鏡浦臺(경포대)
황희(黃喜:1363~1452)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했다. 시호는 익성(翼成)이다.
저서로는 『방촌집(厖村集)』이 있다.
경포호 맑은 물에 초승달 잠기고
澄澄鏡浦涵新月 징징경포함신월
축 늘어진 찬 솔에 푸른 안개 서렸네
落落寒松鎖碧煙 낙락한송쇄벽연
비단구름은 땅에 차고 경포대에는 대나무가 가득하네
雲錦滿地臺滿竹 운금만지대만죽
티끌세상에도 바다 가운데 신선이 있다네
塵寰亦有海中仙 진환역유해중선
*
초당(草堂) 두부가 오는 밤
문성해
옛날에는 생각도 못한 초당을 알아
서늘한 초당 두부를 알아
동짓날 밤
선연한 선지를 썰듯 썩둑썩둑 그것을 썰면
어느새 등뒤로는
그 옛날 초당* 선생이 난을 칠 때면
뒷목을 서늘케 하며 일어서던 대숲이 서고
대숲을 흉흉히 돌아나가던 된바람이 서고
그럴 때면 나는 초당 선생이 밀지(密旨)를 들려 보낸
이제 갓 생리 시작한 삼베 속곳 일자무식의
여복(女僕)이 된다
때마침 개기 월식하는 하늘 분위기로
가슴에 꼬깃꼬깃 품은 종잇장과
비린 열여섯 해를 바꿀 수도 있을 것 같고
저잣거리의 육두문자도 오늘 밤만큼은 들리지 않는다 하고
밤 종일 붙어 다니는 개새끼들에게도 한눈팔지 않고
다만 초당 선생 정짓간에서 저고리 가슴께가 노랗게 번진 유모가
밤마다 쑹덩쑹덩 썰어 먹던 그것 한 점만 우물거려 봤으면
이 심부름 끝나면 내 그것 한 판만 얻어
뱃구레 훌쭉한 동생들과 실컷 먹으리라던
허리춤에 하늬바람 품은 듯 훨훨 재를 넘던 그 여복이
초당 선생 묵은 뒤란으로 죽어 돌아온 밤
그 앞에 서면 그 여복 생각에 선생도 목이 메었다는 그것을 나는
슬리퍼 찍찍 끌고 동네 마트에서 너무도 쉽게 공수받아
이 빠진 할멈처럼 호물호물 이리도 쉽게 먹는다는 생각에
그것이 오는 밤은
개짐**에 사타구니 쓸리는 줄 모르고 바삐 재를 넘던 그 여복처럼
목숨을 내놓지는 못할지언정
슴슴하고 먹먹한 시 한 편은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우라질 초당 두부가 오는 밤이다
*허엽(許曄: 1517~1580)
조선 중기의 문신, 호는 초당(草堂)이며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 청백리며 문장가, 조광조·윤근수·구수담·허자 등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파직당함. 허엽은 강릉의 바닷물로 간을 한 두부를 만들게 했는데 그의 호를 따서 초당 두부라고 하였다.
** 삼베를 기저귀처럼 잘라서 사용하던 옛날의 여성 생리대.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성해, ㈜문학동네, 2016