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라는 말의 뜻에는
1789-1815년 사이에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샘솟으면서 숱한 투쟁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이때는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시기로서, 이때의 사조를 낭만주의라고 하였다. 이 시기에 많은 천재 예술가들이 태어났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성주의는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종교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낭만주의에서는 종교적 열정을 부활하여 ‘신비’를 찾으려고 하였다.(숭고미 등) 따라서 낭만주의자들의 주장도 아주 다양하여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낭만주의자들도 서로가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
수탕달의 말이 낭만주의를 잘 짚어냈다고 한다.
“낭만주의 작품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목적이지만 고전주의 작품은 선조들에게 기쁨을 준다.”
낭만주의를 예술의 사조로 보기보다는 시대의 사조로 보자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를 낭만주의 작가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나 행적을 보면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에서 무신론자로 변신을 하였다.(시대의 흐름에 따랐다고 하겠다.)
문학은 상징어에서 구체어로(시-->소설), 회화는 화려함보다는 사실성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흘러, 사실주의가 나타난다.
1986년에 케럴린 하이브런이 이렇게 썼다.
“낭만적이라는 말의 뜻은 사실과 동떨어진 것, 광택 밑의 참모습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없는 자를 현혹시키는 그릇된 매혹을 매력으로 기억한다. 광고는 전적으로 낭만에 의존한다.”
이 말은 낭만적이라고 말을 할 때는 으레 감정을, 즉 심약하고 실연에 끝없이 눈물이나 짓는 몽상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