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시아나 마일리지 공항세와 유류할증료 6000여원을 완납하지 않아 일주일 전 예약이 무효가 된 것을 알고
그날 아침 부랴부랴 시간을 오후 3시 25분 비행기로 당기고 공항세 등은 공항에서 출발 1시간 전 납부한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예약 완료
오후 5시 30분 렌터카 업체에서 시간이 바빠 차량 사진 찍지 않아 나중에 큰 곤욕을 치름
해안도로 등 느긋하게 달리며 경치 구경하고 오후 7시 조금 못돼 헤밍웨이 하우스에 도착하니 이미 종원과 규갑 형이 종호 내외와 술 한잔 하다 내가 오자 종호가 고기 삼겹살 두 팩과 목살 한 팩에 소주 여덟 병을 사러 다녀옴
3시간쯤 종호 내외와 즐겁게 마시고-대화는 주로 종호의 딸 진로 문제와 종호네의 제주 살이 결산-객실 올라가 씻고 종원 형은 침대에, 난 소파에 누워 잠
금요일
오전 5시 30분쯤 기상
오전 6시쯤 종원 형과 출발해 7시 조금 넘어 남선배 집에 도착하니 남 선배 나와 있어 곧바로 차에 올라 거문오름으로 출발
아침을 어떻게 할까 고민고민하다 그많은 서귀포 식당 지나치고 중산간도로 밑 장원이란 백반집에서 동태찌개로 소주 한 병에 해장까지 하고
9시쯤 출발해 거문오름 휴게소에 차 대고 전시관에서 한라산 사진 구경하고 안내소에서 명찰 받아 거문오름 오름
40분쯤 전망대에 올라 오름들과 한라산 일람하고 처음 개방한다는 루트를 거닐었는데 풍혈이 진짜 신기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온몸이 젖었는데 그 앞에 서니 그야말로 에어컨보다 시원한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트레킹을 2시간 만에 마치고 마을 쪽으로 내려오니 주민들이 지었다는 암자가 있고 그 앞에서 매실차를 1000원에 판다. 한잔만 사 나눠 마시고 평상에 떡이 있길래 한 점 집어먹었다. 수국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사실 남 선배 집 들머리의 수국은 색깔이 바래 볼품 없었는데 이곳 수국은 탐스럽고 소담스럽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긴 줄 뒤에 서 있는데 방금 전 매실차 파신 보살이 프로골퍼 양용은의 누님이라고 했다. 그가 제주 출신이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제주의 마을에 단단히 뿌리 박고 있는줄 뒤늦게 확인했다. 그리고 마치 양용은 선수를 직접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게 신기했다.
점심은 거문오름 근처 오름나그네에서 도토리묵과 해물파전, 검은콩국수, 보말칼국수 들었는데 묵은 깊고 은은한 맛이 일품이었고 파전은 기름기를 거의 느낄 수 없는 담백한 맛과 감자 맛이 은은히 풍겨나와 좋았음. 국수 면발이 독특한 맛이 있었고 콩물도 깔끔하면서 적당히 자극하는 맛이 있어 좋았음. 보말은 여러 채소들의 맛이 어우러져 좋았음
단 이 집의 특징은 모든걸 손님들이 알아서 한다는 점. 주문도 주인에게 직접 다가가 해야 하고 물과 반찬도 스스로 챙겨와 진열해야 한다. 그런데도 다들 익숙한 듯 알아서 착착 움직이고 질서정연하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오직 손님상에 주문한 음식만 가져다주는데 주인 성품이 그대로 음식에 배여 나온다 할 수 있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통풍이 잘돼 시원했는데 막상 손님이 조금 더 몰려 문을 닫고 에어컨을 작동하니 더 덥게 느껴졌다.
여하튼 두 선배는 땀을 식히라고 하고 내 혼자 터벅터벅 가까운 길을 멀리 빙 돌아 차를 빼고 다시 두 선배를 태웠다. 남 선배가 안내소에 방문객 명찰 돌려주고 나오더니 웬 낯선 차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며 뭐라고 운전석의 남정네에게 말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 렌터카가 사실 거의 다 비슷한데 우리 차인줄 알고 다가가 지레 문을 열려 한 것이다. 나중에 남 선배는 우리 차에 올라 "병선이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아 '야 종원이는 어디 갔냐'고 말했더니 그 남자가 황당하게 돌아보더라"고 말해 셋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점심을 먹었으니 디저트다. 지난해 가을 가족여행 때 먹었던 말차 빙수가 생각나 카페 이름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잘 안돼 점심 내내 머리를 갸웃거리다 '당나귀'가 떠올라 검색했더니 우와 뜬다. 바람벽에 흰당나귀다. 영어로는 Dreaming Snowdonkey’라고 냅킨에 인쇄돼 있다. 종원이 형은 주차하러 들어가자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하는 표정이더니 안에 들어가 꽤 놀란다. 바다가 창틀 가득 담겨 있고 널찍하고 편안한 느낌을 안기는 공간, 무엇보다 말차 빙수란 독특한 아이스크림이 정말 큼지막한 그릇에 수북히 쌓여 있는 플레이팅에 놀란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지난해 가을 여행 때 화장실 들어가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는 안쪽의 상당한 공간이 깔끔히 현대적으로 잘 정돈돼 있었다.약간 형이상학적이기까지 한 화장실이 산뜻하게 재단장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쪽 동복 바닷가를 한번 거닐까 하다 그만뒀다. 규갑 형과 동연이 모슬포 만선식당 근처라고 했다. 염치 불구하고 메뉴판 보며 전화하라고 해 구이와 회를 사와 달라고 부탁했다. 조림은 어떡해든 안 된다고 해서 조금 서운했지만.
내처 달려온 규갑 형이 오후 5시쯤 도착해 6시 조금 넘어 구이와 회 도시락 둘 중 하나를 덜어 먹었다. 동연이는 종원 형의 비행기가 먼저 출발했는데 제주 공항 근처에서 두어 차례 선회하느라 늦게 출발한 규갑 형네 비행기보다 늦게 제주에 내렸다고 막 웃어댔다. 또 월요일 새벽 비행기를 타야하는 현준이를 어떻게 케어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결론은 일요일 밤 공항 근처에 가서 사우나나 싼 숙박시설 가서 자고 아침에 택시 불러 가라는 것이었다.
또 재미있는 것 하나는 남 선배가 무슨 안주 만들어준다고 계란을 냉장고에서 꺼내 종원 형에게 줬는데 그러는 거다. "형 이거 삶은계란인데요" 한달여 전 놀러왔을 때 우리 먹이려고 샀다는데 여태까지 날계란인줄 알았다는 거다.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소주를 꽤 마셨다. 동연이가 밤 9시쯤 자리에 눕는데 계속 힘든 듯 소리를 질러댔다. 나도 운전하느라 피곤했고 이틀 연속 술이 들어가니 견디기가 어렵다. 한숨 가볍게 눈 붙이다 바깥으로 나왔는데 현준과 은경 태우러 간 종원 형과 남 선배가 소식 없다. 가운데 집에 놀러온 이들이 10시쯤 들어왔고, 넷은 거의 11시가 가까워져 집에 들어왔다. 내가 들머리까지 나갔다가 반기니 현준이가 감읍했다. 그럴 일은 전혀 아닌데.
아무튼 여섯이 다시 술자리를 폈다. 규갑 형이 사온 낑깡과 한달여 전 우리를 위해 준비했다가 먹지 않았다는 삶은문어까지 안주 삼아 마셨다. 난 몇시에 잠들었는지 기억도 없다.
토요일
“야 종원, 안 일어나?" 소리에 눈을 떴다. 알림이 두 번이나 울렸는데 그때까지 일어나지 않아 남 선배가 깨웠다고 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아침 8시 5분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가는 종원 형을 리무진버스 타는 데까지 모셔야 했다. 배웅객 둘까지 셋이 렌트카에 올라 법환동 이마트 옆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내려주고 조금 이따 비를 조금 맞으며 걸어가 그 문제의 삶은계란 두 개를 모자 옆에 두고 사진찍은 뒤 버스에 막 오르려는 종원 형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왜냐하면 내가 터키 여행 때 봤다고 들려준 풍경처럼 첫새벽에도 온가족이 우르르 몰려나와 환송하는 모습을 연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 선배가 끓여준 떡국을 게눈감추듯 먹었다. 새벽 4시까지 종원 형과 단둘이 술을 펐다는 은경이 아무일 없다는 듯이 일어나 먹는 게 신기했다. 화장실 사용할 짬을 못 잡아 현준이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갔다 하는 게 재미있었다.
남 선배는 오늘은 기필코 인터넷을 고쳐야겠다며 집을 지키겠다고 했다. 은경과 현준, 난 머체왓숲을 가고 규갑 형은 조금 늦게 집을 떠나 사려니숲을 갔다가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한달 전 여행기에 소개한 토종닭을 먹겠다는 집념을 여러 차례 드러내 보였던 터다.
집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머체왓숲길을 걸었다. 난 소롱콧길을 걸어 내중천 습지를 보고 싶었으나 내 욕심만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머체왓을 한 시간 정도 걸었는데 중간에 도무지 말이 안 되게 길을 잃었다. 담을 넘어 갔다가 다시 전망대 근처에서 담을 넘어 들어왔다. 그 장면을 아마도 농장 지키는 어르신이 봤던 모양이다. 우리가 전망대에서 조금 쉬다 밀밭 근처 소떼 방목지로 내려오자 처음에는 말떼 근처에 있던 어르신이 대략 500m쯤 떨어진 곳까지 이동해 우리랑 마주친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부러 내려온 것이었다. 불순한 의도를 갖고 농장에 침입한 것이 아닌가, 혹시 소떼에 위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됐을 법하다.
역시 삼나무숲에 들어서니 둘이 좋아한다. 그게 보람이다.
그렇게 머체왓길과 소롱콧길 만나는 지점에 나오니 11시 20분인가 했다. 소롱콧길 들어가면 최소한 1시간 30분은 걸릴 것이다. 포기했다. 규갑 형도 사려니숲을 다 보고 막 이동하려던 참이라고 했다.<계속>
첫댓글 부지런하네.. 재미진 제주여행이었네. 술을 많이 먹어서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항상 반갑네..
그러게 역시 기자라는 직업은 못 속인다. 빨리도 썼다. 심심치않게 잘 읽었다. 가끔 사진도 좀 끼우지. 당나귀 카페 같은 곳. 참. 근데 달걀은 바로 그 전날 산 거여. 한 달전께 아직 있으면 어떡해.
점심시간에 심심파적으로 들어와 봤는데, 뜻밖의 수확입니다. 종원이형이랑 그렇게 늦게까지 마셨던가요? ㅠㅠ 어쩐지 담날 좀 힘들더라구요. 오죽하면 노 알콜을 선언했을까?? ㅋㅋ
산토리니를 콘셉트로 한 안덕의 피젤리아 피잣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