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처음으로 성경을 받아보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중국을 방문하고 복음을 믿게된 의주 상인들에 의해서였다. 한국인으로 처음 세례를 받은 이응찬, 백홍준, 이승하, 김진기, 서상륜 등은 상인의 신분으로 중국을 드나들면서 성경 번역을 돕고 번역된 성경을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와 여러 지역을 돌며 배부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Park 1999a:36-39).
한국교회는 선교운동을 시작한 초기부터 단기선교를 실시하였다. 평양 여선교회가 제주도에서 사역하는 이기풍 선교사를 돕도록 몇 년간 이관선 전도사를 파송하였고 이관선 외에도 많은 단기선교사들이 이기풍 목사와 제주도 선교를 위하여 협력하였다. 풀러 신학교의 박기호 교수는 그의 연구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평양 여선교회는 이관선 전도사를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하여 1908년부터 1913년까지 사역케 하였으며 평신도 선교사 김창문과 평안도 남학교에서 파송된 김현철이 학생선교사로 1909년에 제주도를 방문하였으며, 김홍련이 1915년, 최대진 목사와 최대선 목사가 1916년 일년간 제주도에서 사역했고 장덕상 목사가 1917-1918년까지 김창국 목사가 1917년에서 1923년까지, 이창규 목사가 1923년, 이도종 목사가 1931년에 (제주도에서) 사역하였다 (Park 1999a:55).
대한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에서는 1909년 한석진 목사를 3개월 간 일본 동경에 파송하여 일본에 있는 한국인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곳에 교회를 조직하도록 하였다 (Park 1991:48). 그리고 길선주 목사가 중국 산동성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도와 부흥회를 인도하기도 하였다. 시베리아 선교초기인 1921년 7월에는 정재덕, 박상우, 서영복 등이 김덕수 선교사와 협력하였으며, 김영학 목사가 1923년부터 3년간 블라디보스톡의 연한촌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였다.
이처럼 한국교회 초기의 단기선교는 주로 본국교단과 선교부에서 해외에 필요한 사역을 위해 파송하였으며 단기선교사들 역시 짧은 기간 사역하면서 분명한 목표와 사역을 가지고 있었다. 근래의 단기선교는 이에 비해 분명한 목적과 사역계획 없이 무작정 선교지를 방문하는 경향이 짙다. 이것은 외국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동기가 되거나 선교에 대한 무지가 단기선교사의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제 전문적인 연구와 전략을 마련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도래하도록 협력하는 단기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해외의 그리스도인들과 현지인들을 섬기기 위하여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국토가 초토화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면서 이러한 선교적인 열정은 식지 않았다. 박기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한국교회의 선교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특히 한국전쟁기간 동안 주춤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그 비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한국동란이 끝난 후) 1956년에는 태국에 선교사 부부 두 쌍을 보냈다. 또한 계화삼 목사는 1957년에 총회선교부에 의해서 대만에 파송되었다 (Park 1999a:124).
동란이후 본격적으로 타문화권 해외선교사들이 파송되면서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관심은 증가하였으며 파송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지를 방문하며 해외선교를 이해하는 수준에서 단기선교가 재개되었다. 그럼에도 동란이후 해외선교 시기에 있어서 단기선교의 침체 이유는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사역의 대상에 따른 협력의 한계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해외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였기 때문에 단기선교사로써 단기간 동역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타문화권 선교가 시작되면서 단일언어와 문화권에서 성장해온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언어와 문화적인 장벽이 단기선교라는 전략에 큰 장애로 놓이게 되었다.
둘째는 사역자체의 한계 때문이다. 타문화권 선교의 경우 실제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일이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에 시급하게 동역자나 함께 사역할 단기선교사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본부와 파송교회에 단기선교사를 요청하는 일 자체가 시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순일 목사는 한국전쟁이후에도 선교현지의 한인교회로부터 지원받거나 자비량으로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이민세대 선교사가 활동했다고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