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굴에서 시작된 모험(2)
정신을 차려 봉수대 안을 둘러본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밖에서 볼 때는 작은 봉수대였는데, 내부는 거대한 궁궐이었고, 황금옥좌에 모후가 여왕처럼 앉아 있었다. 그 뒤로는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가 벽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모후의 좌측에는 대형 거북이가 시립(侍立)해 있고, 우측에는 다리가 세 개인 큰 검은 새, 아까 밖에서 본 익룡 같은 새가 앉아 있었다. 이 신기하고 기묘한 풍경에 압도된 두 사람에게 모후가 말했다.
“놀라지 마라.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지? 너희들은 봉수대에서 이미 지하 십리에 있는 거대한 동굴에 내려왔느니라. 어떻게 그리 순식간에 왔느냐고 묻는 얼굴이구나.”
“네, 믿기지 않는데요. 참 신기해요.”
“혹시 여긴 용궁이에요? 아님 해저왕국?”
“호호호, 그럼 말해주지. 이 산은 봉산이자 거북산이야. 삼족오님은 아까 하늘에서 날아온 봉황이시다. 두 분 다 상서로운 분으로 봉산의 정신을 상징한단다. 또 황제나 왕과 깊은 연관이 있지. 그래서 여긴 천상과 지상이 만나는 곳이란다. 또 어떻게 빨리 이동했느냐 구? 순간이동이지. 밖에 있는 봉수대에 태양광 집전판을 봤지? 거기서 나온 전기와 지하의 자기장이 만나 엄청난 속도와 열을 발생시키는 거야. 그 열을 흙이 받아 안고 생명을 키워내지. 땅 속에 자기장이 있는 건 잘 알 것이다. 역사의 혼은 작은 에너지만으로도 위대한 일을 하지. 우리는 지금 지표에서 십리 깊이 지하 동굴에 있는 거야.”
“네에? 지하로 4km나 내려 왔다구요?”
성우의 말에 미소로 답한 모후는 말을 이었다.
“그래, 동굴은 인류 역사의 시원이기도 하지. 인류는 석회동굴에서 시작했거든. 동굴은 땅 속에만 있는 게 아냐. 해저에도 있고, 지구 심장부의 마그마 층에도 있다. 그리고 대기층에도 있고, 우주에도 있어. 세상과 우주는 온통 동굴로 형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 몸에도 수많은 동굴이 있지. 오장육부가 모두 동굴이지? 심장과 혈관도 긴 동굴이고, 신경계나 뇌세포도 긴 동굴이지. 심지어 피부도 아주 미세한 동굴의 연결이란다. 또 있구나.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주고받는 통로도 정이라는 동굴이란다.”
두 사람의 귀에는 모후의 말이 무슨 주문(呪文)처럼 들렸다. 한참 동안 모후의 설명을 듣던 샛별이 대담하게 물었다.
“혹시 모후님은 마귀할미 아니세요?”
이 말에 모후는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나는 마고할머님의 후손이란다. 마고할머님은 우리 조상신 중에서 가장 지엄하고 훌륭한 여신이지. 마(麻) 알지? 삼베 말이다 그것으로 옷감을 잘 짜서 모든 여자들의 우상이 된 분이셔. 아득한 옛날에는 피륙을 잘 짜는 사람을 신처럼 받들어 모셨거든. 마고 할머님이 지금 사는 곳이 어딜까?”
“마고할머니가 지금도 살아계셔요?”
“그렇단다. 그분은 직녀성(織女星)에 살고 계시지. 배를 잘 짜는 할머니가 사는 별이 직녀성이거든. 그 마고할미의 후손이 웅녀란다. 또 웅녀의 직계 후손이 둘인데, 바로 나와 백두산에 살고 계신 분이란다. 아직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참, 너희들 집에도 웅녀의 후손이 계시지. 바로 너희 엄마야. 그 다음엔 샛별이 너이고.”
“아, 웅녀요? 단군할아버지의 어머니, 웅녀 말씀이세요? 샛별이가 웅녀라구요?”
성우가 웃으며 묻자 모후는 재미있어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웅녀는 웅씨 집안의 딸이야. 웅씨는 곰[熊]을 신령으로 모시는 부족이야. 단군설화에 보면 곰이 변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 또 그 곰이 사람으로 환생한 곳이 바로 동굴이라고 했으니 동굴은 곧 생명의 자궁인 셈이네. 또 귀신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공포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이 사악해졌기 때문이야. 그래서 ‘귀한 신’인 귀신(貴紳)을 아주 사악한 귀신(鬼神)이라 표현하면서 스스로 자기합리화 시키려 드는 것이지.”
“아, 귀신이 그런 뜻이에요?”
샛별이 놀란 표정으로 묻자 모후는 조금 근엄한 그러나 인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다 신이란다. 나무가 살고, 물고기가 움직이고, 새가 나는 것을 봐라. 모두 사람과 똑같은 생명체야. 그러니 생명 있는 것은 모두가 신성(神性)을 지녔단다. 신의 특성이 신성이요, 인간에는 인성, 동물에게는 수성(獸性), 나무에게는 수성(樹性)이 있다. 마을에도 신이 계셔. 시골 마을 입구에 서있는 큰 나무를 신목(神木)이라고 하지. 그 신목이 서 있는 곳을 당산(堂山)이라고 하는데, 그게 곧 마을 사람들이 신과 만나는 접신 장소인 신전이야. 신전과 신목이 있는 마을이 곧 신시(神市)란다. 우리나라 마을에는 곳곳마다 교회나 절 같은 신전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단다.”
그러자 성우가 대답했다.
“아, 정령신앙(精靈信仰)이라는 거, 맞죠? 애니미즘이라고 하던데요. 크거나 기이한 동식물을 신처럼 숭상하는 고대 원시인의 신앙 말이에요.”
“응, 잘 아는 구나. 그런데 생명체 뿐 아니라 우리 조상님들은 인간이 사는 모든 공간에는 다 신이 있다고 믿었지. 부엌이나 변소, 방, 심지어 선반에도 그곳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고 믿은 거야. 유일신이 아닌 일종의 다신사상이지. 참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이 뭔지 아느냐?”
“대종교인가요? 아님 인내천(人乃天) 사상? 천도교?”
성우의 말에 모후는 좀 실망한 표정을 짓고 나더니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천신사상을 가지고 살았단다. 온 우주와 지상의 생명을 주관하는 하늘 신(하느님)으로 칠성신, 땅을 주관하는 산신, 바다와 물을 주관하는 용왕신, 그리고 돌아가신 어르신을 조상신으로 받들어 모셨어. 땅과 물을 크게 하나로 봐 산신이라고 해서 삼신이라고 해. 아무튼 우리 조상님들이 반만년 동안 지니고 살아온 신앙 및 종교를 천신교 또는 신교, 신도라 한단다. 신라의 최치원 선생은 이를 풍류도라 했지. 그런데 이러한 전통신앙은 서구의 바람이 몰려들고, 기독교 천주교 등 서구 종교가 대세를 이루면서 무교(무속)으로 이어졌어. 무당이 우주의 영과 접신하여 망아지경에 들어가 신령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이걸 보면 우리 민족이 참 인간적이야. 현대 종교가 하늘 신(하느님)에게 개인구원을 호소하는 데, 우리 조상님들은 하늘·땅·사람에게 의탁하며 현세와 내세의 복락을 바랐어. 우리는 훨씬 창조적이고 현실적인 다양한 신관을 가지고 살아온 민족이란다.”
모후는 두 학생이 귀를 기울이자 연신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우리 한국인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이런 신령스러운 기운, 즉 신기가 넘친다. 한국인은 이 신기가 살아나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어. 그 한 예로 ‘한강의 경제기적’을 들 수 있지. 남들이 최소 3백 년에 걸쳐 했던 경제 부흥을 단 50년 만에 이룩했거든. 이 기운이 20세기 후반에 한류를 만들어냈고, 한류는 이제 제2의 르네상스로 평가되어 인류사에 기록되고 있단다. 한류의 핵심이 무엇인가? 바로 노래와 춤, 그리고 드라마야, 그러니까 잘 노는 것이잖아.”
“그렇담 한류가 신판 무속이고 아이돌 가수들이 무당인 셈이네요? 하하하.”
성호의 쾌활한 웃음이 지하 동굴을 울렸다. 그러자 검은 새가 큰 날개를 두어 번 퍼득였다. 모후는 신이 내린 듯 말을 이었다.
“우리 민족의 신기(神氣)는 불교나 유교 같은 외래 종교가 들어오면서 지하로 들어갔지만 무당들이 그 기운을 이었던 거야. 이 ‘무당종교’로 불리는 무교는 생명력이 끈질기지. 불교나 유교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나 천주교 같은 외래 종교가 성행해도 무교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어. 전국에 무속신앙인이 45만 명이 넘는다잖아? 이 신기가 뭐냐? 신명의 기운이요 곧 신바람이야.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이 신바람이 약해졌어.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나려면 거족적으로 이 신기를 다시 일깨워야 한단다. 이 기운에 불만 붙으면 중국이나 일본, 미국 같은 강대국들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지. 특히 중국에 떳떳해지려면 이 힘이 일어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중국 앞에서 지금처럼 절절매고 말지. 어때? 좀 고리타분한 말인가?”
모후의 설명을 들으면서 두 사람은 역사여행은 언제 떠나는 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 지 조바심이 일었다. 그런 걱정을 알았다는 듯이 모후가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나랑 역사여행을 떠나볼까? 세 시간이면 된다.”
“모후님, 어떻게 세 시간 만에 반만년 우리 역사를 다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성우의 말에 모후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빛의 속도로 시간과 공간여행을 할 것이다. 빛의 속도가 얼마인지는 알지?”
“네, 빛의 속도는 1초에 30만km죠. 1분이면 1천800만km, 한 시간이면 10억8천만km이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라 진공상태에서의 속도니까 공기 중에서는 다르겠죠.”
성우의 이 말에 모후는 놀랍다는 반응을 했다.
“오호, 성우군 놀라운 걸. 그래, 진공상태라면 지구에서 달까지 1초가 조금 더 걸리지, 태양까지는 약 8분30초 걸린다. 그러나 지구는 진공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속도로 여행할 수는 없어. 더구나 거리 여행과 시간여행 또 동굴여행까지 병행해야 하니까 더딜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너희 두 사람을 한 시간에 약 3억km, 세 시간에 9억㎞를 시공여행으로 안내하려고 한다.”
“네에? 6억km면 태양을 두 번 갔다 와도 남는 거리 아닌가요?”
샛별이의 이 말에 모후가 놀랍다는 듯이 웃고 나서 말했다.
“암튼 지하 심층에 있는 자기장, 동굴이나 대기 중에 떠도는 자기장을 이용하여 순간 이동하면 될 것이다. 나는 너희들을 응원하다가 가끔은 달려갈 거다. 처음엔 함께 갈 거고. 너희를 안내할 분은 삼족오이시다. 어디서든 ‘블랙버드!’ 또는 ‘현조님!’ 하고 부르면 즉각 나타나 너희를 등에 싣고 빛의 속도로 이동할 것이다. 가고 싶은 목적지를 대면 지구 어디든 즉각 실어다 줄 것이야. 그곳에 도착하여 알고 싶은 것을 설명해주시거나 역사적인 인물을 불러다 줄 것이다. 핸드폰은 앞으로 두 시간 동안 불통이다. 참, 여행을 마치고나면 다시 봉산에서 만나자꾸나.”
말을 마친 모후는 향내 나는 불꽃 속으로 휘리릭! 사라져버렸다.
두 사람은 잠시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성우가 결심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출발해볼까. 시간 여행이라니 재미있겠다. 더구나 두 시간 밖에 안 걸린다니 금방 돌아올 거야.”
그러나 샛별이는 아직도 뭔가 미심쩍어 주저하였다.
“혹시라도 우리가 못 돌아오면 어쩌지? 지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지금 이곳을 빠져나가기도 어렵잖아. 모후님을 한번 믿어보자. 웅녀 할머니의 후손이라 하셨잖아. 설마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실까.”
말을 마친 성우는 호기롭게 ‘블랙버드!’하고 외쳤다.
그러자 아까 모후와 함께 사라졌던 블랙버드가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곤 두 사람 앞에 날개를 펴고 앉아 등을 내밀며 말했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말하거라. 안내하마.”
이윽고 두 사람은 블랙버드의 등에 탔다. 그리고 성우가 말했다.
“가야국으로 가주세요!”
성우는 가야역사야말로 제일 불투명하고 궁금한 역사라고 생각해온 터여서 서슴없이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