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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방분맥이 맥을 다 하는 곳, 문개실 다리에서 바라본 평창강( 서강 )과 문곡천이 합류되는 지점, 서강은 동강과 합수되어 남한강이 되고, 북한강과 합수하여 한강이되어 서해로 흘러 듭니다, !!!!
① 산행을 하며, 웨이 포인트 작성 시, 웨이 포인트 이름을, 줄여서 작성( 作成 )하거나, 틀리게 작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쓴, 산행 기를 읽으실 때, 첨부( 添附 )한, 웨이 포인트 표를, 읽어 보신 후, 산행 기를 보시 면, 산행기 내용을 이해( 理解 )하는데, 다소( 多少 )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② 2019년 8월 20일 화요일, 주왕지맥 삼방분맥, “ 원동마을->노적봉->두치재->푯대봉->능선길->괴석삼거리->덕전마을 버스정류장 ), 구간( 區間 )을 산행 할 때, 최고 기온( 最高 氣溫 )이 32( 度 )나 되는, 무더운 여름 날씨였습니다, 세월( 歲月 )의 흐름은, 복잡( 複雜 )한 과정( 課程 )을 거치며, 묵묵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 後遺症 )이 남아 있는, 조국 정국( 政局 )의 서막( 序幕 ), 막강한 광풍( 狂風 )의 위력( 威力 )을, 실감( 實感 )하게 하여 준, 태풍( 颱風 ) ” 링링 “이, 9월 7일 한반도( 韓半島 )를 통과( 通過 )하여, 지나같습니다, 거의 한 달이 지난, 2019년 9월 17일 토요일, 주왕지맥 삼방분맥 ” 넘 배일치 버스 정류장( 웨이포인트 명 : 넘 배일치 버스 )->배일치재( 배일치재 쉼터, 배일치재, 배일치 )->송학분맥 갈림길( 웨이포인트 명 : 송학갈 )->푯대봉 정상( 웨이포인트 명 : 푯대봉 )->송학분맥 갈림길->문개실 버스정류장->영월삼거리 버스정류장( 웨이포인트 명 : 영월삼거리버스 ) “ 구간을 산행 할 때는, 최고 기온이 27( 度 )로, 낮아 진, 아직은 여름의 열기( 熱氣 )가, 조금은 남아 있는, 초가을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③ 2019년 9월 17일 화요일, 01시 43분 경, 청량리역을 출발( 出發 )한,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 列車 )가, 영월역 부근( 附近 )에서, 달리는 속도( 速度 )를, 점차 줄여 나갑니다,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 氣溫 差 )가 심하기는 하여 도, 서울에서는, 반 팔 윗도리로, 그런대로 버틸 만합니다, 차창( 車窓 ) 밖을 보니, 반 팔 윗도리를 입고, 이동( 移動 )을 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 와, 긴 팔 윗도리를, 입기도 귀찮고 하여, 반 팔 만 입고, 열차에서 밖으로 내려섭니다, 갑작스럽게 오싹 하는 기운( 氣運 )이 느껴지더니, 몸이 갑작스러운 추위에 반응( 反應 )을 하 기 시작( 始作 )합니다, 역 대합실( 驛 待合室 )에서, 배낭을 열어, 긴팔 윗도리를 입기도, 귀찮고 하여, 가까운 세종 장으로 잠깐의 추위를 참으며, 바로 들어갑니다,
④ 송학분맥( 松鶴分脈 )에 대하여 ....
송학분맥은, 삼방 분맥 길에 있는, 푯대봉 정상( 웨이포인트 명 : 푯대봉 )을 지나, 566.8봉( 삼방분맥과 송학분맥이 갈라지는 지점 : 웨이포인트 명 : 송학갈 )에서, 삼방 분맥과 갈라 저, 나간 산 줄기입니다, 산줄기의 경과 지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566.8봉->웨이포인트명 : 배일재( 배일치재 쉼터, 배일치재, 배일치 )->도덕산( 道德山 )->화병교->솔미산->사슬치->송학산( 松鶴山 )->비룡담저수지, 제 2 의림지( 飛龍潭貯水池 : 第 二 義林池 ) “영월군에서 제천시로 연결되는 산줄기입니다,
1 산행년월일시 :
영월지방 날씨 : 2019년 9월 17일 토요일 맑음 27/14(도), 미세먼지 : 좋음,
2 산행 지가는 길 :
① 상계역 : 4호선->창동역 : 1호선->청량리역 1호선 하차( 下車 )->청량리역 역사( 驛舍 )로 이동( 移動 )->2019년, 9월 16일, 월요일, 23시 20분, 청량리 발, 강릉 행, 무궁화 열차에, 승차( 乘車 )->2019년, 9월 17일, 화요일, 01시 43분, 영월역 도착->역 주변에 있는 세종 장 여관에 숙박( 宿泊 )->05시 00분에 일어나->추석( 秋夕 ) 명절( 名節 )을, 보내기 위해, 준비( 準備 )한, 송편과 기장떡으로, 간단( 簡單 )하게 아침 식사( 食事 )->05시 30분에 세종 장 출발->동강 변 도로를 따라, 걸어감->동강대교 지나->영월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영월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 周邊 )에 있는, 편의점( 便宜店 )에서, 소고기 햄버거, 새우햄버거, 각각( 各各 ) 1개씩 구입( 購入 )->영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운 거리( 距離 )에 있는, 김 약국 앞, 06시 30분, 터미널 사거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림->06시 40분, 주천( 酒泉 )으로 가는, 버스에 승차->07사 04분 넘 배일치 버스정류장( 웨이포인트 명 : 넘 배일치 버스 )에서 하차->잠시 산행 준비를 한 후->산행을 시작,
② 영월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 到着 )하여, 24시간( 時間 ) 영업( 營業 )을 하는, 영월 시외버스 터미널 건물( 建物 )에 있는, 분식점( 粉食店 )에 가 보니, 출입문( 出入門 )이 잠기어 있습니다, 아마도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영월군 근방( 近方 )에 있는, 산길을 걸을 때, 햄버거를 먹거리로 가지고 갔는데, 먹거리가 식성( 食性 )에 맞지를 않아, 분식점에서 파는, 김밥을 사가지고 갔었습니다, 발길을 돌려, 주위( 周圍 )에 있는, 편의점에서, 소고기 햄버거와, 새우 햄버거, 각각 하나씩을 구입합니다,
3 집으로 오는 길 :
① 15시 00분, 영월삼거리 버스정류장( 웨이포인트 명 : 영월삼거리버스 ) 도착->산행 마무리 ->15시 30분경, 영월삼거리 버스정류장( 웨이포인트 명 : 영월삼거리버스 )에서, 제천( 堤川 ) 방향( 方向 )에서 오는, 시외( 市外 )버스에 승차( 乘車 )->영월 시외버스 터미널, 하차( 下車 )->영월 시내 지나->
동강대교 지나->동강 변 도로를 따라, 걸어->영월역( 寧越驛 )도착->17시 26분, 영월역에 도착하는, 강릉발 청량리행 열차, 승차권( 乘車券 ) 구입->영월역 대합실에서 기다림->17시 26분 강릉발 청량리행 무궁화호에 승차->20시 05분, 청량리역 하차->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으로 이동->창동역 : 1호선->마을버스 05번 승차->집에 도착,
② 15시 00분, 영월삼거리 버스정류장( 웨이포인트 명 : 영월삼거리버스 )에 도착하여, 산행 마무리를 하고, 목이 말라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시원한 바나나 우유 한 팩을 사서, 마시는 중, 주천에서 14시 30분에 출발한 버스가,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버스를 놓치고 난 후, 바나나 우유를 다 마고,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돌아와, 영월시내로 가는, 영월시내버스 시간표를, 보니, 한참 후에나 버스가 있습니다, 마침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 분이 있어 물어 보니, 잠시 후에 버스가 온다고 말을 하여 줍니다, 잠시 후 제천방향에서, 영월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가 도착을 합니다,
* 산행시간, 설명에 나오는 지점들에 대하여 :
산행 과정에서, 각각의 지점에 대한, 시간은, 조건에 따라, GPS의 ON/OFF 시간, 웨이포인트를 작성한 시간( 시, 분, 초 단위의 시간 ), 사진기로 이정표 등을 찍은 시간( 시, 분 단위의 시간 )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설명에 나오는, 지점들에 대한 지점의 이름은, 웨이포인트 이름, 첨부 지형도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산행시작 : 영월군 한반도면 덕전리, 넘 배일치 버스 정류장( 웨이포인트 명 : 넘 배일치 버스 ), GPS ON : 06시 59분 00초
5 산행종료 : 영월군 북면, 문곡리, 영월삼거리 버스정류장
( 웨이포인트 명 : 영월삼거리버스 ) GPS OFF : 14시 53분 43초
6 산행시간 : 7시간 54분 43초
7 산행거리 : 10.5274( Km )
8 이정표 통과시간( 숫자의 단위는 Km ) :
06 : 59 : 00 넘 배일치 버스 정류장( 웨이포인트 명 : 넘 배일치 버스 ), 버스에서 내려, 잠시 동안 산행 준비를 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며, 버스정류장 이름을 보니, 영월에서 주천으로 가는, 버스정류장 이름은 ” 넘 배일치 버스 정류장( 07 : 04 ) “이고, 도로 건너 맞은 편, 버스정류장이름은 ” 배일치마을 버스정류장( 07 : 05 ) “입니다, 동일( 同一 )한 장소( 場所 ) 인데, 도로( 道路 ) 하나 사이로, 서로 맞은편에 있는, 버스정류장 이름이 달라집니다,
07 : 06 ” 배일치재 가는 길 “, 목재 방향 입간판( 木材 方向 立看板 ) 촬영
07 : 06 ” 서낭당 “, 목재 방향 입간판( 木材 方向 立看板 )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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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 15 서낭당 도착 건물 촬영
서낭당( 城隍堂 )에 대한 이야기 !!!
서낭당( 성황당 ) 현판 사진입니다, 현판의 가운데 글자를 옥편을 찾아 보아도 글자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로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 圓錐形 )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 形態 )를, 하고 있습니다, 돌무더기 곁에는, 보통( 普通 ) 신목( 神木 )이라고 하는 나무나, 장승이 세워 저 있기도 합니다, 서낭당을 지날 때, 돌무더기 위에, 돌 세 개 정도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 財數 )가 좋다고 하는, 속설( 俗說 )이 있습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시는, 신( 神 )의 영역( 領域 )으로, 민속 신앙( 民俗 信仰 )이 행하여지는, 장소( 場所 )입니다, 서낭당이 있는 곳을, 오고가는 사람들은, 돌, 나무, 오색( 五色 ) 천 등 무엇이든, 놓고 지나다녀야 했습니다, 서낭당 주위( 周圍 )에 물건( 物件 )을 함부로 버리거나, 주위에 있는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아야 한다는, 금기( 禁忌 )가 있습니다, 서낭당이 마을의 경계( 境界 )를 나타내거나, 석전( 石戰 )에 대비( 對備 )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는, 설( 說 )이 있기는 하나, 민간( 民間 )에서 서낭당은, 종교적( 宗敎的 )인 의미( 意味 )가 농후( 濃厚 )합니다, 우리나라에, 서낭 신앙( 信仰 )이 전래( 傳來 )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 新城鎭 )에, 성황사( 城隍祠 )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 始初 )라고 합니다, 그 뒤 고려( 高麗 )에서는, 각 주 부 현( 州 府 縣 )마다, 서낭을 두고, 극진하게 위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전주( 全州 )서낭이 유명( 有名 )하다고 합니다, 고려 고종은, 고려를 침입( 侵入 )한 몽고병( 蒙古兵 )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 神號 )를 내리기도 하였답니다, 수호신( 守護神 )으로서의 서낭은, 조선시대( 朝鮮時代 )에 들어와서도 널리 믿게 됩니다, 조선시대의 서낭은, 국행( 國行 )서낭과, 민간 신앙으로서의 서낭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국행 서낭은, 호국( 護國 )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태조 이성계 李成桂 )는, 즉위 후, 산천 여러 곳에 서낭당을 지어, 제사( 祭祀 )를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태종은 백악( 白岳 )서낭, 송악( 松岳 )서낭을, 신도( 新都 )서낭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그 밖의 조선시대의 이름난 서낭으로는, 해주, 괴산, 현풍, 양산, 신성( 新城 ), 밀양, 전주, 고성서낭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낭에서는 정기적( 定期的 )인 제사뿐만 아니라, 국난( 國難 )이나, 가뭄이 있을 때, 서낭제를 지내게 하여, 국태민안( 國泰民安 )을 기하려 하였다고 합니다, 서낭당의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 서낭나무에 잡석( 雜石 )을 난적( 亂積 )한 누석 단( 累石 壇 )을 두고, 신수( 神樹 )에, 백지나, 청, 홍, 백, 황, 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② 잡석을 난적 한 누석 단 형태
③ 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
④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⑤ 입석(立石) 형태 등이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중, 가장 보편적( 普遍的 )인 형태가 ①의 형태이며, ②의 형태는, ① 형태의 서낭나무가 퇴화( 退化 )되거나, 길옆의 누석 단이 먼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③의 형태는, 수목신앙 ( 樹木信仰 )에 후기적( 後期的 )으로, 서낭나무에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매는, 헌남속( 獻納俗 )이 복합( 複合 )되거나, 처음부터 서낭당의 신수, 헌납속( 獻納俗 )만 강조( 强調 )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⑤의 형태는, 높이 120∼200㎝ 안팎, 폭 90∼120㎝ 가량의 자연석( 自然石 )을 세워놓고 ” 수구매기( 水口막이 ) “, ” 돌 서낭 “, ” 선돌 “ 등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중부, 남부 지역에서, 간간이 발견( 發見 )됩니다, 신수에 당집이 복합된, ④의 형태는, 중부 내륙 산간지역과, 백두대간( 태백산맥 : 太白山脈 )동쪽 영동지역에 분포( 分布 )되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韓國民族文化大百科事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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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서강로 옆으로 난, 배일치 터널이 생기기 전( 前 ), 버스가 다니던, 구 도로( 舊 道路 )를 따라 올라 갑니다, 서낭당이 있다고 하여, 거기도 둘러보고, 배일치 터널 500( 미터 전 ) 입간판도 촬영을 합니다,
07 : 16 배일치터널 500( 미터 전 ) 입간판 촬영
구도로는 서강 로와 이별 인사( 離別人事 )를 하며, 서서히 멀어 저 갑니다, 아침의 시원한, 청정( 淸淨 ) 영월 공기( 空氣 ) 마시며, 텅텅 비어 있는 포장도로( 鋪裝道路 )를, 주위( 周圍 )에, 먼 창공( 蒼空 )의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뻣어 올라간, 나무들의 수려( 秀麗 )한 자태( 姿態 )와, 지난 날 구 도로를 만들며, 만들어 놓은 절개지( 切開地 )의 아픈 속살들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구불거리며 올라가는 오름길을 터벅터벅 걸어올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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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 35 : 06 웨이포인트 명 : 배일치재
07 : 39 배일치재쉼터 돌비석 촬영
07 : 40 단종대왕 유배( 流配 )길 ” 인륜( 人倫 )의 길 “안내 입간판 촬영
배일치재( 拜日峙 ) :
석양( 夕陽 ) 속에서, 해가 지는 곳을 향해, 큰 절을 올리다,
단종대왕( 端宗大王 )이, 굽이굽이 진 험( 險 )한 고개를 오르니, 어느덧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퍼지고 있었다, 이곳 배일치 고개 마루에서, 서산( 西山 )으로 넘어가는, 석양( 夕陽 )을 바라보니, 승하( 昇遐 )하실 때까지, 자신( 自身 )을 걱정하던 아버지 문종대왕( 文宗大王 )과, 어머니 현덕왕후( 玄德王后 ), 사육신( 死六臣 )들, 특히 문종대왕으로부터, ” 단종을 잘 보필해 달라 “는 부탁을 받고, 단종대왕을 위해, 죽음으로써, 충절( 忠節 )을 지켰던, 성 삼문( 成 三問 )이 떠올랐다, 단종대왕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서산에 기우는, 해( 太陽 )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고 하여 ” 배일치( ) “라는 이름이 전해진다,
07 : 40 배일치 소개 비석( 碑石 ) 촬영
배일치( 拜日峙 ) :
이곳은 단종께서, 노산군( 魯山君 : 단종이 왕이 되기 전, 군 : 君 : 의 칭호 : 稱號 : )으로 강봉( 降封 ) 되어, 영월 청령포( 淸泠浦 ) 유배 길에, 넘으신 고개이다, 귀양지는 가까워오고, 귀양살이에 대한, 불안( 不安 )한 마음을 가눌길 없어, 이 고개에서, 서산으로 지는 해를 향하여, 절을 하면서, 장차( 將次 ) 운명( 運命 )을 기원( 祈願 )하였다 하여, ” 배일치 “라고 부르게 됐다,
07 : 41 배일치 ” 옛 고개길 “ 안내 돌비석 촬영
07 : 42 ” 배일치재 산책로 “ 입간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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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치 재 쉼터, 여러 곳을 둘러보고, ” 익플 710 “ 화면( 畫面 )에 나타난 산행 경로( 山行 經路 )를 확인( 確認 )하여 봅니다, 도로 옆 절개지로 올라가라고, 표시( 表示 ) 됩니다, 우선, 고개 정상( 頂上 )에서, 영월 방향으로 잠시 걸어 봅니다, 절개지 중턱에, 토종( 土種 ) 벌을 키우는, 벌통 몇 개가, 위태롭게 경사면( 傾斜面 )에, 발을 붙이고, 멀지 감치 서 있습니다, 경사면을 조금 올라가며, 위를 보니, 잡을 곳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다시 원 위치( 原 位置 )로 ... 또 다른 오름길이 없나, 배일 치( 拜日峙 )로 오르던, 방향으로 내려가며, 오름길을 찾아 봅니다, 한 참을 내려가니, 마땅한 오름길이, 나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희미( 稀微 )한 길 흔적( 痕迹 )을 찾아, 내려오던 반대 방향( 反對 方向 )으로, 비탈을 횡단( 橫斷 )하며 걸어갑니다,
08 : 11 : 43 웨이포인트 명 : 김영김공
08 : 20 김영김공용수지, 배유인영양남씨지묘
( 金寧金公溶秀之, 配孺人英陽南氏之墓 ) 통과
08 : 24 국선처사김영김공경성지묘
( 國善處士金寧金公慶聲之墓 ) 통과
08 : 32 사수처사김영김공용수지묘
( 師洙處士金寧金公溶之秀墓 ) 통과
산봉우리 오름 길, 잘 가꾸어진 묘( 墓 )가 있는가 하면, 폐 묘가 되어, 봉분( 封墳 )조차 희미한 묘도 보입니다, 위에 기록( 記錄 )된 묘들은, 아마도 ” 김영 김 “ 씨 가족묘( 家族墓 )인 듯합니다, 사람 한 세상( 世上 ) 살다 죽어 가면, 작은 평수( 坪數 ), 안식처( 安息處 )하나, 배정( 配定 ) 받아, 좌우( 左右 )로 진흙 골짜기에, 비좁게 누어, 혼백( 魂魄 )은, 저승사자가 불러 가고, 혼백 없는, 몸 뚱 아리, 썩고 또, 썩어 가는 것이 고작인데, 먼 세월 지나면, 그 마저도, 지신( 地神 )에게 반납( 返納 )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만고( 萬古 )에 진리( 眞理 )건만, 살아서 천만년( 千萬年 )을 살 듯, 위세( 威勢 )를 부리는, 불쌍한 인생( 人生 )들을 생각하면, 그저 입가에 웃음만이 절로 나올 뿐입니다, 요사이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생각하며,
08 : 45 : 56 웨이포인트 명 : 지적경계점
08 : 53 지적경계점( 地籍境界點 : 웨이포인트 명 : 지적경계점 )
시설물( 施設物 ) 촬영
지적경계점( 地籍境界點 )은, 측량 삼각점( 測量 三角点 )과 달리, 토지( 土地 )를 관리( 管理 )하는, 지적( 地籍 )에 대한, 경계점( 境界點 )을 표시하는 시설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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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 32 : 23 웨이포인트 명 : 푯대봉
09 : 37 푯대봉 정상( 웨이포인트 명 : 푯대봉 ) 도착
① 산 여 울( 김 명근 ), 제주 : 홀대모, 오름사랑 대간사랑 돌, 바람
대구( 뫼들 ), 푯대봉 561.6( 미터 ) 리본 촬영
② 삼각점 촬영, 영월 304, 1995년 재설
먼저 산 행시, 푯대봉에서 능선( 稜線 )을 타고, 덕전리로 바로 하산( 下山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삼방분맥과 송학분맥이 갈라지는 지점( 地點 )에서, 푯대봉까지 왕복( 往復 )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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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 55 : 20 웨이포인트 명 : 송학갈( 푯대봉 왕복 후 작성 ),
삼방분맥과 송학분맥이 갈라지는 지점
10 : 07 : 26 웨이포인트 명 : 산불초소,
10 : 16 산불 감시초소( 監視哨所 : 웨이포인트 명 : 산불초소 ) 건물 촬영
10 : 16 : 12 웨이포인트 명 : 콘크리트,
진행방향( 進行方向 )으로, 우측( 右側 )은 콘크리트 포장( 包藏 ),
좌측( 左側 )은 비포장임도( 林道 )로 되어 있습니다
12 : 19 : 12 웨이포인트 명 : 순천박씨묘,
12 : 30 ” 유인순천박씨지묘 “ 비석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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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46 문개실 버스정류장 도착
14 : 48 문개실 마을 안내 돌 비석 촬영
14 : 49 문개실 마을로 가는 평창강( 서강 )다리에서 사진 촬영
① 문개실( 北下里 )마을 :
3면( 三面 )이, 서강( 西江 : 平昌江 )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입니다, 남쪽 마을의 남쪽은, 검각산( 劍閣山 )으로 이어집니다, 전에는 남애의 위쪽에서, 나룻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 문개실로 갈수 있었으나, 쇠목에 점토장이 만들어지면서, 갈골 앞 서강에 잠수교( 潛水橋 )가 만들어 졌습니다, 문개실은, 물이 넘나드는 큰 개( 포 : 浦 )가 있는 마을로, 비가 개인 후에는 물안개가 피어나, 마을 전체가, 물 위에 뜬것처럼 보여서, ” 부개실( 浮浦洞 ) “이라 하였으나, 그 후 ” 문개실 “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한 동안으느 ” 북하리 ( 北下里 ) “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곳이, 영월로 들어가는, 입구( 入口 )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답니다,
자선하여 당대 발복한 유씨
영월에서 제천으로 가자면, 문곡( 文谷 ) 삼거리( 三巨里 )에 이르는데 거기서 다시 300m쯤 더 나가면 능선을 잘라 큰 길을 닦았고 그 왼쪽에 옥녀봉( 玉女峯 )이 있다, 그 오른쪽 양지바른 곳에는 묘 2기(基)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전설의 주인공 유 만호( 劉 萬戶 ) 부자의 묘이다, 그 묘의 서쪽 마을에 ‘갈골’이고, 동남쪽으로 강 건너 마을이 ‘문개실’이다, 옛날 갈 골에 어렵게 살던 유 씨라는 농부는 농토가 없어서 문개실에 건너가 농사를 지었다, 집과 농토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점심은 항상 그 부인이 날라다 주어야 했다, 아지랑이 끼는 따뜻한 어느 봄날 오후 유 씨 처는 밭에 점심을 날라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지쳐 쓰러진 늙은 중을 발견하였다, 마음 착한 그 부인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가까이 가보니 숨소리가 아직 살아있는 듯하기에 흔들어 깨워 보니, 그 노승은 겨우 눈을 뜨고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부인은 큰소리로 “ 왜 여기에 쓰러져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허기가 져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음식은 다 먹고 빈 그릇뿐이요. 집에 가보았자 금방 먹을 것을 마련할 처지도 못되고 그냥 버려두면 노승은 굶어 죽을 것만 같았다. 부인은 생각다 못하여 마침 애기 젖을 먹이고 있던 터인지라 우선 사람부터 살려놓고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기의 젖꼭지를 중의 입에 물려주었다. 허기졌던 그 중은 본능적으로 젖을 다 빨아먹고는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그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감사하고 감격하여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 시절은 남녀가 유별하여 내외하며 살던 때이므로 그 부인의 처사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자선( 慈善 )이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치하를 하고는 이 은공( 恩功 )은 갚을 길도 없거니와 주인어른께 인사라도 하고 가야 하겠다며 주인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으니, 그 부인은 민가도 많지 않은데 지친 중을 그냥 가라고 하기 도 난처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윽고 남편 유 씨가 돌아왔으므로 노승은 큰 절을 하고 전후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이야기하며 간절하게 고마운 인사를 하였다. 그 아내에 그 남편, 착한 유 씨는 자기 부인이 한 처사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날도 저물었으니 집에서 쉬어가라고 권했다, 그래서 중은 이 집에서 하룻밤을 유하게 됐다. 주인이 인도하는 대로 건넌방에 들어 그날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하면서 누워 있는데 안에서 소리가 그치더니 유 씨 부부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왔다, 알고 보니 그 유 씨는 초상상주( 初喪喪主 )였다, 중은 그날 밤을 그 집에서 잘 자고 이튿날 아침 떠나면서 “ 태산 같은 재생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보아하니 상중인 모양인데 구산(求山 ; 산소자리 잡는 일)은 되었습니까? ” 하고 물으니 “ 가세가 이 꼴인데 구산이 다 뭡니까. 묘 자리를 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러면 소승이 아는 것은 없으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다는 뜻에서 묘 자리를 하나 보아드리겠습니다, 나하고 같이 나가봅시다,”하여 둘이서 묘 자리를 보러 나섰다, 남쪽을 바라보면서 지팡이를 꽂는다 얼마 안가서 중이 말하기를 “ 당신은 무엇을 소원하십니까 ” 한즉 유씨는 “우선 가난한 것이 한이요, 글공부는 못하였으나 기운은 세니까 무관계통의 일이면 해낼 법도 하나 벼슬이라는 명칭 자체도 모릅니다마는 사람들에게 얻어들은 만호첨사( 萬戶僉使 )밖에 알지 못하니 만호( 萬戶 ) 한자리나 하면 만족하겠습니다,”고 대답했다, 이에 중이 “ 앉으면 보이고 서면 안 보이는 큰 자리도 있어 삼상육판( 三相六判 )이 날만한 좋은 자리도 있긴 하나, 당대 발복( 發福 )은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자리에다 아버지 묘를 쓰도록 하시오.”라고 하면서 자리를 집어주고는 홀연히 떠나갔다, 이 묘 자리는 큰길이 나기 전에는 옥녀봉과 뒷산이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동남향에 양지바른 아주 좋은 자리였다, 유 씨가 그 자리에 아버지를 장사지냈음은 물론이다, 그 후 어느 해 가을날 전과 같이 문개실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는데 배를 젓는 삿대가 물 바닥에 꽂혀서 빠지지 않았다, 유 씨는 하는 수 없이 물속에 들어가 살펴보니 삿대가 푸 대에 끼어서 나오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 푸 대를 치우려고 보니 엽전전대( 엽전을 넣는 푸대 )가 다섯 개나 물속에 잠겨 있지 않은가 깜짝 놀란 유 씨 부부는 그것을 집으로 갖다 놓고 생각해 보니 지난여름 장마에 떠내려 온 것이 분명하므로 그냥 가질 수도 없어 관가에 신고하고 널리 광고를 내보았으나 끝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관가에서도 하는 수 없이 신고 된 물건을 유 씨에게 되돌려 주어, 유 씨는 그 돈으로 문곡리, 인당리 등의 땅을 사서 부유하게 살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묘 자리를 잡아주던 노승이 보통 중이 아닌 것을 알게 되자 겸하여 벼슬할 생각이 났다, 그는 벼슬 한자리 얻어 볼까 하고 돈을 두둑 히 갖고 서울로 올라갔다, 사고무친( 四顧無親 )한 그는 어디 가서 어떻게 해야 벼슬을 할 수 있는지 몰라 벼슬아치가 많이 살고 있는 가회동( 嘉會洞 )의 큰집 옆에 있는 객주 집에 방을 얻어 놓고 어슬렁어슬렁 서울거리를 구경이나 하면서 소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캄캄한 밤중에 변소에 가서 소변을 보고 나오려고 하는데 마침 그 큰 집 담을 넘어가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본래 힘이 센 그는 다짜고짜 담 넘어가는 놈의 다리를 나꿔채서 붙잡아 가지고 꽁꽁 묶어 결박 지은 다음 그 큰집 대문을 두드렸다, 그 집 청지기는 왜 밤중에 소란을 피우느랴며 판서대감이 주무시는데 조용히 하라고 했다, 판서란 소리를 들은 그는 더욱 소리 높여 도적놈을 잡았으니 문을 열라고 고함을 쳤다, 잠자던 집주인 판서대감은 바깥이 소란하니까 나와서 그 연유를 묻게 되었는데, 유 씨는 이 도적놈이 이 집 담을 넘으려고 하는 것을 잡았다고 말하고 인계해 주었다, 도적놈은 조사 결과 당파 싸움으로 판서를 죽이기 위해 들어온 자객으로 판명되었다, 판서는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번하였고, 또 사전에 그 음모를 알게 된 것은 권세를 잡고 있던 쪽에서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 씨는 그 판서집의 문객이 되어 소일을 하다가 집을 떠 난지 도 오래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판서는 더 있어주기를 권유하면서 그대는 무슨 소원이 없느냐고 물었다. 유 씨는 배운 것은 없으나 힘이 세니 만호첨사나 한자리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판서대감은 어렵지 않은 청이라고 즉시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유 씨는 만호첨사 벼슬을 하게 되었고, 힘이 세고 정직하여 만호첨사 일을 잘 해냈으며 나라에 크게 공헌하였다, 노승이 말 한대로 유 씨네 는 당 대발복하였고, 후세 사람들에게 마음씨 착한 유 씨 부인의 선행과 성공담이 오래도록 전해지고 있다, 유 씨 부부는 죽은 뒤 명당 터인 아버지 묘소 옆에 묻혔다고 한다,
② 갈 골( 葛 谷 ) :
문성개( 영월삼거리 )와, 옥녀봉( 玉女峰 )을 비켜 돌아, 연당으로 가는 38번 국도 우측에 있습니다, 남쪽 서강 건너로, 드넓은 갯벌로 형성( 形成 )된 문개실 마을이 있습니다, 이 골짜기에, 춘궁기( 春窮期 )인 ” 보리 고개 “ 때, 캐어 먹던 칡(갈, 葛)이 많았아 ” 갈골 “이라고 한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주천으로 가는 신작로( 新作路 )가, 개통되기 전까지, 갈 골은, 주천 방향으로 가는, 가장 큰 교통로 였 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종대왕께서도 명라동, 군등치, 배일치재를 넘고, 갈 골과 옥녀봉, 선돌, 서강을 지나서 청령포 유배지까지 오셨다고 합니다, 골짜기 안에는, 계곡 물을 이용한, 천수답이 있습니다,
② 문곡천 :
영월 삼거리와, 띠앗 일대의 문곡 4리 마을을 말합니다, 가느골 음곡천( 陰谷泉 )에서, 내려오는 물이, 서강( 西江 )으로 흘러들어 큰 개( 물이 드나드는 곳 )를 이루었으므로 ” 음성개 “라고 하다가, ” 문성개 “ 라는 지명이 생겼나게 됩니다, 어감( 語感 )이 좋지 않은, 음곡천( 陰谷泉 )이 문곡천( 文谷川 )으로
바뀌어 질 때, 음성개가, 문성개로 변하고, 음( 陰 )자가 문( 文 )자로 바뀌어 지면서 ” 음개실이→문개실 “로 변하였다고 합니다,
영월문화원 홈페이지, 지명, 민속, 전설편
14 : 53 : 43( 15 : 00 ) 영월삼거리버스정류장
( 웨이포인트 명 : 영월삼거리 )버스 도착, 산행종료
삼방분맥의 줄기는, 평창강( 平昌江 : 西江 )과, 문곡천( 文谷川 )이 만나는, 문개실 다리에서, 그 기운( 氣運 )을 다하고, 서강은 다시, 영월 덕포리( 德浦里 ) 합수머리에서, 동강( 東江 )과 합수( 合水 )되어, 남한강( 南漢江 )으로 흘러갑니다, 문개실 버스정류장은 주천등에서 오는 여러 방면의 버스를 탈수 있지만, 조금을 더 걸어가 영월 삼거리 버스 정류장은 공기리, 평창 등지에서 오는 버스도 탈 수 있어 영월 삼거리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영월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을 합니다,
9 지점 명에 대한 정보
지점 명( 地點 名 )에 대한 정보는, 산행시, 본인이 사용하는, 산행용 GPS( 익스플로리스트 710 )를 사용하여, 작성한, 웨이포인트( way point )를 트랙메이커( GPS TrackMaker )를 사용하여, 다시 한 번 작성하여 본 것입니다, 작성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웨이 포인트 표
10 지형도로 본 산행경로( 첨부 지형도 참조 ) :
넘 배일치 버스정류장->구 도로 걸어->배일치재->송학분맥 구간 걸어->삼방분맥, 송학분맥 갈림길( 566.8봉 )->512.4봉->푯대봉->512.4봉->삼방분맥, 송학분맥 갈림길( 566.8봉 )->산불초소->콘크리트 도로->506.8봉->412.6봉->327.2봉->갈골길 걸어->문개실 버스정류장->영월삼거리 버스정류장
주왕지맥_삼방분맥_넘배일치버스_배일치재_송학갈_푯대봉_송학갈_문개실버스_영월삼거리버스.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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