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하고도 마지막 날이라는 말일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숫자로 불려지는 한 달의 끝날 31일이나 30일보다
말일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말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초 하루, 이틀, 사흘....보름으로 달려가다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후반부 숫자 부터는 좀 더 조심스럽게
열 엿새, 열 이레로 운을 떼어지다 말일이라는 단어 앞에 서면 그만 정지를 해야 할 것은 느낌이 드는 것.
그 느낌을 받는 순간 한 템포 쉬어가며 숨을 고르면서 막무가내로 달려온 한 달간의 여정을
되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는 말이다.
이제 그 말일, 11월의 끝자락에 서서 완벽한 계절로 달려 올 12월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물론 예전같으면 화려하다 못해 휘황찬란하다 싶을 정도로 온갖 장식을 해대며 12월을 맞겠지만
다 자란 아이들이 한 집에 기거하지 못하고 각자 자기 영역에서 제 갈길을 가는 처지라
그저 잊혀지지 않을 만큼만, 12월에 대한 배려 정도로 조촐한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엊그제 사들고 온 책을 읽으며 차 한잔의 세상 속으로 진입하려는데
무설재 명견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뜨락으로 나서니 낯선 차량이 들어오고 있다.
그럼 그렇지...두어 번 찾은 차량들이라면 웬만한 미운 털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짖어댈리 없는 거지 싶어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여기가 무제?" 라는 말이 귓전을 울린다
.
" 아, 네...맞는데요." 라니 " 에고, 안내판 좀 제대로 해놓으시지" 라며 푸념이다.
" 그러게요..제가 좀 친절하지 못하죠? 헌데 안내 팻말을 여지저기 해놓으면 오신 분들이 불편 하실 걸요?"
" 왜요? 그래도 찾기가 힘들어서 고생했어요...세 번이나 다른 길로 찾아갔는 걸요"
안다...모르는 바는 아니다.
헌데 원래도 조금밖에 안내판이 없었지만 그나마 금광 저수지 끝 다리 곁 순덕 상회 앞에 있던 간판마저
음주 운전자에 의해 들이받혀진 다음에는 그집 쥔장이 바뀌어 쉽게 안내판을 세워주지 않는다.
사실은 무설재 신선이 그집의 단골 고객인데도 말이다...종류는 묻지 마시라.
어쨋거나 그전에는 앞 부분에 있던 입간판을 어느 아저씨가 훼손을 한 이후로도
게을러터진 무설재 쥔장들은 그 간판을 다시 제 자리에 꽂아놓고 있지 못하다...간판이 차인다는 것은
쥔장의 몸을 차인다 는 것과 동일하므로 그런 불상사를 두번 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변명과 핑계를 붙여서.
암튼 긴 설명은 아니지만 간단히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야 이해 가능해지신 초로의 초등학교 동창들은
" 어찌 이런 곳에 이렇게 근사한 곳을 마련하고도 꼭꼭 숨어사느냐" 고 한 마디 거드신다.
" 본래 시끄러운 문명 세상이 싫어서도, 안성이 좋아서도 내려온 것이니 굳이 시끌벅적하게 살 일은
아니지만 나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곳인데 어떻게 오시게 된 거에요?"
" 우리도 사실은 안성을 가게 되면 꼭 찾아가 보라는 소개를 받고 왔는데 찾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랍시는
분들은 용인에서 오셨단다.
그러고 보면 무설재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쉽게 찾아들지 못하고 이래 저래 빙빙 돌다 포기할 즈음에
무설재를 만나는 횡재를 누린다...이름하여 횡재라는 말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짜증 날 무렵에 찾아든 무설재는 일단 필연의 인연인 것은 맞다.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첫발걸음으로 무설재 문을 열 수 있다 는 것,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은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어렵게 찾아들어 맞게 될 자리에서의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게 되는 열락의 순간은
발을 들여놓는 발끝으로 부터 전해지니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감탄사 연발은 당연연지사요
다락방에 오르면 어머니의 자궁만큼이나 편안한 금상첨화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좋다를 연발 할 수밖에 없다.
이름하여 보너스 요 좋은 차를 마시며 가까운 지인과 나누는 다담의 수순은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는 말씀이렸다.
암튼 힘들게 찾아들었으나 잠시 배회한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좋아하니
쥔장의 입장에서도 기분 좋았음은 말 할 것도 없고
찾아든 이들의 소박함이 더더욱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그들은 안성 하고도 동신 초등학교 동창생으로서 동창의 자제 결혼식에 동반 참석을 하고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하여 각자 생활터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본거지인 안성으로
발길을 돌려 추억 삼매경에 빠지다 차 한잔 생각에 발길을 무설재로 놓게 되었다 는 것.
육십이라는 나이..거저 먹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달려간 만큼 그들의 주름살도 깊어가고 삶의 지혜도 늘어가건만
그리운 것은 지난 날의 과거요 소싯적 기억들이다.
그리하여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는 어릴적 이야기에 동행을 하면서 슬쩍 끼어들기를 자청하나니
그들의 물 흐르듯이 기억되는 시간 속 여행을 함께 하는 듯 하다.
그중에서도 사진에는 잠시 출타중이지만 양복리 주막거리 라 불리는 곳에 살았던 김종성씨의
양협토기에 관한 비화를 들으면서는 잠시 울컥.
초창기에 안성시민이 되어 발품을 팔아 찾아든 양협토기에서의 기억이 별로 좋지를 않아
마음이 불편하였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잊혀졌겠거니 싶었지만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어 쥔장 스스로 화들짝 놀라기는 했으나 그만큼 예전에 불쾌했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알겠다.
어쨋거나 가까운 이웃출신들이 찾아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분위기 충천이라
이어지는 다담의 수순은 유연하기 짝이 없고 특히 3년 차 다인이신 김복기님의 반응은
그야말로 말 한 마디에도 척 하면 삼천포다.
그러다 보니 진정으로 차에 대해 마음을 나누게 되고 가세한 분위기는 어느 덧 상승세를 타지만
바깥으로는 산 속답게 발 빠른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와중에 서둘러 일어서는 친구의 발목을 붙잡으며 조금 더 조금만 더를 반복하다가
기어이 시동을 켜고 기다리는 친구의 서두름을 쫓아 발길을 돌리면서도
여전히 눈길은 무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고맙다...어렵게 찾아들어 시간을 나누며 만끽의 다담을 이어간다는 것,
어린 시절의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 삼매경에 더불어 푹 빠져 든 기억이 참으로 따스하다.
이어 돌아가는 길에 남긴 그들의 마음이 담긴 흔적 하나 덧 붙인다.
....안성에 사는 윤상민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동신초등동창 아들 결혼 때문에 음성에 다녀오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무제 찻집에 왔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시간 가는 줄 모르며....아,쉽,다
그들만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모처럼 마음맞는 친구 만나 수다를 떨듯 쥔장 역시
함께 하는 시간 내내 만발의 웃음발을 날리며 더불어 행복했다.
마치 내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듯이...초로의 나이가 주는 선물이다.
첫댓글 내 국민학교 친구들은 다 어디서 무얼하며 지내고 있을까나~?
쥔장의 글을 읽다보니 새삼 궁금해집니다. ^ ^
또한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