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018년 6월 4일자 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법부 판결에 따른 국민 신뢰도는 '불신'(매우 불신 17.6%, 상당히 불신 19.6%, 다소 불신 26.7%) 응답이 63.9%로, '신뢰' (매우 신뢰 2.2%, 상당히 신뢰 5.4%, 다소 신뢰 20.0%) 응답 27.6%의 두 배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위 여론조사 결과를 방증하기라도 하듯, 원세훈 댓글공작 사건, KTX 근로자 복직사건, 쌍용차 해고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소위 시국 사건과 관련,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가 재판 결과를 두고 거래를 했다는 의혹에 대하여, 검찰이 지난 주 법원행정처에 전·현직 법관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업무용휴대전화를 제출해 달라고 법원행정처에 요청하는 등,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다 보니 인공지능을 도입했으면 하는 의견들도 꽤나 보입니다. 마침, 옥스퍼드 대학 연구에 따르면, 미국 대표 직업 704개 중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공지능 등 컴퓨터 기술로 대체될 직업들로 변호사·판사, 회계사, 세무사, 의·약사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바, 실제로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뉴욕 대형 로펌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는 미국의 스타트업 로스인젤리전스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변호사 로스(ROSS)를 사용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인텔리콘메타연구소의 법률 인공지능시스템 유렉스(U-LEX), 법무부의 대화형 생활법률지식 서비스 ‘버비’ 등 인공지능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법관을 대체할 수 있는지와 관련하여, 30여년 간 판사로 재직하고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장까지 지낸 랜들 레이더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교수와 같이, "인간인 판사가 사건을 판결하는 데 있어 (정치·철학적 측면의) 개인적인 관점을 완전히 배제하기란 쉽지 않으므로, 컴퓨터는 이러한 인간의 편향성을 제거해줄 것이고, 인간 보다 아마 더 빠르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인공지능이 법조계 상당수의 일자리를 대체하면 현재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반면,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인 고상영 판사와 같이 “인공지능이 문제되는 법적 쟁점을 확정하고 해당 쟁점과 관련된 법령·판례·문헌을 검색하는 단계까지는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으나, 문제된 사례를 위 검색된 자료들에 포섭시키는 단계까지는 수행하기는 어렵고, 설령 인공지능이 포섭을 수행할 수 있다 하더라도 포섭은 인간 고유의 통찰력이 필요한 지적 작업이므로 이 작업을 인공지능에 맡기기는 어렵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재판 거래 의혹의 중심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과거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 사이의 바둑 대결이 있었던 2016년도 무렵 일선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강연에서 ‘일반 국민에게 비쳐지는 사법부의 신뢰 문제’를 거론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여 사법부가 헌법이 부여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창의적·창조적으로 가야함’을 역설한 적이 있습니다.
헌법은 제103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여기의 ‘양심’은 도덕적·주관적 의미가 아닌 객관적·법률적·직업적 의미의 양심을 의미합니다. 국민에 의한 선출 절차를 거치지 않는 권력인 사법부가 존립할 수 있는 근거는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진실을 가려내고 정의를 추구하며 소수파를 보호함에 있으며, 위와 같은 사법부 존립 근거는 인공지능에 의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사법부가 국민에 대한 신뢰를 어떤 방법으로 회복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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