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여전히 살아 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정궁인 호프부르크는 물론이고, 도시 곳곳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왕가 건축물들로 가득하다. 마차가 도심을 배회하고 가발과 옛 복장을 차려입고 티켓을 파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화려하게 옷을 치장하고 모차르트 음악에 맞춰 매일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마차를 탄 귀족이 되어 사랑을 만들어 갈 것 같은 도시. 빈에서는 앞으로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맥이 이어질 것이다. 빈 시가지.
빈 골목.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이은 다음 여정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였다. 헝가리 숙소의 스태프가 슬로바키아로 가는 버스표는 예약 안 해도 된다고 했었는데 막상 버스터미널(Budapest Nepliget Buszvégállomás)에 도착하니 좌석이 매진이란다. 다음날 오전 6시30분에 버스가 있으니 다시 오라기에 여행 일정을 오스트리아 빈(Wien)으로 바꾼다. 무거운 짐을 끌고 헝가리의 끔찍한 지하철 타면서 땀범벅인 채로 터미널까지 왔는데 헝가리에서 더 이상 지체하기 싫다. 이미 예약된 슬로바키아의 숙박비는 날리고 빈에서의 일정이 2일간 더 추가 된다. 비엔나 거리.
오스트리아 빈 버스 터미널(Vienna International Busterminal, Erdberg역)에 도착했는데 인포메이션이 없어 숙소를 찾을 길이 없다. 택시를 타려고 숙소 지도를 보여주다가 결국은 지하철을 선택한다.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동유럽의 선진국이 확실하다. 지하철은 헝가리와 비교 안되게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가 잘 되어 있다. 여행 해보니 시내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 편도 잘 되어 있고 길거리는 캐리어를 문제없이 끌 수 있도록 잘 정비 돼 있다.
오스트리아 빈 호스텔
오스트리아는 동유럽 국가 중에서는 물가가 비쌌기에 처음으로 호스텔을 예약했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공장형 호스텔이다. 예약한 4인 룸에는 모두 젊은 남자다. 그중 빈 대학의 음대생이라는 세르비안은 다른 젊은이에 비해 살갑다. 그의 전공은 색소폰이다. 입과 손과 발, 몸짓을 뒤섞어 소리를 내주었는데 예사솜씨가 아니다. 그러니 명문대로 유학까지 왔으리라. 그가 호스텔에 머무는 이유는 ‘룸메이트가 방을 비울 수 없어서 며칠간 이곳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2일간은 그럭저럭 잘 머물렀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 호스텔은 근무하는 스태프들이 교대로 바뀌는데 한 여성 스태프는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듣는다. 예약을 두 번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는데도 영어를 못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숙소에는 한국인들도 많았는데 젊은 한국 여성에게 설명을 해달라고 했으나 역시나 그 여자는 못 알아듣는다.
인터넷만 확인하면 될 일을 계속 뒤에 들어오는 사람부터 일처리 하고 근 한 시간을 로비에서 무거운 짐을 맨 채 있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 스태프는 외국인 노동자일 확률이 높고 인터넷을 못하며 영어도 잘 못하며 동양인에 선입견을 가진 자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젊은 중국인들이 몰려 있는 방 안으로 몰아넣었다. 조용한 객실과 아래 침대 칸으로 바꿔 달라 했는데도 여전히 2층이었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이라는 중국인들은 자정이 넘었는데도 큰 소리로 떠들고 샤워를 해대며 심지어 그 야심한 시간에 헤어드라이로 소음 천국을 만들었다.
거기에 욕실엔 긴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어 세면대를 막히게 했다. 방을 바꿔달라고 하고 싶지만 또 똑같은 상황이 올까봐 그냥 견딘다. 나중에 중국인들에게 한마디 했다. “너희들은 나라 망신을 시키고 있다”고. 그녀들은 말귀는 알아들었다. 하여튼 이 호스텔은 룸에서는 인터넷이 되지 않고 로비를 이용해야 했다. 최악 중 최악의 숙소였다.
훌륭한 뷔페식 중식당
숙소를 나와 슬슬 빈 여행을 시작한다. 시내 중심지로 들어서면서 빈 국립 오페라극장(Wiener Staatsoper)이 보이는 근처에서 ‘wok and more’라는 중식당 간판을 보게 된다. 아무리 음식을 가리지 않은 사람이라도 해외여행 때는 한국 음식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한식당 보다는 아세안 식당들이 더 많으니 찾곤 한다. wok and more 뷔페.
wok and more 음식.
이 식당은 뷔페식당으로 동양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그래서 빈에 머무는 동안 2번이나 찾았다. 일단 뷔페로 음식을 갖다 먹고 메인 요리는 따로 해준다. 소스는 어떤 것으로 할지 묻는다. 차는 따로 시켜야 한다. 첫 날은 식당 시스템에 어리바리했지만 된장국 한 그릇에도 행복했다.
두 번째는 점심이 아닌 저녁에 찾았는데 가격이 더 비쌌다. 첫 날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이 집, 동양 여행객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이 집은 동양인말고도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 북적댄다.
속이 따뜻한 오스트리아 사람들
또 한 가지를 먼저 밝힌다. 빈 여행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따사롭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해할 뻔 했다. 얼굴 표정이 변하지 않는, 딱딱한 독일병정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절대 오스트리아 사람들을 선입견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단지 그들은 표현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다.
일례로 배가 고팠지만 식당을 찾을 수 없어서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마트를 갔었다. 그릴에 구운 닭과 소시지, 샐러드, 주스를 샀다. 근데 스푼이나 포크를 찾을 수 없다. 사실 배가 고파서 손으로라도 먹고 싶을 정도였다. 계산대에서 “포크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산 샐러드 바에 있단다. 중년 여성은 카운터에서 계산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더니만 달려가서 스푼을 가져 온다. 고맙고 미안했다. 한 눈에도 금세 표시가 나는 동양인 외국인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마트 안에 의자가 있어서 먹고 일어나면서 그녀를 봤다. 그녀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날 보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 아닌 듯 하지만 속 깊고 예의롭다. 호프부르크 궁전.
누구나 귀족이 되는 도시 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여행을 해보자. 빈 여행은 합스부르크 왕조와 오스트리아 황제 시대를 모르면 빈을 여행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 빈의 번창은 1440년,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가 들어서면서 부터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했던 가문이다.
루돌프 1세(1273년)를 시작으로 카를 1세(1918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645년 동안 유럽의 절반을 지배했던 왕조다. 빈은 1805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정치, 문화, 예술, 과학과 음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사실상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 자리매김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정궁인 호프부르크(Hofburg)는 물론이고 도시 곳곳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왕가 건축물들이 가득하다. 데멜 토르테.
현재도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마차와 마부가 골목 속을 누비고 다닌다. 가발과 옛 복장을 차려입고 티켓을 파는 사람들이 무수히 다가온다. 100년도 넘는, 연륜을 자랑하는 카페에서는 모차르트의 선율을 들으며 왕족, 귀족들처럼 토르테와 멜랑쥐를 우아하게 마신다. 비엔나 음악당 티켓을 파는 사람.
합스부르크 마지막 황후
합스부르크 왕가도 그 시간 속에서 사건, 사고가 무수히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780).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다. 그녀는 카를 6세(Kaiser Karl VI)의 장녀로 왕가의 규정을 깨고 학교에서 만난, 잘생긴 유학생 프란츠 슈테판 로트링겐(1708~1765)과 결혼했다. 남편을 왕(프란츠 1세)으로 내세웠지만 섭정은 그녀 몫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능력이 탁월해 전쟁 등, 많은 것에서 성공했고 16명(5남 11녀)의 자식을 두었다. 연애결혼을 해서인지 다행히 합스부르크의 ‘근친혼의 저주’인 ‘주걱 턱’은 없었다. 그녀의 자녀들 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와 레오폴트 2세를 비롯해,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리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 파르마의 공비 마리아 아말리아 등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비극과 파멸
긴 세월이 흐른 후 프란츠 요세프(Franz Joseph I, 1830~1916)가 18세에 왕위를 계승한다. 프란츠 요세프는 오스트리아 제국(재위:1848년~1867년)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재위:1867년~1916년)의 황제다. 그는 독일인 엘리자베트(일명 시시) 황후(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Elisabeth Amalie Eugenie, Herzogin, 1837~1898)와 연애 결혼한다.
프란츠 요세프의 장남은 루돌프(Rudolf Franz Karl Joseph, 1858~1889)다. 루돌프는 어린 시절 늘 부모의 애정결핍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어나 공무를 처리하기 바빴다. 하루 10시간 집무는 기본이었다. 엄마는 일 년 중 대부분 여행을 떠나 있어 얼굴 보기도 힘겨웠다. 할머니 손에서 길러진 그는 어릴 적부터 군대식으로서 엄격하게 교육받았다. 거기에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된다. 루돌프는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딸인 스테파니(Stephanie, 1864~1945)와 정치적 정략결혼을 했다. 당시 루돌프는 22세였고 스테파니는 16세였다. 황제 아파트.
결혼 2년 후 스테파니는 딸 엘리자베트 마리를 낳았지만 둘 사이는 좋지 않았다. 황태자는 결혼 전부터 미지 카스파(Mitzi Caspar, 1864~1907)라는 정부가 있었다. 이들의 불화는 끝내 별거에 이르렀다. 황태자는 성병에 걸리고 모르핀에 중독되었고 결국 30세, 17살의 어린 마리아 폰 베체라를 소개받아 사랑에 빠진다(14세에 만났다는 설도 있다). 이 사건으로 황태자 자격도 박탈당하게 된다. 1889년 1월 말, 루돌프는 연인과 함께 황실 사냥용 별장 마이얼링(Mayerling)에서 동반자살 한다(연인을 살해했다는 설도 있다).
이후 오스트리아 왕가는 서서히 멸망하고 있었다. 요제프 부인인 엘리자베트 황후는 스위스 여행 중에 총에 맞아 비명횡사했다. 거기에 마지막 황제로 지목된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1863~1914)는 아내와 함께 사라예보의 육군 훈련에 참관 차 갔다가 피격을 받아 죽었다. 또 남동생이었던 막시밀리아노 1세(1832~1867)는 멕시코 제국의 황제로 갔다가 총살형 당했다. 요제프는 68년 동안이나 재위를 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볼 꼴 못 볼 꼴’ 다 본 비극의 황제였다. 시시 박물관. 시시 박물관.
호프부르크 왕궁과 시시 카드
오스트리아 왕가를 보기 위해 ‘시시 티켓(쇤브룬 궁전, 빈 호프부르크에 있는 황실 아파트 및 실버 컬렉션이 있는 시시 박물관, 빈 가구 박물관)를 구입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빈 카드‘도 산다.
일단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궁이었던 호프부르크(Hofburg)가 있다. 빈 시내를 둥그렇게 연결하는 도로인 링 스트라세의 부르그 링(BurgRing)에 접해 있다. 100여 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건설된, 이 거대한 궁전은 13세기(1220년 경)에 처음 건축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웅장하고 드넓은 겨울 궁전이었다. 이후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들이 기거했다. 세월이 흐르며 점차 여러 부분이 추가되어 더욱 웅대해졌다.
왕궁은 크게 16~18세기에 지어진 구 왕궁과 19~20세기에 지어진 신 왕궁으로 나누어진다. 신 왕궁이 건설되면서 2,600개가 넘는 방을 갖추었다. 전 황제가 사용하던 방은 다음 황제가 사용하지 않는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불문율 때문이다.
왕궁 앞에는 나폴레옹에게 대승을 거둔 카를 장군, 나폴레옹의 장인인 프란츠 2세(오스트리아 황제로는 프란츠 1세) 등의 기념상이 있다. 건물 가운데는 오스트리아 연방 대통령의 관저가 있다. 거기에 왕궁 정원, 헬덴광장, 볼크스 가든(Volksgarten)이 있다. 또한 호프부르크 주변으로 무수한 볼거리가 있다.
호프부르크의 시시 박물관
그중 시시 박물관(2004년 개관)은 관람이 가능하다. 왕궁의 정문에 해당하는 미하엘 문(Michaelertor) 주변에는 프란츠 요제프 1세, 1830~1916)와 엘리자베트 황후가 머물던 아파트, 궁정 은식기 컬렉션 건물이 있다. 18세기에 지은 바로크 양식의 황제의 아파트는 1918년 군주제가 끝날 때까지 황실의 거주지이자 일터로 사용되었다.
박물관 관람은 황실 계단에서 접견실과 서재를 거쳐 황제의 거실과 침실까지 24개의 방으로 이어진다. 객실은 치장 벽토, 보헤미안 크리스탈로 만든 웅장한 샹들리에, 세라믹으로 만든 타일 난로가 있는 로코코 스타일이다. 시시의 시대별 사진.
한때 엘리자베스가 소유했던 수많은 개인 물품과 아름다운 황후의 가장 유명한 초상화가 있다. 300개 이상의 전시품 중에는 원본 의류 품목, 엘리자베스가 그린 수채화 그림이 있다. 또 결혼식 전날 저녁에 입었던 드레스, 헝가리 대관식 복장, 보석, 바이에른에서 가져온 어린 시절의 하프도 볼 수 있다. 제네바 호수에서 암살된 황후의 데스 마스크와 황후가 죽을 때 입은 백로 깃털이 달린 검은 코트도 볼 수 있다.
관람의 하이라이트는 운동실과 황후의 화장실이다. 시시는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실에서 보냈다. 그녀의 하루는 매일 아침 6시에 미용 의식으로 시작되었다. 목까지 오는 머리를 빗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곳에 설치된 벽걸이봉, 높은봉, 문틀 고리 등 운동기구는 그대로 남아 있다.
황궁의 임페리얼 실버 컬렉션은 이전 제국 왕조의 궁중 식사 문화를 보여준다. 귀중한 도자기와 크리스털 유리잔, 웅장한 중앙 장식품과 서비스, 구리로 만든 간소한 주방용품을 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전시회는 1838년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의 왕 페르디난트 1세 황제의 대관식을 위해 제작된 30m 길이의 ‘밀라노 중앙 장식품’이다. 동아시아, 세브르(프랑스의 루이 15세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선물), 빈의 도자기와 파노라마 접시, 유광 토기, 금은 제품도 전시돼 있다. 그러나 사진 촬영은 금지된다.(계속)
Travel Data
항공편: 인천에서 대한항공이 오스트리아 빈까지 운항한다. 오스트리아 빈까지의 비행시간은 10시간 30분~11시간이 소요된다. 시차: 한국보다 8시간 늦다. 그러나 서머타임 기간에는 7시간 늦다. 국가 면적이 작기 때문에 도시 간 시차는 없다.
음식: 순수하게 빈에서 만들어진 요리는 타펠슈피츠로 쇠고기가 주재료인데 다른 고기로 만든 요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비네슈니첼과 함께 빈의 대표 요리다. 빈에서는 특유의 서민 레스토랑인 바이슬(Beissl)을 만날 수 있는데 원래는 선술집이나 간단한 요리가 나오는 술집이라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빈의 전통 음식점의 대명사가 되었다.
카페: 카페 문화가 많이 발달되어 있다. 황제, 귀족은 물론 유명 예술가들이 찾아다니던 명성있는 카페가 줄지어 있다. 또한 빈에도 1,800여 개의 노상 레스토랑이 있는데 옥외 좌석을 두고 있는 이러한 레스토랑을 ‘샤니가르텐’이라고 부른다. 커피와 디저트 종류도 다양하다.
빈의 케이크는 터키와 헝가리 케이크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오스트리아 특유의 재료가 더해져 훌륭한 케이크가 탄생하였다. 초콜릿이 유명하며 맛있는 빵을 파는 곳도 아주 많다. 한식, 중식당도 손쉽게 만날 수 있으며 길거리에서 파는 인스턴트 음식들도 괜찮다. 거대한 슈퍼에서도 완성된 음식들을 싼값에 구입해 먹으면 된다.
숙박: 최고급 호텔부터 아파트먼트 호텔, 게스트하우스, 유스호스텔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고급 호텔은 시즌이나 평일 혹은 주말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으니, 사전에 요금을 체크하는 편이 좋다. 연중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인 만큼 저렴한 유스호스텔도 많다.
교통 패스: 빈 카드(Vienna Card, Die Wein-Karte)는 3일 동안 버스, 지하철, 트램 등 교통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유람선, 음악회, 쇼핑, 카페, 레스토랑 등에서 여러 가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호텔에서 구입할 수 있고 관광 안내소, 교통 안내소, 키오스크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축제: 오스트리아에서는 매년 다양한 음악 축제가 열린다. 이 중 빈은 음악의 도시답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 음악회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무도회 등이 열린다. 또한 빈에서 열리는 큰 축제 중 하나인 ‘빈 축제’는 매년 5월 중순~6월 중순에 열리며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매년 4월 혹은 5월에 마라톤이 열리고, 7월 중순~9월 중순에는 뮤직 페스티벌을 펼친다. 젠트랄 토르테.
특산물: 초콜릿이나 케이크 등 빈 과자와 도자기, 자수로 만든 프티 포앵(Petit point)등이 있다. 모차르트 쿠겔(Mozart Kugel)이나 대표적인 빈 과자 토르테(torte)는 달콤하면서도 독특하다. 커피 브랜드 종류와 찻잎의 종류가 풍부해 커피와 홍차도 특산품으로 손색없다. 티롤풍의 민예품과 손으로 만든 액세서리, 공예품도 권할 만하다.
호프부르크 왕궁: http://www.hofburg-wien.at/ 시시 박물관(Sisi Museum) 주소: Michaelerkuppel, 빈 오스트리아/전화:+43 1 5337570 Wok & More 주소: Karlsplatz 1, 1010 빈 /전화: +43 1 5057603 /웹사이트:https://www.wokandmore.at/ 시시 티켓: 쇤브룬 궁전, 황실 아파트 및 실버 컬렉션이 있는 시시 박물관, 빈 가구 박물관/ 티켓 구입 웹사이트: https://www.imperialtickets.com/schloss-schoenbrunn/sisi-ticket/53 빈 카드: https://www.wien.info/en/travel-info/vienna-ca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