산 부석사와 동명이찰(同名異刹)인데, 창건 설화에 얽힌 전설도 매우 유사한다. 중국 유학길, 의상대사, 선묘낭자 등등 배경과 등장인물이 거의 똑같다. 그러나 서산 부석사보다는, 영주 부석사가 일반 대중(大衆)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영주 부석사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조사당(국보), 소조여래좌상(국보), 조사당 벽화(국보), 석등(국보), 3층석탑(보물), 석조여래좌상(보물), 당간지주(보물), 고려각판(보물), 원융국사비, 불사리탑 등등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취현암,범종루,안양문,응향각,등의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부석사 무량수전과 부석사 조사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후기의 건물인 범종루(梵鐘樓), 원각전(圓覺殿), 안양루(安養樓), 선묘각(善妙閣), 응진전(應眞殿), 자인당(慈忍堂), 좌우요사(左右寮舍), 취현암(醉玄庵), 성보전시관 등이 있다.
한국 건축미의 백미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은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고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아하고 단조로우며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당우 아래 나지막한 산봉우리 들이 예(禮) 갖추고 절을 올리듯 끝없이 펼쳐진다.
부석사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바라보는 안양루 아래 펼쳐지는 낙조((落照)의 미(美)는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형언할 수 없다.
수차례 답사한 부석사 절집은 계절 따라 색다른 멋과 풍경을 선사하며 스테파노의 마음을 내려놓게 만들고 고요한 평정심을 불러일으킨다
눈이 부시게 푸른 가을날 일주문에서 천왕문에서 안양루로 이어지는 노란 은행나무 길은 스테파노가 답사한 그 어느 절집의 가로수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으뜸으로 가히 환상적이다.
의상대사를 모신 조사당 옆에 꽂아놓았다는 지팡이가 선비화(仙扉花)가 되어 수많은 중생의 손길을 피하기 위하여 철망으로 감금되어 있는 골담초(骨擔草)를 보면 미련한 인간들의 손길이 얼마나 더러운지 안타깝게 느껴진다.
현판은 부석사 뒷산이 봉황산이라서 "봉황산 부석사" 라고 쓰여있는데 태백산 줄기라는 큰 의미에서이제는 "태백산 부석사" 라고 개칭하여 새롭게 달아놓아도 좋을 듯 하다. 스테파노가 답사한 날이 부석사 사과 축제라서 어수선하였다. 안양루 경내까지 쿵짝거리는 음악 소리가 무척이나 거슬렸고, 부석사 초입 상가들도 어찌보면 필요악이라고 생각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사찰 주변 십 리 안에는 입주도 제한하고 불필요한 시설물도 철거했으면 좋겠다.
특히 차량은 절대로 사찰 경내로 진입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고, 호젓한 산길을 힘들더라도 걸어서 부처님을 친견했으면 참 좋으련만 편리성에 중독되어 있는 우매한 중생들은 그러지 못함이 개탄스럽다. (물론 장애인, 노약자, 절집 관련자와 차량은 예외지만...)
스테파노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따라서 일주문, 천왕문, 안양루에 이르기까지 호사를 하면서 부처님을 알현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소확행을 실천하였다. 그리운 사람끼리... ─┼ * 박인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