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동백 주제에 의한 변주곡
신원기
해 진 바다 위
한 점 구름은 서서히 창백해지고
먼바다를 등지고 돌아오는 어선이 검어질 때
유인등의 긴 꼬리는 파도 따라 흔들리네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짙게 분칠한
붉은 입술의 늙은 주모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꿈속처럼 웃으며 서 있네
미역 소라 멍게 꼴뚜기
접시 가득 담긴 물큰한 바다 것들
할멈 고향은 어디요?
충청도에서 이 멀리 전라남도까지 왔지라
그이 따라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그런 그이가
가마득한 옛날에
동백이 붉게 피어 자지러지는 새벽에
배 타고 나간 후 소식이 없지라
어느 바다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 뻘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았으면
그란디
지금도 이따그믄 창밖을 보며 기다리고 있구먼
불타는 황혼을 이고
저만치 저만치
웃고 나타날 것 같아스라......
---애지 봄호 발표 예정
이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또한 그는 화가이자 영화평론가이다. [모란 동백]은 이제하의 시이며, 그가 자기 자신의 시에다가 곡을 붙인 것이 조영남이 불러 크게 히트시킨 [모란 동백]이라고 할 수가 있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라는 시구는 내가 사랑했던 모란아가씨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가고 없다는 것을 뜻하고, 그렇지만 “상냥한 얼굴 모란아가씨/ 꿈속에서 찾아”와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너무나도 맑고 간절하게 애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은 육체의 본질이자 만물의 근원이며, 따라서 모란아가씨는 죽고 없어도 그녀의 영혼은 이처럼 살아남아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제하의 [모란 동백]의 전반부가 모란아가씨의 영혼과 그 노래라면 후반부는 동백아가씨의 영혼과 그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아가씨/ 꿈속에서 웃고 오네”도 이미 동백아가씨가 이 세상을 떠나가고 없다는 것을 뜻하고, 그렇지만 “상냥한 얼굴 동백아가씨” “꿈속에서 웃고 오며”,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먼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랫뻘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너무나도 맑고 간절하게 애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언어이고, 언어는 모란아가씨와 동백아가씨의 영혼(생명)이며, 비록,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을 떠나가고 없을지라도 시는 살아남아 그 아름답고 슬픈 사랑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것이다.
신원기 시인의 [모란 동백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이제하의 시와 조영남의 노래에 대한 변주곡이며, 그 노래의 추상성에 구체적인 삶과 그 역사성을 부여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할멈 고향은 어디요?”라는 물음에, “충청도에서 이 멀리 전라남도까지 왔지라”는 시구는 그 할머니의 고향이 충청도라는 것을 뜻하고, “그런 그이가/ 가마득한 옛날에/ 동백이 붉게 피어 자지러지는 새벽에/ 배 타고 나간 후 소식이 없지라”의 시구는 사랑하는 남편이 머나먼 바다에서 비명횡사를 했다는 것을 뜻한다.
동백은 전라도 사내가 되고, 모란은 충청도 여자가 된다. 동백은 한겨울에 피고, 모란은 이른 봄날에 핀다. 모란과 동백은 상사화相思花와도 같으며, 그 모든 사랑의 주인공과도 같다. 붉디붉은 동백이 ‘꽃중의 꽃’인 모란의 마음에 선혈이 낭자한 상처를 남기고 떠나가자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짙게 분칠한/ 붉은 입술의 늙은 주모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미역 소라 멍게 꼴뚜기/ 접시 가득 담긴 물큰한 바다 것들”과 함께, 술을 팔고 있는 것이다.
붉디붉은 동백도 아름답고, 꽃중의 꽃인 모란도 아름답다. 모든 사랑은 티없이 맑고 순수한 사랑이며, 모란과 동백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더없이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 동백은 벌써 지고,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다. 동백은 자기 자신의 짧은 생애와 함께 모란을 잊지 못해 꿈마다 찾아오고, 모란은 너무나도 일찍 떠난 동백을 잊지 못해 “어느 바다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 뻘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았으면// 그란디/ 지금도 이따그믄 창밖을 보며 기다리고 있구먼/ 불타는 황혼을 이고/ 저만치 저만치/ 웃고 나타날 것 같아스라....”는 시구에서처럼, 언제, 어느 때나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시는 사랑이고, 사랑은 그리움이다. 모란과 동백, 충청도의 여인과 전라도 뱃사람과의 사랑 노래----.
신원기 시인의 [모란 동백 주제에 대한 변주곡]은 이제하 시인의 [모란 동백]에 구체적인 살과 뼈, 혹은 삶과 역사를 부여한 서정시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모든 주제를 꿰뚫고, 그 주제를 가장 아름답고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한다.
신원기 시인의 [모란 동백 주제에 대한 변주곡]은 그의 사상의 꽃이자 시의 열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