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 1669),
[삼손과 들릴라] The Blinding of Samson, 1636
Oil on canvas, 236 x 302 cm
Stadelsches Kunstinstitut, Frankfurt
렘브란트는 판관기에 나오는 괴력의 힘을 가진 장사 삼손의 생애를 다섯점의 연작으로 남겼는데 이 그림이 들릴라의 간계에 빠져 머리칼을 깎이고 눈을 잃게 되는 순간의 삼손을 가장 참혹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들릴라의 손짓 신호에 의해 숨어있던 터키 복식의 불레셋 병사들이 잠에 골아떨어진 삼손을 포박한 채 하나가 그의 오른쪽 눈을 찌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삼손의 발가락이 독수리 발톱처럼 웅크러지는 중에 또 다른 하나의 미늘창이 그의 사타구니를 파고들려 한다.
빛이 왼쪽에서 들어오는 사이 가위로 자른 삼손의 머리타래를 거머쥔 들리라는 두려움과 연민 속에 자신의 연인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쳐다본다. 빛은 뱀처럼 차가운 혓바닥으로 삼손의 고통을 훑어 내린다. 17세기 네델란드의 신앙세계를 지배한 칼뱅교회의 구교에 대한 전투적 신앙자세는 화가들로 하여금 성서에 나오는 잔혹 소재를 부추겨 그리게 하는 시대적 정신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부친의 실명을 지켜본 렘브란트는 시각의 상실 소재를 예사롭게 보지 않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삼손의 운명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리라.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 1669),
[삼손과 들릴라]Samson And Delilah
Panel, 1628, 24 1/8 x 15 5/8 inches (61.4 x 40 cm)
Private collection
성서의 사사기에 등장하는 삼손은 엄청난 힘을 지닌 사나이다. 미쳐 날뛰는 사자의 입을 두 손으로 찢어 단숨에 숨통을 끊어 버렸고, 당나귀 턱뼈를 휘둘러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저승으로 보낸 헤라클레스와 함께 용맹한 남성의 상징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격정적이고 초인적인 힘을 가진 남성이 흔히 그렇듯 마음을 저울질하지 않고 남을 쉽게 믿는 약점을 지녔다. 정에 헤픈 그의 단순함은 처절한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그 끔찍한 사건이 어떻게 싹을 튀우고 열매를 맺었는지 살펴보자.
신에게 몸을 바쳐야 하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삼손에게는 몇 가지 지켜야할 금기 사항이 있었다. 독한 술과 부정한 음식을 피하고 괴력이 솟아나게 하는 머리카락을 절대로 자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삼손은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 팔레스티나 여인 들릴라를 미치도록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꼬임에 넘어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 팔레스티나 지도자들에게 은 천 량에 매수된 들릴라가 삼손을 잠재우자 적들은 그의 머리카락을 벤 후 힘을 잃은 그의 두 눈을 칼로 잔인하게 도려냈다. 정욕에 눈이 먼 벌로 애인에게 배신당하고 장님이 된 것이다.
Lovis Corinth,
[장님이 된 삼손]Samson Blinded,
1912, Oil on canvas, 50 11/16 x 41 in. (130 x 105 cm),
Nationalgalerie, Berlin
위 그림은 독일 분리파의 창시자요, 표현주의의 선구자 로비스 코린트의 <눈 먼 삼손>에서 삼손이 원수들에게 복수를 가하는 극적인 순간을 묘사했다. 힘을 잃고 장님이 된 삼손은 어두운 감옥에서 맷돌을 가는 수모를 당하는 동안 그의 머리카락이 자란 것을 느낀다. 다시 옛 힘을 되찾은 삼손은 블레셋인들이 축제 날, 신전을 지탱하는 두 기둥을 흔들어 건물을 파괴하고 적들과 함께 최후를 맞는다. 지금 이 장면은 초인적인 힘이 되살아난 삼손이 온 몸을 비틀어 무쇠같은 두 팔로 기둥을 밀어내는 긴박한 순간을 표현했다. 복수의 화신이 된 그의 얼굴에서 소름끼칠 만큼 강한 분노와 울분이 뿜어져 나온다. 사랑을 저버린 여인에 대한 증오가 그를 저토록 미쳐 날뛰게 만든 것일까?
Mantegna,
[삼손과 들릴라] Samson and Delilah,
1500, Tempera on linen, 18.50 x 14.49 inches / 47 x 36.8 cm,
National Gallery, London, England
이 극적인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는 예술가들의 창작욕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그중에서도 주제를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진 르네상스의 거장 만테냐의 <삼손과 들릴라>를 보자. 들릴라는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진 삼손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두 연인 곁에는 우람한 고목이 우뚝 서 있고 그 나무 둥치를 포도 덩쿨이 휘감는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포도 줄기와 탐스런 포도송이는 술의 위험을 상징한다. 삼손이 정신없이 잠에 취한 것도 여인의 농간에 빠져 과도하게 술을 마신 탓이다.
절단된 고목의 가지는 삼손의 거세를 암시한다. 정신 분석학에서 머리카락은 남성의 생식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넘쳐흐르는 물은 무절제한 정욕의 분출을 의미한다. 고목 밑둥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사악한 여자는 악마보다 세 배나 더 나쁘다'는 뜻이다. 그림은 삼손의 성욕을 억제하지 못해 비극을 자초한 사실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Rubens,
[삼손과 들릴라] Samson and Delilah,
1609, Oil on wood, 72.83 x 80.71 inches / 185 x 205 cm
National Gallery, London, England
바로크의 대가 루벤스는 드라마의 무대를 애욕의 흔적이 흥건히 배인 들릴라의 침실로 옮겼다. 들릴라가 넋이 빠진 얼굴로 자신의 무릎에 파묻혀 단잠에 빠진 삼손을 내려다본다. 여인의 몸이 지옥으로 이끄는 지름길인 줄도 모르고 삼손은 잠결에도 사랑하는 여인의 아랫배를 더듬는다. 방금 전까지 쾌락을 나눴던 잠든 연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들릴라의 미묘한 표정에는 연민이 드러나 있고, 그녀의 어루만지는 손길은 삼손의 어깨에 닿아 있다.
이런 들릴라의 감상과 미련을 밀쳐내듯 블레셋인이 잠든 삼손의 머리카락에 서둘러 가위를 밀어 넣는다. 늙은 여인은 희한한 구경거리를 행여 놓칠세라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춧불을 밝힌다. 노파는 돈을 탐하는 악의 화신이요, 창녀를 갈취하는 색주가의 여주인을 상징한다. 이 안타까운 광경을 차마 눈뜨고 보기가 괴로웠던가? 비너스 조각상은 비통한 표정이 역력하고 큐피트도 입을 막은 채 어머니의 다리에 안타까이 매달린다. 방문 밖에는 삼손을 잡아갈 병사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영웅의 파멸을 재촉하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한 줄기 촛불이 앞가슴을 풀어 헤친 들릴라의 터질듯한 유방을 황홀하게 비춘다. 이 비단결 같은 육체에 홀려 삼손은 맹목적인 사랑에 빠졌으리라. 루벤스는 17세기 최고의 화가답게 빛과 어둠을 이용해 사랑과 배신, 성욕과 죽음, 죄와 벌이라는 영원한 테마를 걸작으로 승화시켰다.
루벤스의 맞수 렘브란트는 블레셋 병사들이 삼손의 눈을 도려내는 참혹한 순간을 묘사했다. 다섯 명의 블렛세 병사가 맹수처럼 삼손을 덮친다. 두 사람이 삼손의 목을 끌어안고 쇠사슬로 손을 묶는 동안 한 병사가 삼손의 오른쪽 눈에 날카로운 단검을 무자비하게 쑤셔 박는다. 아픔을 이기지 못해 몸부림치는 삼손!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었으면 저토록 발버둥치며 발가락을 오그리는 것일까? 귀를 찌르는 삼손의 비명이 양심에 걸린 걸까? 한 손에는 가위를, 다른 한 손에는 삼손의 머리털을 움켜 쥐고 달아나는 들릴라의 표정에 죄책감과 연민이 교차한다.
들릴라는 미모와 성적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한 후 파멸시키는 죄악의 상징이다. 돈을 탐내 예수를 배반한 유다 같은 여자, 사랑하는 남자를 돈 때문에 팔아 넘긴 탕녀, 들릴라는 돈과 성욕으로 빚어진 요부의 전형이다.
이명옥의 <팜므 파탈> 中
[장님이 된 삼손]

[장님이 된 삼손]
The Blinding of Samson 1636, Oil on canvas, 236 x 302 cm
Städelsches Kunstinstitut, Frankfurt
삼손을 다룬 작품은 루벤스, 얀 리벤스 등 동시대 화가에 의해 수차례 다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처럼 실제적으로 삼손을 재현하지 못했다. 렘브란트는 삼손이 블레셋 병사들에게 무자비하게 눈을 뽑히는 섬뜩한 장면을 보여준다. 흡사 삼손이 잔혹하게 피를 흘리는 그 현장에 온 것같다.
들릴라는 삼손을 함정에 빠뜨려 블레셋 병사들에게 팔아넘겼다. 삼손은 여자의 유혹에 농락당했고 사사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했다. 주님이 떠난 삼손은 더 이상 장사가 아니라 허우대만 멀쩡한 약골에 불과했다. 더 중요한 것은 머리를 깍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그는 너무 쉽게 유혹에 빠졌고 흔들렸으며 마침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그림에서 들릴라는 가위를 들고 있고 한 손으로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다. 삼손이 잠든 사이 머리털을 자른 들릴라는 ‘그러면 그렇지’하며 음산한 미소를 흘린다. 더 이상 아무 힘도 쓸 수 없게 된 삼손은 블레셋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무차별 공격을 당한다. 그들은 성난 표정으로 삼손을 창과 검으로 위협하고 꼼짝 못하게 붙들고 있으며, 쇠고랑을 삼손의 팔에 채운다.
삼손의 처참한 유린은 눈을 뽑히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갑옷을 차려입은 병사는 예리한 흉기로 힘껏 삼손의 눈을 찌른다. 이 순간 비명과 함께 삼손의 눈에는 피가 터져나온다. 무방비 상태로 봉변을 당한 삼손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발버둥을 치지만 소용이 없다. 그는 결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무력한 존재가 되어 적들의 수중에 넘겨졌다.
그는 시각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그뒤 삼손은 쇠사슬에 묶인 채 연자맷돌을 돌리며 짐승과 같이 살았다. 겨우 목숨만 건졌을 뿐 그를 기다리는 것은 막심한 후회와 주위에서 보내지는 조롱뿐이었다.
그는 비싼 대가를 지불한 뒤에야 눈을 떴다. 정상적이었을 때는 흐트러진 생활을 했지만 눈을 잃은 후에 늦게나마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모든 것을 빼앗긴 후에야 자기 백성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다. 최후를 장렬하게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여전히 하나님은 삼손의 편이셨다. 삼손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방신전을 무너뜨리고 단숨에 삼천여명을 죽이게 하셨다. 이때 돌더미에 깔려 죽은 사람이 ‘그가 살았을 때에 죽인 사람들보다 더 많았다.’(삿 16:30)
어거스틴은 유명한 『참회록』에서 두가지 빛이 있다고 했다. 한가지는 낮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이며, 다른 한가지는 참된 빛으로 이것은 헌신의 길에서 나온다고 했다.“토비트(외경에 나오는 신앙이 돈독한 눈먼 유대인)가 시력을 잃고서야 빛을 보았는데 그 빛으로 토비트는 자신의 아들이 참된 길을 갈 수 있도록 가르쳤다.”
삼손 역시 눈을 잃고서야 참된 빛을 볼 수 있었고 그 빛으로 인하여 참된 길을 갈 수 있었다. 눈을 뽑히지 않고서 참된 길을 갈 수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은 나의 속 좁은 생각에 불과하다.
서성록, 국민일보(2004.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