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2월의 첫날을 시작합니다.
번잡한 인간사, 복잡한 미묘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곧 사탄의 덫을 건드리게 됩니다.
허탄한 것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 이모저모 생각이 많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하실 일만 기대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가오니 아버지 품속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본문 주해)
1~2절 :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는데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이 있었다. 제자들이 이 사람이 맹인된 것은 자기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예수께 묻는다.
유대인들은 장애인이 되는 것은 죄의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은 장애인이 아니니, 죄인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5절 :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자기의를 가지고 물은 제자들의 평소에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무너뜨리는 말씀이다.
예수님 자신이 빛이기에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 낮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안 계시는 곳은 밤이라는 말씀이요, 예수님은 곧 떠나실 것이다.
예수님이 꼭 하셔야 할 일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일인데, 지금 맹인을 통하여 나타내시는 것이다.
“I must work the works of him that sent me, while it is day: the night cometh, when no man can work.”(4절, KJV)
본문에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하지만 킹 제임스 성경은 ‘내가 해야 한다’ 라고 번역된다.
‘우리’라고 함으로써 제자들도 이 일에 함께 참여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주님의 일이다.
예수님께서 이 맹인을 통하여 하시는 일은 지금 본다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맹인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말씀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9:41)
6~7절 : 예수께서 소경의 눈에다가 침으로 이갠 진흙을 발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신다. 그래서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된다.
예수님이 말씀으로도 눈을 뜨게 하실 수도 있는데 진흙을 이개어 바르게 하신 것은 사람이 씻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살려내시는 것이다.
그 살려내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할 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처럼, 땅에 침을 뱉어 이겨 그 맹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었더니 밝히 보게 되었다.
실로암이란 괄호 안에서 번역하고 있는 것처럼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심으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 누구신지 드러낸다. 그러므로 실로암이라는 단어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용어가 된다.
성경의 실로암은 영원한 생명과 빛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때부터 죄인인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복음이다. 맹인이 스스로 눈을 떠서 영원한 생명과 진리와 빛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8~12절 : 날 때부터 맹인이 눈을 뜨는 일은 상상도 못하였기에 ‘그 사람이다, 아니다’ 하는 소동이 일어난다.
그때 이 맹인이 바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임 말한다.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고 묻자,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을 이런 일을 행하신 후에 곧 자리를 피하신다.
(나의 묵상)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는 가사로 시작되는 <실로암>이란 ccm을 자주 부른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소경이 빛을 보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자를 예수님께서 만나 주신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아무런 열망이 없는 내게 찾아와 주신 것처럼....
어둠의 세계가 당연하고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던 내게 찾아와 주셔서 ‘이제 보아라’ 하시며 말씀의 자리 곧 실로암으로 가서 눈을 씻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실로암 사건이 내게도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내 눈을 뜨게 하시니 나는 이제 무엇을 보는 자가 되었는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예수님만 보게 된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이나 표적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또 다른 어떤 일을 행하시지 않는가 기대하고 살피는 자가 아니라, 이미 이루신 가장 큰 표적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사건으로, 주님의 살과 피로 나를 새롭게 창조하셨음을 믿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다른 표적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이 보내신 아들을 알게 되기만을 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주님은 만물 위에 세계를 보지 못하던 나, 영적 맹인이었던 나의 눈을 뜨게 하셔서, 주님을 바라보는 자로 살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고, 속히 세상을 빠져나가 하늘로 오르신 그분의 삶을 나도 따라가길 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제게도 실로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영적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늘의 것, 만물 위의 것을 사모하는 마음 주시니 감사합니다.
떠진 눈으로 매일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저의 연약함과 부실함과 간사함을 주님께서 아시오니
제 남은 삶을 성령님께서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