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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
여행일 : ‘19. 5. 11(금)~12(토)
여행지 : 전라남도 순천시(낙안읍성, 국가정원, 순천만습지), 보성군(차밭). 여수시(오동도, 해상 케이블카), 곡성군(기차마을)
함께한 사람들 : 가족여행
특징 : 큰 처남의 둘째 아들이 얼마 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직장이 위치한 순천에다 새 둥지를 틀었단다. 기(氣)가 센 자매 셋이 머리를 맞대고 숙덕거리더니 집들이 겸해서 신혼집을 다녀오잔다. 멀고 먼 남녘의 끝자락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지만 까짓 신경 쓸 그녀들은 아니다. 다음은 대리운전 해줄 남편들. 요것들도 늘 해오던 대로 통보만 하면 끝이다. 당사자나 마찬가지인 처남댁까지도 끽소리 못하고 따르는 형편인데 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1박2일짜리 주말여행이 시작되었다. 현지에서의 안내는 물론 처조카 내외가 맡았다. 여행전문가나 마찬가지인 내 조언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 여행의 시작은 낙안읍성(사적 제302호,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281-2)
남해고속도로(순천-부산) 서순천 IC에서 내려와 22번 국도를 이용 순천시내로 일단 들어온다. 호현삼거리(순천시 덕월동)에서 2번 국도로 갈아타고 여수방면으로 내려가다 연동삼거리(순천시 교량동)에서 우회전하여 ’민속마을길(58번 지방도)‘을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낙안면 소재지인 ’동내리‘에 이르게 된다. 옛 낙안현의 근거지인 읍성(邑城)이 있던 곳으로, 그 역사는 마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시대에는 분차(分嵯), 분사(分沙), 부사(夫沙)라고도 불리는 파지성(波知城)이었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는 분령군(分嶺郡)이었다. 고려 시대에 들어오면서 양악(陽岳) 또는 낙안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읍성이란 종묘와 왕궁이 있는 도성(都城)의 상대개념으로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부(府)·목(牧)·군(郡)·현(縣) 등 행정 구역의 등급에 따라 크기에 차이가 있었고, 크기는 주민의 수와 관계있었다.
▼ 읍성은 성문을 잇는 도로를 기본으로 하여 동서와 남북이 T자형 축이다. 남북은 의전을 위한 축이고 동서는 일상생활의 축이라고 한다. 과거에 주민들은 동문인 낙풍루를 통해 성 안팎을 드나들었고 동문 밖으로 쭉 내려가면 낙안향교를 거쳐 벌교로 갈 수 있었다. 동서 축은 길가에 건물들이 즐비했고 길에는 5일장이 서서 사람들로 붐볐단다. T자형 간선로를 제외한 길은 자유 곡선형의 좁은 골목길이다. 주택들은 대부분 좁은 골목길에서 연결된다.
▼ 성곽(城廓)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편에는 장승(벅수)과 솟대(짐대)가 세워져 있다. 이곳뿐만 아니라 서문과 남문 등 다른 성문 앞에도 세워져 있었다. 성문의 앞에 세운 이유는 장승이 마을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솟대는 긴 장대 위에 기러기 또는 오리가 있는 형태다. 기러기는 태양신의 사자로 죽은 영혼을 하늘로 인도한다고 믿은 데서, 오리는 물에 살며 알을 많이 낳으므로 화재 예방을 기원하고 물의 부족함 없이 해마다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데서 유래했다.
▼ 탐방은 동문(東門)인 ’낙풍루(樂豊樓)‘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이 문은 동·서·남의 세 출입구 가운데 하나로 1987년에 복원됐다. 동문은 본디 봄을 상징한다(경복궁의 동문도 ’建春門‘이다). 거기에 풍년에 대한 염원을 더함으로써 ’봄에 씨앗을 뿌려 풍년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완성시켰다. 현판은 서예가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2006)이 썼다고 한다. 참! 읍성은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이 가운데 40%는 문화재관리비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돌아간단다. 읍성 안의 식당에 당직까지 서는 등 주민 전체가 똘똘 뭉쳐 마을 지키기에 앞장서는 이유일 것이다.
▼ 낙풍루 앞에는 ‘석구(石狗)’ 조각상 세 개가 서 있다. 읍성 축성 당시 낙안고을과 낙안읍성의 수호신으로 삼기 위해 돌로 개 모양의 조각상을 세운 것이란다. 왜구(倭寇)로부터 지역과 주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면 되겠다. 실제로 낙안읍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봉산 일대에서 다수의 왜구가 참살되었는데, 이때 죽은 자들의 귀신이 낙안읍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석구상’을 세웠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 입구에는 ’2019년 순천 방문의 해‘라는 입간판을 세우고 읍성의 사계를 그려 넣었다. ’세계 속의 문화유산, 낙안읍성‘이란 입간판도 보인다.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2011)된 것을 홍보하고 있나보다. 한편 이곳 낙안읍성은 CNN 선정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된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19 한국 관광의 별'에 꼽히기도 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에 이끌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감독들이 이런 마을을 그냥 두었을 리가 없다. 드라마 ’대장금‘, ’허준‘을 비롯해 영화 ’아름다운 시절‘, ’춘향전‘, ’태백산맥‘, ’취화선‘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 안으로 들어서자 저잣거리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기념품 가게와 소품용 농기구를 파는 공방이 주머니 푼돈을 넘보는가 하면 향토음식점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냄새는 식욕을 북돋운다. 참고로 낙안읍성에는 과거로부터 유명한 먹을거리가 전해져 내려온다. ’팔진미‘라고 하는데 낙안 땅에서 나오는 여덟 가지의 재료로 만든 것이란다. 남내리의 미나리, 서내리의 녹두묵, 진산인 금전산의 석이버섯, 좌청룡인 오봉산의 도라지, 우백호인 백이산의 고사리, 남동쪽 제석산의 더덕, 성북리의 무, 불재(금전산 동쪽 고개) 아래의 용추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등이다.
▼ ’산삼 막걸리‘를 판다는 가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기껏해야 인삼 몇 뿌리 집어넣었을 것 같은데도 ’산삼(山蔘)‘을 사용했다며 너스레를 떠는 게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홍어삼합과 육전, 해물파전, 간재미초무침 등 안주도 무궁무진하게 준비되어 있단다. 국수류의 식사는 물론이고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는 커피 같은 음료수도 제공된다니 웬만한 휴게소 수준이라 하겠다.
▼ 마을에 있는 집들은 너나없이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읍성은 1910년 일본의 ’철거령‘으로 인해 대부분 철거되었다. 현재 비인읍성과 해미읍성, 동래읍성, 보령읍성, 진도읍성 등 십여 개의 읍성이 남아있는 정도인데 그중에서도 이곳 낙안읍성은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관광용으로 세트화한 민속촌이 아니라 실제로 남도 사람들의 삶이 배어 있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동문 길가에 위치한 ‘최창우 가옥(崔昌羽家屋 : 중요 민속자료 제97호)’인데 큰길가 쪽의 점포 옆 대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안채가 있다. 안채는 부엌·방·헛간의 순으로 배열되었으며, 'ㄱ'자로 꺾여서 다시 작은방을 두어 점포와 연결시킨다. 옛 모습을 지닌 점포라는 점과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ㄱ'자형 평면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집이다. 이밖에도 멋을 잔뜩 부린 ‘박의준 가옥(이방의 집, 중요 민속자료 제92호)’ 및 양규철 가옥(중요 민속자료 제93호), 이한호 가옥(중요 민속자료 제94호), 김대자 가옥(중요 민속자료 제95호), 주두열 가옥(중요 민속자료 제96호), 최선준 가옥(중요 민속자료 제98호), 김소아 가옥(중요 민속자료 제99호), 곽형두 가옥(중요 민속자료 제100호) 등이 있다.
▼ 읍성의 관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조선시대 호랑이 장군으로 유명한 임경업을 기리는 비각(碑閣, 전남 문화재자료 제47호)이 있다. 낙안 군수로 1626년부터 2년간 봉직하면서 선정을 베푼 것을 기리기 위해 1628년 군민들이 세웠다고 한다. 그가 낙안읍성을 보수한 기록도 이 비석에 적혀있단다. 동문 밖 낙안향교 입구에는 임경업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민사(忠愍祠)도 있다. 임경업은 병자호란 당시 역모죄로 몰려 조정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도 이런 환대를 받는 것은 그만큼 많은 덕행을 베풀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임경업과 같은 용맹한 장수가 순천 앞바다에 출몰하는 왜구로부터 읍민들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 참! 이왕에 시작했으니 낙안읍성을 쌓고 왜구들로부터 향토를 지켰던 김빈길 장군도 한번 살펴보자. 그의 위패는 충민사에서 남의집살이를 하고 있다. 원래는 삼현사라는 사당에서 별도로 모셨는데 일제 때 폐쇄시켜버렸단다. 자기들 조상을 수없이 무찌른데 대한 보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몇 걸음 더 걷자 관아(官衙)가 나온다. 낙안읍성의 기본은 행정도시다. 세조 12년(1466) 낙안군이 편제된 이래 1910년 폐지될 때까지 군 청사가 있던 고을로 현재의 벌교읍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관할했다. 그러니 관청이 기본이고 객사와 동헌, 부속 건물이 필수다. 동헌(東軒, 아래 사진 오른편)은 고을 수령이 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오늘날의 군청에 해당한다. 1990년 복원된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 팔작지붕으로 객사보다 다소 작다. 동헌은 지방 관아의 안채이자 내동헌이라 부르는 내아(內衙)‘와 협문으로 연결된다. 왼편에 보이는 이층 누각은 ’낙민루樂民樓)‘로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함께 호남의 명루로 꼽힌다.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집으로 1986년 낙안읍성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두 그루의 굵은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낙민루 앞마당은 ’구정뜰‘이다. 나주 부사가 각 군을 순회할 때 아홉 번째로 들러 쉬며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 그 오른편에는 ’낙안객사(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170호)‘가 있다. 매월 삭망(朔望)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 예를 올리고 사신의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군수 이인이 세종 32년(1450)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로 앞면 3칸짜리 건물을 중심으로 부속 건물이 대칭으로 붙어 있다. 앞뒤로 간략하게 맞댄 맞배지붕이며 부속 건물은 팔작지붕이다. 일제는 조선을 병합한 후 조선총독부령 제1호를 통해 조선 역사의 상징인 관아와 성곽들을 헐어버리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했다. 이때 낙안객사도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해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다행히 헐리는 것은 면했다. 덕분에 1986년 학교를 이전하고 내부를 보수해 원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 조금 더 걸으면 서문(西門)이 나온다. 악추문(樂秋門)이란 현판을 달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그나저나 낙안읍성의 매력은 성벽 위를 걸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출발점이 서문인데, 이곳에서 쌍청루로 가는 성벽 구간이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 성벽 양편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 모습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 뒤에 보이는 산은 낙안읍성의 진산인 ’금전산(金錢山)‘이다. 정상부의 서쪽, 그러니까 낙안읍성 방향이 모두 바위로 뒤덮여 있어 그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들이 사시사철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 이젠 성벽(城壁)의 위를 걸어볼 차례이다. 낙안읍성의 성벽 둘레는 1.385m. 이 가운데 서문에서 출발해 중간지점인 남문을 거쳐 동문까지 성벽의 위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성벽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4~5m라고 한다. 성벽의 두께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데 아랫부분은 7~8m로 윗부분 3~4m의 2배다. 성벽은 큰 돌을 양쪽 바깥에 쌓아 틀을 만들고 잔돌을 사이에 채우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아래쪽부터 커다란 ‘깬돌’을 올리면서 틈마다 작은 돌을 ‘쐐기’로 박았으며,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석재의 크기를 줄였다. 핵심방어시설이라 할 수 있는 옹성(甕城)은 남문터와 서문터에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적대(敵臺)도 동문터 좌우와 동북쪽·동남쪽 모서리에 각각 하나씩 있다.
▼ 성벽의 양옆에는 민가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하나같이 초가 일색인 것은 구성원대부분이 민초들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맞다. 낙안은 양반들보다는 관에 출입하는 아전들이나 가난한 서민들이 주로 살았다. 굳이 2년 임기의 지방관들과 어울릴 이유가 없는 양반들이 관아가 있는 읍성에서 벗어나 향촌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란다. 한편 이곳 낙안읍성에는 깊은 우물이 없다고 한다. 풍수지리의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해서 성내에 깊은 우물을 파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란다. 배라는 게 본디 물에 떠다니는 것이니 언제 가라앉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다면 식수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마을 중앙에 1미터 정도의 낮은 천연 샘이 있어 식수 공급은 걱정 없었단다. 이를 배 안에 고인 물로 인식했으니 배 안에 들어 온 물은 퍼내야 안전하므로 천연 우물을 사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 남쪽으로는 널따란 들녘이 펼쳐진다. 남해 여자만(汝自灣)의 해풍을 받는 낙안 들판으로 해발 50미터의 분지형이다. 나머지 삼면은 모두 겹겹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이곳 낙안의 지형은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이라고 한다. 멀리 부용산을 넘어 말봉이 있고, 금전산을 넘어 동북쪽에 옥녀봉(520미터)이 있는데, 산자락이 금전산까지 이어져 옥녀가 머리를 감아 빗고 장군에게 투구와 떡을 드리기 위해 거울 앞에 단정히 앉아 화장하는 모습 같다는 것이다.
▼ 성벽투어 도중 만나게 되는 남문, 즉 쌍청루(雙淸樓)도 동문과 마찬가지로 누각식 성문이다. 정면 3칸에 측면이 2칸인 건물은 1987년에 복원되었다. 남문은 여름을 상징한다. 그래선지 무더운 여름철 이곳에 올라서면 남다른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단다. 참! 남문 근처에는 2002년에 복원한 옥사(獄舍)가 있다. 팔작지붕으로 된 다른 관청들과는 달리 ’우진각지붕‘으로 지어진 게 특이한데, 안에는 칼을 쓴 죄인을 비롯한 다양한 모형들을 전시해 놓았다.
▼ 성곽을 걷다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계단도 만난다. 평야지대에 들어섰지만 완벽한 평지는 아니라는 얘기일 것이다. 잠시 후 낙풍루에 이르면 낙안읍성 투어는 끝난다. 조금 더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읍성의 역사를 회상하며 달래본다. 낙안읍성은 우리나라 3대 읍성(고창읍성, 서산 해미읍성) 중 하나이자 읍성 안에 100여 가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유일한 읍성이기도 하다. 대지와 사람이 두루 평안하다는 ‘낙토민안(樂土民安)’에서 유래된 마을답게 낙안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이자 땅이 기름져 곡식이 늘 풍성해 백성들이 부족함 없이 잘 살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왜구들의 침입이 빈번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성들을 보호하고 왜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태조 6년(1397년) 낙안 출신의 김빈길 장군이 부민들을 거느리고 토성을 쌓은 게 바로 낙안읍성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토성이다 보니 각종 풍수해와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고을과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어려움이 따라 세종 6년(1424년)부터 석성으로 쌓기 시작해, 1626~1628년 임경업 장군이 이곳 군수로 역임하면서 석성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 점이 인정받아 국내 최초로 성과 마을 전체가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었다.
▼ 두 번째 방문지는 보성군의 ‘차밭’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차 생산지일 뿐만 아니라 산자락에 기대어 늘어선 차밭의 아름다운 곡선미가 일품이라는데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은 ‘봉산리(보성읍)’에 위치한 ‘한국차 문화공원’이다. 널디 너른 차밭 외에도 한국차박물관과 세계차나무식물원, 천문과학관 등의 시설이 들어서있는 복합문화단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맞게 ‘제45회 보성 다향대축제(茶香大祝祭)’가 열리고 있었다. 이 축제는 한국차문화공원 및 보성차밭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다. 1975년 보성다향제를 시작으로, 명칭이 변경돼 오다가 2015년부터 보성다향대축제라는 이름으로 개최되고 있다. 축제는 국제차문화교류전, 국제차요리 페스티벌, 국제명차선정 페스티벌, 다례 시연, 차 체험 및 시연 등 70여 가지 행사가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한국 차박물관, 보성녹차 큰장터, 보성로컬푸드마켓, 보성녹차 전시판매장, 농특산품 전시판매장 등에서는 질 좋은 녹차를 구입할 수도 있다.
▼ 공원주차장에 차려놓은 몽골텐트촌을 벗어나 주행사장으로 가볼 차례이다. 그 중심인 한국차박물관까지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줄이 길어 그냥 걷기로 했다. 아니 차밭만 둘러보려는 우리로서는 굳이 전동차를 탈 필요가 없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참! 이곳 주차장에서 왼편으로 가면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대한다원’이 나온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50여만 평에 이르는 너른 차밭과 삼나무, 편백나무 등의 조경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는 곳이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 입장이 가능하지만 한번쯤은 꼭 찾아볼 만한 곳이다.
▼ 10분쯤 걸었을까 비탈진 산자락에 터를 잡은 널디 너른 차밭이 나타난다. 그 한가운데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한옥이 커다랗게 지어져 있다. 처마에 걸어놓은 ‘한국 명차 선발대회’ 현수막에 적힌 ‘보성차품평관’이 이 건물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차는 은은한 향이 있고 마시면 정신을 맑게 한다고 해서 옛날부터 스님이나 선비들이 즐겨 마셨다. 특히 차를 좋아했던 정약용은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즐겨 마시는 민족은 흥한다.’고까지 했다. 강진군 백련사에서 혜장선사(1772-1811)를 만나 차를 마시면서 나누었다는 ‘나는 요즘 차를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소.’라는 또 다른 대화도 있다. 얼마나 차를 좋아했으면 한 잔의 차에다 인생과 국가의 미래를 담았을까? 그런 멋진 차를 마셔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보성이다. 거기다 지금 열리고 있는 ‘다향대축제’에서는 차밭의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공짜로 차를 마셔볼 수도 있다.
▼ 그 위에는 정자도 지어져 있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온 시인묵객들에게 하룻밤 잠자리라도 제공하려는 듯 가운데에 방까지 들여놓았다. 맞다. 겨울에도 보성 녹차 밭은 천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사계절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등성이를 따라 물결처럼 펼쳐진 녹차 밭은 드라마, 광고, 영화 할 것 없이 모든 영상 매체가 애용하고 있어 보성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녹차하면 보성 녹차밭의 초록물결을 떠올린다. 이영애, 이정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선물’의 촬영 장소였던 차밭은 30여만 평의 규모.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장관이 스크린에서 펼쳐졌다. 또 2003년 송승헌, 손예진이 출연한 KBS드라마 ‘여름향기’도 보성 녹차밭이 주요한 배경이었다.
▼ 정자에 오르자 널디 너른 차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차밭의 이랑이 흡사 능구렁이가 구불텅구불텅 기어가는 듯하다. 이런 풍경에 반한 미국 CNN 방송은 2012년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기도 했다. 당시 CNN은 지역소개 사이트인 ‘CNN Go’를 통해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50 beautiful places to visit in Korea)'을 선정했는데 보성 차밭이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당시 CNN은 ‘대한민국의 40%정도 되는 녹차가 보성의 차밭에서 자란다’며 ‘무성한 차밭은 드라마나 광고 또는 영화의 촬영지로 애용되어 왔으며 사진작가들의 명소로도 알려져 온 곳’이라고 밝혔다. 또한 ‘녹차 아이스크림이나 녹차 삼겹살처럼 녹차와 관련된 음식과 물건들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바로 끝없이 펼쳐진 차밭 때문이다’라면서 ‘매해 5월에는 녹차 축제가 열린다’고 소개했다. 참고로 보성은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됐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차를 생산해 왔던 지역이다. 차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함께 나타나야 하고, 사질양토이며 강수량이 많아야 하는데, 보성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 포토죤도 여러 곳에 만들어 놓았다. 특히 하트 형상의 ‘리마인드 웨딩’ 포토존은 결혼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서로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결혼기념일에 또 한 번의 프로포즈를 함으로써 아내에게 사랑을 받는 남편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고, 사귀고 싶거나 결혼하고 싶은 여성분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단다. ‘가족애’를 담은 인생샷을 건져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라 하겠다.
▼ 아래 사진은 축제장의 입구라 할 수 있는 ‘한국차 문화공원’ 주차장이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보성종합관광안내센터인 ‘붓재’이다. 1층과 3층은 보성의 역사와 문화, 예술 그리고 날로 변화되고 있는 차산업과 차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꾸며졌다. 그리고 2층에는 보성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티 하우스 ‘그린다향’과 보성 특산품을 판매하는 ‘그린마켓’이 들어서 보성차를 원료로 한 다양한 블렌딩차와 청정 보성에서 생산된 농특산물을 만나볼 수 있다.
▼ 축제 기간에는 1천여 명의 관광객이 한복을 입고 찻잎을 따는 ‘한복입고 찻잎 따기’ 퍼포먼스(사진은 다른 분의 것을 빌려왔다)도 열렸다고 한다. 2018년 보성의 계단식 차밭이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1호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고, 2020년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를 기원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또한 이 행사는 ‘찻잎 따기’ 기네스에 도전하는 의미도 지녔단다.
▼ 첫 날의 마지막 여행지로 조카의 아파트 근처에 위치한 ‘순천만국가정원(順天灣國家庭園)’을 찾았다. 요즘 외지에까지 입소문을 타고 있는 유명 횟집이 정원과 아파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결정 요인이었다. 그렇게 결정된 순천만국가정원은 순천시 풍덕동과 오천동 일원에 조성된 우리나라의 첫 번째 ‘국가정원’이다. 2013년 4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최된바 있다.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의 승인(2009.9.16)하에 열린 이 박람회는 총 23개국이 참가했으며, 34만 평의 행사장에는 83개 정원(세계정원 11개, 참여정원 61개, 테마정원 11개)이 조성되었다. 박람회가 대 성공을 거두게 되자, 이에 힘을 얻은 순천시에서는 2014년 4월 20일 ‘순천만정원’이란 이름으로 영구적 개장을 선포한다. 이에 공감한 정부에서도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순천만 정원’을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2015.9.5.)했다.
▼ 지구상에서 가장 온전하게 보전되고 있는 습지 가운데 하나인 ‘순천만습지’는 자연이 만든 ‘정원(庭園, Garden)’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인간이 덧칠을 해 ‘순천만정원’을 조성했고, 생태 도시로 완성된 모습을 ‘박람회’라는 이름을 빌어 세계인들에게 내보였다. 사람과 자연, 도시와 습지가 공존하면서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가치를 함께 누리고 나누자며 말이다.
▼ 동·서로 나누어진 두 개의 문 가운데 하나인 서문으로 들어서면서 투어가 시작된다. 서문 구역은 ‘순천만국제습지센터’와 순천만WWT습지, 한국정원, 하늘정원, 수목원전망지, 나무도감원, 야생동물원, 물새놀이터, 늘푸른정원, 철쭉정원, 분재예술테마파크, 에코지오온실, 꿈의광장과 수목지역 등이 조성되어 있다. ‘순천만국제습지센터(아래 사진)’는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주제관 역할을 하던 곳으로, 순천만의 생태적 중요성을 비롯하여 종합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 국제습지센터의 ‘물새놀이터’에는 홍학 수십 마리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터키의 ‘소금호수’에서 엄청난 규모의 홍학 군무를 보면서 염분이 있는 물에서 사는 새인가 보다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아무튼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눈요깃거리였다. 그러나 센터 지붕에 잔디를 깔아 조성했다는 ‘하늘정원’은 둘러보지 못했다. 친환경으로 단열효과를 높였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 서문구역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순천만WWT습지’에서는 수생식물과 야생 조류가 어울려 살아가는 습지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습지 뒤로 보이는 곳은 ‘수목원 전망지’와 ‘철쭉동산’이다. 수목원전망지는 편백나무와 소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산꼭대기에 조성되어 국가정원의 전체 경관과 순천시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다.
▼ 한국정원은 한민족 고유의 오래된 정원을 재현한 곳으로, 경복궁 후원을 기본으로 하여 조성한 궁궐의 정원과 군자(선비)의 정원, 서민의 정원에 해당하는 소망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복궁 교태전 뒤뜰에 있는 것을 재현해놓은 연휘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아미산 굴뚝, 정면에 창덕궁 후원인 부용지와 부용정, 어수문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 밖에도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경북 영양의 서석지, 담양을 대표하는 별서정원인 소쇄원 광풍각,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덕천서원 앞 세심정 등이 차례로 이어진다.
▼ 동·서문 지역을 연결시키는 ‘꿈의 다리’로 가는 광장은 전국 16개 도시의 명산과 강에서 옮겨온 흙과 물로 조성한 소통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 광장의 오른편에는 ‘스카이큐브(Sky Cube)’의 정원역이 있다. 스카이큐브는 순천만정원 ‘꿈의 다리’에서 ‘순천만생태공원’까지 약 4.6㎞ 구간을 왕복 운행하는 소형 궤도열차로 순천만정원의 정원역과 순천만습지의 문학관역을 상공에 설치된 레일에 따라 운전자 없이 자동 운행한다. 높게는 10m 상공을 가로지르는 스카이큐브에 오르면 발아래 펼쳐지는 순천만정원과 동천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다고 한다. 특히 문학관역에서 내리면 ‘무진기행(霧津紀行)’을 쓴 김승옥 작가 및 동화 ‘오세암’의 작가 정채봉 등 순천이 배출한 걸출한 문학인을 기리는 문학관까지 둘러볼 수 있단다.
▼ ‘꿈의 다리’는 동천을 가운데 두고 둘로 나누어진 동·서 구역을 사람의 힘으로 연결시킨 가교(架橋)이다. 지난 2010년 중국 상해엑스포에서 한국관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설치미술 작가 강익중의 작품으로 '자원의 재생과 순환'이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컨테이너 30여 개를 활용해 생태 도시를 지향하는 순천의 꿈과 희망을 담았다는데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세계 최초의 물 위에 떠 있는 ‘다리 미술관’으로도 불린다.
▼ 길이 175m의 다리 외부는 오방색을 띠는 유리타일 1만여 개를 붙였고, 내부에는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이 희망을 담아 정성껏 그린 3인치 그림 14만5천 점이 빼곡히 걸려 있다. 작가는 그림에 담긴 모든 꿈이 바람에 함께 섞이고 모두의 꿈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원했단다. 아무튼 하나하나 다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유리타일에 새겨진 재미있는 글과 재치 넘치는 어린이들의 작품을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 꿈의 다리를 건너면 ‘동문구역’이다. 이곳에는 세계정원과 순천호수정원, 한방체험센터와 약용식물원, 갯지렁이 도서관 및 갤러리, 생태체험교육장, 참여정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동문구역에 들어서니 주위가 온통 꽃들 세상이다. 아니 공원 전체가 꽃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게 옳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하긴 매년 봄 ‘봄꽃 향연’이란 축제가 열릴 정도라니 오죽하겠는가. 축제 기간에는 정원 곳곳에 심어진 벚꽃·튤립·유채·철쭉·작약·장미 등 봄꽃 1억 송이가 꽃망울을 활짝 열면서 각자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한단다. 고품격 퍼포먼스와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도 함께 즐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올해는 3일 30일에 열렸다는데 아쉽게도 지난주에 끝나버렸단다. 뮤직 서바이벌과 코미디 서커스 쇼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졌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매년 7월에서 8월 사이의 야간에는 ‘물빛축제’가 열린다. 물·빛·음악·호수정원 경관이 어우러진 ‘워터라이팅쇼’와 라이트가든(빛 조형물 포토존 등)이 연출되며, 축제 기간에는 어린이 물놀이장도 문을 연다. 특히 올해는 ‘DJ 치맥 페스티벌’도 열린다니 나 같은 생맥주 마니아들에게는 천국일 수도 있겠다. 또한 가을철에는 ‘갈대축제’, 그리고 겨울철에는 ‘별빛축제’도 열린단다.
▼ 동문구역은 많이 넓다. 다리품을 팔아가며 둘러보기가 부담스럽다는 얘기이다. 그래선지 동문 일대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전기관람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한번에 20명쯤 탈 수 있는데, 프랑스정원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정원, 독일정원, 메타세콰이어길, 실내정원, 흑두루미 미로정원과 호수정원 등을 20분 동안 운행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대한 해설까지 제공되니 3천원(성인 기준 이용료)의 행복이라 할 수 있겠다.
▼ 이젠 다리품을 팔아볼 차례이다. 그 첫 번째는 ‘프랑스 정원’이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1638-1715)’가 베르사유 궁전에 꾸며놓은 정원을 아담하게 재현시켰다. 유난히도 출장이 잦았던 ‘프랑스’, 고즈넉한 풍경을 좋아하는 나는 일정이 주말을 낀 경우에는 어김없이 중세 유적들을 찾았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그리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정원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소원을 이제야 푸는 모양이다. 너무 왜소한 게 다소 흠이겠지만 말이다.
▼ 다음은 봄철의 백미(白眉)인 튤립과 풍차의 조화가 아름다운 ‘네덜란드정원’이다. 튤립은 네덜란드의 국화이자 상징이다. 이밖에도 세계정원에서는 이탈리아와 미국, 멕시코, 중국, 일본 등 각 나라별 특성과 환경에 따라 조성된 정원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소박하지만 정감이 넘치는 독일정원과 오렌지나무가 식재된 스페인정원, 덥고 습한 아열대 기후를 이겨내기 위한 태국정원 등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 정원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었다. 순천만정원이 조성되면서 이곳으로 오게 된 나무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순천시 용암마을 묘지에서 자라던 수령 90년 된 소나무는 지구정원의 ‘1번 나무'가 되었다. 무게가 5t이나 되는 이 나무를 옮기기로 한 날, 헬리콥터가 아무리 들어 올리려고 해도 꿈쩍하지 않던 나무가 막걸리 한 잔을 부어 주자 거짓말처럼 번쩍 들렸다고 한다. 이밖에도 5분만 늦었어도 잘려나갈 뻔한 '5분 전 은행나무', 두 번이나 벼락을 맞고도 100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는 ‘근심 먹는 은행나무’, 혼자 사는 할머니의 생명을 구하는 등 세 번이나 감동을 주었다는 나이가 300이나 되는 ‘기막힌 모과나무’ 등 사연도 가지가지이다. 참! 나무도감원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흔히 만나는 느티나무, 팽나무를 비롯해 이야기가 있는 나무들도 만날 수 있다. 특히 나무에 부착된 QR코드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그 나무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말 그대로 도감 역할을 한단다.
▼ 이젠 순천만정원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호수정원’을 둘러볼 차례이다.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인 영국의 ‘찰스 젱스(Chales Jencks)’가 순천에 머무르면서 직접 디자인한 정원으로 순천의 지형과 물의 흐름을 잘 살려 산과 호수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형태로 조성했다고 한다. 6개의 언덕은 각 언덕마다 인재, 포용, 성공과 명예, 성취, 사랑, 부부애의 뜻을 담고 있단다. 이왕에 왔으니 차례로 오르며 그 의미를 한번쯤 새겨볼 일이다.
▼ 호수공원을 구성하는 여러 언덕 가운데서도 백미는 단연 ‘봉화언덕’이다. 이 언덕은 순천 도심(都心)에 터를 잡고 있는 봉화산(365m)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호수는 도심을, 그리고 호수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형태의 다리는 순천의 젖줄인 동천을 상징한단다. 탐방로는 데크 다리를 건넌 다음 나선형 산책로를 따라 꼭대기까지 오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
▼ 호수의 중심에 있는 봉화언덕은 높이가 16미터로 순천만국가정원에서 고도(高度)가 가장 높다고 한다. 그래선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올라야만 정상에 이를 수 있도록 길을 내놓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오르거나 내려오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언덕의 정상에도 입구와 출구를 따로 만들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부딪치지 않도록 했음은 물론이다.
▼ 얼핏 영국의 ‘스톤헨지(설계자가 영국인이라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를 연상시키던 정상은 막상 특이한 게 없었다. 패널 모양의 조형물들로 둘러싸인 자그만 광장의 한가운데에 나무 한그루가 달랑 심어져 있는 게 전부이다. 아니 다리품을 팔고 올라온 사람들을 배려한 돌 의자 몇 개도 보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순천만정원의 멋진 풍광에서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순천만정원과 순천호수공원의 각기 다른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해룡언덕, 앵무언덕, 인제언덕처럼 순천 도심을 둘러싼 산에서 이름을 따온 언덕들은 물론이고 호수 주변에 조성해놓은 바위정원, 무궁화정원, 장미정원 등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아래 사진은 ‘순천만언덕’이다. 그 왼편에는 앵무언덕, 그리고 오른편은 해룡언덕이 터를 잡았다.
▼ 아래 사진은 ‘인제언덕’이다. 순천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이수는 ‘동천’과 ‘이사천’을 의미하며, 삼산은 인제산(麟蹄山 : 남산), 봉화산(烽火山), 해룡산(海龍山)을 일컫는다.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을 모두 호수공원에 재현해 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인제언덕의 오른편에는 프랑스정원 및 난봉산(鸞鳳山)을 재현한 난봉언덕과 함께 갯지렁이 도서관, 갯지렁이 갤러리 등 갯지렁이를 주재로 한 구역이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영국 첼시 플라워 T의 금상 수상자인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가 설계했다는 ‘갯지렁이 다니는 길’은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갯지렁이가 지나간 길처럼 밑으로 푹 꺼진 공간에 다양한 오브제(objet)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 잔디마당에는 가설무대가 차려져 있었다. 야외공연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잔디마당의 왼편에 위치한 ‘흑두루미 미로정원’과 ‘소망언덕’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이중 소망언덕은 지난 2013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아 조성됐다. 언덕에 올라 순천만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고 서있다 보면, 자신의 마음 속 소망 한 가지는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드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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