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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31일(금)
* 시작 기도
(막 2:3-5)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주님...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네 사람이 침상 째 들고 예수님께 가려했지만 무리들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혹여 내가 바로 주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길을 막는 무리는 아닌지요?
돌이켜보면 내가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목을 막았던 무리였던 적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주님께로 나아가는 5천 명 분의 양식을 혼자서 깔고 앉아 먹는 탐욕스런 자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나눌 줄 아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천국을 누리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오늘도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주님과 함께 연합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8:48-59
제목 :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50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 나의 묵상
어제에 이어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변론이 계속된다.
여전히 그 대화의 관점이 맞지 않는다.
예수님은 위에서 나셨고 그들은 아래에서 났으며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곧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계시나 그들은 땅에서 나서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초점은 언제나 위, 하늘, 창세전, 만물 위, 태초, 영원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래, 땅, 창조 이후, 만물 안, 이 세상에 관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대화가 원만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끝까지 참고 인내하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신다.
인내도 이런 인내는 없을 것이다.
나 같으면 그 사이에 100번이라도 때려 치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한편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향하여 사마리아 사람 또는 귀신이 들렸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내가 귀신이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인데 너희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렇게 보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경우도 나 스스로 내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할 뿐이로되 또한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구하고 판단하시어 내게 그 영광을 주시는 것이다.
나는 그 영광을 나의 영광이라고 할 뿐이다.
50절에서 ‘구하고 판단하신다’는 헬라어 ‘제톤 카이 크리논’이 사용되었다.
‘구하고’의 제톤은 원형 제테오의 현재분사로, ‘판단하다’의 크리논은 크리노의 현재분사로 사용되어 성부 하나님께서는 과거만 아니라 지금 현재도 계속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또한 판단하신다.
그것은 예수님을 거절하는 이들에 대한 판단을 꾸준히 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며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것은 어느 순간에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생에 늘 해야 할 일인 것이다.
5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관용어구를 사용하시면서 하늘의 진리를 말씀하신다.
그 내용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예수 자기가 뭐라고 자기 말을 지키면 죽지 않는다? 그것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냐면서 또한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른 건 몰라도 예수 너의 이 말로 인해서 네가 귀신 들린 것이 분명해졌다고 한다.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다 죽었는데, 사람이 네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박한다.
인간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의 논리는 아주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논리는 어딘가 모호하고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서두에 말했듯 이런 관점의 차이로 인해서 변론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예수님께 대들 듯이 항의를 한다.
그러면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그리고 우리의 큰 사람들인 선지자들도 이미 죽었는데, 너는 도대체 누구냐고 또 묻는다.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화나 짜증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설명해 주신다.
만약 내가 내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면 그 영광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분은 너희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내게 영광을 돌려주신다.
그 분은 곧 내 아버지시다.
그래서 그 영광 곧 나의 영광은 참되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안다고 자부하는 그 하나님을 진리 안에서는 알지 못하지만 나는 안다.
만약 내가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 나 또한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그분에게서 태어났고 내 안에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분을 알고 또한 그가 하신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그러시고는 유대인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말씀을 하신다.
너희들이 가장 위대하다고 인정하고 존경하는 조상 아브라함도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며 기다리다가 나의 때를 보고 기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악다구니를 치면서 덤벼든다.
그들의 말인즉 “예수 네가 아직 50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나 참 기가 막혀서...”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다시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신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어 왔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했으나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피하여 성전을 나가셨다.
유대인들의 모습은 누구라 탓할 것이 없이 분명 나의 모습이다.
나의 눈이 어두워 예수를 바로 알지 못하였고, 그저 나 잘 되게 하는 신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가르치고 행했던 것을 보면 예수님과의 변론에서 결론이 나지 않는 유대인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들의 논리는 이 땅에서는 아주 명확하고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보지 못한 하나님 나라, 곧 창세전부터 선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어찌 알겠으며 더욱이 예수가 자신을 가리켜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니겠는가?
이런 모습은 내가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십분 이해가 간다.
이들 유대인들을 원망하거나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예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끝까지 참고 인내하시며 하늘의 언어로 그 나라를 말씀하시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 나 또한 그토록 성경을 읽고 내 나이 60이 넘었지만 그동안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하늘의 일들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영적 소경으로 살아왔던 것이 천추의 한이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십자가 앞에서 나를 부르시고 그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나로 하여금 주님의 인자와 신실하심을 깨닫게 해 주심이 은혜이다.
주님의 그 인자와 신실하심 곧 주의 사랑이 나를 살리셨다.
땅에만 눈을 내리깔고 살아왔던 나의 눈을 들게 하셔서 하늘을 보게 하시고 만물 안에 갇혀 살던 나의 고개를 들어 만물 위를 바라보게 하신 그 은혜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영적 소경, 오늘 본문에 이어서 바로 나오는 한 사건이 있다.
그것은 안식일에 주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시는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결론은 9:41절에 나온다.
(요 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육신의 눈이 감겼다고 해서 소경이 아니라, 영적 눈이 감겨서 하늘 곧 창세전의 아버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 진짜 소경이라는 것이다.
육신의 눈을 뜨고 있으면 이 땅 곧 만물 안에 있는 이 세상을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히 살 그 나라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이 차라리 육신의 눈이 가려져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 눈이 떠질 때 비로소 그 나라에서 영원히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는 샘물인 영생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눈이 떠진 이들은 마음이 부유하고 살이 쪄서 완악한 자(헬, 파퀴노)들이 되고 만다.
그러나 비록 육신의 눈은 가려져 보지 못할지라도 영적 눈이 떠진 이들은 참된 것을 볼 줄 아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요 주님의 품안에 거하는 자들이다.
찬송가 작시자로 유명한 패니 제인 크로스비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실명을 하였다.
어머니는 일을 하러 나갔기 때문에 할머니가 어린 패니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자연을 교재로 삼아 자세하고도 섬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패니는 할머니가 읽어주는 그 주님의 말씀을 꿀송이처럼 달게 받아먹었다.
그리고 자연을 설명하는 할머니의 말에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며 그는 놀랍게도 두 눈을 떠서 보는 사람보다 더 섬세하게 그것들을 영적으로 묘사하였다.
그에게 닥친 그 고난 역시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다.
그는 비록 육신의 소경으로 이 땅을 살았지만 그는 날마다 영원한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살아 있는 눈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찬송시를 보면 고난도 주님이 주신 축복이며 이를 기쁨으로 노래하며 영원한 그 나라를 소망가운데 바라보는 영원에 잇대어 산 증인이 된 것이다.
찬송가 608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크로스비 여사 작시)
1.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없겠네
2. 후일에 장막 같은 몸 무너질 때는 모르나
정녕히 내가 알기는 주 예비하신 집 있네
3. 후일에 석양 가까워 서산에 해가 질 때에
주께서 쉬라 하시니 영원한 안식 얻겠네
4. 그 날을 예비하면서 내 등불 밝게 켰다가
주께서 문을 여실 때 이 영혼 들어가겠네
후렴)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 주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아멘.
나는 나에게 주어진 가난, 고통, 어려움의 상황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이 원망하고 나 자신을 비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창세전부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되신 그리스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이 새벽 아버지 품에 안겨서 날마다 그 집으로 들어가시는 우리 주님과 같이 나 또한 주님의 너른 품에 안겨서 그 크신 사랑 안에 나 평안히 쉴 수 있음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육신으로 사는 것이 내 일의 열매라면 주님의 섭리를 따라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나의 마음은 그저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육신이 죽어 안기든지, 육신으로 살아서 영원한 생명으로 안기든지 중요하지 않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나는 그 자리에 있기 원한다.
내가 있을 곳은 오직 주님의 품이요 우리 주님이 계시는 아버지 집이다.
오늘도 그 곳을 사모하며 영원에 잇대어 살아간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이런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계시되고 그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생명도 주의 것이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오니 주님의 뜻을 위하여 사용되게 하옵소서.
나의 육신의 정욕과 탐심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직 주를 위한 주님의 소유가 되게 하옵소서.
날 위하여 당신의 영원한 생명까지 주셨는데 내가 무엇을 더 바라리요?
내게 더 원할 것은 없사오니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지금 2025년 설날 연휴 중에 있습니다.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딱히 없어서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와 사귐 중에 있사오니 이런 나를 받아주옵소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생명의 본질임을 알아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과의 교제가 끊이지 않고 본질의 계시인 영광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육신의 질고로 고통하는 주의 자녀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잡아 주시고 순간순간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신비한 주님의 은혜임을 깨달아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주를 찬양하는 믿음의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