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교회 안병인 장로님께,
장로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기도와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우리 가문의 신앙과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져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늘 붙들고 기도하는 중요한 제목 가운데 하나는 바른 역사,
특히 동은교회의 신앙사와 우리 문중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일입니다. 이는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추고 싶은 부분까지도 후손들에게 사실 그대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안양의 뿌리인 부림마을(동편마을)에서 남평문씨 문중은 오랜 세월 수많은 굴곡을 지나왔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시대와 혼란한 역사 속에서도 문학선 할아버님을 비롯하여
자손 문기성 장로님, 김간난 권사님, 그리고 문동호 장로님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불씨를 지켜 오셨습니다.
불모지와 같던 부림마을에 교회 개척의 첫 발걸음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가문의 역사에 밝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앙에서 멀어졌던 시간도 있었고, 재물 앞에서 흔들렸던 과정도 있었습니다.
과천 종중산(서울구치소 부근) 매각과 화성 비봉 양노리 선산을 둘러싼 일들은 지금도 제 마음에 깊은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훗날 후손들의 몫이겠지만, 기록만큼은 사실 그대로 남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재물은 사람을 지키기보다 때로는 가족을 갈라놓기도 했습니다.
저와 아내 최윤희 권사는 하나님의 권면 앞에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광야와 같은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살아왔지만,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이라 믿으며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문중의 갈등과 형제 간의 송사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안양역전 앞에서의 여러 일들과
안양성결교회 안팎에서 겪었던 갈등 또한 제 삶에서 지울 수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기에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겸손히 고백합니다.
특히 종중산 매각을 끝까지 만류하셨던 문명운 목사님(사촌형)과, 결국 재판으로까지 이어졌던 문동호 장로님(집안 조카)의 아픔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후유증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문동호 장로님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집안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이라도 지역사회 앞에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조카며느리와의 통화를 통해서도 그러한 뜻을 전한 바 있습니다.
또한 제가 존경했던 문동호 장로님의 어머님이신 김간난 권사님의 겸손한 삶은 지금도 제 신앙의 중요한 본이 되고 있습니다.
신앙은 결국 겸손과 용서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그분을 통해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안양성결교회에서 故 최태술 장로님, 원주에서 거주하신 이내천 장로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문학선 할아버님의 신앙의 뿌리를 기억하며 지난해부터 평촌교회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저는 『안양역전 앞 이야기』와 우리 가문의 신앙 및 역사를 자서전 형식으로 차근차근 기록해 나가고자 합니다.
저에게 기록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속죄와 회개의 고백이라 믿습니다.
때가 되면 그 기록도 동은교회에서 수고하시는 장로님과,
학창 시절 은혜를 입었던 故 김홍준 목사님의 장남이신 김성호 교수님께도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늘 기도해 주시고 마음 써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강과 은혜가 장로님과 장로님 가정 위에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평촌교회 문화영집사 드림
추신
며칠 전 안양박물관에 기증된 우리 집안 종중 기록물과 탁본 자료를 비롯하여,
동은교회 창립기념일이나 뜻깊은 행사가 있을 때 미리 연락을 주신다면,
속죄와 감사의 마음으로 기쁜 마음을 담아 기증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신명기 32:7)
참고
이 글은 저의 오랜 신앙의 동역자이셨으며, 마애종카페 창설자이신 故 최태술 장로님의 사랑과 신앙을 기억하며 삼가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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