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72]가을날, 아름다운 사돈査頓 자랑
# 여동생 부부가 내려왔다. 매제는 학교를 나보다 1년 일찍 다녔지만 동갑내기. 동갑인지라 비교적 막역한 편이나, 성격과 습관이 판이하여 어느 때에는 말다툼할 때도 종종 있다. 그거야 가족끼리 겪는 ‘삶의 양념’일 터. 우리도 7남매이지만, 그는 9남매의 맨 꼴래비. 그러니 앞서 세상을 떠난 형님들과 누님도 있게 마련. 형제가 아홉이나 되다보니 열 손가락 이름이 다 다르듯, 인생관이나 생활관이 똑같을 수는 없다지만, 동생부부가 나누는 대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어쩌다 듣다보면 ‘그럴 수도 있구나’ ‘어쩌면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을까’ ‘유전자가 대체 뭐길래 가족력家族歷이란 게 그렇게 무섭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좋은 쪽이라면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칭찬해주고 싶지만, 대부분의 부창부수는 칭찬보다는 그 반대의 의미로 비난이나 힐난의 뜻으로 쓰이는 것같다. 그 남편에 그 아내, 그 아내에 그 남편, 그러니까 '그 밥의 그 나물'인 것이다. 어느 집은 부럽고, 어느 집은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인근에 사는 매제의 띠동갑(해방둥이) 형님은 평소에도 형제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남다르다고 한다. 형님이 그러니 형수님도 같은 듯, 1년에 한두 번 들르면 동생부부에게 무엇이든 못줘서 안달이란다(마치 나같이. 흐흐). 반대로 어느 집은 살림이 넉넉한 편인데도 (형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다는 것. 말하자면 ‘살림의 야꼽쟁이’로서 동생부부에 대한 작은 배려도 없고, 누구에게도 밥 한번 사본 적이 없는 부부. 어쩌면 그럴까? 왜 그렇게 살까? 돈을 죽어 짊어지고 갈까? 엊그제의 실례이다. 청웅면에 맛집으로 소문난 다슬기수제비집(청웅분식)이 있는데, 동생부부에게 사주고 싶어 우리집으로 차를 몰고 오셨다. 잘 다녀오라고 대문 밖에서 배웅하는 나를 보고, 차에서 내려 따뜻하게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우리 ‘묵은 사돈査頓’이니 같이 갑시다”. 묵은 사돈, 같은 말이래도 얼마나 듣기 좋은가? 맞는 말이다. 이무럽다면 이무러운 사이. 30여년도 더 관계를 맺아 살고 있으니, 가족 근황까지도 잘 알고 있으니 ‘꺼그러운 사이’일 까닭이 없지 않은가. 굳이 거시기할 일은 없지만, 사양을 하고 돌아서는데, 그 형제가 무척 부러웠다. 늙어갈수록 '동구간(동기同氣,형제)' 밖에 없다는데.
# 다음날 일요일, 동생부부의 차편으로 요양원 아버지를 함께 면회한 후 논산에 사는 막내부부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께 ‘멸구 대폭격’사진을 몇 장 보여드리니, 천재지변이라며 깜놀. 당신이 이날 이때껏(근 90년) 농사를 졌지만, 이런 흉측한 광경은 처음이란다. 매제가 “농사 망했으니 처남에게 돈 좀 주시라”고 농을 하자 희미하게 웃는다. 막내매제는 올해 초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후, 그전에도 쭈욱 그래온 ‘농부 교장선생님’이었지만, 밭농사에 일로매진하고 있다. 트럭을 사고, 고향집 본채를 손보고, 사랑채를 헐러 3×6m짜리 컨테이너 2개를 이어붙여, 아주 멋드러진 간이농가주택을 만들었다. 주방, 화장실, 보일러 등을 갖춰 신혼살림도 충분할 공간. 300평이 넘는 밭이 5개쯤 되고, 야산이 있는데, 온갖 농산물을 구비하고 있다. 그러니 일손이 얼마나 가겠는가.
최근 배춧값이 급등한 판에 매제의 밭의 배추는무성하기만 하다. 부지런한 농부의 힘이다. 고추, 갓, 생강, 대파, 쪽파, 고구마 등 없는 게 없다. 차고 넘친다. 과일은 또 어떤가. 연시와 대봉시, 알밤, 대추 등 사돈집은 가을이면 그야말로 풍요롭다. 3남2녀, 막내동생은 암것도 모르고 결혼을 해 큰며느리 노릇하느라 30년이 넘게 '죽을똥'을 쌌다. 그 결과, 시부모(특히 시아버지)로부터 완벽한 신임을 얻은 ‘착하디 착한’ 우리 막내.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어릴 적 나의 첫 기억은 어머니가 동생을 낳던 1963년 섣달 그믐날로부터 시작된다. 눈을 뜨니 아버지가 새끼를 꼬고 있었다. 이윽고 숯을 끼운 새끼줄이 대문 위에 걸어놓았다(금줄). 그런 막내이니 어찌 예쁘지 않겠는가. 환갑을 넘은 어느해에는 내 허벅지에 베고 누운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다음은 어제의 ‘아름다운 현장’을 몇 시간 동안 목격한, 막내와 동갑인 시누이의 오지랖 이야기이다. 김장하기 전 자란 무를 시누이부부는 밭에서 몽땅 뽑아와 다듬어 굵은 소금으로 저려놓은 것도 부족해 빨간고추에 사과와 생강을 놓고 갈아 김치 담을 양념을 만들어놓았다. 올케의 언니에게 주려는 속셈이다. 아니, 친정엄마도 아니고 사돈을 위한 지극정성이 솔직히 지나쳤다. 둘째동생은 좋으면서도 연신 민망해했다. 끝물인 고추도 짱아찌하라고 한 바작(충청도에선 바지개) 따놓았다. 농부로 변신한 4명이 밭에 달라붙으니 못할 일이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쪽파도 허벌나게 다듬어주고, 고구마 한 박스, 알밤 한 되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이런 일은 어머니가 총생들에게 마구마구 퍼주는 것과 똑같지만, 정말로 흔치 않은 일이다. 천사표 사돈(막내의 시누이와 그 남편)의 표상이다.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논산에서는 막내의 시부모를 위시하여 얼굴도 모르는 손위 시누이, 손아래 시아재 등 전가족이 문상을 왔다. 이것도 사실 흔치 않은 일. 어느 해에는 우리 어머니 병원에 계신다고 문병을 와 얼른 쾌차하시라는 쪽지편지와 함께 돈봉투도 놓고 간, 아름다운 여성이다. 글씨조차 어찌나 멋지고 예쁘게 쓰던지, 그 마음을 기려 나는 당시 생활졸문을 썼다. 어제 대화의 백미는 “올해 김장 여기에서 하시라”는 것. 세상에나 만상에나, 어찌 빈말이라도 그런 말을, 복 많을 게 틀림없다. 우리 막내의 시누이(방과후 교사 장순이 엄마) 님이시여, 행복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